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 당하동 추억(수)
어릴적 앞에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산과 인근에 있는 독정마을 경계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족저마을 경계에는 뒨고개 언덕이 있다. 대부분이 초가로 이년에 한 번씩 새로 지붕을 했다.
우리 마을 당하동에는 1960년 초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때 신기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 오른다.
변소는 재래식으로 대문 밖에 있었다. 야밤에 갈 때는 노래를 불렀다. 문이 없어 사람이 오나 안오나 인기척을 해야한다. 거름이 부족하여 인분을 보리밭이나 밭에 사용했다. 똥통을 어깨에 지고 조심스럽게 지고 가서 똥바가지로 인분을 주었다.
논을 소로 갈고 쓸었으며 모판 논에 씨를 뿌려 못자리를 만들었다. 모를 줄을 뛰어 심었다. 마을에 농악도 있어 피리와 괭과리를 “괭괭”상고머리를 좌우로 돌리면 구경하는 나도 어깨가 들썩 들썩 해졌다. 장구도 장단을 맞췄다.
동네 사람들은 주로 논농사를 지어 가을이 되면 온 동네가 누렇게 황금벌판으로 변했다. 논에는 참게가 있어 아이들은 개울과 논이 연결되는 곳에 싸리나무로 만든 발을 치고 밤에 잘 보이기 위해 접시와 깨진 그릇도 깔아 놓아 논에서 한밤중에 설설 기어 나오는 게를 잡았다. 검은 주먹만한 참게를 손으로 잡으면 묵직하다. 비가 올 때 개울에서 그물을 가지고 붕어, 미꾸라지 송사리를 잡아 끓여서 먹었다. 국수와 고추장을 풀어서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여름에는 인근 개울가에서 멱을 감았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있었는데 여름에 어머니와 파밭을 매고 있는데, 바래벌 한강농조 연못에서 동네 아이들과 멱을 감다가 동생이 빠졌다고 하여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갔던 일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동생을 앞산에 묻고 한 동 안 매일 어머니와 동생 묘소에 갔다. 내가 중학교 일 학년 때 일이다. 그 후 나는 물가에 가지 않아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내 기억에 없지만 형이 태어나서 2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동생마저 이승을 떠나 어머니는 가슴에 묻고 살아오셨다.
소를 인근 야산으로 데려가 풀어 놓고 풀을 뜯어 먹이고 꼴을 베어 지게에 지고 왔다. 밤에는 마당에 쑥으로 모깃불을 피우고 온 식구가 멍석에 둘러앉아 옥수수와 감자를 쪄서 먹으며 두런두런 정겹게 이야기를 나눴다. 소를 끌고 잔디밭에 팔베개를 하고 하늘을 보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여러 가지 모양을 그리며 움직일 때는 명화를 보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새소리는 아름다운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전철이 지나가고 2026. 7.1에 김포 검단면이 지금은 인천 검단구로 승격이 되었다. 논과 밭이 상가와 아파트로 변하고 코스모스가 피었던 들길에는 가로등이 추억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