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생수 할아버지’ 회장님의 꿈…화담숲, 마침내 숲이 되었다

작성자임금돌|작성시간23.11.28|조회수242 목록 댓글 0

‘생수 할아버지’ 회장님의 꿈…화담숲, 마침내 숲이 되었다

손민호  중앙일보   국내여행 일타강사③ 경기도 광주 화담숲

 

세상에는 이런 수목원도 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명품 수목원을 지어 놓고 사람들 많이 온다고 걱정하는 수목원.

은근슬쩍 문을 열고서는 시치미 뚝 뗐던 수목원.

모양 꾸며 얼굴 내미는 게 미덕인 세상에서 생색은커녕 내색도 안 하는 수목원.

굴지의 대기업 회장님이 기울였던 정성과 관심을 어떻게든 감추려 했던 수목원.

그리고 무시로 수목원을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회장님 행세를 안 했던 회장님까지.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가져온  히히링 님의 사진입니다. -임금돌-)

 

경기도 광주 곤지암 리조트 옆 ‘화담숲’은 여행기자가 배운 수목원의 상식을 낱낱이 거부하는 수목원이다. 지금은 입소문을 타 명물이 됐다지만, 2013년 공식 개방 전부터 지켜봤던 나로서는 화담숲의 잇따른 기행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화담숲은 이름부터 수목원이길 거부한다. 수목원이 감히 숲 행세를 한다.

 

수목원의 반대말을 아시는가. 내가 알기로는 숲이다. 풀과 나무가 스스로 이룬 자연이 숲이라면, 자연에 사무친 인간이 작정하고 흉내 낸 자연이 수목원이어서다. 화담숲이라는 이름에는 별을 따려는 아이의 마음 같은,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꿈꾸는 순수한 영혼 같은 게 깃들어 있다.

 

십수 년을 헤아리는 화담숲과의 인연을 들려드린다. 하필이면 단풍 좋은 이맘때 화담숲 얘기를 꺼내는 건, 화담숲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단풍나무 품종을 거느린 수목원이어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화담숲은 11월이 가기 전에 문을 닫는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장사를 접는 건, 화담숲이 일삼는 또 하나의 ‘탈(脫)수목원적’ 행태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내 수목원이 엄동설한에도 나무에 전깃불을 비춰 가며 손님을 받고 있어서다. 이제야 고백하는데, 화담숲에 밴 회장님의 사연을 알았을 땐 잠깐 재벌이 되는 꿈을 꿨었다. 풀과 나무와 새를 사랑하는 재벌. 어째 형용 모순 같은 표현이다.

 

소문의 시작

경기도 광주 화담숲의 조형물. 화담숲을 나가기 직전 다리 모양의 조형물을 지난다. 동그란 구멍을 낸 조형물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사진과 같은 '소나무 우주'가 펼쳐진다. 손민호 기자

 

화담숲이 처음 문을 연 건 2011년이다. 정상적인 개방은 아니었다. 곤지암 리조트 스키장 옆에 수목원을 들여놓고 리조트 투숙객에게만 입장을 허용했다. 그런데 소문이 나버렸다. 언론 홍보는커녕 SNS에도 소개된 적 없었는데, 알음알음 알고 찾아온 사람이 허구한 날 줄을 섰다. 2013년 6월까지 약 25만 명이 수목원을 다녀갔다.

 

뜻밖의 비경 출현에 여행기자는 몸이 달았다. 당장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곤지암 리조트는 취재를 완강히 거절했다. 하도 귀찮게 구니까 구경은 시켜줬다. 그러나 보도는 막았다. 여러 번의 실랑이 끝에 곤지암 리조트 박규석 대표이사를 만났다. 2013년 6월이었다.

 

“그 좋은 수목원 만들어놓고 왜 개방을 안 하십니까? 리조트 투숙객 전용 시설인가요?”
“아닙니다. 언젠가는 개방할 겁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제가 어지간한 수목원은 다 가봤거든요? 이 정도면 자랑해도 됩니다. 천 년 묵은 숲을 바라십니까?”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어서요. 수목원은 자연 생태계 복원과 보호를 위한 LG그룹 차원의 공익사업입니다. 그래서 자연환경 개선과 보호 활동을 하는 사회복지법인 LG상록재단이 수목원의 주인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수목원을 찾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정확한 정보를 알릴 때가 아닐까요?”

 

박규석 대표는 “때가 되면 연락하겠다”며 허허 웃었다. 박 대표 말마따나 화담숲은 곤지암 리조트 부속 시설이 아니다. 리조트 단지 정문을 통과해야 수목원에 갈 수 있어 ‘스키장 안 수목원’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히 말하면 ‘스키장 옆 수목원’이다. 주인이 따로 있고, 운영과 관리만 리조트에서 담당한다.

이미지크게보기

화담숲 입구. 매표소를 통과하면 처음 마주하는 풍경이다. 이것저것 요란한 설명 없이 소나무 한 그루만 심어놨다. 이 소나무 뒤로 별천지가 펼쳐진다. 손민호 기자

 

그로부터 3개월 뒤. 소문 무성했던 수목원이 드디어 완전 개방했다. 맨 처음 이름은 ‘곤지암화담숲’. 이후 화담숲으로 바뀌었다. 이름에 들어간 ‘화담(和談)’에서 수목원 공식 개장이 늦어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는 뜻의 ‘화담’은 LG그룹 구본무(1945∼2018) 전 회장의 아호(雅號)다. 화담숲은 2006년 조성을 시작했다. 구본무 회장이 환갑을 막 지나고 났을 때다.

 

숲이 되고 싶은 수목원

이미지크게보기

화담숲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단풍나무 품종을 거느린 수목원이다. 400종이 넘는 단풍나무가 산다. 사진 화담숲

 

화담숲은 발이봉(482m) 경사진 산자락에 얹혀 있다. 발이봉 건너편 정광산(563m) 자락이 곤지암 리조트 스키장이다. 산을 따라 스키 슬로프가 꼬불꼬불 이어진다. 화담숲은 발이봉 골짜기를 따라 터를 잡았다. 그래서 골짜기 바깥의 수목원 정문에서는 안쪽이 잘 안 보인다. 수목원 안으로 걸음을 떼어야 별천지 같은 풍경이 하나씩 드러난다. 면적이 16만㎡(약 5만 평)나 된다. 무슨 비밀의 숲 같다.

 

수목원은 평지가 거의 없다. 발이봉 산자락이 그대로 수목원이다. 하여 밀도가 아주 높다. 발이봉 산허리와 중턱, 골짜기와 마루금이 나무로 빽빽하고 풀로 촘촘하다.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풀과 나무보다 지금은 사람이 심은 풀과 나무가 더 많지만, 사람이 심은 풀과 나무도 애초의 풀과 나무처럼 자연스럽다.

 

사람이 심은 풀과 나무는 2013년에도 제법 자연스러웠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은 본래의 자연과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더 자연스럽다. 정식 개방을 늦췄던 이유가 예 있다. 화담숲은 처음부터 숲이 되고 싶었던 게다.

화담숲에는 반딧불이가 산다. 청정 자연에서만 서식하는 반딧불이가 수목원에 산다는 건, 그만큼 수목원이 태초의 숲을 닮았다는 뜻이다. 사진 화담숲

 

화담숲에는 반딧불이가 산다. 여름마다 반딧불이 축제를 한다. 아시다시피 반딧불이는 청정 자연에서만 서식한다. 수목원에 반딧불이가 산다는 건, 인간이 일군 인공 자연이 극상림(極相林)의 자연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뜻이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수목원은 사철 예뻐야 하므로 농약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숲을 꿈꾸는 이 수목원에서는 반딧불이가 여름밤을 밝힌다.

이미지크게보기

이미지크게보기

화담숲의 자랑 소나무 정원. 윗 사진은 2016년 처음 소나무 정원을 조성했을 때 촬영했고, 아래 사진은 비 내리는 봄날 일부러 찾아가 촬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화담숲이 뿌듯하게 여기는 명소가 두 곳 있다. 하나가 국내 최대 품종을 보유한 ‘단풍나무원’이다. 때깔이 유난히 붉은 당단풍나무,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내장단풍나무, 봄부터 붉은 홍단풍나무, 노란 단풍이 드는 고로쇠나무, 잎사귀가 공작 꼬리를 닮아 ‘공작단풍’으로 알려진 세열단풍나무 등 400종이 넘는 단풍나무가 수목원에 산다.

 

개중에는 높이 12m, 둘레 2.5m의 초대형 단풍나무도 있다. 수령 또한 최소 200년 이상으로 추정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단풍나무로 통한다. 전라도의 한 도로공사 현장에서 베어질 뻔했던 나무를 옮겨 심었다. 뿌리를 캐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화담숲에는 수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소나무도 300그루 넘게 산다. 2016년 화담숲은 고가(高價)의 소나무를 들여오면서 ‘미완성 소나무 정원’을 조성했다. 스스로 낮춰 지은 이름이다. 아직은 옮겨 심은 티가 난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은 ‘미완성’ 세 글자를 뗐다. 그렇게 화담숲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조심 숲을 닮아갔다.

 

화담숲 이용정보

화담숲 모노레일. 가파른 탐방로를 걸어서 올라가지 않아도 돼 노약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손민호 기자

 

화담숲은 고약한 수목원이다. 하루 1만 명만 입장할 수 있다. 원래는 입장객이 몰리는 봄가을에만 입장객에 제한을 뒀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 입장객을 1만 명으로 못 박았다. 20분 간격으로 450명씩 입장한다. 인원 제한을 해도 단풍 시즌에는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홈페이지에서 입장권을 예약 구매해야 하는데, 경쟁률이 치열하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을 얹고 팔리기도 한다.

 

화담숲은 경사진 발이봉 기슭에 얹혀 있어 수목원 산책이 산행에 가깝다. 발이봉 마루금까지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그래서 모노레일을 설치했다. 입장객 대부분이 경사 구역을 통과하는 2승강장까지만 모노레일을 타고 마루금에 올라간다. 마루금에서부터는 소나무 정원과 분재원 등을 거치며 걸어서 내려온다.

 

인증사진 명소로 유명한 자작나무 숲은 비탈진 탐방로 상단부에 있다. 하여 자작나무 숲에 들르려면 모노레일을 타지 말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모노레일을 타면 1시간30분 남짓, 모노레일을 안 타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화담숲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다. 화담숲은 봄부터 가을까지만 영업한다. 보통 11월 하순 닫았다가 이듬해 3월 하순 연다.

 

운영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 1만1000원(어른 기준)
모노레일 요금 : 5000원(1승강장∼2승강장, 어른 기준)

화담숲 자작나무 숲. 봄이면 흰 자작나무와 노란 수선화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생수 할아버지

이미지크게보기

화담숲은 의외로 시끄럽다. 사방에서 울어대는 새 소리 때문이다. 사진은 화담숲 탐방로 난간에서 휴식 중인 원앙. 원래는 철새였는제 언제부턴가 화담숲을 떠나지 않고 있단다. 손민호 기자

 

생전의 구본무 회장은 풀과 나무와 새를 좋아했었다. 나무 중에 특히 좋아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게 소나무다. 화담숲이 소나무에 갖은 정성을 들인 이유다. 구 회장은 새에 대한 애정도 지극했다. 국내외 조류 전문가와 함께 『한국의 새』(2000)라는 조류도감을 펴낸 적도 있다.

 

발간사에서 구 회장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값진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화담숲에서 얻는 뜻밖의 재미 중 하나가 사방에서 울리는 새 소리다. 새가 내려앉는다는 건, 자연 생태계가 조화를 이뤘다는 뜻이다. 조화는 기업인 화담의 경영철학이다.

 

화담숲 구석구석 구 회장의 손이 안 닿은 데가 없다. 화담숲이 정식 개장하기 전부터 구 회장은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연락도 없이 불쑥불쑥 수목원을 찾아왔다. 화담숲을 방문한 수백만 명 중 누구도 구 회장을 알아보지 못했다. 전지가위를 허리춤에 차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점퍼 차림의 할아버지가 LG그룹 회장님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제는 유명해진 일화가 있다. 수목원 벤치에 손님이 앉아 쉬고 있으면 어떤 할아버지가 쓱 나타나 생수를 건넸고, 손님이 “누구세요?”라고 물으면 “물 주는 사람이오”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화담숲의 ‘생수 할아버지’가 대한민국 4대 그룹 총수라는 걸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기자는 해마다 애가 탔다. 기업 입장에선 ‘회장님의 수목원’만큼 알리고 싶은 소재도 없을 텐데, 곤지암 리조트는 물론이고 LG그룹도 화담숲 기사에 구 회장이 언급되는 걸 한사코 꺼렸다. 당신의 뜻이 워낙 완고하다고 했다. 나로서는 회장님을 말하지 않고 화담숲을 말하느라 곤혹스러웠다.

 

여태 화담숲이 언론 노출에 주저했던 것도, 그 비싼 소나무를 옮겨 심은 것도, 겨울마다 수목원 문을 닫는 것도 다 ‘회장님 뜻’이었다. 2017년 첫 뇌수술을 받고 돌아온 구 회장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도 화담숲이었고, 구 회장이 영면에 든 자리도 화담숲의 어느 양지바른 숲이다.

 

이끼원의 기적 

아주 오래전의 LG그룹 구자경(1925~2019) 전 명예회장(왼쪽)과 구본무 전 회장. LG그룹 2대 구자경 회장과 3대 구본무 회장은 부자 사이다. 부자 모두 자연을 지극히 사랑했다고 한다. 사진 LG

 

화담숲 기사에서 구 회장을 말할 수 있었던 건, 2018년 5월 당신이 돌아가고 나서부터였다. 당신의 부고를 듣고 여태 담아놨던 구 회장의 일화를 처음 공개했다. 그리고 한동안 걸음을 끊었다. 혹여 주인 잃은 숲에 실망할까 봐 주저했었다.

 

그러다 지난 9월 오랜만에 화담숲에 들었다. 모노레일 탑승구 근처를 거닐다가 ‘이끼원’ 앞에서 멈춰 섰다. 앞서 화담숲이 자랑하는 명소 두 곳 중 한 곳이 단풍나무원이라고 말했었다. 또 하나의 명소가 여기 이끼원이다. 서너 해 만에 마주한 이끼원은 내 기억 속의 그 이끼원이 아니었다.

 

이끼원은 화담숲이 제일 공들인 공간이다. 물론 구 회장의 뜻이었다. 당신이 이끼 무성한 계곡을 꼭 보고 싶어 했단다. 화담숲은 2013년 개장과 함께 이끼 30여 종을 심은 이끼원을 공개했다. 이끼를 키우기 위해 바람·습도·빛 같은 이끼의 생육조건을 맞추는 연구를 거듭했고, 공중의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장치도 들였었다.

 

그러나 이끼는 기대만큼 성하지 못했다. 생전의 구 회장도 이끼원만 들르면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요?” 하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화담숲에서 유일하게 실패한 공간이 있다면, 이끼원이었다.

이미지크게보기

2023년 9월 촬영한 화담숲 이끼원. 이끼원은 화담숲이 2013년 정식 개장할 때부터 공들여 조성한 공간이다. 온갖 정성을 기울였으나 이끼는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았었다. 지금은 아니다. 골짜기 하나가 이끼로 온통 푸르르다. 손민호 기자

 

여태 볼품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2023년 9월의 이끼원은 이끼로 풍성했다. 화담숲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어도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서너 해 전만 해도 휑했던 골짜기가 물기 머금은 이끼로 온통 푸르렀다. 당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초록 세상이 당신이 가고 나서야 비로소 펼쳐졌다. 2006년 첫 삽을 뜨고 17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무가 뿌리를 내렸고, 먼 산의 새가 내려앉았고, 반딧불이가 불을 밝혔고, 마침내 이끼가 돋아났다. 이로써 화담숲은 숲이 되었다. 화담이 바라마지 않았던 조화로운 숲이 되었다.

 

생전의 화담은 화담숲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은 뒤라도 ‘그 사람이 이 숲만큼은 참 잘 만들었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 숲이다. 수목원이 아니다.

 

또 하나의 LG 집안 수목원, 베어트리파크

단풍이 한창인 베어트리파크. 베어트리파크는 단풍 시즌이 되면 평소 출입을 제한했던 '단풍낙엽산책길'을 개방한다. 올해는 10월 21일 문을 열었고 11월 5일 닫는다. 사진 베어트리파크

 

세종시에 있는 베어트리파크(Bear Tree Park)는 이름 그대로 곰과 나무가 있는 공원이다. 반달곰·불곰 합해 100마리가 넘는 곰이 수목원에 산다. 그러나 베어트리파크의 주인공은 풀과 나무다. 나무만 300여 종 11만 그루가 있다. 식물은 모두 1000여 종 40만 점이 넘는다. 특히 명품 분재가 유명하다. 아이에겐 반달곰 동물원으로, 어른에게는 희귀 수목과 분재 명소로 인기가 높다.

 

베어트리파크도 LG 집안 수목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설립자 이재연(94) 회장이 LG그룹 창업주 구인회(1907∼69) 회장의 둘째 사위다. 다시 말해 구인회 창업주의 둘째 딸 구자혜(1938∼2009) 여사의 남편이다. 베어트리파크는 2009년 공식 개장했지만, 전사(前史)까지 합치면 50년 세월이 훌쩍 넘는다. 1966년부터 이재연 회장은 기업인 생활 틈틈이 경기도 의왕시 6만6000㎡(약 2만 평) 대지에서 아내와 함께 나무를 심고 키웠다. 이재연 회장의 회고다.

 

“좋은 나무가 있으면 전국에서 구해 왔고, 해외 출장을 나가면 씨앗을 받아 왔어요. 일본·인도네시아 등 외국에서 사온 나무도 많습니다. 지금 베어트리파크를 두른 느티나무는 원래 창경원(지금의 창경궁) 느티나무예요. 옛날 창경원에 갔었는데 관리원이 빗자루로 느티나무 씨앗을 쓸어내고 있더라고요. ‘거, 버릴 거면 나한테 버리세요’ 하면서 담뱃값을 쥐여 줬어요. 그게 지금 이렇게 컸어요.”

베어트리파크 실내 식물원. 이재연 회장(오른쪽)과 장남 이선용 대표가 나란히 걷고 있다. 손민호 기자

 

그 시절 이 회장의 의왕시 농장은 아는 사람만 가는 비원(秘園)이었다. 입장객은 안 받았어도 손님이 많았다. 이 회장의 장인인 구인회 회장부터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윤보선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같은 정·재계 고위 인사가 주 방문객이었다. 송파원이라는 이름도 김종필 총리가 지어줬다. 언젠가 김종필 총리가 수목원을 둘러보고 “소나무가 파도를 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고, 그 한마디에서 이 회장의 아호 송파(松波)와 수목원 이름 송파원이 비롯됐다.

 

송파원은 베어트리파크에도 있다. 베어트리파크의 여남은 개 정원 중 하나가 송파원이다. 수목원에서도 나이 먹은 나무, 이 회장 말마따나 “같이 늙어 가는 나무”가 모여 사는 공간이다. 요즘은 이 회장의 아들 이선용(62) 대표가 베어트리파크를 운영하는데, 여전히 이 회장은 매주 베어트리파크에서 머무른다. 특히 송파원은 하루에 대여섯 번씩 들른다.

 

송파원은 1989년 문을 닫았다. 의왕시가 개발되면서 어쩔 수 없이 옮겨야 했다. 이 회장이 수소문 끝에 현재 베어트리파크가 들어선 16만5000㎡(약 5만 평) 면적의 땅을 구했다. 지금은 30만㎡(약 10만 평)으로 넓혔다. 이사는 물론 쉽지 않았다. 나무 옮기는 데만 꼬박 3개월이 걸렸고, 트럭만 1000대 넘게 동원됐었다고 한다.

베어트리파크 송파원. 베어트리파크에서 수령이 많은 나무들만 모아 놓은 공간이다. 원래의 송파원은 베어트리파크의 전신을 이른다. 손민호 기자

 

이재연 회장에 따르면, 구인회 회장은 딸과 사위가 일군 송파원을 자주 방문했었다. 구인회 회장과 송파원을 찾은 일행 중에는 장남 구자경(1925∼2019) 회장 가족도 있었다. 구자경 회장은 자연을 벗삼아 사는 이재연 회장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구자경 회장도 1995년 은퇴하고서 충남 천안에 내려가 농장을 경영했었다. 

 

구자경 회장의 아들 구본무 회장(1945∼2018)도 송파원을 여러 번 방문했었다. 그 오래전 추억이 화담숲의 실마리가 됐다. 고모부 이재연 회장이 “인생과 전 재산을 바친” 결실이 베어트리파크라면, 화담숲은 조카 구본무 회장이 평생을 꿨던 꿈의 현장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