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 칠장산(七長山, 492m) 산행 #1
2026.6.10(수) 맑음
<산행코스 및 구간별 소요시간 : 4.9km, 2시간 20분 소요>
칠장사 주차장/15:00-칠장사/15:17-약수터/15:29-어사 박문수 합격다리/15:33-혜소국사비/15:34-금북정맥 칠장사 게이트/15:42-
쉼터 의자/16:02-칠장사 갈림길/16:09-데크계단/16:13-3정맥분기점/16:18-데크계단/16:23-헬기장/16:24-칠장산/16:27/16:33-
3정맥분기점/16:42-칠장산 갈림길/16:46-데크계단/17:03-어사 박문수 몽중등과시/17:05-야호바위-
칠장사 갈림길/17:08-어사 박문수 합격다리/17:34-칠장사/17:36-칠장사 주차장/17:46
칠장산은 높이 492m의 낮은 산으로 아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기슭에는 칠장사가 있고 절 주변으로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칠현이란 지명은 고려 시대 혜소국사가 신라 때 창건된 칠장사라는 사찰에서 수도를 하던 중
일곱 도적을 제도하여 도를 깨우치게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026.6.10(수) 배티성지 및 서운산 청룡사 탐방후 안성 칠장산(492m) 1일 2산 산행을 이어간다.
이번 안성 칠장산, 칠현산 산행은 1995.2.19(산죽산악회 시산제) 이후 31년만에 다시 찾는 곳이다.
15:00 칠장산 일주문이 있는 칠장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세로로 쓴 칠현산칠장사(七賢山七長寺) 표석이 서 있다.
일주문에는 '七賢山七長寺(칠현산칠장사)'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일주문 편액 글씨는 칠장사 표석과 마찬가지로 칠장사 주지를 지낸 도광(道光) 스님 작품이다.
칠장사 주차장의 경기둘레길 40코스 안내도 및 스템프함
칠장사 → 칠현산 → 덕성산 → 금광호수 → 수석정으로 이어지는 경기둘레길 40코스의 시작점인 칠장사!!
주차장에 주차후 안성 1경인 칠장사로 올라간다.
15:17 신라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 칠장사(七長寺) 주차장
칠장사의 현판 · 당간에는 '칠현산'이라는 산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36년(선덕여왕 5)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고려초 혜소가 현재 비가 있는 자리에 홍제관을 짓고 수도를 할 때
7명의 악인을 교화 제도하여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산이름을 칠현산이라 했다고 한다.
고려 현종 5년(1014) 왕명으로 혜소국사가 중수한 후, 1506년, 1674년, 1877년에 건물을 중건, 보수하였다.
1674년(현종 15)에는 어떤 세도가가 산을 빼앗아 승려들이 흩어지는 비운을 겪었으나 초견이 절을 다시 찾아 중수했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함께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명부전, 원통전, 사천왕 등의 우아하고 응장한 조각미와 채색미가 볼만하다.
중요문화재로는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 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천왕문 안에 있는 소조사천왕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 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호)이 있다.
이밖에 절 입구에 고려시대의 철제 당간지주와 부도 14기 등이 있다.
특히 조선조 명종때 임꺽정이 스승 병해 스님과 함께 10여년간 머물던 사찰로써, 벽초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 얘기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2001년 10월 사찰내 유물을 전시 등의 목적으로 문화 홍보관인 홍제관이 건립되었다.
칠장사가 자리하고 있는 칠현산 고개는 조선시대에 진천과 안성을 오고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교통 요지에는 유난히 도적과 관련된 설화가 있는데 칠현산(七賢山)이란 이름도
고려 때 혜소스님이 이곳에서 선량하지 못한 7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
궁예가 19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고는 활터 이야기,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가 입적하자 꺽정불을 만들어 극락전에 모셨다는 이야기,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과거길에 들러 나한전에서 기도하고 잠을 자다가
시험문제 (시제)를 받아 장원급제했다는 이야기 등 이 절과 관련된 이야기가 풍성하다.
금북정맥 국가생태문화탐방로 안내도
금북정맥은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충남 태안 안흥진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 거리는 295km에 달한다.
칠장산 1.7km 방향으로 올라가는 목교
어사 박문수길 종합안내도
칠장사 주차장에서 칠장산 1.3km 방향 최단코스를 따라 산행하기로 한다.
천왕문(天王門)
칠장사 사천왕문(四天王門)에는 좌우로 각 2구씩 모두 4구의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모두 악귀(惡鬼) 위에 걸터 앉아 두 눈을 부라린 험상궂은 얼굴로 칼,창,비파 등 무기를 든채 나쁜 무리를 몰아내는 당당한 기세를 하고 있다.
높이 342cm의 소조상(塑彫像)이며 1726년(영조2)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각 부의 조각 장식에서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모습으로 머리에는 꽃이 달린 관을 쓰고
몸에는 혼갑 (昏甲)·흉갑(胸甲)등 치밀한 무늬로 새긴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장군의 늠름한 자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과 창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 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과 보검을 들고 있는 남방 증장천왕(南方 增長天王)이 서있다.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탑을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사천왕상은 창만 들고 있습니다.
칠장사 범종각
「이 범종은 종신의 명문을 통해 볼 때 1782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높이가 120cm이고, 밑지름이 75cm인 중형의 동종이다.
종 꼭대기 위에 두 개의 뿔을 가진 쌍룡이 여의주를 물고 양 발톱으로 종을 움켜잡고 있다.
상대에 8개의 범자를 양각하였다. 종신 네 곳에는 보살입상, 유곽이 번갈아 조각되어 있다.
보살상들은 모두 원형두광을 갖추고 보관을 쓰고 있다.
법의는 길고 잔잔히 선으로 두르고 그 밑에 조성시기와 주성장 등을 양각으로 적어 놓았다.
이 범종은 범종의 형태와 문양 배치에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범종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혜소국사비 방향으로 진행한다.
공덕전(功德殿)
칠장사 발전에 공덕을 쌓은 분들의 공덕비와 부도가 놓여있다.
공덕전 삼존불 관음보살(좌) 아미타불(중앙) 지장보살(우)
공덕전 경내 승탑
15:28 약수터
음수대는 화강석으로 새로 만들고 그 자리에 있던 음수대는 혜소국사비각에서 나한전으로 오르는 언덕위에 설치했다.
금강발원지 약수터 원탕
국사전
국사전에는 인목왕후(조선 14대 선조의 계비), 개산조 자장율사(신라), 중창조 혜소국사(고려)
그리고 창건 이래 역대 조사(국사, 왕사, 대사,)의 위폐 봉안하고 있다.
칠장사 역대 조사의 위폐
15:33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
어사 박문수 합격댜리 유래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기 전에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이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주어 장원급제했다는 얘기를 수능을 앞둔 학생, 학부모의 애타는 심정을 오색리본으로 장식했다.
칠장사 혜소국사비
칠장사 사천왕문으로 들어와 왼쪽으로 50여m 올라가면 있는 비로, 고려 문종 14년(1060) 혜소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화강암과 검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비신높이 3.15m, 폭 1.42m로 김현이 글을 짓고 민상제가 썼으며 이강령이 글을 새겼다.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
귀부·비신·이수가 하나로 조합된 탑비였으나 현재는 각각 따로 해체하여 보존·전시되고 있다.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으로 제작되었고 비신은 흑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웅천사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83세가 되던 고려 문종 8년(1054)에 입적하였다.
고려 문종 14년(1060) 혜소국사의 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이 비는
김현이 글을 짓고 민상제가 글씨를 썼는데 비문에는 대상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신의 높이는 241m이고, 폭은 128m이며,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의 비신은 중앙부가 절단된 채로 전해지던 것을 1975년에 보수한 것으로
비신이 깨진 배경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 가 칠장사에 왔는데, 어떤 노승이 나타나 그를 꾸짖었습니다.
화가 난 가토 기요마사가 칼을 빼들어 노승의 목을 베자 갑자기 노승은 사라지고, 혜소국사비가 피를 흘리며 토막이 나있다.
혜소국사비 귀부
귀부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로 비신과 이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귀부의 얼굴은 용의 형상으로 묘사되었으며, 등에는 육각형 모양의 귀갑문이 새겨져 있다.
귀부의 등 중앙에는 비좌(비신을 세우기 위해 홈을 판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비좌의 윗부분에는 연꽃 문양을 조각하였다.
비신은 탑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앞면에는 정현의 행적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었고 뒷면에는 정현을 기리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당대 문장가였던 김현이 비문을 지었고, 민상제가 구양순의 해서체를 따라 글씨를 썼으며, 배가성·이맹 등이 비신에 글자를 새겼다.
비신의 좌·우 측면에는 용이 구름 위를 날아가는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했고,
비신의 상단 중앙에는 '贈諡慧昭國師碑銘(증시혜소국사비명)' 이라는 전액을 새겼다.
비신의 좌·우 측면에는 용이 구름 위를 날아가는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했다.
혜소국사비 이수
이수는 탑비의 머리 부분으로 장식적인 역할과 비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제액(비석의 명칭이나 비석의 주인공을 새긴 부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이수 전면에 용·구름 등을 조각하여 장식했다.
나한전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전 나한과 박문수
과거보러 한양으로 가던 박문수가 이곳 칠장사에서 하루밤을 묵게 되었다.
이미 칠장사 나한전은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이 기도를 많이 해 급제를 했다는 영험이 전해지는 유명 기도처였다.
박문수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유과를 나한전에 올리며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이번 과거에 출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날밤 꿈에 "나는 칠장사 나한인데 그대의 기도를 들어 주겠다.
과거를 볼 시제를 보여 줄테니 잘 기억하시오" 하고는 시제를 써 내려갔고
마지막행은 스스로 완성하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는데, 꿈에 본 시제가 또렷이 뇌리에 남아있었고,
과거를 치러는 날 시제를 보고는 박문수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날 밤 꿈에 본 시제가 그대로 나왔기 때문에.
결국 박문수는 병과 진사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니 이것이 그 유명한 칠장사 '몽중등과시'이다.
나한전의 내부(16나한)
일반적으로 불단이 마련되는 자리에 커다란 바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전각을 마치 'ㅗ'자(한자 고무래 정자를 차용해서 쓰는 정자각<丁字閣>을 뒤집어 놓은 형태)처럼 만들어
안쪽 깊숙한 곳에 혜소국사와 교화된 일곱 산적을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