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건도 넘는 정보가 쏟아 지고 있습니다. 그 산더미
같은 정보의 홍수속에 우리는 허우적 대면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받아 들여야 할
정보는 무엇이고, 또 버려야 할 정보는 어떤 것인가를 놓고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고,
또 그에 대한 말들이 구구절절이도 많은게 이 시대입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정보와 말들이 우리를 더 나락의 길로 이끌지 않았나 생각
되어 집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말없는 킬러(신하균분)는 먼저 날카롭게 현대문명의
오만함에 대해 꼬집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그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았습니다. 일견 이 영화가 코미디, 액션이라고 분류하지만, 영화내내 나의
뇌리를 붙잡는 건 그렇게 단순 하지만은 않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갔습니다.
유년시절 그녀(윤지혜분)에게서 시인이 되기를 강하게 권유받습니다. 말을 할 수
없으므로 더 큰 외침이 되는 시인이 되면 적격이라는 말로 그를 격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킬러가 되었습니다.
킬러.
과연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시인과 킬러. 공통점은 있을까요?
굳이 찾으라면 전광석화 같은 날카로움이 아닐까요.
시는 언어의 예리함일 것이고, 칼은 말그대로 도구의 날카로움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대략 감독의 의도를 읽게 됩니다.
내용있는 영화든, 시시콜콜한 영화든,
항상 감독의 메세지가 있는 법입니다. 다만, 그 메세지를 어떻게 읽는 가는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감독은 자본의 모순에서 빚어 지는 관계의 모순에 대해 천착하는 듯 합니다.
그것이 표면적으론 소위 ‘예의없는 것들’ 이란 이름으로 묶어져 시대의 칼을
맞고 난도질 당하게 됩니다.
말없는 시인의 다른 이름, 킬러의 몸짓으로...
시대의 관계와 사랑은 늘 불가해하고, 비열하기 까지만 합니다.
이러한 일반적 통념에 대해서도 끝까지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그에 대해 마지막 칼날을 내리 꽂는 것입니다.
죽어가면서 킬러의 평온한 마지막 단말마를 통해, 또한 그녀의 따스한 포옹이
우리시대의 관계도 사랑도 저러한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를 웅변해 보입니다.
처음 메가폰을 잡은 박철희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킬러라는 다소 생소한 소재로서
우리시대의 절박한 담론들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의 앞으로의
영화적 깊이가 주목됩니다.
누구나 한가지쯤은 아픈면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가 보듬어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 날카롭게 청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수작(秀作)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