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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죽어서도 믿음을 증거하는 아벨의 믿음

작성자박종길|작성시간09.05.16|조회수174 목록 댓글 0

♣2009년 5월17일(주일) (스승의 주일/청년주일 예배)♣


성경:창세기4:1-6(구5P)/히브리서11:4(신365P)

제목:죽어서도 믿음을 증거하는 아벨의 믿음


창세기4:1-6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주제:믿음


논지:아벨의 믿음은 죽어서도 증거하는 믿음입니다.






서론


지난 주간에 저희 노회원 수련회를 홍콩과 마카오 심천 등 3개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우리노회에 소속한 선교사님들이 선교하는 지역이기에 그 지역을 택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마침 홍콩에 독감 (influenza)으로 한국사람들이 억류되는 일도 있어서 연기하든지 취소하려고 했지만 이미 진행을 많이 한 상태라서 예정대로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던 저에게 가기전에 감기 기운이 있고 기침도 하고 열도 오르고 독감 증세하고 비슷한 것입니다.그래도 곧 나으리라고 약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갔습니다. 그런데 여행 일정이 강행군입니다. 차내와 실내에는 에어컨이 계속 작동을 하고 밖에는 무덥고  밤에는 열이오르고 기침을 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다음날 또 강행군을 하니 점점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홍콩 공항에는 열 감시 기계가 작동을 하고 한국의 공항은 더 까다롭다는 것입니다.돌아오기전날부터 열을 내리기 위해 해열제를 먹고 목사님들이 기도해 주시고 인천공항에서는 한사람씩 열을 체크합니다.모든 목사님 사모님들이 제가 잘 통과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열감시 기계가 삐르륵 울리더니 통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은 감기기운이 있다고 써냈더니 10일동안 누구도 접촉하지 말고 감금상태에 있어야 하고 그것도 안되면 주변에 있었던 분들까지 추적하여 조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병원에도 가고 약도 먹는대도 아직도 기침을 하고 열이오르고 잘 낫지를 않습니다.


공항에서 열을 감지하는데도 조마조마하고 걱정을 하는데 과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얼마나 확인하고 신앙 생활 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 말합니다.

히11장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거장들 중에 8사람만을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1-2절 말씀을 통하여 “믿음은 어떠 어떠한 것이다”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2절에서는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으로 증거를 남겼다”고 했습니다.


4절부터는 실제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떠한 인격과 삶을 증거하였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소개되는 인물이 아벨입니다.아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대지: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히11: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믿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특징은 어떠한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 1절에서 5절에 걸쳐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은 모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둘다 제사를 드리러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것은 당시 제사에 대한 공유된 지식이 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음.하나님은 제사에 대한 규례와 기준을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며 제사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였느니라" 며 피가 죄를 사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것도 짐승의 희생을 의미하며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뿌려졌을 때 죽음이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같이 구원은 피흘림이며 이것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하고 있는바, 다같이 들었으나 아벨은 순종했고 가인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결과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은 불순종했기에 그 제사를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자기 방식 자기 기준 붙잡는 결과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피흘리는 것만이 제사가 아니다고 생각하여 피흘리는 제사의 불합리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방식은 불합리하다는 생각하고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였습니다.


내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과의 싸움에서, 유혹이란 하나님의 방식 버리고 좀더 합리적인 방식 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내용없는 믿음을 강조하여 무엇이든 믿기만 하면 된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21세기 최고의 창작품은 종교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는 어떤 종교이든 진실하게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미래의 해결 같아 보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먼저 관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그래서 세계 평화를 위해 종교다원주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견 성숙된 모습같아 보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조상들의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우리 조상들이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었는데 불교든 유교든 잘만 믿었다면 구원이 주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원 가치와 상호 부응함입니다. 그래서 절대가 어디 있느냐?며 모두가 맞다고 주장합니다.


이상의 종교 다원주의의 주장은 기준없는 믿음이며 내용없는 믿음으로서 사기에 불과합니다.



이는 약장사가 이 약을 먹으면 모든 병이 낮는다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홍콩이 영국에서 100년동안 지배하다가 중국으로 반환되었는데 얼첨나게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자가용을 한 대 운용하려고하면 한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이 없고서는 엄두도 못낸다고 합니다.


아파트값도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치솟는다고 합니다. 종교가 자유롭지만 확신이 없어서 이 종교도 좋고 저 종교도 좋고 다종교를 믿는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유일성, 예수님의 유일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영과 적그리스도의 구분 기준은 그리스도를 시인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는 시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유일성을 시인하는 기준 잡아야 합니다.


기준 붙잡고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라고 말씀하시며 순종하라! 

행동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교회에서 예배하고 말씀 듣는 것은 기준 듣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을 배우는 것입니다. 배웠으면 다음은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직장과 삶의 터전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신앙"생활"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준듣고 삶의 터전에 나가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배를 통해 기준을 듣고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대지:아벨의 믿음은 의로운자로 증거를 얻었습니다


히11:4절에“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아벨은 의인이었습니다.그것은 가인에게 순교를 당함으로써 된 의인이 아닙니다.믿음으로 의인이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4:4-5)고 하셨습니다.


의인 아벨은 먼저 인격이 제물로 인정되었습니다.보이는 제물 이전에 인격이 더 근원적인 제물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질 때 모든 행위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것은 의로운 자였기에 가능했습니다.반면에 가인은 아우를 죽였기 때문에 살인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는 먼저 살인자의 성품을 가졌기에 아우를 죽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요일3:12)고 증언합니다.


유다서에서도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유11절) 부도덕한 인간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제사를 드린 후에 자기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하여 분노를 가졌습니다.


“가인이 몸시 분하여 안섹이 변하니”(창4:5)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어찌 낯을 들지 못하였느냐?”(창4:6-7)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세상 일 중에 믿음이 없는 자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요구보다 더 무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을 단계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9절에서 논증하기를


먼저,“너희가 하나님을 아는 ”단계를 말합니다.

둘째,“하나님이 아신바 되었다”고 합니다.

셋째,“하나님의 자녀로서 양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넷째,“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말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가인은 자신이 하나님을 알았는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아신 바”는 되지 못했습니다.믿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격은 나와 하나님과의 상호 아는 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았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아신 바”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7:22)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고 호령하셨습니다.,



주님이 아시는 자는 곧 영생에 이르며 주님께서 모르는 자들은 곧 멸망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아는데 주께서 나를 모른다”고 버림을 받는 자들은 자신에게 속고 산 사람들입니다.그런 사람들이 “그 날에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즈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여러분은 주님을 안다고 큰 소리치고 교만했다가 주님의 버림을 받는 사람들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받으신 바 된 의인이었으며 그 제물도 하나님이 받으시고 증거하셨습니다.



3대지: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의로운자로 증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그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11:4절에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그의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4:8)



인류의 역사는 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피 흘림의 형태와 방법은 바뀌었으나 시대마다 피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담의 가정에 형제끼리 피를 흘리는 무서운 살인이 저질러져 버렸습니다.그 후로 인류는 형제끼리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족 사이에서도 피 흘리는 일들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의 피를 쏟게 하는 심판의 밤도 있게 하셨으며,예수가 나신 그 사건과 관련하여 헤롯은 두 살 이하의 어린 아기들의 생명을 무참히 학살하여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로마의 핍박 속에서 무수히 죽어간 그리스도인들이며,독일 나치 하에서 600만 명의 유태인들이 피를 쏟고 죽어간 역사의 흔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피를 쏟고 죽어간 아벨이 말하고 있습니다.그 핏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심판자 하나님은 의인의 피의 소리를 낱낱이 듣고 계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


무서운 사실입니다. 피는 말합니다. 피는 호소합니다. 의인 아벨이 피의 음성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인격과 삶을 가지고 믿음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설교하는 소리입니다.


의인 아벨이 피흘린 이 땅에는 죄인의 피가 수없이 흘려졌습니다.


그러나 피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결코 문제의 해답이 되는 피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의 의인의 피가 있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주님의 피는 남의 생명을 요구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피를 친히 나누어 주는 속죄의 역사입니다.


“너희는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아벨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실 속죄의 피를 증거하는 피입니다.


그는 죽었으나 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언제나 새 생명의 창조를 일으키며 또 살리는 피가 되고 있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아벨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그의 피는 말하고 있으며 그는 의인으로서 제물을 드렸으며 하나님이 받으신 바가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의인들은 “의롭다 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살았으나 죽은 자들도 없지 않은 현실입니다.


의인 아벨의 인격과 제물로서 증거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으나 산자같이 되는 구원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믿음이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같은 귀중한 믿음을 지닌 또 다른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죽어서도 믿음을 증거하는 아벨의 믿음을 가진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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