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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조선 6대 단종 왕릉 ― 강원 영월 장릉

작성자임금돌|작성시간24.03.01|조회수243 목록 댓글 0

(白山 허정영 님의 <진솔한 글방>이라는 카페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사진이 별나서(커서) 가져왔습니다. 클릭하면 더 크게 보입니다.)

 

세계유산 조선 6대 단종 왕릉  ― 강원 영월 장릉

 

 

단종이 명예를 회복하는 데는 200년이 넘게 걸렸다.

숙종 7년(1681), 숙종은 그를 일단 노산대군으로 추봉한 뒤 숙종 24년(1698) 정식으로 복위했고,

묘호를 단종으로 종묘에 부묘했으며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장릉의 능침은 양지바른 곳에 있어 눈이 와도 쉽게 녹으며 따뜻하다.

특이한 것은 능침을 둘러싼 소나무가 모두 봉분을 항해 절을 하듯 묘하게 틀어졌다는 점이다.

풍수가들은 장릉 터를 갈룡음수형(渴龍飮水形),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 한다.

 

능역은 홍살문, 정자각, 단종비각, 재실 등을 갖추고 있어 여타 왕릉과 다름없다.

그러나 장릉은 능침 공간과 제향 공간이 일반 능과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장유형의 능선 중간에 능침이 있으며 능침 서측 수십 미터 아래에 평지를 이용,

L자형 참도 끝에 능침을 옆으로 하고 정자각을 배치해 놓았다.

 

일반적 직선형 제향 공간과 다른 형태다.

단종이 몰래 암매장되고 능침 앞이 좁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

 

장릉의 상설은 정릉과 경릉의 예에 따라 난간석과 병풍석, 문인석은 있지만

무인석은 생략되었고 세자 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능역이 조성된 숙종 대에는 왕 단종이 아니라 세자 노산군이었기 때문이다.

 

중종 때 첫 능지 확인 후 숙종 대에 이르러 혼유석과 장명등, 석호, 석양, 망주석 등 석물을 정비했는데

작고 간단하게 만들어진 후릉을 따랐다.

명릉 이래 만들어지는 사각 장명등은 장릉에서 첫선을 보인다.

 

이곳의 산신석은 다른 곳과 달리 위쪽에 예감,

아래쪽에 산신석이 있어 유일하게 왕과 산신의 위계를 볼 수 있다.

특히 규모는 작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는 점에서 세종의 영릉과 더불어 으뜸으로 꼽힌다.

 

사진 저장 하시면 1280 크기 입니다

 

20231231 사랑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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