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 대한불교 태고종 호국미륵기도도량 비봉산 봉업사(飛鳳山 奉業寺)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미륵당길 70 (죽산면 죽산리 2)>
2026.6.11(목) 태조 왕건과 숨은 고려의 보물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과 당간지주 및 일광사, 매산리 석불입상과 미륵당 오층석탑 탐방후
네번째 역사문화 일정으로 호국미륵기도도량 비봉산 봉업사를 찾는다(06:27~06:35)
죽산리 삼층석탑은 봉업사의 옛터로 알려진 곳에 자리했으며 방형의 이중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갖춘 석탑이다.
발굴 조사결과 통일신라 석탑의 하층 기단을 재사용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석탑 기단 하부에서 태화 6년(832)의 기와가 출토되어 통일신라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죽산리 삼층석탑은 후삼국의 혼란 속에서 사찰과 석탑이 훼손된 후
고려 건국과 함께 대대적으로 석탑이 정비되면서 통일신라 석탑 기단을 재사용해 건립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하층기단은 지면에 갑석만 노출되어 있고, 상층기단은 투박하게 다듬은 면석 모서리에 측면 기둥인 우주를 표현했다.
두꺼운 갑석 윗면에는 고려시대 석탑에 자주 사용된 복련 형식의 연잎 문양을 조각했고, 중앙에 사각형 탑신 받침을 낮게 표현했다.
탑신은 상층기단과 유사한 높이로 제작됐지만, 2층 이상부터 급격히 축소되어 고려 석탑 특유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옥개석 낙수면은 비교적 완만한 편인데, 추녀면은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에 이르면 반전을 이루고 있다.
안성 죽산리 삼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삼층탑신을 올린 일반형석탑으로 봉업사지(奉業寺址)의 뒷편 비봉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4매의 판석으로 조성된 지대석 상면에 단층기단을 구축했다. 기단은 4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隅柱)가 모각되어 있다.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갑석(甲石)의 하면에는 부연(副椽)이 있고,
상면에는 각 면 3구씩, 모서리에 각 1구씩 모두 16판의 복련伏蓮이 조식되어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정연히 모각되었고, 1층 탑신이 2층에 비해 유난히 높게 조성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옥개석의 너비에 비해 탑신의 폭이 좁게 제작된 느낌을 주고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매층 각형 4단의 받침이 조출되었고,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합각선이 두툼하다.
처마는 얇게 조성되었는데,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 살짝 반전反轉되어 경쾌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
2004년에 진행한 석탑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석탑의 지대석 하면에서 탱주가 새겨진 기단부재가 확인되었다.
석재로 구축된 판축층 상면에 기단이 놓인 점으로 볼 때, 기왕에 건립된 석탑이 파손되면서 현재의 석탑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기단갑석 상면의 연화문, 옥개석에서 보이는 안정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봉업사 사천왕상
호국미륵기도도량 봉업사 표시석
정림사지 5층석탑을 모사한 석탑
봉업사 대웅전과 오층석탑
봉업사 대웅전
절 마당 한켠에 포대화상을 시작으로 대웅전이 주 법당이며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인로왕보살과 별도의 지장보살 조각탱이 모셔져 있고, 치성광여래불과 나반존자가 별도 모셔져 있으며
신도분들의 원불과 같이 수많은 나한님들과 사리를 친견할 수 있다.
포대화상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7호, 1980.06.02 지정)
이 불상은 연꽃 모양의 대좌 위에 놓여 있는 높이 3.36m의 석불입상으로, 죽주산성 아래 쓰러져 있던 것을 현 장소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얼굴은 온화한 인상이고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다.
민머리 위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있으며, 양 어깨부터 배 부분까지 타원형의 옷 주름이 촘촘히 새겨 있다.
몸체에 비해 머리와 손이 크게 표현되어 있고 육계, 타원형의 옷 주름의 표현 등으로 고려 초기 불상 양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봉업사지 북쪽 죽주산성 아래에 위치한 석불입상으로
통일 신라 여래상의 전통적인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여 정제된 조각수법을 보이는 고려 전기 불상의 우수한 사례로 여겨진다.
절단되었던 머리와 신체를 접합하였으며 발은 최근에 복원하였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둥근 대좌 위에 서 있으며, 광배는 남아 있지 않다.
민머리 위에는 육계(상투 모양의 머리묶음)가 큼직하다. 신체에 비해 약간 큰 얼굴은 둥글고 귀가 어깨까지 길게 늘어졌다.
이목구비가 비교적 작은 편이나 눈은 거의 감은 상태로 가로로 길다.
양팔을 신체에 붙인 채 오른손은 허리 부근에서 손바닥을 밖으로, 손끝을 아래로 하여 펼쳐 보이고 있다.
왼팔 역시 신체에 밀착한 채 가지런히 내리고 있으며, 왼손도 밑으로 내리고 있다.
양쪽 어깨에 걸쳐져 내려오는 대의는 신체 전면을 감싸고 있는데 가슴에서 촘촘한 U자형 주름을 형성하다
대퇴부에서 Y자를 형성하며 양쪽 다리로 갈라져 각기 기다란 U자형 주름을 형성하며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는 통일 신라 시대 8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유행했던 형식이다.
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