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조선초에는 무덤 즉 능이었다
신덕왕후
태조 이성계 두번째부인 강씨 능
고려 조선초는 부인을 둘을 두었다
하나는 고향에서 애 키우며 시부모모시는 향처
두번째는 무사나 지방으로 다니는 관료들이 부인을 데리고 다니게 허락되는 두번째 부인 경처
해서 조선처럼 첩이라 하지 않는 엄연한 본 부인이다
이성계가 왕이 될수있게 도운 강씨는 고려말 실권을 잡는 정치집안으로 강씨의 영향력이 컸다
이 신덕왕후가 죽자 정동 지금의 덕수궁자리에 능을 조성한다
하지만 왕권에서 밀려난 이방원이 왕이되어서 이 신덕왕후 능을 파묘한다
석물은 광통교 다리 놓을때 썼으며 지금의 정릉의 자리에 이장을 한다
이 능자리가 풍수지리에 좋다는 소문으로 사대부집안에서 땅을 사들이고 왕족들의 집터가 되었다
두번째는 사대부가의 집터가 된다
세조 집권후 단종 어머니인 현덕 왕후가 내아들 단종을 죽였으니 니 아들도 함 죽어봐라 하고 목을 눌렀다는 야사가 있다
해서
세조 첫째 아들 의경세자가 20살에 요절을 했기에 세자빈과 그의 아들들을 측은하게 여긴 세조가 궁궐에 준한 집을 지금의 덕수궁 자리에 마련해 준다
그 사대부가의 집터가 지금 덕수궁 자리이다
세조의 두번째 아들 예종이 또 요절하자 의경세자 두번째 아들 자을산군이 왕으로 추대ㅡ부인이 한명회 딸ㅡ
인수대비와 성종은 궁으로 들어간다
인수대비의 큰아들 월산대군이 덕수궁자리 집을 지키며 자자손손 살았다
임진왜란 후 선조로 인해 월산대군 집이 왕궁이 되었다
그때는 경운궁이라 했다
선조가 와 보니 모든 궁들이 불에탔다
백성을 버리고 간 왕의 불신에 직접 백성들이 불질러 태운것이다
갈곳이 없어지자 월산대군 집을 궁궐로 승격시키고 주위 집들까지 인수해 궁으로 쓴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 이때 우리나라 웬만한 궁을 경복궁만 빼놓고 창덕궁 창경궁 복원 외에 경희궁 인경궁을 다시 짓는다
이때 창덕궁으로 들어간 광해군이 경운궁을 서모인 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서궁으로 궁도 격하시켰다
광해군이 쫒겨나 인조가 왕이 되자 인조는 경운궁을 버렸다
다시 경운궁이 빛을 본것이 고종때 일이다
아관파천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다 처음 발 들인곳이 경운궁이다
이때 다시 정비하고 궁궐다운 궁궐로 만들었으나 다시 불탄다
불탄후 중명전에 피신해 있던 고종이 다시 경운궁을 지었는데 처음보다는 많이 축소되게 지었고 중화전도 2층규모에서 1층으로 바뀌었다
나라 재정이 없었다
여기서 본인이 황제임을 선포한다
을사늑약으로 중명전에서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팔아넘기는 일이 생기자 고종은 네델란드 헤이그에 비밀 밀사이준과 두사람을 보낸것이 일본에 의해 들통이 난다
이를 계기로 고종이 왕위에서 밀려나고 순종이 왕이 된다
이때 경운궁에서 순종이 아버지가 오래 살라는 뜻에서 덕수궁으로 고쳐 부른다
함녕전에서 독살 당한 고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3ㆍ1 운동의 시발점이 되어 대한독립을 전 국민이 외치는 태극기 무대가 돤것도 덕수궁이다
다른 궁과는 달리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은 궁이 덕수궁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소엽 작성시간 26.06.07
덕수궁이. 경운궁
생소한 역사를 줄줄이
역대왕들이 경운궁에
살았네요
불을지른 백성도 대단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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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여주 작성시간 26.06.07 역사에 관해 맹한 나는
(아~다 맹하지ㅎ)
상큼님 해설을 보면
어찌 다 기억 하고
글로도 술술 잘쓸까!!!!
역사 쌤이여 상큼님은
윗줄 읽고
아랫줄 읽으면서
윗줄은 까먹는데 여준 ㅎㅎ -
답댓글 작성자친구따라 작성시간 26.06.07 ㅋㅋ
바브탱이
어찌그리
나랑 똑 같냐ㅎㅎ -
작성자친구따라 작성시간 26.06.07 얼마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다시
청와대로
비슷하네ㅎㅎ -
작성자정우 작성시간 26.06.11
걔네들도 이사를 다녔었네.
월세사는 서민들만 이사를 다니는줄 알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