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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고린도전서 12:1-3 영적인 사람에 대해 알라

작성자안정섭|작성시간26.06.18|조회수18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12:1-3 나는 너희들이 신령한 사람에 대해 모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과거 너희들은 못하는 우상을 향해 있었고 마치 끌려다니는 같았다. 그러므로 아무도 성령 안에 있지 않으면 예수를 주로 고백할 없다.

 

이전 말씀은 먹기 위해 함께 모일 서로 기다릴 것이며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먹고 와서 함께 모이는 모임이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낮은 자리에서 서로 영접하도록 해야 하지만 그러나 또한 은사에 대해서도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12:1절은 그러나 신령한 것에 관하여 라는 말로 시작하며 새로운 내용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린다. 신령한 것이란 단어는 남성형일 수도 있고 중성형이 똑같다. 그렇기에 Bruce 아마도 영적인 사람들일 것이라고 해석한다(Bruce, NCBC, 116-17). 다수는 중성형으로 해석하여 원어에 없는 은사라는 말을 넣어서 신령한 은사로 해석한다(Baker, CBC, 174-75; Barrett, BNTC, 278; Robertson & Plummer, ICC, 259). 4 이후 문맥에서 은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중성이라는 해석을 지지하면서도 바울이 의도적으로 남성과 중성 포함하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Ciampa & Rosner, PNTC, 561-62; Taylor, NAC, 282-83; Thiselton, NIGTC, 910). Morris 중성을 택하면서도 가능하다고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Morris, TNTC, 162).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은사에 대해서는 4절부터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1-3절의 문맥만 놓고 보면 신령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있다.

 

12:1절의 시작부분은 그러나 라는 말로 11장과 연결이 된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11장과 대조되는 내용이 아니라 새로운 내용의 시작이라 보고 그러나를 삭제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11장은 세속적인 가치에 따라 하층민들이나 노예인 성도들을 차별한 사람들에 관한 내용들이다. 12:1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며 "형제들아!" 라고 다정하게 부르면서 신령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지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있다.

 

2절도 너희는 알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너희가 이방 사람이었을 말도 못하는 우상들에게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우상들에게 멀리 끌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끌려갔다는 말을 우상 행렬에 참여해서 실제로 몸이 이끌려갔거나 황홀경에 도취되어 끌려갔다거나 악한 영에게 끌려갔다는 신비한 해석들을 부정하면서 못하는 우상들에게 자기 의지없이 끌려다니던 과거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원문을 정확히 해석하면 우상에게 끌려다녔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계속해서 우상을 향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능동태이다. 주체는 우상이 아니라 과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다. 스스로 계속해서 우상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 것이 "그것은 마치 계속해서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그것도 멀리 끌려가는 사람들처럼" 이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이나 한글 개역과 새번역은 이러한 능동태에 이어 모습은 마치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수동태의 의미를 그대로 살리지 않고 전체를 수동태로 번역했다.

 

바울이 기록한 원문의 의미는 너희들 스스로 계속해서 말도 못하는 우상들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상들은 사람 손으로 만든 나무나 돌이나 금속들로 것으로 아무 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계속해서 우상들을 향하고 있었는데 모습은 마치 우상들에게 계속해서 끌려가는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멀리 끌려가는 사람들 같았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나온 고린도 교회의 특권층들과 그들이 세상 가치로 교회를 지배하는데도 그들에게 이끌려 세상적 가치에 따라 멸시를 당하면서 살아가는 모습과 연결할 있다. 문제는 과거 우상을 숭배하던 때처럼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세상적 가치에 이끌려가고 있는 것은 영적인 사람들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3절은 바로 이유 때문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글 번역이나 영어 번역들 대부분 그러므로 라는 뜻으로 번역하지만 앞에서 말한 결론을 나타내는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 접속사이다. 영어에 적당한 접속사가 없기에 그냥 뭉뚱그려서 therefore라고 번역할 뿐이다. 이는 앞의 내용 전체를 강하게 요약하며 필연적 결론을 도출해 내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바로 이유 때문에 라는 뜻이다. 바로 너희가 전에 계속해서 말도 못하는 우상을 향하고 있었는데 모습은 마치 끌려가는 것과 같았다고 말한 그것 때문에 바울은 너희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알려주는 내용은 하나님의 안에서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활동이나 하나님의 영향력이나 하나님의 임재 등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영이 누구인지 분명하고 명확하게 성령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안에 있는 자는 아무도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성령 안에 있는 자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훨씬 강하게 강조하며 단언하는 말이다.

 

여기서 예수는 저주 받을 자라고 말하라고 시켰을 그렇게 말하지 않고 예수가 주님이시라고 말한 것은 초기 기독교 박해 기록에 반복적으로 나온다. 로마 당국이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라고 강요했지만 진짜 신자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구절이 박해 상황에서 신앙 고백 시험을 반영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럴 진짜 신자들은 성령 안에서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이다. 고린도전서는 AD 54-55년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네로의 조직적인 박해는 AD 64 이후이다.

 

하지만 바울은 박해 상황에서 사용되던 고백형식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의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저주하게 하는 관행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도 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고백은 로마제국의 박해가 아니라 유대적 박해의 배경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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