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산(虎丘山) 운암사(雲岩寺)
우리들이 보통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내가 호구(虎口)로 보이냐?> 할 때 호랑이 입의 의미로 내가 어리석게 보이냐, 내가 순진하게 보이냐는 의미로 사용한다 여기 운암사 호구산이 있어 생각 해 본 것이다. 그래서 여기 호구(虎丘)와는 다른 뜻이다.
호구는 그 옛날 호랑이가 머물던 곳이라는 뜻이다.
소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는 호구산 운암사탑(雲岩寺塔)이다. "쑤저우(소주)에 와서 운암사와 탑을 보지 않으면 평생의 한이 된다"라는 소동파의 말로 대변될 만큼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운암사는 서기 327년 동진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당나라 시대에 '운암사'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호구산 전체가 사실상 이 사찰의 경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산과 사찰이 일체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산문에서부터 정상에 이르기까지 정자와 전각들이 자연 지형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고, 사찰 자체의 건축미도 뛰어나지만, 주변의 기암괴석과 고목들이 어우러져 '산속의 사찰'이 아닌 '사찰 자체가 산인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구탑은 이러한 운암사에 건축된 7층 석탑으로, 공식 명칭은 운암사탑이다. 지반 침하로 인해 북서쪽으로 약 3.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동양의 피사의 사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호구산의 검지(劍池)는 전설을 지닌 신비로운 곳이다.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闔閭)의 묘소로 알려져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합려가 죽었을 때 그가 아끼던 명검 3,000자루를 함께 묻었다고 전해진다. 후에 진시황과 손권이 이 보검들을 찾으려고 땅을 팠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검지로 올라가는 길목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마치 칼에 베인 듯 정교하게 갈라져 있는데, 이 바위가 바로 시검석(試劍石)이다. 합려는 전설적인 대장장이에게 명검을 만들게 했는데, 검이 완성되자 합려는 그 검의 위력을 시험해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바위는 종잇장처럼 매끄럽게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현재도 바위는 수직으로 쩍 갈라져 있어, 관광객들은 그 틈 사이를 들여다보며 전설의 흔적을 확인하곤 한다.
① 운암사와 도생법사(道生法師355-434)
호구산 운암사는 도생법사의 수행도량으로 유명하다 도생법사(道生法師355-434)는
서역(쿠차국)의 구마라집 제자이다 구마라집에게는 3천여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제자는 도생법사와 승조법사였다. 도생법사는 장안(서안)으로 가서 구마라집에게 4~5년 경학을 공부하고 남쪽 호구산 운암사로 내려왔다. 운암사에 머물면서 열반경을 깊이 공부하였고 초암의 뜰 앞에 있는 작은 돌무더기에게 부처님의 열반경을 강설하면서 <내가 말한 열반경의 이치가 모두 합당 하느냐>하고 물으니 돌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것이 도생법사의 석개점두(石皆點頭), 유명한 내용이다.
얼마나 그 공부가 지극하면 미생물이 생물처럼 머리를 끄덕일까? 지극한 수행이란 억년 비정의 함물도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유법지극 귀어무법有法至 極歸於無法 유법이 지극하면 귀어무법이든가? <색즉시공 공즉시색>
과거 서울대 철학과 박종홍교수의 수필에 나오는 글이다. 어느 지인이 새해 선물로 족자를 만들어 보내왔다. 박종홍교수가 가만히 살펴보니 족자 전체는 백지였고 아래 부분에 검정색 돌같은 먹물들이 몇 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석개점두(石皆點頭)라고 씌여 있었다. 자신이 철학과 교수이지만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여 지인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다 이 족자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지인은 도생법사와 열반경이야기 그리고 석개점두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도생법사의 수행이 깊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도생법사를 친경하기 위하여 찾아왔다. 운암사 입구에는 공생석(公生石)이 있는데 공생은 도생법사를 존경하는 호칭이다 또는 천인석(千人石)이라 하는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기서 불법을 설교하던 장소를 말한다. 도생법사는 일체중생 실유불성 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고 강조 했다. 열반경에 나오는 유명한 경문이다. 모든 존재자는 모두 부처님과 같은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중국 불교계에서는 일부의 중생은 성불하지 못한다라는 견해가 강했다 그러나 나중에 완전한 대반열반경이 유포되자 그 경문에 一切衆生 悉有佛性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도생법사를 우러러 존경 하였다고 전해진다.
소동파의 오도송........무정설법無情說法
溪聲便是 長廣舌 (계성변시 장광설)
계곡 물소리는 모두가 부처님 법이며
山色豈非 淸淨身 (산색기비 청정신)
산천초목은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 아닌가?
夜來八萬 四千偈 (야래팔만 사천게)
하룻밤 사이에 팔만사천 법 깨달았는데
他日如何 擧似人 (타일여하 거사인)
다른 날 이 도리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일러 주겠는가!!
소동파의 일화
소동파가 약관의 나이에 중국 천하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칠즈음
옥천사 승호대사를 참배 하러갔다
승호대사가 "처사는 누구신가요?" 하니 소동파가 칭(秤) 이라 하였다
자신이 선지식을 저울질 한다는 표현을 하니...
승호대가사 아악! 하고 일갈(一喝) 하면서"지금 이소리가 도대체 몇근이요"
하고 물었다 기고 만장하던 소동파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또한 소동파는 자신의 경솔함을 참회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고자
상총 조각선사를 만나서 스님에게 법문을 청하자
그대는 유정설법만 들으려하고 어찌 무정설법은 듣지를 못하는가? 하자
여기에서도 소동파는 크게 무안을 당하였다.
이것이 화두가 되어 골똘히 몰두하던 소동파는 어느날 말을 타고
자연속의 폭포를 지나 가다가 활연대오(豁然大悟)했다.
그때 지은 시가 바로 위의 시이다. 참으로 대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보니
대자연과 나와 부처가 둘이 아니며,
대자연의 움직임 그대로가 법문 아님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와 같이 소동파는 무정설법을 들을 수 있는 출격대장부 (出格大丈夫)
가 되었든 것이다.소동파는 당시 최고의 문인 이었는데 선지식을 만남으로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