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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평촌문학

부채

작성자박선희|작성시간26.06.23|조회수22 목록 댓글 0

여름이면 부채살에 말을 걸어 두었다

 

초복 무렵에는 묵은 안부 한마디가 부채살 한 칸에

걸려 서성이며 입안까지 올라왔다가도 첫마디를

찾지 못해 다시 접혀 버리는 말이었다

 

중복은 말도 그늘을 찾는 때였다 부채살에 걸린

안부는 볕을 피해 한 칸씩 뒤로 물러났다

아직은 이르다고 조금만 더 있다 가겠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벽에서는 하루 종일 빌린 겨울이

흘러나왔지만 그 말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해가 한 뼘쯤 짧아졌을 무렵이었다 

외할머니는 접혀 있던 부채를 펴 들었다

부채살 사이에 머물던 말들은 하나둘 자리를

바꾸면서 가장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안부가 

끝칸으로 걸어 나왔고 찾지 못하던 첫마디도

그 뒤를 따랐다

 

부채살 끝으로 걸어 나간 안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부채를 곱게 접어 마루 한쪽에

그해 여름도 함께 접힌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로

겨울을 꺼내 쓰는 세상이 되었지만 부채살 한 칸은

끝내 접히지 않았다

 

늦더라도 건네야 할 말 하나 머물러 있을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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