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부정관은 이 몸의 더러움을 보는 것만이 끝이 아니다. 갈망과 탐심이 덮어
씌어 집착하고 애탐하는 몸의 원래 성품을 잘 알아서, 이 몸보다도 훨씬 더 많이 혐오스럽고 경멸스
러운 마음속의 혐오스러운 것(아수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 우리 몸에 아홉 구멍이 있다. 그
다음 셀 수도 없을 많큼 많은 털구멍 땀구멍이 있다. 그 크고 작은 구멍으로 날마다 시간마다 쉬임없
이 흘러나오는 것은 아름답지 못한 찌꺼기 때이다. 이것이 이 몸의 실체인 것이다.
이 몸속에서 더러운 것들이 쉬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어느 누가 괴롭혀서가 아니다. 어느 누가 마
음 불편하도록 해서도 아니다. 자기가 먹고 마신 음식물 가운데서 이 몸에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필요하지 아니한 것, 쓰레기들을 밖으로 내 보내는 것이다.
그 스스로 제 성질대로 진행되는 몸인 줄 이해한다면 우리들이 이 몸에 탐닉할 필요도, 더러워 할
필요도 없다. 혐오스러워 한다고해서 그것을 빼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몸에 관해서 부분부분
구석구석 자세히 아는 것(빠린냐 깨이싸)만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앞에 있는 갈망을 원인으로 해서 비킬 수 없이 얻은 이 몸은 선업(꾸살라)도 아니고 불선업
(아꾸살라)도 아니다. 선불선업을 벗어난(아비아까따) 일일 뿐이다. 태어나고, 늘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위험들의 무더기일 뿐이다. 전생의 갈망으로 생겨나서 지금 갖가지 고통을 만나는 것처럼 지
금 다시 갈망을 키우게 되면 갖가지 고통을 원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뜻을 잘 아는 부처님 등 아리야 선한 분들은 갖가지 고통을 모아 놓은 덩어리인 이 몸을 사
실대로 바르게 보아서 다음에 다시 더 원하는 것 없이 지내신다. 그렇게 지내는 것이 현재 곧바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높고 선한 이들이 찾는 일인 것이다.
-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