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목) 아침방송법문 : “분별을 놓을 때 평화가 찾아온다.”

작성자眞虛性宗|작성시간25.11.27|조회수34 목록 댓글 2

불기 2569년 11월 27일(목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분별을 놓을 때 평화가 찾아온다.”

법우 여러분, 이른 아침, 명상을 통해 맑아진 마음으로 오늘 법문의 주제, “분별을 놓을 때 평화가 찾아온다.”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 주제는 단순히 불교 철학을 논하는 것을 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장년 법우님들의 현실적인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분별(分別)을 쉬지 않고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나에게 이익이다, 손해다’, ‘깨끗하다, 더럽다’라는 이분법의 칼로 무자비하게 나누고 재단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경험하는 괴로움, 즉 번뇌의 근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분별심을 망상(妄想)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허망한 생각이라고 정의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 즉 법(法)은 본래 고정된 실체가 없이 인연 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공(空)의 성품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잠시의 현상에 내 것, 좋은 것, 영원한 것이라는 고정된 이름을 붙이고 집착하면서 고통을 자초합니다.

중장년의 삶은 특히 이 분별심 때문에 더 괴롭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쌓인 경험과 지혜는 분명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 지혜가 고정된 잣대가 되어버릴 때,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인연과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식들에게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저것은 옳지 않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법우님들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자녀와의 관계는 긴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옳다, 그르다’는 분별이 괴로움의 씨앗이 됩니다.

우리의 분별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작동합니다. 
첫째는 대상에 대한 분별입니다. 
돈, 명예, 건강, 외모 등 외부적인 조건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성공했다', '나는 이제 젊음을 잃었다', '내 집은 저 집보다 작다'와 같은 생각들입니다. 이 분별은 열등감이나 교만함이라는 감정으로 변하여 우리를 괴롭힙니다.

둘째는 자신에 대한 분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심판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가',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자책과 후회의 감정들입니다. 이는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분별이며, 내면의 평화를 완전히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金剛經)에서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모든 분별에 머물지 말고 청정한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입니다.

분별의 가장 큰 특징은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다고 분별하는 대상이 영원히 좋을 수 없고, 싫다고 분별하는 대상 역시 영원히 싫을 수 없습니다. 법우님들도 경험하셨겠지만, 젊었을 때는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이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때는 너무나 괴로웠던 일이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무상(無常)의 진리 속에, 우리의 분별은 마치 허공에 그린 그림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분별의 습관을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현실적입니다. 
첫 번째 실천은 관찰입니다. 
분별이 일어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저 사람의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순간, 그 판단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아, 지금 분별심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조용히 속삭여 보십시오.

이 알아차림은 마치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빛이 비추는 순간, 어둠의 실체가 없듯이, 분별심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 힘은 급격히 약해집니다. 이 관찰은 법우님들이 매일 아침 명상 시간에 훈련한 바로 그 힘입니다. 명상 때 호흡을 관찰했듯이, 일상에서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별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실천은 수용(受容)입니다. 
수용이란, 세상과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두 일어날 인연이 있었기에 일어났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싫은 감정을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불쾌한 현실을 도망치려 하지 마십시오.

특히, 인간관계에서 수용의 미덕은 빛을 발합니다. '내 아들은 이래야 하는데', '내 며느리는 저래야 하는데'라는 고정된 분별의 틀을 내려놓고,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십시오. 그 순간, 분별이 만들어냈던 긴장과 갈등이 눈 녹듯 사라지고, 평화로운 수용의 공간이 열릴 것입니다. 평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분별을 멈추었을 때 스스로 피어나는 꽃입니다.

유마경(維摩經)에서는 "번뇌가 곧 보리(煩惱即菩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며, 분별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분별을 놓을 때 깨달음이 시작된다는 심오한 진리입니다. 분별을 없애려 싸우지 마십시오. 분별을 그저 바라보십시오. 그 바라봄 속에서 분별은 스스로의 실체가 없음을 드러내며 사라질 것입니다. 법우님들의 마음이 분별을 놓아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이 아침 법문을 통해 함께 정진해 나아가겠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분별하는 모든 대상, 즉 세상의 모든 것은 연기(緣起)의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연기란 모든 존재가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조건과 인연이 모여 잠시 나타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임을 뜻합니다. 이는 마치 팥, 설탕, 물, 불 등의 인연이 모여 팥죽이라는 존재가 잠시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팥죽 자체에는 '팥죽이 확실하다'는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나의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도 수많은 인연, 즉 노력, 시대의 흐름, 주변의 도움, 심지어 우연한 행운까지 수많은 조건들이 모여 잠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이 성공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라는 고정된 분별심을 덧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 성공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아함경(阿含經)에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고 설하셨는데, 이는 모든 현상의 상호 의존성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분별을 놓는 두 번째 깊이 있는 실천은 바로 공성(空性)의 지혜를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공성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 없이 비어있다는 진리입니다. 이 지혜를 삶에 적용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분별의 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군가를 '나쁜 사람'이라고 분별하지만, 그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해를 입었을 때는 나쁘다고 분별하지만, 그 사람의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나쁘다'는 분별은 오직 나의 경험과 나에게 미친 영향이라는 조건적인 인연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입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분별을 놓을 때, 미움의 감정에서 벗어나 그를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깁니다. 분별을 놓는다는 것은 대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덧씌운 나의 주관적인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실천은 비교하는 습관을 멈추는 것입니다. 
중장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의 성공과 나의 현재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친구는 저렇게 사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내 노후는 친구보다 못할 것 같다'와 같은 분별심은 불필요한 불안과 좌절을 안겨줍니다. 이는 마치 사과와 배를 비교하며 "사과는 왜 배처럼 시원하지 않은가"라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과는 사과일 뿐이고, 배는 배일뿐입니다.

법우님들의 삶 역시 그 자체로 고유하고 완벽한 하나의 인연의 결과물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각자의 삶은 각자의 업(業)과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나 자신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옵니다. 타인과의 분별을 멈추고, 오직 내 안의 불성을 발견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십시오.

네 번째 실천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분별’을 멈추는 것입니다. 
후회와 걱정은 분별심의 대표적인 산물입니다. '그때 그 선택이 틀렸다'는 과거에 대한 분별, '앞으로 이렇게 될까 봐 두렵다'는 미래에 대한 분별이 현재 우리의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유명한 게송처럼, "지나간 것은 쫓지 않고, 오지 않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의 법에 집착하여 항상 머문다." 이것이 바로 분별을 놓는 가장 현실적인 지침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에 '좋음/나쁨'의 분별을 붙잡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두려움, 기대'의 분별을 만들어내지 마십시오. 오직 지금 이 순간(現在)에 깨어있는 마음으로 머무는 것이 분별을 놓는 수행의 핵심입니다. 지금 이 순간, 차가워진 공기의 감각, 따뜻한 차 한 잔의 맛, 그리고 이 법문을 듣고 있는 법우님의 청정한 귀에 집중하십시오.

이러한 공과 연기의 지혜를 기반으로 분별을 내려놓을 때,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열리게 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사람들은 여전히 다르겠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 모든 분별의 파도가 잦아들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이 모든 수행의 궁극적인 결과, 즉 분별을 완전히 놓았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참된 평화와 해탈의 경지에 대해 깊이 논하며 오늘 법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분별을 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무관심해진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둘이 아닌 하나(不二)로 보는 지혜, 즉 평등성(平等性)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善)과 악(惡)을 분별하지만, 사실 악은 선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고, 선 역시 악과의 비교를 통해 정의될 뿐입니다. 본래 두 실체는 하나로 얽혀 인연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공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이(不二)의 지혜를 실천할 때, 우리의 마음은 마치 모든 것을 비추지만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 거울처럼 변합니다. 거울은 미인을 비출 때 기뻐하지 않고, 추한 것을 비출 때 싫어하지 않습니다. 단지 있는 그대로 비출 뿐입니다. 법우님들의 마음이 이 거울의 지혜를 닮을 때, 외부의 좋고 싫은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평화(寂靜)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해탈(解脫)의 경지입니다.

해탈은 어디 멀리 있는 천국이 아니라, 분별의 굴레에서 벗어난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상태입니다. 법우님들께서 자녀의 행동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분별을 멈추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수용할 때, 그 순간이 작은 해탈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 '실패했다'는 분별을 멈추고 '이것 또한 삶의 한 과정이다'라고 받아들일 때, 그 순간이 또 하나의 해탈입니다. 우리의 평화는 분별을 내려놓는 작은 순간들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분별을 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결실은 자비심(慈悲心)의 발현입니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분별을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괴로움을 겪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나라는 분별에 갇혀 고통을 받듯이, 상대방 역시 상대방이라는 분별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등한 시선은 조건 없는 사랑인 자(慈)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비(悲)로 이어집니다. 법우님들의 가정과 직장, 사회생활에서 모든 인연을 분별없이 평등하게 대할 때, 그곳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정토(淨土)가 될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분별없이 바라볼 때, 우리는 진정한 자비행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법문을 듣고 난 후, 법우님들께서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실 수 있는 세 가지 행동 지침을 말씀드리며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첫째, 아침 호흡 명상 5분은 반드시 지키십시오. 호흡은 현재 순간에 머무는 닻이며, 분별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가장 기본적인 훈련 도구입니다.

둘째, 하루에 세 번,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분별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아침 식사 전에 한 번, 점심 식사 후에 한 번,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번. 이 간단한 질문이 수십 년간 굳어진 분별의 습관을 깨뜨리는 강력한 죽비가 될 것입니다.

셋째, 가장 싫어하는 사람, 가장 불만스러운 상황에 대해 '좋다, 싫다'는 분별 대신, '이 또한 인연의 결과이다'라고 속으로 세 번 되뇌십시오. 그 순간, 분별의 날카로운 칼날이 무뎌지고,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평화가 쌓여 법우님들의 삶 전체가 부처님의 빛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분별을 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참된 세상을 만나고, 내 안의 부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디 오늘 아침 법문이 법우님들의 삶에 지혜의 씨앗이 되어, 고요하고 평화로운 깨달음의 꽃을 피우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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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산자비행 | 작성시간 25.11.28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마음에 새겨 행 하겠습니다.
  • 작성자同 明 김종성 | 작성시간 25.11.28 나무 관세음보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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