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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얽힌 운명의 삼각 관계 /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작성자김기자|작성시간26.06.16|조회수35 목록 댓글 1

 

 

 

독일에서 태어난 슈만은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다.

그의 음악은 시적 환상과 깊은 내면의 갈등을 날것 그대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출판업자이자 소설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적 환경에서 자란 슈만은

유년 시절부터 음악과 문학 모두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 법대에 진학했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당대 최고의 피아노 스승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를 만나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 피아노 스승의 딸인 클라라을 만나게 된다.

로베르트 슈만과 스승의 딸인 클라라.

당시 보잘것없었던 슈만은 스승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만나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며 결혼한다.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은 이른바 '가곡의 해'로 불리며,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포함해 130곡이 넘는 아름다운 예술가곡 (Lied)를 쏟아냈다.

이후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등을 발표, 낭만주의 관현악의 깊이를 더했다.

 

 

낭만주의 음악의 중심에 있는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 슈만,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두 사람은 음악사에서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오히려 더 깊고 순수했던,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감정이 음표와 침묵 속에 스며서 영원히 울려 퍼지는 이야기다.

브람스가 처음 슈만 부부의 집을 찾은 것은 1853년 가을,

그가 스무 살 되던 해였다. 청년 브람스의 눈에는 경외와 설렘이 가득했고,

로베르트 슈만은 그에게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천재'를 보았다.

그러나 브람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클라라였다.

그녀는 이미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으며 여덟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피아노 음률은 투명한 영혼의 언어였다. 브람스는 그날을 인상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의 눈빛은 내 마음을 꿰뚫었고, 그날 이후 나는 그 집의 공기 속에서도 그녀의 숨걸을 느꼈다."

 

 

이듬해 슈만이 정신병으로 투신자살 미수 사건을 겪고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브람스는 클라라 곁에 머물며 실질적인 도움과 정서적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공감과 존경, 그리고 예술적 협력 위에 세워진 평생의 유대가 싹텄다.

그는 집안일을 도왔고,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으며, 밤마다 클라라에게 편지를 썼다.

한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마음속 당신은 너무도 거룩해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편지에는 사랑 고백보다 음악에 대한 토론이 훨씬 더 많았다.

작풍의 해석, 연주, 영감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을 클라라에게 들려주며 의견을 구했고,

클라라는 그중 여러 곡을 직접 초연했다. 그녀에게도 브람스는 음악적. 지적 동지였다.

 

 

브람스 작곡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라단조 작품 15 제 2악장 아다지오는

클라라를 향한 기도와 같은 서정적 헌정으로 알려져 있고, 브람스 자신도 

" 이 악장은 당신(클라라)를 생각하며 썼다" 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창작적 교류는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브람스의 초기 작품

예를 들어 피아노 협주곡 제 1번과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는

클라라와 로베르트에 대한 존경과 내면의 격정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클라라의 후기 연주와 작품들에서도 브람스의 에술적 흔적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오래도록 지탱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유대는 단순히 친구나 연인의 관계가 아나라, 예술과 감정적인 관계였다.

만약 두 사람 중 누구라도 그 관계를 세속적인 형태로 바꾸려 한다면

오히려 그 섬세한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종종 당신을 껴안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합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이 될 것입니다." 클라라는 평생 '로베르트의 아내'로 남기를 선택했고,

브람스는 그 결정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멀리서 그녀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이내 사그러드는 불꽃이 아니라 등불처럼 오래 타올랐다.

클라라와 브람스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관계를 이어갔다.

 

 

1896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자, 브람스는 마치 세상의 빛이 사라진 듯 

조용히 침묵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클라라의 초상화를 곁에 두었고, 

그녀의 죽음을 전해 들은 날 술잔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제 나의 음악은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로부터 1년 뒤, 브람스는 클라라의 뒤를 따랐다.

브람스의 선율에는 그리움이, 클라라의 음표에는 따스한 응답이 있다.

두 선율이 만나 만들어내는 화음... 사랑은 반드시 소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도 있다.클라라와 브람스의 이야기는 배신도 거절도 아닌, 음악으로 맺어진

두 영혼의 평생 동행이었고, 절제 속의 헌신. 공동의 창조 속에서 피어난 가장 깊은 유대였다.

클라라 사 후 브람스는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았고,

정어리 통조림의 기름을 통째로 마시기도 하였으며, 그로 인해  갑자기 체중이 증가해

거구로 변했으며, 많은 정신적, 육체적 변화가 일어났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스승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에 대한 연모의 정을 품고 살았던 브람스

어쩌면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전해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잘자라 내아기 내 귀여운 아기

아름다운 장미꽃 너를 둘러피었네

잘자라 내아기 밤새 편히쉬고

아침이 창앞에 찾아올때까지

잘자라 내아기 내 귀여운 아기'

 

 

** 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불러주었던 자장가**

아들아이는 아직도 이 노래를 기억한다.

오늘 밤 다시금 브람스 자장가를 흥얼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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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기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클라라와 브람스의 이야기는
    배신도 거절도 아닌, 음악으로 맺어진
    두 영혼의 평생 동행이었고, 절제 속의 헌신.
    공동의 창조 속에서 피어난 가장 깊은 유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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