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년 6월 11일(목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공덕입니다.”
존경하는 법우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가족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직장 동료를 만나고, 도반들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갈등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실천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의 법문 주제는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공덕입니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덕이라고 하면 절에 큰 보시를 하거나 많은 불사를 하는 것을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도 훌륭한 공덕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배려하는 마음 또한 매우 큰 공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하는 마음은 사람의 마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서로 다투고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부처님께 와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상대방을 미워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해는 미움을 녹이는 첫 번째 열쇠”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아픈 사람이 더 많습니다. 성격이 나빠서 함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늘 화를 내는 사람도 자신의 삶이 힘들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까다롭게 행동하는 사람도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저마다의 업과 인연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며 생각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살아온 길이 다를 뿐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다투는 이유도 대부분 이해 부족 때문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힘든 점이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서로 자신의 입장만 이야기하다 보면 갈등은 커집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도 그렇고 형제자매 사이도 그렇습니다. 이해는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법구경에는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다스려라.”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상대를 이기는 것은 잠시일 수 있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오랫동안 관계를 살립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기려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선의를 베풀었는데도 알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섭섭해지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미움 대신 자비를 선택하고, 원망 대신 이해를 선택합니다. 바로 그 마음이 공덕입니다.
공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는 마음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매우 큽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진심 어린 이해가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운 말과 이해하는 마음을 가장 큰 보시 가운데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남이 나에게 친절하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친절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가 말하는 인과의 가르침입니다.
법우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젊을 때는 경쟁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포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젊을 때는 주장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들어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질수록 인생은 더욱 평화로워지고 관계는 더욱 따뜻해집니다.
특히 수행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잘못만 보지 말고 상대방의 아픔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자비가 생기고 공덕이 쌓이게 됩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곧 자비이며, 자비가 곧 공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가족과 이웃, 그리고 도반들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실천 하나가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하며, 우리 삶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는 마음은 자비의 시작이며, 자비는 공덕의 씨앗입니다. 오늘도 그 씨앗을 마음속에 심으며 살아가시기를 발원합니다.
법우 여러분, 앞에서 우리는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왜 공덕이 되는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남을 이해하지 못할까요? 부처님께서는 그 이유를 아상(我相), 즉 ‘나’라는 생각에 대한 집착에서 찾으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해석이 다릅니다. 그것은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내 생각이 곧 정답이라고 착각합니다.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 내 생각을 관철시키려 하고, 내 감정을 앞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내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늘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바로 그 겸손함이 이해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건강 문제로 고통 받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가족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쉽게 판단하고 오해하게 됩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 한 사람이 와서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곁에 있던 제자들은 크게 화를 냈지만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듣고만 계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이유를 묻자 부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큰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괴로운 사람은 괴로움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의 눈입니다.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까지 보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잘못을 무조건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마음속 분노는 줄어들고 자비는 커지게 됩니다.
이해와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용서입니다. 이해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면 용서는 그 문을 통과하여 자유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상처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서운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어떤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 마음속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미움을 품고 사는 것은 독을 마시고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미움은 결국 자신을 먼저 괴롭힙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만들며, 건강까지 해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미움을 키우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수행 가운데 하나도 바로 용서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바쁘게 살아오느라 상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 지나온 세월이 자주 떠오릅니다. 그때 오래된 원망과 섭섭함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이해하고 용서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고 오직 자비로써 풀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나도 미워하면 원한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해와 자비로 대하면 그 원한의 고리는 끊어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이 가르침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형제자매 사이에 오래된 갈등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다 보면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바뀔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웠던 사람의 아픔이 보이고, 원망했던 사람의 외로움이 보이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강요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와 배려를 통해 얻어집니다. 그래서 남을 이해하는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공덕입니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의 잘못보다 사정을 보시고, 행동보다 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훨씬 평화로워지고, 가정은 더욱 화목해지며, 수행 또한 한층 깊어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이해와 자비의 길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 길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공덕이며, 가장 향기로운 수행임을 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왜 공덕이 되는지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이해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마음이며, 자비란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느끼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해와 자비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와 같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의 말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들으십니다. 눈에 보이는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아픔과 고통까지도 살펴보십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는 모든 중생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일상 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힘든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며, 외로운 사람 곁에 따뜻하게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바로 관음행입니다.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작은 이해와 작은 배려가 모여 큰 공덕이 되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사람 때문에 힘들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입니다. 가족이 있어서 힘을 얻고, 친구가 있어서 웃을 수 있으며, 도반이 있어서 수행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젊을 때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기 쉽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상대방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노년의 지혜이며 수행자의 품격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고 다음 생에서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는 마음은 자비를 낳고, 자비는 좋은 인연을 낳으며, 좋은 인연은 결국 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래서 남을 이해하는 마음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함께 밝히는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의 말 속에서 진심을 찾고, 행동 속에서 사정을 살피며, 부족함 속에서도 장점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이 쌓일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따뜻해지고, 가정은 더욱 화목해지며, 수행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자비의 길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가족을 이해하는 데 있고, 이웃을 배려하는 데 있으며, 도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있습니다. 오늘도 이해하는 마음으로 공덕을 짓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복을 심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시고,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늘 함께하시기를 두 손 모아 발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