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9일 토요일 새벽기도회 ♣
성경:역대하13:13-22(구673P)
제목:여로보암의 참패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시는 여러분에게 송꿀보다도 더 달콤한 말씀으로 은혜를 내려 주실줄로 믿습니다.
***{제목}***“여로보암의 참패”
“아비야의 경고”
아비야는 이스라엘과 여로보암에게 경고를 했습니다.경고는 깨닫게 함이요 회개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1.말씀을 통한 경고.
아비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경고하셨습니다.
“너희가 또 다윗의 자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지 말라”이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회개하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하나님은 말로 해서 안들으면 때리십니다.
2.섭리적 경고.
아비야의 군대는 사십만이요 여로보암의 군대는 팔심만입니다. 이 전쟁에서 아비야의 군대는 승리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군대는 오십만이 죽었습니다.
이쯤되면 그들은 깨달아야 했을 것입니다.하나님의 경고는 깨닫게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완악하여 반항해서는 안됩니다.
3.회개의 기회.
잘못했는데도 징벌하지 않는 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깨달음이 없이 죄를 반복하여 지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
베드로는 닭우는 소리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그러나 애굽의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경고의 말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초태생을 모조리 죽이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질때 회개하고 돌이키며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비야 왕 처럼 두려움 없이 외쳐야 합니다.
1.모든 사람이 듣도록 외쳐야 합니다(4절).
2.주의 언약을 알게 해야 합니다(5절).
성도 여러분!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라면 때대로 자신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다수의 사람들이 반대한다 해도 수에 눌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듣고 알도록 외치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탐한 수 그 거민을 보고 “저들에 비해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민13:13)고 보고한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분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가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민14:9)이라고 한 외침이 바로 이러한 목숨을 건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진리가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러한 외침이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이 진리를 전하는 것을 외면하시겠습니까?
적이 너무 많습니까?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게 된다 할지라도(합3:17) 두려움 없 이 담대하게 진리를 외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로보암의 참패”(역대하 13:13-22)
우리는 여로보암이 아비야의 연설에 대해 일언반구라도 대답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비야의 담화는 정당한 것이었으나, 여로보암은 그의 말에 주의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못들은 체했습니다.
그는 전쟁하러 온 것이지 논쟁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장 긴 칼이 문제를 결정지을 일이지 더 나은 명분이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정의와 신앙이 승리하였는지 못하였는지 그 결과를 살펴봅시다.
Ⅰ. 자기 전술에 의지하였던 여로보암은 참패하였습니다.
그는 사리를 온당하게 따질 줄은 도무지 몰랐으므로 결국 온당한 전투에 대처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로보암이 아비야의 열변에 대해 혹독한 경멸감을 품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전략이 그 따위 연설 스무 개의 가치는 있다. 우리는 이제 곧 그의 모든 변론에 대한 답을 해 주겠다. 아비야는 곧 무수한 군대에게 압도당한 자신을 보게 될 것이며, 죽음의 기계가 사면 팔방으로 자기를 포위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자기 종교와 자기 왕위에 대한 권리를 자랑해 보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협상이 타결되고 있었으나(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야비하여 그 기회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는 협상하는 일면 모든 전쟁 관례에 어긋나게도 "유다의 배후에 복병을 매복시켰던 것" 입니다. "종이 통치를 한다고 해서" 무슨 영예를 기대할 수 있겠으랴? 아비야는 "말로 화평을" 원했으나, "그들은 싸움을 원했습니다" (시 120:7).
Ⅱ. 아비야와 그 백성들은 저희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므로, 저희의 힘과 수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정복자가 되었습니다.
1. 저들은 지독한 궁지에 몰리게 되어 큰 놀람을 당하였으니, "전투가 전면과 후면에 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놀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승리하도록 지정된 자라도 잠깐 동안은 당혹과 고통에 휩쓸릴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저희가 나를 벌떼처럼 에워쌌나이다" (시 118:10-12).
2. 위험이 사면에 깔린 곤고한 때에 저희가 윗쪽이 아니면 어느 쪽을 향해 구원을 바라겠습니까?
어떠한 원수라도(가장 강력한 자나 모사꾼도) 또 어떤 전략이나 매복도 우리에게서 하늘과 교통하는 것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하늘로 향한 우리의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1). "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14절).
우리는 저들이 이 전쟁에 임하기 전에도 그렇게 부르짖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당한 환란은 기도를 새로이 불러 일으켰고 하나님께 갈급히 구하도록 재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궁지로 몰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저들로 하여금 "주께 부르짖는 것" 을 가르치고자 하심입니다. 간절한 기도는 부르짖음입니다.
(2). 그들은 "저희 열조의 하나님께 의지하였고", 자기들을 도와주실 그의 권능에 의존하여서 스스로를 하나님께 의탁하였습니다(18절).
믿음의 기도는 응답되는 기도이며, 우리로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 입니다(요일 5:4).
(3)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계심을 보증함으로써 저희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나팔 소리는 전쟁의 신호를 알리는 소리였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소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소리는 저희 믿음 속에 생명을 불어 넣었던 것입니다.
(4). 그들은 승리를 자신하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 날은 우리의 승리의 날이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기도의 부르짖음에다 저희는 믿음의 고함을 보태어 질렀으므로 정복자 이상 가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3. 이렇게 하여 저희는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기뻐 "소리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 과 그 군대를 너무나 큰 공포와 경악으로 "치셨으므로", 그들은 공격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모두 황급히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정복자들은 사정없이 공격하여 이스라엘의 정예병 50만 명을 칼로 베었으니(17절), 역사에서 우리가 여태껏 읽은 것 가운데 단일 전투 전사자로는 이에 능가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이같이 징벌하시면서 다윗의 집을 인정하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분열의 비참한 결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인들이 물같이 흐르게 한 그 피는 같은 이스라엘인들의 피였고, 그러는 동안 저희 인근의 이방 민족들은 과거에 이스라엘의 이름만 들어도 공포를 느꼈던 자들인지라
"아하!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원했었는데" 하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4. 이 결과 이스라엘 자손은 비록 다윗가에 귀속되지는 않았다고 하나(하나님의 결정된 뜻이 만약 별다르지 않았더라면 그토록 격심한 타격으로 말미암아 저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다윗가에 수복되고 말았을 터이었습니다) 그 당시로는 "굴복하였습니다" (18절).
많은 성읍들이 함락되었습니다. 특히 벧엘처럼 그 성들은 유다 왕들의 소유지로 남게 되었습니다(19절). 벧엘이 유다 왕의 부중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 있던 황금 송아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그것은 더 안전한 어떤 곳으로 옮겨졌다가 나중에는 사마리아로 갖다 놓았을 것입니다(호 8:5).
그러나 예후 시대에는 벧엘에 금송아지가 있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왕하 10:29). 아마도 아비야는 그 금송아지를 파괴하는 권한이 있었을 때에도 그것을 없애지 않고 남겨 두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하였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얻은 것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활용하지 않았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끝으로, 정복자나 피정복자가 모두 오래지 아니하여 죽었습니다.
1. 여로보암은 패전 후 2, 3년 더 생존해 있었다고는 하나, 결코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다시는 힘을" 회복할 수가 없었습니다(20절).
여호와께서는 그를 치시되, 그의 몸이 쇠약해지도록 하는 어떤 신체적 질병으로 치셨거나 아니면 우울증과 심적 고통으로 치셨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좌절되었고, 자기의 패배에 대해 몹시 괴로와하면서, 아마 백발이 되었을 그는 슬픔을 안고 무덤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가 아비야의 칼날은 피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칼은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2. 아비야는 더욱 강성해졌습니다.
그가 이전에 가졌던 아내와 자녀의 수는 나타나지 않으나, 이제 그에겐 그 아내들을 모두 합쳐 열넷으로 늘었고, 그들에게서 38 자녀를 얻었습니다(21절).
전통에 화살을 가득 채운 자는 복이 있도다. 그는 자기 특유의 방식과 금언을 가졌으며 그것들은 그의 행복과 함께 그 당시의 역사에 기록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22절).
그러나 그의 인생은 중도에 끊어지고 말았으니 승전 후 얼마 되지 아니하여 사망이 그 정복자를 정복해 버렸던 탓입니다. 아마 그는 그의 승리로 인해 너무 자신만만해 있었던 고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존귀를 오래 누릴 만큼 오래 살려 두지는 않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한 연고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가지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어떤 때는 최악의 상태에까지 가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 양난의 기로에 설 때도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속의 길모퉁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유다 왕 아비야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침략을 받았습니다.북이스라엘군은 80만이고 아비야가 이끄는 유다는 40만으로 군사력이 현저한 열세에 있었습니다.
전술상으로도 적군에게 전후방이 포위되는 진퇴 양란의 위치에 봉착했습니다.그때 유다 백성들은 군사적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함으로써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많은 것으로 축복하셨습니다.그러면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어떠한 축복을 받았는 살펴봅시다.
1.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군사력 열세에도 유다는 적군 50만을 섬멸했습니다.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전쟁의 승패는 오직 여호와의 주권에 있는 것이지 군사의 수나 전술상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수많은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엡6: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이런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직 여호와만 의지해야 합니다.
2.나라가 강해졌습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듯이 그 나라의 흥망 성쇠도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모든 일들이 전화 위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퇴 양난의 위기에 있을 때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합시다.반드시 진퇴 양난의 길에서 건져 주시며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3.적군은 재기 불능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인물이었습니다.그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우상을 숭배하였으며 성직자를 추방했으며 성직을 매매하였습니다.
이에 반헤 유다 백성은 정규적 제사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했습니다.이를 볼 때 이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군사적 충돌이엇으나 이면적으로는 타락한 종교와 참 여호와 종교간의 싸움이었습니다.결코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종교를 이기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결과 북이스라엘은 재기불능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이는 오직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한 연고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그분만을 의지할 때 우리의 대적과 싸워 주십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리라”(왕하17:39)고 말씀하십니다.그뿐만 아니라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시59:10).
***{결론}***
“여호와를 의지한 연고로”
1.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2.나라가 강해졌습니다.
3.적군은 재기 불능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그래서 때로는 환난이나 핍박이 긴박하게 다가오게도 하십니다.그때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부리짖고,의지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진퇴 양난의 상황에서 전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의 온전하신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그러면 하나님은 전화 위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역대하13:18절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