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편품은 법화경 적문(迹門) 정종분(正宗分)의 첫째 품이며, 본문(本門) 정종분인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과 더불어 법화경의 두 기둥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품입니다.
우리 범부중생들은 성품과 욕망과 행동이 갖가지이며, 근기(根機,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정도)가 다 달라서 똑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도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내용과 깊이가 다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듣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람의 근기에 맞춰서 여러 가지 인연과 비유 등을 통하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설명하십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접근하셔서 진리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차츰 진실한 진리 즉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진실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약간 돌아서 진실한 진리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곧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대일경(大日經) `십주품(十住品)`에서도 "보리심을 인(因)으로 하고 대비(大悲)를 근본으로 하며 방편을 구경(究境)으로 한다"고 하여 방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을 보고 법을 설한다.`는 말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또한 경전에서는 병에 맞추어 약을 준다는 `응병여약(應病與藥)`, 수준에 따라 법을 설한다는 `수기설법(隨機說法)`,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한다는 `대기설법(對機說法)`, 인연에 따라 감응케 한다는 `수연부감(隨緣赴感)` 등으로 중생 교화 방법으로 방편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방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방법으로 중생의 근기에 맞춰 설하신 부처님의 모든 법문(三乘法)을 이르는 말인 반면 이 법화경은 부처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 根本目的)인 진실(一佛乘)만을 말씀하신 경(經)이기에 이 품(品)의 품명(品名)을 방편품이라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방편의 삼승법(三乘法)과 진실의 일승법(一乘法) 두 가지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품에 부처님께서 `일불승(一佛乘)을 분별하여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을 설한다.`고 하였음과 같이 3승은 일승에 포함되는 것으로 일승 외에 3승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방편품 중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내 제자 가운데에 스스로가 아라한이나 벽지불이라고 생각하였을지라도,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심이 오로지 보살의 길을 가르치기 위한 것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며 아라한도 벽지불도 아니니라.
또 사리불이여, 만일 여러 비구와 비구니가 자기는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여 인간으로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최후의 몸이 되었으며 이것이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라고 생각하여, 또다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 多羅三 三菩提, 無上正等覺)를 얻고자 하는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였으면서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증상만의 인간이라 할 수밖에 없느니라. 왜냐하면, 참으로 아라한의 경지를 얻은 사람이라면 이 법화경의 가르침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이어지는 게송(偈頌)에서는 `시방세계 불국토 가운데는 진실한 가르침은 오직 하나 뿐이며 둘이나 셋은 있을 수 없으나 부처님이 설하시는 방편만은 제외하느니라.`라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처럼 삼승(三乘)은 부처님께서는 방편으로 설하신 진실한 가르침으로 모두 일승에 포함되며, 일승 외에 3승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태(天台) 지의대사(智 大師)께서는 방편에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법용방편(法用方便)`으로, 방(方)은 법(法)이고, 편(便)은 용(用)으로 부처님의 교화방법을 말합니다. 둘째는 `능통방편(能通方便)` 즉, 깨달음의 전당에 이르는 문을 말하며 셋째는 `비묘방편(秘妙方便)`이니 방(方)은 비(秘), 편(便)은 묘(妙)의 뜻으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세(出世)하신 본회(本懷, 一大事因緣)를 밝히지 않고 설하시는 것을 비(秘)라 하고, 그것을 밝히어 설하는 것을 묘(妙)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법화경 방편품(方便品)의 방편은 이 셋째의 `비묘방편(秘妙方便)`이라고 하여 일반적인 방편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즉, 법화경 이전에 설해진 삼승법(三乘法)은 실은 부처님 출세의 본회를 밝히지 않고 설하신 것으로 그것을 밝혀 설한 법화경과 다른 것이 아니고 법화경의 일승법에서 나온 방편일 뿐 모두 일승법의 진리와 다르지 않으므로 이 품을 방편품이라 이름하여도 진실과 다르지 아니한 방편이므로 모순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품에서는 법화경만이 진실교(眞實敎)임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전의 다른 교설이 진실교가 아닌 것처럼 이해되기 쉽기 때문에 다른 교설이 방편교(方便敎)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방편품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아무튼 불교에서 말하는 방편은 진실이 밑받침되어 있지마는, 허위는 전혀 진실의 밑받침이 없는 것입니다. 허위는 단지 허위에서 출발하여 허위로 끝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42년 동안 설하신 모든 경전이 방편이기는 하지마는, 그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장차 진실의 교(敎)인 법화경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큰 자비가 밑받침되어 있는 것이고 절대로 허위가 아닌 것입니다.
이 법화경과 다른 경전과의 관계를 일본의 일련대사(一連大師)는 `큰 탑을 쌓으려면 큰 재목보다 먼저 발판에 쓰일 작은 재목을 많이 모아서 발판을 만들고 나서 한 길 두 길 쌓아 올린다. 이렇게 하여 탑이 다 되면 발판은 허물어버린다. 발판은 일체경이요, 대탑(大塔)은 법화경이다. 부처님께서 먼저 일체경(一切經)을 설하신 것은 법화경을 설하시기 위해 먼저 발판을 마련하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방편은 탑(塔)을 세우는 데의 발판과 같은 것입니다. 발판은 탑이 완성된 다음에는 허물어 버릴 것이요, 탑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것이 없이는 탑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거짓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편이라 해서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높은 경지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낮은 것부터 차례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