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부채살에 말을 걸어 두었다
초복 무렵에는 묵은 안부 한마디가 부채살 한 칸에
걸려 서성이며 입안까지 올라왔다가도 첫마디를
찾지 못해 다시 접혀 버리는 말이었다
중복은 말도 그늘을 찾는 때였다 부채살에 걸린
안부는 볕을 피해 한 칸씩 뒤로 물러났다
아직은 이르다고 조금만 더 있다 가겠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벽에서는 하루 종일 빌린 겨울이
흘러나왔지만 그 말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해가 한 뼘쯤 짧아졌을 무렵이었다
외할머니는 접혀 있던 부채를 펴 들었다
부채살 사이에 머물던 말들은 하나둘 자리를
바꾸면서 가장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안부가
끝칸으로 걸어 나왔고 찾지 못하던 첫마디도
그 뒤를 따랐다
부채살 끝으로 걸어 나간 안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부채를 곱게 접어 마루 한쪽에
그해 여름도 함께 접힌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로
겨울을 꺼내 쓰는 세상이 되었지만 부채살 한 칸은
끝내 접히지 않았다
늦더라도 건네야 할 말 하나 머물러 있을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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