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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고린도전서 11:33-34 늦게 참석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영접하라

작성자안정섭|작성시간26.06.17|조회수18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11:33-34 먹기 위해 함께 모일 서로 기다릴 것이며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고 와서 함께 모이는 모임이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라.

 

이전 말씀은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셨는데 목적은 우리가 마지막 심판 날에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고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으라며 교회가 모이는 일로 심판 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33절은 원어에서 " 결과로서" 또는 "이러한 이유로" 라는 뜻을 가진 말로 32절과 연결이 된다. 그러나 개역은 "그런즉" 으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그러므로" 라고 번역해서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접속사와 똑같이 번역했다. 그러나 여기서 쓰인 접속사는 앞에서 말한 것을 근거로 실제적인 권고를 나타낼 쓰이는 말이다. 심판을 받지 말아야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하라는 뜻이다.

 

바울은 이렇게 책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지도자들을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말을 통해서 바울은 위와 같이 지적한 말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지적한 말이라는 것이다. 지극한 사랑을 품고 섬기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한 섬김을 형제 자매들이 분명히 느끼고 고마워하는 관계에 있을 그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잘못을 지적해주어야 한다. 때도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근거로 잘못을 깨우쳐 줘야한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그러한 사랑으로 섬김이 없이 잘못만 지적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먹기 위해 모일 기다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기다리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밖에서 라는 말과 받는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따라서 단어가 만들어진 본래 의미는 밖에 나가서 영접하는 그림을 품고 있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귀한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며 반갑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할 있다.

 

어떤 이들은 기다리라는 말이 단순히 시간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보고 기다림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기다리라는 말이 환대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예가 있다. 바울은 함께 모여서 먹는 자리가 주의 몸과 안에서 풍성한 복을 누리는 것이 되도록 기다리며 환영하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식사자리의 맥락에서 기다리라는 말이 환대의 의미로 사용될 있다는 것이기에 부유층 성도들은 가난한 성도들을 환대하며 맞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이는 11:20-22절에서 부유층들이 자기들끼리만 트리클리니움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자기들의 노예나 자기 집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는 쓰레기 같은 음식을 주어 멸시한 것을 책망한 것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안에서 품위있게 먹던 당시 사회의 상류층들이 먼저 와서 종의 모습으로 밖에 나와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의미로 이해할 있다. 일을 마치고 늦게 도착하는 노동자나 노예 신분의 성도들을 귀한 손님으로 영접하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처럼 거꾸로 뒤집힌 세상은 아니다. 서로 그렇게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높은 자는 낮아져서 낮은 자들의 종이 되어 섬기라는 것이다. 낮은 자는 섬김을 받지만 낮은 자들이 높아져서 세상의 높은 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그렇게 하라고 했기에 역시 섬김의 자세로 상대를 높여야 한다.

 

이것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가르치신 것과 정확히 평행을 이룬다.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13:14절에 보면 만약 내가 주와 선생인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겼다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바울이 교회에서 모여 사회적 계층간에 서로 나뉘어 먹으면서 주의만찬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한 뒤에 그러한 상류층 성도들에게 나가서 영접하라고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말만 바꾸어 그대로 전한 것이다.

 

34절은 그래서 만약 너희 중에 누구든 배가 고프다면 집에서 먹게 하라고 말한다. 결과 함께 모이는 모임이 심판을 받지 않게 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심판은 종말론적인 심판이 아니라 31절에서 말한 땅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먼저 먹는 것은 사실 배가 고파서가 아니고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바울은 그들이 가능한 핑계를 예상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가 세상 기준에 따라 차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밖의 남은 문제들은 바울이 직접 가서 바로잡겠다고 했다. 여기서 남은 문제들이 무엇인지는 없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교회가 멸망할 세상으로 끌려가는 심각한 문제였기에 편지로 급히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문제들은 긴급한 문제가 아니기에 나중에 직접 방문해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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