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09일(화) 아침방송법문 : “관세음보살은 왜 귀 기울여 들으시는가?”

작성자眞虛성종|작성시간26.06.09|조회수43 목록 댓글 2

불기 2570년 6월 9일(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관세음보살은 왜 귀 기울여 들으시는가?”

법우 여러분, 오늘은 관음재일입니다. 
또한 불심사에서 봉행하고 있는 제3차 관음천일기도 94일째 되는 날입니다. 매일 한결같은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염송하며 정진하고 계시는 법우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와 찬탄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관세음보살은 왜 귀 기울여 들으시는가?”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에는 매우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소리를 관한다.’, 즉 세상 중생들의 소리를 깊이 살펴 듣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리는 단순히 귀로 들리는 말소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통 속에서 흘리는 눈물의 소리이며, 외로움 속에서 삼키는 한숨의 소리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 둔 아픔의 소리입니다. 또한 간절하게 부처님을 찾는 기도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이 괴로움 속에서 한마음으로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을 듣고 곧바로 구제해 주신다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그래서 수많은 불자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염송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주문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믿고 자신의 마음을 맡기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왜 중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비 때문입니다. 자비란 상대방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처럼 여기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아프면 함께 아파하고, 상대가 눈물 흘리면 함께 마음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자비가 없는 사람은 남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남의 아픔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그렇고 친구 사이에서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깁니다.

어떤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평생을 함께 살았지만 늘 다툼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께서 그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내가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고, 할머니는 “남편이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두 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듣는 수행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문(聞)·사(思)·수(修)라고 합니다. 먼저 바르게 듣고, 들은 내용을 깊이 생각하며,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듣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첫걸음은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귀로만 들으면 소리가 들리지만 마음으로 들으면 그 사람의 고통이 들립니다. 귀로만 들으면 말이 들리지만 마음으로 들으면 그 말 뒤에 숨겨진 눈물과 외로움이 들립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경청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자비행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도 말없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 문제로 걱정하는 부모도 있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밥을 굶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법우 여러분,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에게 남의 말을 잘 들어주라고 가르치십니다. 배우자의 말을 들어주고, 자녀의 말을 들어주고, 친구의 말을 들어주고, 도반의 말을 들어주라고 가르치십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공덕이 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진심 어린 경청일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젊을 때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이고,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생기며, 잘 들어주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존경을 받게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울고 있는 사람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 힘든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행입니다.

오늘 관음재일을 맞아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가족의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주고 있는가. 나는 도반들의 아픔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나는 내 생각만 말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관음재일 수행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의 소리를 들으시는 이유는 중생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경청이 있고, 자비가 있는 곳에는 이해가 있으며, 이해가 있는 곳에는 화합이 있습니다. 우리도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본받아 한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자비로운 불자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법우 여러분, 앞에서 우리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의 소리를 들으시는 이유가 자비 때문이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께서 들으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히 귀에 들리는 소리만 들으시는 것일까요?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들으시는 것은 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소리 속에 담긴 중생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말은 때때로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괴로운 경우가 있고,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마음의 소리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귀는 육신의 귀가 아니라 자비의 귀이며 지혜의 귀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이 기쁜지 힘든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자녀가 말은 하지 않아도 고민이 있다는 것을 부모는 느끼기도 합니다. 오랜 친구는 한마디 말 속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이것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듣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듣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남의 소리는 들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소리는 듣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화가 나 있는데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상처를 받았는데도 아닌 척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음의 병이 깊어지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의 시작이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는 것이 수행의 첫걸음입니다. 탐욕이 일어나고 있는지, 성냄이 일어나고 있는지, 걱정과 불안이 나를 흔들고 있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수행은 단순히 남을 돕는 수행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능엄경에서는 관세음보살님의 수행을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고 설명합니다. 소리를 따라 밖으로 향하던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돌이켜 본래의 자성을 깨닫는 수행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작용이 아니라 깨달음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텔레비전 소리, 휴대전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자동차 소리, 세상의 온갖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리들 속에서 자신의 본래 마음소리는 점점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명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잠시라도 조용히 앉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불심사에서는 제3차 관음천일기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입재한 지 94일째 되는 날입니다.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기도하시는 법우님들의 원력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어떤 분은 자녀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며, 또 어떤 분은 자신의 수행과 깨달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의 가장 큰 공덕은 소원을 이루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소원을 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욕심을 보게 되고, 집착을 보게 되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걱정을 안고 살아왔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넓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염송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를 때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내 소리를 들어주신다고 믿는 동시에 나 또한 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 신앙은 자기만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향한 자비의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남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님은 먼저 들으십니다. 판단하기 전에 들으시고, 꾸짖기 전에 들으시며, 외면하기 전에 들으십니다. 바로 이것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자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갈등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해결책보다 경청이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사람들은 조언을 원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먼저 원하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외로운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가족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의 귀를 빌려 쓰는 수행이며, 자비를 실천하는 길입니다.

오늘 관음재일을 맞아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면서 한 가지 서원을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관세음보살님, 제 소리를 들어주시는 것처럼 저 또한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겠습니다.” 이러한 발원은 우리의 삶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고, 가정을 더욱 화목하게 만들며,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지금도 중생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을 따라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는 삶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은 조금 더 자비롭고 따뜻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의 소리를 들으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중생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관심이 있고, 관심이 있는 곳에는 경청이 있으며, 경청이 있는 곳에는 자비가 싹트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큰 공덕을 쌓아야만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님께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자비를 실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웃의 아픔을 들어주고, 도반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또한 훌륭한 수행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일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안아주는 일과 같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말하는 사람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앞세우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이고,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생기며, 잘 들어주는 사람의 삶에는 자연스럽게 자비의 향기가 배어나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관세음보살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누군가의 기도를 들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경청 한 번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광명이 법우 여러분의 가정마다 충만하시기를 발원드리며, 제3차 관음천일기도에 동참하신 모든 법우님들의 서원이 원만히 성취되기를 두 손 모아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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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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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산청 예지화 | 작성시간 26.06.10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 작성자부산자비행 | 작성시간 26.06.10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마음에 새겨 행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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