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 '마이클' 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나도 두 번 씩이나 감상한 영화이다.
마이클 잭슨의 전기영화인데,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마이클 이야기가 아니라 새삼 놀라웠다.
영화를 본 지 꽤 되었지만,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고,
그에 대한 진실을 얘기하려면 영화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차라리 다큐가 낫지 않았을까?
유튜브에 남겨진 그의 수많은 인터뷰, 다큐, 녹취나 영상 등을
통해서 그를 더 제대로 잘 알수가 있는데, 왜 굳이 영화로 만들었나?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보고 싶어서...'
백인 중심의 음악계에서
흑인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시작했었다.
아버지 '조 잭슨'은 막내인 마이클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무섭게 훈육하고 때리고 다그치는데, 온유한 성품의 엄마는
힘든 마이클을 다독거리면서 항상 곁에 있어 준다.
그렇게 그는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낸다.
처음에는 '잭슨 파이브'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독립해서 활동하며
음악과 함께 문워크, 린댄스, 토스터 점프 등 수많은 춤 , 패션, 무대 연출 등
혁신적인 퍼포먼스로 진정한 팝의 황제로 거듭나게 된
마이클 잭슨은 단숨에 세계 정상에 오른다.
16개월 동안 유럽과 아시아 69개국을 누볐는데, 대게 팝스타의 공연이
유럽과 미국에 머무를 시기에 특히 눈에 띄는 나라였던 구 공산국가
루마니아와 러시아에서도 공연을 이어갔었다.마이클 잭슨이 음악으로
이념의 장벽까지 허물어버린 셈이다.
'마이클 잭슨은
어떻게 팝의 황제가 되었나'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꾸준히
선행을 이어 왔던 마이클 잭슨은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많이 했었다.
7살에 데뷔해 활동했기에 생긴 어린 시절에 결핍이 있었기에,
자신처럼 결핍이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3년 그레미 어워드 수상 소감 중
"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마법, 경이로운, 신비, 순수함이 있고,
이걸로 세상을 치유할 수 있어요."
투어하는 도시마다 어린이 병원을 방문해 후원하고,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응원한 마이클 잭슨이다.
1992년 ' Heal the World '라는 자선 단체를 설립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해주었다.
또 본인의 재단에 <Dangerous> 월드 투어 수익 1억 달러를 기부,
에이즈, 미국 암협회, 적혈구 연구 재단 등 전 세계 39개의 자선단체에도 후원했다.
2000년 가장 많은 자선단체를 후원한 팝스타로 기네스북에 선정 되었다.
마이클 잭슨이 평생 기부한 돈은 약 3~5억 달러로 추정 된다. (한화로 약 1조 3천억 )
역시 팝의 황제다운 품격이다.
'마이클 잭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유산은
어쩌면 그의 음악이 아니라, 자선활동일지도 모른다. '
(1988년 월스트리트 저널 중)
그런데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계기가 발생한다.
수명 연장을 위해 산소실에서 잔다? 라고 괴기한 잭슨이라는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잭슨은 적극적인 해명을 위해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였으나,
'괴기한 흑인' 이라고 비하하는 조롱성 별명을 만든 것이다.
해외 공연도 함께 다니던 마이클 잭슨의 오랜 동반자 반려 침팬지 '버블스'
실험실에서 자란 아기 침팬지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면서 키우게 되었는데...
침팬지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놀림거리가 되다니...ㅜㅜ
그의 삶을 뒤흔든 아동 성추문 루머도 여러 번 있었으나,
적극 해명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수색 영장을 집행하여 마이클의 신체 부위를 보고 촬영까지 했었다.
마이클은 그때의 기억을 "악몽... 끔직한 악몽이었지만,
이것이 제 결백, 완전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견뎌야 할 일이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강압적인 수사까지 겪은 그는 그 시기에 'You Are Not Alone' 이라는 신곡을 발표했다.
' That you are not alone, For I am here with you '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내가 여기에 당신과 함께 있으니...
그는 치명적인 루머로 은둔 생활을 시작하였고,
굳은 결심을 하고 마지막 투어를 발표한다.
단 10외에 불과했던 <THIS IS IT> 콘서트
2시간 만에 19만장 티켓이 완판 되었고,
40회차 공연으로 증설 되었고 5시간 만에 매진.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로스앤젤레스 소방국에 울린 한 통의 응급 전화
"구급차를 최대한 빨리 보내주세요." "호흡을 안 하십니다. 숨을 안 쉬고 계세요."
응급 전화 이후 보도된 충격적인 소식 '속보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로스앤젤레스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투어 계획을 발표한 직후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마이클 잭슨은 심장 마비로 쓰러져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슬픔에 빠진 사람들 2009년 7월 7일 진행된 마이클 잭슨의 추도식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스타와 팬들이 참석해서 마이클 잭슨의 곡 '힐 더 월드'를 부르며 그를 보내주었다.
영원히 기억될 세계를 바꾼 예술가 마이클 잭슨은 주치의 과실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과실치사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주치의
마이클 잭슨의 루머가 재검토 되기 시작했는데,
고 마이클 잭슨 생전 육성 인터뷰와 국내 방송.. '루머 해명'
그는 50년 동안 꾸준히 < 빌보드 TOP 10 >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가수이다.
1972년 부른 영화주제곡 '벤' 은
당시 열네살의 마이클 잭슨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잡게 했다.
잭슨은 다음달로 예정했던 런던 공연을
마지막 공연이라고 불렀지만,
마지막 공연의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