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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고린도전서 11:23-26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라

작성자안정섭|작성시간26.06.13|조회수27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11:23-26 내가 주께 받아 너희에게 전해준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선포하라고 주신 것이다.
 
이전 말씀은 세상 사람들처럼 사람을 차별하면서 만찬을 하면 그것은 주의 만찬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성도들에게 수치를 주는 것은 절대로 칭찬할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주의 만찬의 본래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23-26절은 주님을 기억하고 이상 그렇게 가난한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초점은 주의 만찬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부유층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가난한 성도들을 차별하고 모욕을 주던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23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것은 칭찬할 없는 이유를 밝히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에게 넘겨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넘겨 받았다는 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을 말로 받은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말로 받은 것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도 역시 말로 전해준 것을 뜻한다.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말로 받아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로 전해주었다는 뜻이다.
 
다수는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직접 계시의 증거라기 보다는 바울 이전 전해지던 구두전승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아마도 문서로 기록되기 이전 구전으로 전해지던 복음서의 내용들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여기서 내가 라는 말을 강조해서 넣은 것과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18:9; 22:18; 23:11; 27:23; 고후 12:7; 1:12) 근거로 바울이 실제로 주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해석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생각하면 바울 이전의 구두 전승을 뜻하는 것으로 있다. 그러나 그리스어에서 필요 없는 나를 특별히 강조하며 내가 받았다는 말의 문법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직접 계시를 받은 것이 맞다.
 
내용은 "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가지시고" 라는 것이다. 여기서 잡히셨다는 말은 대부분 영어 성경들이 배반을 당했다는 의미로 번역했는데 원어의 본래 의미는 넘겨지셨다는 뜻이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넘겨주었다는 말과 예수께서 넘겨지셨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바울이 넘겨주었다는 말은 능동태이고 예수께서 넘겨지셨다는 말은 수동태인 것말 다르다. 이는 단순히 배반을 당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에게 넘겨주셨다는 의미이다.
 
만약 이를 배반을 당했다는 뜻으로 번역하면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넘겨준 내용은 예수께서 넘겨지시던 밤에 시작된 것이라는 연결이 사라지는 것이다. 로마서 8:32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넘겨주셨다는 말과 칠십인역 구약성서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주께서 그를 우리 때문에 넘겨주셨다는 말과 같은 표현이다. 유다의 배반 보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예수께서 죽음에 넘겨지신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
 
배반당했다고 번역하면 의미를 유다의 행동 안에만 가두는 꼴이고 넘겨졌다고 해석하면 성부께서 성자를 넘겨주신 것이 포함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과거에 한동안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는 뜻인 미완료 시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원수들에게 넘겨지시는 과정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 주의 만찬이 진행되고 있던 밤에 원수들은 이미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하신 일이고 하나님께서 넘기시던 과정 중에 있었다는 의미로 있다.
 
24절은 23 끝부분의 빵을 가지셨다는 말과 연결되어 있는 문장이다. 감사를 드리신 후에 빵을 쪼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몸이라고 하시며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딱딱한 무교병을 쪼개시는 장면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당시 이방신들을 기념하는 만찬은 신화 근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주의 만찬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주의 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나게 하는 장치로 행하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25절은 이와 마찬가지로 라는 말로 이어가며 식사를 마친 후에 잔을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잔은 피로 세운 새언약이니 이것을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새언약이란 짐승을 쪼개놓고 하나님과 맺은 옛언약과 대조가 되는 것이다. 언약은 창세기 15 9- 18절에 나온다. 3년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고 하나님께서 쪼갠 제물들의 사이로 지나가시면서 나일강부터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땅을 아브라함과 자손들에게 주겠다는 언약이었다.
 
이러한 계약의 모습은 당시 근동지방의 부동산 매매 계약과 같은 모습이다. 당시 근동지방 사람들은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을 짐승을 반으로 쪼개 사이를 벌려 마주 놓고 seller buyer 각각 사이로 지나감으로 계약을 맺었다. 뜻은 누구든지 계약을 어기면 짐승들처럼 쪼개도 좋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에서는 하나님만 불꽃 가운데 지나가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방적인 계약이다.
 
주께서는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시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게 하신 새언약도 역시 일방적인 계약이다. 주의 만찬에서 쪼개진 빵과 포도주는 언약에서 둘로 쪼개진 짐승과 흘린 피를 상징한다. 우리 주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제정하신 주의 만찬은 주님의 희생을 기억나게 하는 만찬인 것이다.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주겠다는 약속이었지만 언약은 십자가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나라를 주겠다는 이다. 주의 만찬은 이러한 새언약을 나타내는 것이고 주께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림을 기억하라는 만찬이라는 것이다
 
26절은 왜냐하면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주님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개역은 전하는 것이라고 번역해서 23절에서 전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오해하기 쉽도록 번역했다. 원어는 아래를 향해 전한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포한다는 뜻이다. 새언약의 백성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할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라고 것이다.
 
언약에 의한 공동체는 마라나타, 주여 어서오시옵소서!” 공동체 이다. 이들은 주께서 오시길 기다렸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계층을 떠나 새로운 몸을 이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성도들을 먹였던 것이다. 이들의 소망은 세상에 있지 않고 주님의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를 이루었던 것이다. 주의 만찬은 이렇게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몸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의 부자 성도들은 주의 만찬의 그러한 뜻도 모르고 세상의 파티처럼 치사하게 음식 가지고 가난한 성도들을 부끄럽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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