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대만 타이페이시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1960년대 후반 젠슨의 아버지는 캐리어에서 직무 훈련을 받으며
맨해튼에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그는 뉴욕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가족과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1973년 10월, 군사 정권의 해체를 요구하는 시민 50만 명이 거리로 나왔고.
태국 정부는 폭력적으로 이를 진압했다. 정치 불안으로 인해 아버지는 이민 계획을 서둘렀다.
이민하기에 앞서 젠슨과 형은 삼촌이 있는 미국으로 보내졌고
젠슨 부모와 막내동생은 태국에 남았다.
젠슨 형제는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꾸어 젠치에는 젠프가, 젠쉰은 젠슨이 되었3다.
젠프와 젠슨은 국제 우편으로 카세트테이프를 보내 부모와 소식을 주고 받았다.
젠슨은 가끔 향수병에 시달렸지만, 모든 것이 자신에게는 어떤 대단한 모험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젠슨은 이 험악한 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결심했다.
모든 학생들이 꺼리는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했다.
젠슨이 말하길, 100명이 넘는 학교에서 누구보다도 화장실 청소를 많이 했다고.
젠슨이 이때 배운 건 '똑똑함'이 아니라 '살아남은 법' 이었다고 한다.
또한, 학교에서 했던 허드렛일이 성실한 노동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고 답했다.
1975년 젠슨의 아버지가 마침내 미국에 직장을 구하여 형제는 켄터키를 떠라 오리건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1년 후, 젠슨은 오리건 포틀랜드 교외에 위치한 알로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도 그의 학업 성적은 뛰어났으며 영어 실력도 빠르게 향상되었다.
1977년 개인용 컴퓨터 모델 중 하나인 Apple 2를 구매했는데, 젠슨은 이 기계에 매료되어 스타트렉을 즐겼고,
BASIC으로 밴 게임을 자신의 버전으로 프로그래밍 하기도 했다.
방과 후에는 미국 가정식 레스토랑에서 설거지와 웨이터를 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숙제는 물론 룸메이트의 숙제까지 완벽하게 끝냈다. 그리고 이 숙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그렇게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버텨낸 끝에 또래보다 빠르게 조기 졸업을 했다.
1984년 오리건 주립 대학교에서 전기 공학 학사, 1992년에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 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곳에서 한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했다. 평범한 접근 대신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인
숙제 데이트를 이어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고.졸업을 앞두고 프로포즈를 했고,
그렇게 결혼하여 지금도 부부로 지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를 담당했고,
LSI 로직으로 이직해 이곳에서 만나 크리스 말라초스키, 커티스 프리엠과 함께
1993년에 NVIDIA를 공동 설립했다..
돈 발렌타인은 애플, 구글, 페이팔, 에어비엔비 등
세계 최고 기업들에 초기 투자했던 전설적인 투자자였다.
젠슨 황은 엄청난 중압감 때문에 프레젠테이션을 망쳤으나, 돈 발렌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하며 격려의 말과 함께 " 내 돈 잃어버리면 죽여 버릴 거다." 라고 했다.
젠슨 황은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NVI 그래픽 칩을 개발하여 세가와 계약까지 따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표즌 그래픽 API가 되는 DirectX를 발표했고,
이것이 NVI와 호환하지 않게 되면서 곧바로 위기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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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퀴즈에 젠슨 황이 나왔었다.
반가운 마음에 자세히 들어보니 인생철학이 단단한 사람이였다.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 고통과 실패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이 없었다고...
사회자가 "20년전 젠슨 황과 20년 후 젠슨 황 중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 20년 후 젠슨을 만나고 싶다" 라고 대답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20년 후의 젠슨은 자신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거죠~
가족들도 함께 나와 지켜보는 가운데 가정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젠슨은
누가봐도 참 부러운 사람이다.
성공의 냄새를 풍기는 푸근한 미소가 참 멋진 사람~
NVIDIA .앞으로도 더 멋진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세계 시총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젠슨 황
난 잘 모르는 분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이 기쁘고 모두의 성공을 기원한다" 는
그의 말이 깊이 남는다.
"당신이 깨지지만 않는다면
어떤 미래가 오든 당신은 성공할 겁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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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기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5
젠슨이 어렵게 결혼하게 된 사연~
아주 멋진 플러팅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단다.
당시 과에는 자신보다 2살 위인 사람들과 함께 공부했는데,
거기서 여학생은 단 3명,
여학생과 데이트 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력을 뚫어야만 하는데,
머리 좋은 젠슨은 "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면 숙제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ㅎ
'숙제 플러팅'으로 아내를 만나 졸업 후 결혼을 하고 1남 1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젠슨 단연 최고얌~^^
실제로 와이프도 2살 연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