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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판크라스란 무엇인가?

작성자카라스마~[신영무에타이]|작성시간06.09.10|조회수877 목록 댓글 0
판크라스란 무엇인가?

1993년 탄생하여 13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판크라스(Pancrase)는 후나키 마사카츠, 바스 루텐, 켄 샴락, 콘도 유키 등 걸출한 인재를 배출하면서 현재까지도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그래플링과 타격의 종합 실전룰을 창안한 MMA계의 선구자격으로 ‘격투 사관 학교’라고 일컬어지며 일본 및 세계의 많은 단체들에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신종 스포츠인 MMA를 알리는 데 오랫동안 일선에서 앞장서온 판크라스. Hybrid 정신을 바탕으로 가장 강한 격투기를 꿈꾸는 판크라스를 역사와 특징,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탄생배경

실전지향 프로레슬링 단체 UWF에서 분리된 후지와라 구미는 1992년 또다시 내부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후지와라 조장과 후나키 마사카츠, 스즈키 미노루 등 젊은 레슬러들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점차 조직이 와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2년 해산된 후지와라 구미에서 떨어져 나와 의기투합한 이나가키 카츠오미, 후케 타카쿠, 야나기사와 류지, 타카하시 요시키, 켄 샴락, 후나키 마사카츠, 스즈키 미노루 이렇게 7명의 젊은 레슬러들이 ‘실력주의’를 지향하며 설립한 단체가 바로 ‘판크라스(Pancrase)’다.

1993년 5월 16일 정식으로 ‘판크라스’라는 단체가 설립되기 전까지의 과정은 새로운 프로레슬링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젊은 레슬러들이 계속해서 허물을 벗는 변태의 그것이었다. 신일본에서 UWF, UWF에서 후지와라 구미, 후지와라 구미에서 판크라스로 분리 독립되면서 프로레슬링의 서열 체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프로레슬링 세계관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경기는 철저한 실력주의로, 링 위에서는 서열이나 내부 질서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치열한 대결 양상을 가지고 있었다.

판크라스 창립 멤버들이 첫 대회 때 보여주었던 빠르고 강한 인상의 경기들은 일본 내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첫 대회 “판크라스 Yes, We are hybrid wrestlers"에서 총 5경기의 진행시간이 13분 5초를 기록했다. 10분 이상 공방을 펼치던 프로레슬링과는 다르게 5분 안에 경기의 결과가 판가름 나, ‘초살’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경기 진행의 속도도 기존의 프로레슬링과 구별되는 것이었지만 판크라스 창립 멤버들의 비젼은 더욱 새로운 것이었다. 그들은 ‘Hybrid wrestling'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일정한 형식이 없는 ’잡종 대결‘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바라보았던 판크라스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처음 품었던 판크라스에 대한 비젼이 현재의 MMA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유도의 던지기가 훌륭하면, 그 피를 받아들이자.

복서의 펀치야말로 진짜라고 한다면, 가르침을 청하자. 그러면 내가 최강이 된다. 첫 기술은 투쟁의 DNA에 기억되어 하이브리드(잡종) 레슬링은 또 한 걸음, 새로운 진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스포츠 등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격투기의 교배에 의해 인간이 어디까지 강하게 될 수 있을까를 묻는 장대한 실험이다”라는 진보적인 생각이 오늘날 하나의 스포츠로 진화되고 있는 MMA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징

1993년 9월 21일에 첫 경기를 가진 판크라스는 올해로 12주년을 맞이하며 미국의 UFC, 일본의 K-1와 같은 기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자키 마사미 사장을 비롯한 판크라스 운영진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배제한 실력 위주의 대회 개최를 기본 이념으로 하여 가장 탄탄하고 경쟁력 있는 선수들과 함께 현재까지 매 대회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

경기는 5분 최고 3라운드의 룰을 채택하고 있으며 페더급(-64kg), 라이트급(-69kg), 웰터급(-75kg), 미들급(-82kg), 라이트헤비급(-90kg), 헤비급(-100kg), 슈퍼헤비급(+100kg), 무제한급, 8개의 체급을 마련하여 진행한다. 각 체급은 경기 결과에 따른 철저한 랭킹제로 선수들의 순위를 집계, 발표하며 순위에 맞는 매치 메이킹을 매 대회마다 성사시킨다.

각 선수들은 뜻을 같이하는 판크라스 내부 팀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콘도 유키 등이 포진된 판크라시즘(PANCRASEism), 키쿠다 사나에, 고노 아키히로가 수장을 맡고 있는 판크라스 그라바카(GRABAKA), 타카모리 케이코의 판크라스 메가톤(MEGATON) 등 총 8팀이 판크라스의 주요 선수들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판크라스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매년 ‘네오 블러드 토너먼트(Neo-Blood Tournament)’라는 이벤트를 마련하여 젊고 잠재력 있는 파이터들을 발굴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칭 그대로 판크라스의 새로운 피를 공급하기 위해 기획된 ‘네오 블러드 토너먼트’는 1995년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의 등용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1996년의 콘도 유키, 1999년의 미노와 이쿠히사 등도 8강 토너먼트를 거쳐 우승한 네오블러드 토너먼트 출신의 유명 파이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무관 가라데의 오쿠다 마사카츠도 2001년 네오블러드 토너먼트 준우승자다.

세계 격투이벤트로서의 의의

. 판크라스는 1993년 개최 이후, 꾸준한 성장을 지속하여 세계 격투이벤트 중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대회가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판크라스는 격투스포츠의 흐름에 산증인이라고 평가될 만큼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격투이벤트의 흐름을 몸소 체험해왔다.

1993년 개최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실전룰은 프로레슬링을 기반으로 하는 제한된 룰을 가지고 있었다. 주먹으로 직접적인 얼굴 가격을 금지시키고 대신에 팜 스트라이크 (Palm Strike; 손바닥으로 가격하는 공격방법) 방식을 채택하여 경기를 운영했다. 당시의 이러한 경기 모습은 실전 파이팅을 쉽게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비록 주먹은 아니지만 맨손으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경기 형태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크라스가 지속적으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격투기팬들은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게 됐다. 슈토나 프라이드 FC 등 후발 격투이벤트들이 오픈 핑거 글러브를 착용하고 직접적인 안면부 타격을 허용하면서 판크라스의 팜 스트라이크 방식은 구식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요구의 움직임에 맞춰 판크라스는 2000년에 오픈핑거 글러브를, 2001년에 라운드제를 각각 도입해 현재의 MMA룰로 경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세부룰이 변경돼 비로소 오늘 날의 MMA 형태를 띠게 되었다.

미국의 UFC가 무제한에 가까운 룰에서 점차 제약을 두고 현재의 MMA룰을 만들어갔다면 판크라스는 프로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제한된 룰에서 점차 제약을 풀고 현재의 MMA룰을 만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MMA의 역사로 본다면 판크라스의 라인은 하나의 주요 축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자료제공 : mf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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