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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여직원 “미국 보내 달라”…삼성 사장의 다섯 글자 회신

작성자임금돌|작성시간23.11.05|조회수233 목록 댓글 0

고졸 여직원 “미국 보내 달라”…삼성 사장의 다섯 글자 회신

최은경 고석현 이희권   중앙일보

 

1990년 삼성은 세계 각국에 1년간 머물면서 현지인의 생활 관습과 문화, 철학 등을 연구하는 현지 전문가 양성을 시작한다. 지금은 ‘지역전문가’ 제도로 불리지만 당시엔 명칭이 ‘독신파견제’였다.

 

주로 미혼의 남성 직원이 가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났기 때문이다. 지역전문가 과정을 마친 이들은 해당 지역의 주재원으로 파견되기도 했는데, 과거에는 여성이 배제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여성이 나돌면 집안이 돌아가겠나.”

“‘여성이 나가면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겠나’ 이런 인식이 있었어요. 심지어 외국에서 열리는 기술 콘퍼런스나 심포지엄 참석도 어려웠습니다.”

 

1985년 고졸 연구 보조원으로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에 입사, 2014년 고졸 출신 최초로 여성 임원(상무)으로 승진한 양향자 무소속 국회의원의 말이다. 양 의원은 1995년 미국 반도체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싶어 “이런 프로그램을 듣고 와서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도록 전 사원에게 공유하고, 기술 이전에 힘쓰겠다”는 내용을 담은 한 장짜리 보고서를 사장에게 e메일로 보냈다.

양향자 무소속 국회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반도체 기판인 웨이퍼를 들고 있다. 최영재 기자

 

이윽고 짧은 답이 왔다. “다녀오시오.” 사장이 보고서에 감동했다는 얘기를 후일 들었다고 한다.

고졸 출신 여성으로 처음 3급(대졸 신입) 승진 유리천장을 깬 직후 있었던 일이다.

 

양 의원은 “저를 임원으로 발탁한 것은 제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삼성이 당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였다고 본다”며 “열심히 하면 누구나 정당한 대가와 승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인력이 많지 않은 ‘금녀의 직무’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양 의원이 일했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팀은 당시 자정까지 일하고, 이튿날 오전 6시에 출근하는 등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양 의원은 디자인 자동화시스템을 개발해 업무 시간을 줄이고, 오히려 팀을 여성 사원의 역량을 기르는 ‘인재 양성소’로 탈바꿈시켰다. 플래시설계팀은 경계현 현 대표 등이 거쳐 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핵심 부서다.

 

1980년대까지 연구원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었지만, 양 의원이 수석연구원 자리에 오른 이후 현재 여성 엔지니어 상당수가 활약하고 있다.

박유정 삼성물산 수석. 박 수석은 2010년 삼성물산 조경부문 ‘기술명장’으로 선정됐다. 사진 삼성물산

고민 끝 사표 접게 만든 상사의 ‘한마디’ 

 

1994년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에 입사한 박유정(조경부문 기술 명장) 수석은 여성으로는 드물게 조경 총괄을 맡고 있다. 흔히 나무를 심거나 건물 외부를 가꾸는 작업을 조경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마스터 플랜을 짜는 일까지 담당한다. 박 수석은 경기도 수원시 광교호수공원 조성으로 2018년 세계조경가협회상을 받기도 했다.

 

입사 당시 건설 부문에서 여성 신입사원은 박 수석과 인테리어를 담당한 또 다른 여성 사원 둘 뿐이었다. 하나뿐인 여성 동기는 결국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퇴사했다. 박 수석 역시 고된 육아에 퇴사를 고민했다.

 

“육아와 병행하며 버티다 결국 사표를 쓰기로 마음먹고 면담을 했죠. 당시 상사가 ‘네가 그만두면 그냥 박유정 대리가 그만두는 게 아니다. ‘여성’ 박유정 대리가 그만두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제가 이번 허들을 넘지 못하면 그다음 여성 후배들도 계속 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사직서 제출을 접었어요.”

 

박 수석은 “처음 과장이 될 때 여직원이 중간관리자를 하는 게 가능하냐는 말도 나왔지만, 그 이후로 여성이라고 불이익을 당한 기억은 없었다”며 “현재도 삼성은 건설사 중 최고 수준의 출산·육아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황유진 삼성엔지니어링 SV(토목공사 담당). 사진 삼성엔지니어링

 

유리천장 깨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입사한 황유진(24) 삼성엔지니어링 프로 역시 금녀의 벽을 무너뜨리겠다며 현장 업무에 지원했다. 황 프로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폐수현장 토목 공사 관리를 담당한다. 현장 인력 중 여성은 황 프로가 유일하다. 그는 “협력업체에서 아직도 가끔 사무보조직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아지고 있다”면서 “현장에 여성 관리자가 많지 않은데 모범 사례가 돼 여성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는 모바일·반도체부문 등에서 이미 여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개발 부서에서는 5명 중 1명, 영업마케팅에서는 3명 중 1명이 여성이다. 가전 사업부는 오히려 여성 인력이 더 많다. 수리를 담당하는 삼성전자서비스에서는 기존에 거의 없었던 여성 대형가전(세탁기·에어컨 등) 출장 수리 기사를 늘리고 있다.

 

다만 아직은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 삼성중공업은 몇 년 전 호황일 때 신입사원을 대규모로 채용하며 여성 직원이 늘었지만 이후 장기 불황이 이어지며 신규 충원 인력이 줄어 여성 직원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지난해 기준 이 회사의 여성 인력 비율은 3.6%였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여성 인재 지원 인프라도 ‘초격차’

삼성의 전직 여성 임직원들은 과거 사회 분위기상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삼성이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삼성에 다니는 30~40대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실제로 현직 여성 직원들 역시 과거 10여 년 전만 해도 모성 보호가 잘 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대체로 제도와 조직 분위기에 모두 만족한다고 답했다.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부문 여성 직원 A씨(40대 초반)의 말이다. “신입사원 때만 해도 임신한 직원을 야근하게 해서 문제가 됐다는 얘기를 듣곤 했습니다. 사무직뿐이 아니에요. 공장에 실습을 갔는데 만삭인 직원이 밤에 3교대 근무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요즘은 모성 보호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산전 검사를 위한 휴가나 육아 휴직도 다들 잘 챙겨 쓰는 것 같아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제도적 뒷받침이 이런 평가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법정 기준보다 한발 더 나아간 출산휴가, 육아·난임·자녀돌봄 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쌍둥이 같은 다태아의 경우 법으로 정한 최대 10일보다 열흘 더 쉴 수 있게 했다.

 

육아휴직 역시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 한 명당 최장 1년까지 법으로 보장하지만 삼성전자에서는 만 12세 또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 한 명당 최장 2년까지 휴직할 수 있다. 법으로 의무화하지 않은 난임 휴직도 최대 1년까지 세 번에 나눠 쓸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사무직·생산직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A씨는 “육아휴직의 경우 1년은 유급, 1년은 무급인데 보통 출산 때 1년을 쓴 뒤 자녀 초등학교 입학 때 나머지 1년을 사용한다”며 “10년 전만 해도 1년을 쉰다고 하면 눈치를 줬지만, 요즘은 기본으로 1년은 다 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장 내 어린이집에서 원하면 오후 8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데 대부분 4~5시에 하원한다”며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에게 어린이집은 최고의 복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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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이유로 평가 낮으면 이의제기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각 사업장에 어린이집 13곳을 운영 중이며 전체 정원은 3000여 명이다. 2021년 기준 육아 휴직자 수는 3900여 명, 휴직 후 복귀율은 98.3%다. 여성 직장인들은 복귀 이후가 더 문제라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A씨는 “제도상 연중 6개월 이상 부재하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고과를 받는다”며 “임신·출산을 이유로 낮은 고과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삼성전자는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남녀 임직원을 대상으로 교육과 멘토링, 재택근무를 지원하는 리보딩(Re-boarding) 제도도 운영한다. 2001년 문을 연 여성상담소는 성별에 관계없이 직장생활의 어려움이나 자녀·부부관계 등 다양한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삼성의 한 전자 계열사에 근무하는 여성 B씨(30대 후반)는 “출산까지 제도는 잘 돼 있지만 단축 근무 등 육아를 뒷받침해 주는 제도는 부족하다”며 “휴직 복귀 직원에게 나쁜 고과를 줄 수 없게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업무를 이어가는 데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B씨는 “10여 년 전 제도 미비로 여성이 직장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워지면서 현재 남성 조직 책임자가 많지 않으냐”며 “이들이 임신·출산에 따른 공백과 가정·회사에 투자하는 시간 비율을 고려해 남성 직원을 선호하면서 남성 중심의 문화가 여전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A씨 역시 “제도와 관계없이 결국 워킹맘으로서 챙겨야 할 일이 늘면서 예전만큼 업무에 집중하지 못해 마음의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여성 직원들의 이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피플팀(인사팀) 내 여성 인력을 전담하는 인사 담당자를 조직별로 두고 있다. 이들은 여성 인력 활용 방안을 마련하거나 양성평등 교육 등을 담당한다.

 

SK하이닉스보다 여성 직원 비율 적어 

문화적으로도 다양성을 강조해 편견을 없애고자 했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에서 일하는 여성 C씨(30대 초반)는“남초(남자가 많은) 회사인데도 언행이 거북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며 “다른 남초 기업에서는 여성 직원이 일을 못 하면 더 심하게 비하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삼성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엄격하게 인사 처벌을 한다. 제도에 더해 리더들에게 관련 교육을 많이 하는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어떨까. 제도적 수준과 실효성은 높다고 평가받지만 삼성은 타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수치상 1위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말 기준 여성 직원 비율은 26.2%로 현대차(6.3%)나 LG전자(14.6%)보다 높고, SK하이닉스(33.9%)보다 낮다. 남성 연봉 대비 여성 연봉 비율은 76.9%로 현대차(84%), LG전자(77.6%), SK하이닉스(77.5%) 등 다른 대기업보다 낮은 편이다. 또한 삼성전자의 2021년 기준 여성 임원 비율은 6.5%로 과거(2011년 1.5%)보다 늘었지만 절대적인 수치는 여전히 낮다.

 

“‘여성 사장’보다 ‘여성 관리자’부터 키워야”

삼성의 전·현직 여성 임직원들은 여성 인재들에 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여성 관리자’에 대한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재경(2002년 삼성증권 입사)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대표는 “삼성뿐 아니라 최근 많은 조직에서 여성 중간관리자가 급격하게 늘었다”며 “왜 하필 여성들만 따로 교육해야 하느냐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현장에서 보면 분명 여성 팀장들만 따로 교육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유정 수석은 “건설·중공업 등의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중간관리자 역할을 한 여성이 거의 없었다”며 “결혼이나 출산 등 인생의 변곡점에서 여성 인재들이 어려운 고비를 잘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역시 여성 관리자와 임원이 늘면서 생기는 조직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구성원의 다양성이 우수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포용의 문화가 인재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판단 아래 다양한 제도를 실험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8월 삼성SDS 잠실캠퍼스에서 열린 워킹맘 직원 간담회에 참석해 여성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회장은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직원이 애국자”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진 삼성전자

 

국내 최초로 ‘여성 중간관리자’ 교육

2001년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여성 간부만을 위한 리더십 교육 과정을 운영했다. 과장으로 승진한 여성 109명을 대상으로 경기도 용인시 인재개발원에서 3박4일 동안 진행한 교육은 당시 급증하는 여성 중간관리자들을 위해 개설한 과정이었다. 첫해 교육에서는 김명자 당시 환경부 장관을 초청해 부드러운 리더십을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4시간의 산행 후 각자 앞으로의 각오 등을 적어 타임캡슐에 보관했다. 김명자 전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주요 대기업이 여성 임원을 많이 선발하려 해도 후보군이 충분하지 않다”며 “우선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려면 여성 중간관리직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해 삼성전자에서 여성 과장은 전체 국내 임직원 4만 명 중 200여 명에 불과했다. 여성 부장은 단 11명이었다. 조은정(1995년 입사) 전 삼성전자 상무는 “당시 그룹 전체에서 임원 후보로 선발한 200명 넘는 부장급 교육생 중 여성은 나 혼자였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여성 과장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리더십 교육 과정은 2000년대 중반 사라졌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삼성에 여성 중간관리자가 많이 늘어나서다. 2003년 삼성전자 안에서만 전체 여성 중간관리자 수가 2년 전과 비교해 4배 이상 늘어났을 만큼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었다.

 

삼성 관계자는 “그때쯤 여성이라는 이유로 별도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 나왔던 것으로 안다”며 “과장·대리급 여성 직원이 크게 늘면서 별도의 교육 과정을 운영할 필요성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 서천에 위치한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삼성전자의 직급별 인재 양성교육 중 상당수 사내 교육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사진 삼성전자

 

현재 삼성전자는 임원 후보군인 CL4(부장급) 직급을 대상으로만 여성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차기 임원 후보를 양성하는 SLP(Samsung Business Leader Program)와는 별도로 진행되는 여성 교육 프로그램이다. 다만 이 교육이 많이 알려지거나 활성화한 것은 아니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밖에 현직 여성 임원과 여성 중간관리자가 멘토-멘티 관계가 돼 사내 인맥을 쌓을 수 있게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한다.

 

SK·현대차·LG 등 주요 다른 대기업에서는 여성 인력 양성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런 여성 대상 교육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여성을 위한 교육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사회적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20대 후반 여성 직원 E씨는 “오래 다녀야 임원처럼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는데 지금까지는 여성들이 결혼·출산·육아로 퇴사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그런데 저희 세대에서는 결혼이나 출산을 원하지 않거나 출산 후에도 퇴사하지 않겠다는 여성이 많아 앞으로는 여성 리더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양성’이 ‘성과’로 이어져야

여러 변화 속에서 다양성이 강조되면서 여성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한 기업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해외 빅테크 기업 역시 여성 인재 활용 방안에 나섰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성을 갖춰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6년까지도 구글의 미국 직원 4만6000명 가운데 71%가 남성이었다. 구글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검색 엔진을 특정 집단이 개발하는 것에 문제점을 느끼고 인재 구성에 성별, 인종 다양성 여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만큼 능력을 배제하고 무조건 다양성을 전제로 인재를 쓰는 법은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기업은 채용이나 주요 개발 프로젝트 구성에 있어 성별과 인종을 구분한다. 그렇다고 능력에 대한 순위가 바뀌지는 않는다.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가장 적합한 후보가 바뀌지 않고 남성이라 해서 의도적으로 제외되지도 않는다. 다만 능력을 갖춘 대상 조합 중 다양성 지수가 가장 높은 방향으로 집단이 구성되도록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구글 본사 건물에 부착된 구글 로고. AP=연합뉴스

 

이찬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 교수는 “삼성을 포함한 기업들의 임원을 보면 여전히 어느 정도 나이대가 있는 남성이 대다수”라며 “기업들이 최근 여성 사외이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여성 참여도를 높였다고 하지만 실질적 역할을 하는 내부 임원 수로 보면 아직도 유리천장이 높다. 회사 측에서 경력 개발 사다리 한칸 한칸마다 여성 핵심 인재들의 현황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은 제도·문화적으로 다른 국내 기업보다 우수한 양성평등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비교하면 국내 대기업의 구조가 여성에게 척박한 만큼 ‘글로벌 삼성’을 지향한다면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역차별 논란에 대해서는 “여성을 사회적 약자처럼 대하는 것은 역차별이 될 수 있지만, 남성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며 “여성·외국인·장애인·성 소수자 등 특정 집단을 더 배려하라는 게 아니라 그 개성 그대로 직무 역량을 발현하는 데 걸림돌이 없게 하는 것이 다양성과 포용성 강조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삼성도 도입할까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법으로 보장된 아빠의 육아휴직 기간(1년)은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길고, 유급휴직 기간도 전 세계에서 가장 긴 편이다.

 

그중에서도 삼성의 육아휴직 제도는 법적 의무 기준을 넘겨 국내 대기업 중 선두권에 올라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육아휴직에 들어간 남성 직원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직원들은 여전히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한 직원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 직원은 10명 중 2명 안팎”이라며 “쓰지 말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대단하다’ 또는 ‘용기 있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아직도 흔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에서도 남성이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다 채우고 돌아오면 ‘천연기념물’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또 다른 삼성전자 직원은 “남성이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은 앞으로 인사 평가와 진급 경쟁에서 일정 부분 뒤로 밀려나는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당장 벌이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각종 수당과 보너스를 포기해야 한다. 2017년 삼성그룹 전체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5033명 중 남성은 1038명(20.6%)이었다.

 

반면에 지난해 핀란드 직장 남성의 80%가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심지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남성 국방부 장관까지 육아휴직을 떠나 화제가 됐다. 스웨덴은 1974년 세계 최초로 유급 부모휴가를 도입한 데 이어 95년부터는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도’를 시행 중이다. 480일의 전체 육아휴직 기간 중 부부 어느 한쪽이 반드시 최소 90일을 사용하게 해 부부가 가사와 육아 분담을 함께 하도록 했다.

 

노르웨이 또한 2018년부터 남녀 모두 출산 후 15주 동안 육아휴직을 쓰도록 의무화했다. 우리와 직장 문화가 비슷한 일본조차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030년까지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85%로 끌어 올리겠다”며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에 나섰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내에서도 더 이상 여성들을 일터에서 내쫓지 않기 위해 북유럽 국가처럼 남성의 의무 육아휴직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롯데그룹은 2017년부터 남성 직원에게 한 달 이상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국내 대기업 중 최초다. 휴직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올해 결혼을 앞둔 한 삼성전자 직원은 “솔직히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남성 직원을 덜 헌신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며 “한두 달이라도 좋으니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면 여성 경력 단절을 줄이면서 직장인들의 일과 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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