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고래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by감성충전소(출간작가) J메뉴brunch ul 3 1. 2022
(사진은 여행 (산행) 사진 갤러리에서 가져온 우석 님의 괴곡성벽길입니다.) - 고래 사진 제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터넷에서 분분하게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TV 시청과는 돌담을 쌓은 지 오래인 일상이다. 그런데 어느 날 유투브에서 드라마 모음을 보는데 거대한 고래가 등장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작가 나름대로 의미를 두었겠지 하며 무심코 넘기다가,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낱말 하나가 떠올랐다. 이 낱말이 떠올랐을 때 내 표정이 있었다면, 드라마에서 고래가 등장하기 직전 변호사 우영우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5년 전 어느 날, 가수 단야가 연주곡 하나를 보내면서 가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한 번도 노래 가사를 써 본 적 없는 내게는 몹시 난감한 일이었다. 거기다 장엄하고 활기차고 힘 나는 가사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작곡가인 아들이 쓴 곡이었는데, 곡의 정조(情調)가 어쩐지 고단한 나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듯하였다.
악보가 없어서 가사 음절조차 맞춰 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연주곡을 수백 번 들으며, 영감을 떠올리고 가까스로 가사를 만들었다. 가사 내용은 순전히 내 안의 정서들로 채웠다. 편안하게 숨 쉬며 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던 나날이어서, 자신을 위로하며 힘내려고 발버둥 치는 내용이랄까. 날마다 허우적거리며 사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 나 뿐일까 하는 서정이 가사로 스며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노래가 ‘다시 시작처럼’이다.
이 가사를 쓰며 떠올린 게 바로 고래의 브리칭이다. 브리칭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던 때가 2012년 11월 29일(목)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해드림출판사 예전 홈페이지에 이 낱말의 뜻을 올려둔 날짜가 있기 때문이다.
다나 알렌(Dana Allen) 작품
고래가 물 밖으로 힘차게 솟구쳤다가 다시 수면으로 떨어지는 행위를 브리칭(breaching)이라 한다. 어떤 기운이 일시에 세게 일어난다는 뜻의 ‘우꾼하다’와 더불어 이 브리칭이라는 말은 매번 질곡의 강을 건너야 하는 내게 무언의 힘이 되곤 하였다. 그래서 ‘다시 시작처럼’ 가사에다 이 두 낱말을 넣었다.
‘다시 시작처럼’ 2절 가사 중 ‘… 푸르른 바다, 힘찬 브리칭, 그들처럼 우꾼하게…’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브리칭’과 ‘우꾼하다’의 두 낱말이 포태하고 있는 것은 ‘꿈’이었다.드라마에서 변론을 준비하는 우영우 변호사에게 결정적인 해결책이나 단서 등이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떠오를 때,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고래 장면이 등장한다.
드라마 작가의 구체적 설명이 없으니, 자폐스팩트럼을 지닌 변호사 우영우에게 고래가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어릴 때부터 고래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오는 우영우와 고래는 떼어내 생각할 수 없을 듯하다.
드라마의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스팩트럼 장애를 가졌다. 대체로 자폐는 1~2세 무렵부터 나타나는 유아 정신병, 또는 심리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내면세계에 틀어박히는 정신적인 질환으로 현실 세계는 꿈과 같이 보이며, 대인 교섭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하는 특징이 있단다.
자폐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자폐 스펙트럼 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s, ASD)는 자폐증/자폐 장애를 비롯하여 자폐증의 진단기준은 충족하지 않으나 전체 또는 일부 특징이 비슷한 여러 증후군을 모은 개념이란다.
사회생활의 문제와 제한적인 관심사 등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하며, 대표적인 예시로 아스퍼거 증후군, 서번트 증후군 등을 포함한다고 한다.전체 인구의 1% 정도가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남성의 경우가 여성보다 4배 이상 흔하다는 것이다.(위키)
다나 알렌(Dana Allen) 작품 브리칭
현대인은 대부분 자폐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자신이 죽어도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의식으로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정의는 불의로, 불의는 정의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 신앙, 스마트폰의 자폐스팩트럼은 결코 치유되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안고 갈지 모른다. 고려 500년의 불교, 조선 500년의 유교 사상 아래 세뇌되어 온 의식은 깨트려졌을지라도,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1500년 이상의 공고한 믿음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로 깨트렸을지언정, 작금의 우리가 지닌 자폐스팩트럼은 깨트릴 수 있을까 싶다.
드라마에서 고래의 브리칭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고래를 바라보는 시청자에게 마음껏 유추와 확대해석을 허락한 셈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고래의 의미를 거의 자폐스팩트럼과 연결하여 해석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바다는 자폐스팩트럼의 세계이고 주인공 우영우는 고래일 수도 있다. 바다는 온갖 아름다운 생명체가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힘이 지배하는 짓눌림의 세상이기도 하다. 자신을 고립시켜 버린 세상에서 우꾼하게 솟구쳐 오르고 싶은 욕망이나 꿈,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픈 의식이 고래의 브리칭(breaching)으로 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독한 세상살이는 내게 자폐스팩트럼을 안기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브리칭을 하였다. 그 브리칭의 힘은 꿈에서 나왔다. 적어도 내게 꿈은 바로 호흡이요, 생명이었다. 사무실 베란다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면 종종 목격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폐지를 가득 실은 자전거를 끈 채 지열이 푹푹 끓는 30도 경삿길을 끄덕끄덕 올라가는 할아버지이다. 이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브리칭하는 고래를 떠올린다. 거대한 바다를 내리치는 소리가 내 영을 울린다.
사막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물 한 방울이지 ‘너는 살 수 있어’ 하는 위로는 공허할 뿐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지금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어 가는 모든 이에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고래가 우꾼하게 솟구치는 힘을 주었으면 싶다.
(사진은 여행 (산행) 사진 갤러리에서 가져온 우석 님의 괴곡성벽길입니다.)(고래 사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