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목회자칼럼

성도가 살아가는 길

작성자예수생명|작성시간26.06.08|조회수38 목록 댓글 0

(요일 2:7-11)
7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선악을 문자적으로 풀이하면 선은 착하고 어질다고 하고 악은 도덕적 기준으로 어긋나고 못되고 나쁘다고 합니다.
선하다는 것은 마음에는 아무리 악한 마음과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행위만 안 하면 착하다고 합니다.
악하다는 것은 그런 마음을 참지 못하고 행동하면 악하다고 합니다.
선과 악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서 선악이라는 한 묶음으로 작용을 합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계명을 지켜 의롭다고 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옛 계명은 구약에서 사람이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고 새 계명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지키는 것입니다.
옛 계명을 지킬수록 자신의 죄가 더욱더 드러나는 것이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고,
구약 이스라엘처럼 자기가 계명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지키기 위해서 참빛으로 오셨습니다.
 
육의 세상을 어둠의 나라라고 하고 천국은 빛의 나라라고 합니다.
어둠의 나라는 죽음의 나라라고 합니다.
생명은 살아있어서 따뜻함이 있고 죽음은 차갑습니다.
어둠의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예수님이 오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죽음 속에 갇혀있는 자기 백성들을 살려 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가진 자들은 어둠에서 빼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이고 그 마음은 사랑을 품은 자들입니다.
그 사랑을 가진 자는 또 다른 타인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살아가는 자와 종으로 살아가는 자가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정실부인이 낳은 자고 종은 첩의 부인이 낳은 자를 말합니다.
정실부인이 낳은 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만 첩의 부인이 낳은 아들은 아버지라 부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자만이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예수님의 생명을 낳기 위해 오셨습니다.

창세기의 아담이 하와를 낳아서 내 빼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 한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낳은 신부를 찾아다닙니다.
예수님으로 낳아진 자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기업을 받습니다.
 
(요1:4-12)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9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육의 세상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어두움의 세상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예수님의 빛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참빛을 각 사람에게 비추었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합니다.
 
해가 달에게 비치면 어둠 속에서 달은 빛이 납니다.
예수님의 참빛을 자기 백성에게 비추이면 그 빛을 보고 반응하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빛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빛을 나타냅니다.
그 빛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요일 3:18-24)
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20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세상에는 거짓 영들이 있습니다.
성령이 행하는 일은 따뜻하고, 성도들을 연합하게 하고 , 화목하게 합니다.
거짓 영은 차갑고 매사에 비판적이고,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쟁을 일으 킵니다.
 
거짓 영은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성령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거짓 영은 인간의 사랑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희생을 말하고 인간의 사랑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사는 것이 나를 위해 살았던 몸을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위해 사는 몸으로 바뀝니다.
인간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을 좋아하지 남을 위해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으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왜 나를 위해 살아야지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냐고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앞으로 성도가 살아야 할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엄마만 있으면 행복해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니까요.
엄마가 자기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성장하여 어린아이가 자기의 생각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엄마를 이용해 먹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해 달라고 하고 안 해주면 고집을 부리며 길바닥에 누워서 웁니다.
자기의 필요를 채워 줄 때까지 엄마에게 매달립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아담의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담을 낳은 것과 같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시니까요.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나서 이제 달라집니다.
자기 안에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마음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은혜를 아는 것이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고,
성도는 하나님의 은헤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나서 서로를 탓합니다.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면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지금 우리에게도 아담처럼 하나님을 이용하고 또 남을 탓하게 됩니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과 화목이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해서 창조된 몸이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니 하나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행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뭔가 해야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하며 나를 위해 살다가 인생을 마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기와 같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살아갈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해주실 거라고 여겼습니다.
마치 아기가 배고프면 울면서 엄마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이 참빛으로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과 화목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담의 불손종으로 인한 선악의 죄를 청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접하는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를 통하여서 내 안에 있는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생명을 받고 아담이 살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기의 안식은 엄마의 따듯한 품에서 안식을 누리듯,
새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안식입니다.
 
앞으로 가야 할 그곳을 소망하며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과 영원한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성도의 삶 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복이 아닌 하나님과 화목이라는 하늘의 복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과 화목으로 가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해 사는 몸을 죽이고 이제 예수님을 위해 사는 새 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도의 열매는 자기가 부인되고 낮아지고 남을 섬기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열매 맺는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합니다.
같은 성령을 받은 자는 더 관심을 가져집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누군가에게 마음으로 잘해주고 싶고, 보살펴 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 납니다.
이제 사랑해야지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