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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종자전쟁] 국내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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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탁이 외국 종자에 점령됐다’는 말은 표면상 틀린 게 아니다. 우리의 대표적 먹을거리인 배추, 고추, 무 등의 종자가 국내에 진출한 외국 종자회사에 의해 절반 이상이 공급되는 게 현실이다. 또 시금치, 당근, 양파, 토마토, 딸기 등의 채소 종자는 일본산이 80%를 넘어섰다. 하지만 ‘국경 없는 종자 전쟁시대’에 무엇이 진짜 외국 종자인지는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농진청의 한 관계자는 “국가 핵심작목인 벼와 민간주도형 채소인 무, 배추, 고추는 세계적 수준의 육종기술과 우수한 개발 품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벼, 보리, 콩, 감자, 옥수수(사료용은 제외) 등의 5대 작물에 대해서는 정부보급종자를 개발해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이들 종자는 수출입 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보릿고개’를 넘기게 한 통일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육종 기술은 특정 작물에 관한 한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게 사실이다. 육종 기술을 가진 나라도 미국,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 이스라엘, 한국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외국 거대 종자회사들이 들어와 주도하는 시장으로 변하면서 한국의 종자 시장은 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미흡한 부분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외국 종자회사들과 한국 회사들과의 품종 개발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내병성(耐病性)을 어느 정도 파악하느냐는 문제다. 이는 새로운 품종이 어떤 병에 강하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알릴 수 있을 만큼 유전적 정보를 파악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종자를 상품화하면서 내병성을 구체적으로 명기하면 쓸데없는 농약을 쓰지 않을 수 있어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종자를 수입할 때 내병성에 대한 자료를 의무적으로 요청하는 이유다. 1990년대 흥농종묘가 국산 고추 품종으로 미국 시장을 개척할 당시 무려 8년의 세월이 걸린 것도 우리에게는 낯선 내병성에 대한 자료를 미국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종자회사들은 아직도 내병성에 대해 어둡다. 과거 새 품종을 사간 농민과 종자회사들 간에 농작물의 ‘집단 의문사’를 놓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품종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에도 불구하고 신품종의 권리를 둘러싼 분쟁과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3년 농우바이오가 ‘길조무’라는 새로운 무 품종을 개발해 품종보호를 출원하자 신젠타가 자기들이 등록한 ‘태청무’와 품종이 같다며 이의를 제기해 소송으로까지 번진 게 대표적 사례다. 세미니스코리아의 경우 국내에서 판매하는 375개의 품종 중 품종보호 등록을 한 것이 20여개에 불과할 정도로 품종보호 제도를 불신하고 있다. 엄격한 품종보호를 앞세운 지적재산권은 사실 농민에게 충격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기르던 작물에 대해 외국 회사들이 느닷없이 막대한 로열티를 물라고 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매번 사서 뿌려야 하는 채소 씨는 가격에 이미 로열티 개념이 포함돼 있지만 영양증식을 하는 딸기와 장미 등의 작물은 로열티를 따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 이 로열티 개념은 2001년 품종보호 대상이 된 장미 파동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장미 로열티는 지난 한 해만 70억원이 지급됐고 올해는 120억원이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로열티는 보통 연간 총생산원가 추정 금액에 로열티 비율 10%를 곱하지만 장미, 국화 등의 고부가가치 작물은 로열티 비율이 100~120% 수준에 이른다. 2000년 30억원에 불과했던 로열티 지급액은 현재 1000억원 수준으로 급증한 상태다. 로열티와 관련해 당장 시급한 과제는 ‘육보’ ‘장희’ 등 일본산이 재배면적의 거의90%를 차지하고 있는 딸기다. 딸기는 올해 품종보호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었지만 일본 종자회사들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품종보호 대상 지정이 2009년으로 미뤄졌다. 일본 측은 딸기 재배면적 300평당 최대 5만원의 로열티를 요구했었다. 사과 재배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일본산 후지사과 등 몇몇 대박 외국 품종의 로열티 지급 기한이 끝났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 만큼 앞으로도 우리 농가는 로열티 파고를 넘어야 한다. 정장열 주간조선 차장대우 j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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