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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도는 경계에 있다/ 연암이 압록강애서 던진 화두/김태희역사연구가

작성자박종영|작성시간26.06.12|조회수0 목록 댓글 0

 

실학산책  - 도는 경계에 있다 / 연암이 압록강애서 던진 화두 

- 김태희  역사연구가 -

 

 

240여 년 전인 1780년 여름, 연암 박지원은 사신단을 따라 압록강에 이르렀다. 그 강은 조선과 청(淸)을 가르는 경계였다. 상류에 큰비가 왔는지 눈앞에 불어난 강물이 거셌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사신단은 마침내 강에 배를 띄웠다. 사공들은 일제히 뱃노래를 부르며 노를 저었다. 다섯 척의 배가 급물살 속에 빠르게 나아갔다.

이때 연암은 역관에게 불쑥 물었다. “그대는 도(道)를 아는가?” 그리고는 답을 이었다. “이 강은 저들(청)과 우리(조선)가 경계를 나누는 곳일세. … 도는 달리 찾을 게 아니네, 바로 그 ‘경계’에 있다네(道不他求, 卽在其際).” 도란 이쪽도 저쪽도 아닌 맞닿은 경계, 그 사이, 그 중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연암의 ‘제(際)’, 즉 ‘경계’의 사상이다.

연암은 유교·불교·서학을 회통시켜 경계의 사상을 설명했다. 이윽고 정(鄭)나라 재상 자산(子産)이라는 역사인물을 거명하며 구체적 설명에 들어갈 듯했다. 그때 배가 언덕에 닿았다. 그러나 갈대 진창에서 발 디딜 땅조차 못 찾고, 흩어진 배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혼돈 속에 처했다. 연암이 언덕에 올라 뒤돌아보니 저편의 의주성은 아스라이 작게 보였다.

경계란 둘을 갈라놓는 단절의 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 맞부딪히는 새로운 에너지 공간이다. 연암은 경계의 한쪽에 서지 않고, 그 ‘중간’에 섰다. 오히려 경계 위에 서서, 이쪽과 저쪽을 함께 바라보는 ‘중간의 시선’을 택했다.

오늘날 우리는 저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인종과 성별, 세대와 지역, 신념과 취향 등의 정체성은 자기 존립의 기반이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우리 편과 저들,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어 분열과 갈등을 낳기도 한다.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이 어느새 타인을 밀어내는 벽이 되고, 오랑캐라 욕하며 싸우면서 어느새 자신이 그 오랑캐가 된다.

정체성이 곧 진영이 되고 적대가 되는 분열의 시대에, 경계의 사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는 분명하다.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하되 그 자리에 갇히지 않으며, 경계를 분별하되 그 경계를 단절과 배제의 벽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소통하는 창으로 삼는 것이다.

연암이 거명한 자산은 정나라의 재상으로 두 강국 사이에서 소국의 존엄과 실리를 절묘하게 지켜낸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연암은 청을 오랑캐로 단정하던 당대의 통념을 넘어 그 너머의 문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허위의식과 자기 폐쇄를 타파하는 《열하일기》를 남겼다.

2026년 여름, 다산연구소는 연암이 건넜던 압록강변 언덕에서부터 베이징에 이르는 〈열하기행〉에 오른다. 240여 년 전 한 선비가 경계 위에서 던진 화두를,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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