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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고린도전서 12:7-10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

작성자안정섭|작성시간26.06.20|조회수27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12:7-10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신 것은 공동 유익을 위한 것이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갖는 것이고 밖의 다른 은사들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기 위한 것들이다.

  

이전 말씀에서 은사는 다양하게 나누어주셨지만 나누어 주신 분은 같은 성령님이시고 은사로 섬기도록 직분을 나누어 주셨지만 나누어 주신 분은 같은 주님이시고 활동의 결과가 나타나도록 하신 분은 같은 하나님이시라 했다. 같은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신 모든 은사들이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며 지혜와 지식과 믿음을 먼저 말하고 밖의 은사들은 뒤에 나열하는 내용이다.

 

7절은 그러나 각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공동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은사와 섬기는 직분과 활동의 결과가 모두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이라는 것과 연결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은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앞에 나오는 말은 사람에게 라는 말이다. 사람을 특별히 강조한 위치에 것이다. 그러나 KJV 성령의 나타나심을 먼저 말하고 다음에 사람을 모든 사람으로 번역했다. KJV 모든 사람이라고 번역한 것과 위치를 바꾸어 놓은 것이 잘못된 것이. 또한 KJV 성령이 나타난 것으로 번역했는데 성령이라는 말이 목적격이기에 성령을 나타내심으로 번역해야 한다. 개역은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모호하게 번역했지만 새번역과 개역개정은 이를 "성령을 나타내심"으로 번역해서 이러한 원어의 의미를 살렸다.

 

나타나심이라는 말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구절과 고린도후서 4:2절에서만 나오는 독특한 단어이다.   단어는 단순히 나타내심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공개적인 나타나심을 뜻하는 말이. 나타내심이라는 단어 자체는 번만 나오지만 단어의 동사형인 나타나다라는 단어는 신약성서 전체에서 아주 많이 나타난다. 단어의 동사형은 드러내다 공개하다 라는 뜻으로 본래 숨겨진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는 말이다. 더구나 고린도후서 4:2절을 보면 나타내심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고린도후서 4:2절에서 대조되는 것은 숨은 부끄러운 일과 진리를 나타내심이 대조가 된다.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셨다는 말에서 주셨다는 말은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어가 생략이 되었는데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신적 수동태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공동 유익이란 개인을 드러내고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은사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높이는 일에 사용했기에 말이다.

 

8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인지 설명한다. 8-10절은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람에게 성령을 어떻게 나타내주셨는지를 여러가지로 설명한 내용이다. 먼저 8절은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셨고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언급한 지혜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말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뜻하는 말이다. 반면에 바울은 지식이라는 말을 교만하게 만드는 인간적 지식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참된 지식으로 구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이란 성경, 복음 전승,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여 설명하는 능력을 말한다.

 

지혜의 말씀은 통하여 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고 지식의 말씀에는 따라서 라는 전치사를 사용한다.지혜의 말씀은 지식의 말씀보다 높은 은사이기 때문에 먼저 언급된 것이고 성령의 도구적 역사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고 반면에 지식의 말씀은  성령을 따라 주어진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같은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으려는 때문이고 특별한 의미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혜의 말씀이 지식의 말씀보다 높은 은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9절에서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을 주셨다는 것이다. 지혜가 가장 먼저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구원계획을 아는 지혜가 가장 먼저이고 다음에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지혜와 지식을 바탕으로 성령 안에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세가지가 가장 중요한 은사이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성령 안에서 고치는 은사를 주셨고 10절에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주셨다는 것이다. 고치는 은사와 능력을 행하는 은사는 밀접하게 연결이 것이다.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주셨다고 했다. 예언을 하는 것과 짝을 이루는 것은 분별하는 은사이다. 누군가 하나님 말씀이라고 가르친다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것인지 분별하는 은사가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 쌍은 방언을 하는 은사와 통역을 하는 은사가 쌍을 이룬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의 지혜와 지식을 통해 믿음을 갖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은사로 보고 나머지는 둘씩 짝을 지어 이해할 있다.

 

반면에 이를 세가지로 나눌 수도 있다. 첫째 8절에는 지식과 지혜의 은사가 나와있다. 두가지 은사로 인해 믿음을 갖는 것이다. 두번째 은사는 9절에서 10 앞부분에 있는 고치는 은사와 능력 행하는 은사이다. 이러한 기적 자체가 중심은 아니기에 그에 따라 와야 하는 것이 예언의 말씀이다. 세번째 은사는 10 뒷부분에 있는 예언과 분별과 방언과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이다.

 

이러한 은사들이 배치되어 있는 순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분명히 드러나는 은사일수록 뒤에 배치되어 있고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 은사들은 앞에 배치되어 있다이러한 순서는 분명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이고 12 28절과도 일치한다. 12 28절과 비교해 보면 사도와 선지자 교사는 지식과 지혜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인데 앞에 나와 있고 병고치는 은사와 능력을 행하는 은사는 다음에 나와 있다. 방언의 은사가 마지막에 나와 있는 것도 같다.

 

당시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이와 반대의 순서로 은사들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 틀림없다. 방언과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최고로 여겼을 것이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우리 교회에서 성도님이 강단에 서서 여러분이 전혀 알지 못하는 신비한 언어로 말하고 다른 분은 뜻을 한국말로 풀어서 말을 여러분에게 전한다고 합시다. 내용이 또한 신비스러운 내용이었다면 어떨까요? 아마 어떤 분들은 무섭다고도 하고 소름끼친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능력에 놀라고 권위에 순종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방언이 어떤 방언이었는지 오늘날은 없다. 하지만 바울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크의 기록을 보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지만 지적인 연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린도 교인들 중에 방언을 하고 뜻을 통역하던 사람들이 모든 성도들 위에서 군림하며 특권층으로 행동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와는 반대로 성경말씀을 깨달아 알아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던 사람들은 특별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권위를 특별히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도 어느 기도원에 있는 어느 여자전도사가 방언하고 예언기도 한다면 가정에 문제를 가진 수많은 성도들이 그리로 찾아가서 머리를 들이밀고 예언기도 해달라고 한다. 어느 기도원에 있는 어느 목사님이 신유의 은사를 가져서 기도만 낫는다고 소문이 나면 불치병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서 안수기도해 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하지만 교회에서 목사님이 성경 말씀을 풀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가르친다 해도 특별히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자 갈급한 사람은 배우고 권위를 인정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도 이와 똑같았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은사가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사람에게 나누어 것이고 가장 중요한 은사는 특별하게 보이는 방언의 은사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지혜와 지식으로 말씀을 전하는 은사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분열되고 질서가 없는 고린도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아 배워야 질서 있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중 어느 은사도 개인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은 없다. 만약 어느 은사를 가지고 교회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데 도움을 주지 않고 혼자서만 은혜 충만하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교회가 바로 서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양한 은사들을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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