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222, 묘적산(妙寂山)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남북국시대 신라 문무왕 때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그 뒤 조선 초기까지의 역사는 미상이며, 조선 중기에 폐허화 되었다. 묘적사에 대한 기록은 뚜렷한 것이 없다. 흔히 백봉산(柏峰山)이라 불리는 묘적산의 남쪽 골짜기 아늑한 곳에 묘적사가 있다. 묘적사 골짜기는 협곡으로 개울을 따라 꼬불꼬불 휘돌아 들어가기 때문에 마치 별천지를 찾아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또한 골짜기가 길어서 가뭄에도 물이 많고 절 인근에 폭포도 있어 경관 또한 좋은 곳이다. 대웅전 주변의 건물들은 자연스럽게 휘어진 통나무 기둥으로 되어 있고 제법 넓은 못과 잔디밭이 있으며, 오래된 10여 그루의 회양목들은 큰 석종처럼 다듬어 놓은 것도 보기가 좋다.
김교헌(金敎憲)이 쓴 「묘적사 산신각창건기(山神閣創建記)」에 의하면, 수백 년 동안 소규모의 사찰로 명맥만 이어오던 것을 1895년 봄 규오(圭旿)가 시주를 얻어 산신각을 짓고, 오랫동안 이 절에 있었던 산왕신상(山王神像)을 봉안하였다 한다.
1969년 실화로 산신각·큰방 등이 전소되었고, 1971년 주지 자신(慈信)이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문헌들에서 사찰의 존재는 살필 수 있으나, 사적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된 바가 없으며, 단지 절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팔각칠층석탑만이 오래된 세월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런데 절에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묘적사는 승병(僧兵)양성 도량이었다고 한다. 주지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묘적사는 본래 국왕 직속의 비밀기구가 있던 곳으로 왕실산하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기 위해 절을 짓고, 선발된 인원을 승려로 출가시켜 고도의 군사훈련을 받게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임진왜란 때 집중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말을 증명하듯 절에서 동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활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탄한 대지가 있고, 이곳에서는 간혹 화살촉이 발견되곤 한다. 우리나라는 호국불교라는 이념 아래 임진왜란과 병사호란 등 국난 때마다 많은 승려들이 국가 수호의 첨병으로 앞장섰다. 아마도 이 곳 묘적사 역시 승려들이 무예를 갈고 닦는 수련장으로 활용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최근에 들어서도 이러한 묘적사의 성격을 이해한 박정희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호국교육장으로서 복원을 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의 죽음으로 중지되었다고 한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승방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을 중심으로 후불탱화(後佛幀畫)·산신탱화·칠성탱화 등이 있다. 이 절에는 조성연대 미상의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유물로는 남양주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된 남양주 묘적사 팔각다층석탑 유명하다. 이 탑은 월정사팔각구층석탑· 수종사(水鐘寺)오층석탑과 양식이 비슷하여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3층과 4층 사이의 체감률이 부자연스럽고 절에서 동쪽으로 30m 가량 되는 곳에 탑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본래 7층은 아니고 대략 11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