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넘는 박달재
이흥근
해발 453미터! 산 높고 골 깊은 이 고개는 모르는 이 드문 박달재이다. 치악산의 맥이 벋어 백운산이 되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달려 구학산이 되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달려 구학산 시랑을 이루니 동서로 봉양과 백운을 잇고 머리는 제천과 충주를 잇는다.
1216년 고려의 김취려 장군이 여기서 거란의 대군을 물리쳤고 1268년 고려의 이 고장 별초군이 또한 몽고 군사를 막아냈다.
포천에서 원주를 함락한 거란 10만 대군은 충주와 제천을 침공하려고 하였다. 김취려 장군은 전군 병마사로 보리실(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서 중군 병마사 최원세 장군과 협공하여 적 300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김취려 장군은 제천 방향으로 달아나는 적을 계속 추격하고 산골짜기를 수색하며 승리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박달현에 이르렀다.
1217년 7월 김취려 장군은 거란군과의 전투를 예상하고 박달고개를 먼저 차지 하였다. 박달고개는 경사가 가파라서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병력 면에서 불리했던 김취려 장군은 대규모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박달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취려 장군은 신덕위, 이극인 장군은 오른쪽 왼쪽에 최중문, 주공애 장군을 오른쪽에 배치하여 거란군을 방어하게 하였다.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고개 위로 올라가 진을 쳤다. 예측대로 동뜰 무렵에 거란군이 박달 고개의 좌우 방향으로 올라왔다. 고개에 미리 포진하고 있던 김취려 장군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북을 울리면서 적들을 향하여 화살을 쏘고 결사적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대패한 거란군은 평창을 거쳐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서 원산을 거쳐 여진 땅으로 도주하였다. 박달령 전투의 승리로 남쪽으로 확산되는 전쟁을 막았다.
김취려 장군의 동상이 위엄있게 내려다본다.
영남 도령 박달과 이재 아랫마을 처녀 금붕이의 애닯은 사연이 전해오기도 하고 박달은 태고적 부터 유래를 지닌 백산의 뜻이라고 하나 오랜 일들을 뉘 소상히 알라.
박달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이등령이라 불렸다. 천, 지, 인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다. 백산을 의미하며 태백산의 임금을 말한다. 단군 이래로 우리 민족의 천재를 올리던 중 하나인 천등산 박달재다.
영남의 과거 도령 박달은 과거 합격이라는 청운의 꿈을 갖고 한양을 찾아가다. 평등마을 한 농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난을 조심하라는 가훈을 지닌 박달도령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에 딸 금붕이는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박달도령도 금붕이의 절절하고 연연한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으니, 양인 심사는 양인지라 뜻과 뜻이 맺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빛이 호젓한 밤 두 청춘 남녀는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하며 밀회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이들은 이별이란 말 아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정성을 다해 몰래 싸 준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고 박달도령은 눈에 어리는 금붕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가며 이등령의 아흔아홉 구비를 꺽어 돌며 눈물을 뿌렸다.
한양에 도착한 박달도령은 만사에 뜻이 없고 오로지 자나 깨나 금붕이 생각뿐이었다.
연연한 그리움을 엮어 벽에 걸고 과거를 보았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몇일을 두고 고민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리움 내키는 대로 평등을 가자니 낙방의 초라한 모습을 금붕이에게 보일 수 없어 가슴을 태웠다.
한편 박달을 보낸 날부터 성황님께 빌고 빌기를 석달 열흘, 끝내 소식이 없자 금붕이는 아흔아홉 구비를 그리운 박달의 이름을 부르며 오르고 내리다 마침내 실신하여 상사의 한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박달의 앞에 금붕이가 애절하게 박달을 부르며 앞으로 지나갔다. 앞서가던 금붕이가 고개마루 정상 벼랑에서 박달을 부르며 몸을 솟구치는 찰라 박달은 금붕아! 한마디를 부르며 금붕이를 잡았으나 이는 허상일 뿐 벼랑에서 떨어지는 몸이 되었다.
봄이면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애닮은 사랑을 대변하듯 연붉은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고 진다.
박달재를 넘어가며 노래를 불러 본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 항라 저고리가 궃은 비에 젓는구나/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 마다/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만약 춘향의 이도령처럼 박달이 과거시험에 합격하였다면, 절절한 사랑이 이루워지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자동차와 휴대폰이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를 생각하며 애닯은 사랑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