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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이야기

[스크랩] 친필본 포함 5종 난중일기024(계사0218~0222)

작성자무등산자락길잡이협동조합|작성시간26.06.16|조회수2 목록 댓글 0

계사년 2 18[]~2 22[] [3. 20.~3. 24.]

요약본

【계사년 2월 18일】

친필본 : 十八日癸卯 晴 早朝行軍 到熊川 賊勢如前 蛇渡僉使 伏兵將差定 領呂島萬戶 鹿島假將 左右別都將 左右突擊將 光陽二船 興陽代將 防踏二船等 伏于松島 使諸船誘引 則賊船十餘隻 蹤後而出 慶尙伏兵五隻 輕追逐之際 伏船突入回擁 多放射 倭人不知其數致死 一級斬首 大挫 終不追後 領諸船 到院浦汲水 乘昏還到永登後洋 經夜沙火郞

(십팔일계묘 청 조조행군 도웅천 적세여전 사도첨사 복병장차정 영려도만호 녹도가장 좌우별도장 좌우돌격장 광양이선 흥양대장 방답이선등 복우송도 사제선유인 칙적선십여척 종후이출 경상복병오척 경추축지제 복선돌입회옹 다방사 왜인부지기수치사 일급참수 대좌 종불추후 영제선 도원포급수 승혼환도영등후양 경야사화랑)

■ 전서본 : 十八日癸卯早朝行軍到熊川賊勢如前蛇渡僉使伏兵將差定領呂島萬戶鹿島假將左右別都將左右突擊將光陽二船興陽代將防踏二船等伏于松島使諸船誘引則賊船十餘隻踵後而出慶尙伏兵五隻追逐之際伏船突入回擁 多放射 倭人死者不知其數 賊大挫 更不出抗 日暮 還到沙火郞

(십팔일계묘조조행군도웅천적세여전사도첨사복병장차정영려도만호녹도가장좌우별도장좌우돌격장광양이선흥양대장방답이선등복우송도사제선유인칙적선십여척종후이출경상복병오척추축지제복선돌입회옹 다방사 왜인사자부지기수 적대좌 갱불출항 일모 환도사화랑)

1. 이순신 : 상기 원문 참고

2. 노승석 : 18(계묘) 맑음. 이른 아침에 군사를 움직여 웅천에 이르니, 적의 형세는 여전했다. 사도 첨사(김완)를 복병장으로 임명하여 여도 만호(김인영), 녹도 가장, 좌우별도장, 좌우돌격장, 광양 2, 흥양 대장, 방답 2선 등을 거느리고 송도(松島, 진해 송도)에 매복하게 하고, 모든 배들로 하여금 유인케 하니, 과연 적선 여남은 척이 뒤따라 나왔다. 경상도 복병선 다섯 척이 재빨리 출동하여 뒤를 쫓을 때, 다른 복병선들이 돌진해 들어가 적선을 에워싸고 수없이 발사하니, 왜적으로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다. 한 놈의 목을 베고 났더니 적의 무리가 크게 꺾여 끝내 뒤따라 오지 못하였다. 날이 저물기 전에 여러 배를 거느리고 원포(院浦)에 가서 물을 길었다. 어두워져서 영등포 뒷바다로 돌아왔다. 사화랑(沙火郎)의 진영에서 밤을 지냈다.

3. 이민웅외 : 18(계묘) 맑음. 이른 아침에 군사를 움직여 웅천熊川에 이르니, 적세는 여전했다. 사도첨사蛇渡僉使[김완]를 복병장伏兵將으로 임명하여 여도만호呂島萬戶, 녹도가장鹿島假將, 좌우별도장左右別都將, 좌우돌격장左右突擊將, 광양2호선, 흥양대장興陽代將, 방답2호선 등을 거느리고 송도松島에 복병하게 하고, 모든 배들을 시켜서 꾀어내게 하니 적선 10여 척이 뒤를 따라 나왔다. 경상도 복병선 5척이 날쌔게 먼저 나가 쫓을 적에 다른 복병선이 뛰어 들어가 둘러싸고 수없이 쏘아 대니, 왜적의 죽은 것이 그 수효를 알 수 없었다.(*목을 벤 것이 1급이었다.) 적의 기세가 크게 꺾여서 다시는 나와 항전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사화랑沙火郎으로 돌아왔다.(*날이 저물기 전에 여러 배들을 거느리고 원포院浦로 가서 물을 길었다. 어두운 틈을 타서 영등포 뒷바다로 돌아왔다. 사화랑 진영에서 밤을 지냈다.)

4. 박종평 : 18[20, 계묘] 맑았다. 이른 아침에 군사를 움직였다. 웅천에 도착했다. 적의 형세는 전과 같았다. 사도 첨사(김완)를 복병장伏兵將으로 임시로 임명했다. 여도 만호(김인영), 녹도 임시 장수假將(윤사공), 좌별도장左別都將(이설), 좌별도장(이기남)과 좌돌격장左突擊將(거북선장 이언량), 우돌격장左右突擊將, 광양 2호선과 흥양 대장, 방답 2호선 등을 송도松島에 매복하게 했다. 여러 배를 시켜 유인했더니, 적선 10여 척이 뒤를 쫓아 나왔다. 경상 복병 5척이 째빨리 쫓아갈 때, 복선伏船(매복해 있던 배)이 돌격해 들어가 둘러싸고, 활을 많이 쏘았다突入回擁 多數放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왜인이 죽었다. 머리 1급을 베자, 적의 무리는 사기가 크게 꺾였다一級斬首 賊徒大挫. 끝내는 따라오지 못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여러 배를 이끌고 원포에 도착했다. 물을 길었다. 어둠을 타고乘昏 영등 뒷바다로 되돌아왔다. 사화랑沙火郎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5. 이은상 : 十八(癸卯) 맑다. 이른 아침에 행군하여 熊川에 이르니 적세는 여전하다. 蛇渡僉使(金浣)伏兵將을 임명하여 呂島萬戶 鹿島假將 左右別都將 左右突擊將 光陽二船 興陽代將 防踏二船 등을 거느리고 松島(昌原郡熊川面)에 복병하게하고, 모든 배들을 시켜서 꾀어 내게 하니 적선 여척이 뒤를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慶尙道 복병선 다섯척이 날싸게 먼저 나가 쫓을 적에 복병선이 뛰어 들어가 둘러 싸고 각종 무기를 모조리 쏘고 놓고하니 왜적의 죽은 것이 그 수효를 알수 없고 적의 기세가 크게 꺾여져 다시는 나와 대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날이 저물어 沙火郎(昌原郡熊川面)으로 돌아오다.

 

【계사년 2월 19일】

친필본 : 十九日甲辰 晴 西風大作 不能放船 因留不發 送筆墨于南海 夕南海來 高汝友 李孝可亦來見 因陣沙火郞

(십구일갑진 청 서풍대작 불능방선 인류불발 송필묵우남해 석남해래 고여우 이효가역래견 인진사화랑)

■ 전서본 : 十九日甲辰西風大作不能放船仍陣沙火郞。○南海來高汝友李孝可亦來見.

(십구일갑진서풍대작불능방선잉진사화랑。○남해래고여우이효가역래견)

1. 이순신 : 상기 원문 참고

2. 노승석 : 19(갑진) 맑음.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띄우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출발하지 않았다. 남해 현령(기효근)에게 붓과 먹을 보냈더니 저녁에 남해 현령이 와서 사례하였다. 고여우(高汝友)와 이효가(李孝可)도 와서 만났다. 그대로 사화랑에 진을 치고 있었다.

3. 이민웅외 : 19(갑진) 맑음.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띄울 수 없었다. 그대로 사화랑에 진을 치고 있었다.(*남해현령에게 붓과 먹을 보냈더니, 저녁에 그가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남해 현령이 보러 오고, 고여우高汝友와 이효가李孝可도 보러 왔었다.

4. 박종평 : 19[21, 갑진] 맑았다. 서풍이 크게 불었다. 배를 띄울 수 없었다. 그대로 머물며 출발하지 않았다. 남해 현령(기효근)에게 붓과 먹을 보냈다. 저녁에 남해 현령이 와서 감사 인사를 했다. 고여우高汝友와 이효가李孝可도 와서 만났다. 그대로 사화랑의 진에 있었다.

5. 이은상 : 十九(甲辰) 맑다.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띄울 수 없어 그대로 沙火郎에 진치다. 南海원이 와서보다. 高汝友李孝可도 와서 보다.

 

【계사년 2월 20일】

친필본 : 二十日乙巳 晴 曉發船 東風暫至 (自午)與賊交鋒 則大風輒發 各船自相觸破 幾不能制船 卽令角立 招搖止戰 諸幸賴 不至重傷 然興陽一隻防踏一隻順天一隻營一隻衝破 日未暮 到蘇秦浦 汲水經夜 是日鹿群走東西 順天捉一送來

(이십일을사 청 효발선 동풍잠지 (자오)여적교봉 칙대풍첩발 각선자상촉파 기불능제선 즉령각립 초요지전 제행뢰 불지중상 연흥양일척방답일척순천일척영일척충파 일미모 도소진포 급수경야 시일록군주동서 순천착일송래)

■ 전서본 : 二十日乙巳曉發船東風暫至與賊交鋒則大風輒發各船自相觸破幾不能制船卽令角立招搖止戰幸賴不至重傷到蘇秦浦經夜。○是日鹿羣走東西順天捉一鹿送來

(이십일을사효발선동풍잠지여적교봉칙대풍첩발각선자상촉파기불능제선즉령각립초요지전행뢰부지중상도소진포경야。○시일녹군주동서순천착일송래)

1. 이순신 : 상기 원문 참고

2. 노승석 : 20(을사) 맑음. 새벽에 배가 출항하자 동풍이 잠깐 불더니, 적과 교전할 때에는 큰 바람이 갑자기 불었다. 각 배들이 서로 부딪쳐 파손되어서 거의 배를 제어할 수 없었다. 즉시 나팔()을 불고 초요기(招搖旗)로 싸움을 중지시키니, 여러 배들이 다행히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양의 1, 방답의 1, 순천의 1, 본영의 1척이 부딪쳐 깨졌다. 날이 저물기 전에 소진포로 가서 물을 긷고 밤을 지냈다. 이 날 사슴 떼가 동서로 달려가는데, 순천 부사(권준)1마리를 잡아 보냈다.

3. 이민웅외 : 20(을사) 맑음. 새벽에 배를 띄우자 동풍이 잠시 불더니, 적과 교전할 때는 큰 바람이 갑자기 불어 배들이 서로 맞부딪쳐 깨지게 되었는데 거의 배를 제어할 수 없었다. 곧 호령하여 호각을 불고 초요기招搖旗를 세워 싸움을 중지시켜서 여러 배들이 다행히도 크게 상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소진포蘇秦浦로 돌아와 밤을 지냈다. (*그러나 흥양 1, 방답 1, 순천 1, 본영 1척이 서로 들이받아 깨졌다. 날이 저물기 전에 소진포에 이르러 물을 긷고 밤을 지냈다.) 이날 사슴 떼가 동서로 달려가는데, 순천부사[권준]1마리를 잡아 보내왔다.

4. 박종평 : 20[22, 을사] 맑았다. 새벽에 배를 출발했다. 동풍이 잠시 불었다. 낮부터 적과 서로 싸웠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불었다. 각 배가 서로 부딪쳐 깨질觸破 지경이었다. 배를 조종할 수도 없었다. 즉시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의) (소라)을 불게 하고, (장수들을 불러모으는 신호로) 초요招搖(초요기)를 세우게 해 싸움을 멈추게 했다令角立招搖止戰. 모두들 다행히도 심하게 파손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양 1척과 방답 1, 순천 1척과 영(전라 좌수영) 1척은 구멍이 나서 깨졌다衝破. 해가 저물기 전에 소진포에 도착했다. 물을 길었다. 밤을 지냈다. 이날 사슴 떼가 동쪽과 서쪽으로 달려갔다. 순천 부사(권준)가 노루1(마리) 잡아 보내왔다.

5. 이은상 : 二十(乙巳) 맑다. 새벽에 배를 떼자 동풍이 약간 불더니 적과 교전할 때는 바람이 크게 불어 배들이 서로 맞부딪혀 깨어지게 되는데 거의 배를 제어할 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곧 령하여 호각을 불고 招搖旗를 세워 전쟁을 중지시켜서 여러 배들이 다행히도 크게 상하는데까지 이르지 아니하다. 蘇秦浦(巨濟郡長木面松眞浦里)로 돌아와 밤을 지내다. 이날 사슴떼가 동서로 달아났는데 順天(府使權俊)이 한 마리를 잡아 보내오다.

 

【계사년 2월 21일】

친필본 : 二十一日丙午 陰而大風 李英男李汝恬來見 右水伯元令公 順天光陽亦來見 夕雨作 三更雨止

                (이십일일병오 음이대풍 이영남이여념래견 우수백원영공 순천광양역래견 석우작 삼경우지)

■ 전서본 : 二十一日丙午 陰而大風 李英男,李汝恬來見 右水伯元令公,順天,光陽亦來見夕雨作 三更雨止

1. 이순신 : 상기 원문 참고

2. 노승석 : 21(병오) 흐리고 바람이 크게 불었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와서 만났고 우수사 원령공(元令公, 원균)과 순천 부사, 광양 현감(어영담)도 와서 만났다.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삼경(자정)에 그쳤다.

3. 이민웅외 : 21(병오) 흐리고 큰바람이 불었다. 이영남[소비포권관]과 이여념[사량만호]이 보러 왔다. 우수사[이억기]와 원 영공元令公, 순천부사, 광양현감 등도 보러 왔다. 저녁에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삼경三更[오후 11~오전 1]에 그쳤다.

4. 박종평 : 21[23, 병오] 흐리고 큰바람도 불었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와서 만났다. 또한 우수백(우수사)와 원 영공元令公(원균)과 순천 부사(권준)와 광양 현감(어영담)도 와서 만났다. 저녁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2시에 비가 그쳤다.

5. 이은상 : 二十一(丙午) 흐리고 큰 바람이 불다. 李英男(所非浦)李汝恬(蛇梁)이 와서 보다. 右水使元令公順天 光陽들도 와서 보다. 저녁에 비가 오더니 자정에야 그치다.

 

【계사년 2월 22일】

친필본 : 二十二日丁未 曉雲暗 東風大吹 然討賊事急 發行到沙火郞待風 風似歇 促行到熊川 兩僧將及成義兵 送于將下陸之形 右道諸將船 擇不實送于東邊 亦下陸之狀 倭賊奔遑之際 合戰船直衝 賊勢分力弱 幾爲殲盡 而鉢浦二船 加里浦二船 不令突入 觸掛淺 爲賊所乘 其爲痛憤 憤膽如裂如裂 有頃珍島上船 爲賊所擁 幾不能救 而虞候直入救出 慶尙左衛將及右部將 視而不見 終不回救 其爲無謂不可言 痛憤痛憤 以是詰於水伯 可嘆 今日之憤何可盡說 皆慶尙水伯之致也 張帆還到蘇秦浦宿 牙山蕾芬簡 來于熊川戰所 天只簡亦來

(이십이일정미 효운암 동풍대취 연토적사급 발행도사화랑대풍 풍사헐 촉행도웅천 양승장급성의병 송우장하륙지형 우도제장선 택불실송우동변 역하륙지상 왜적분황지제 합전선직충 적세분력약 기위섬진 이발포이선 가리포이선 불령돌입 촉괘천 위적소승 기위통분 분담여렬여렬 유경진도상선 위적소옹 기불능구 이우후직입구출 경상좌위장급우부장 시이불견 종불회구 기위무위불가언 통분통분 이시힐어수백 가탄 금일지분하가진설 개경상수백지치야 장범환도소진포숙 아산뇌분간 내우웅천전소 천지간역래)

■ 전서본 : 二十二日丁未曉雲暗東風大吹然討賊事急發行到沙火郞待風風似歇促行到熊川兩僧將及成義兵送于將下陸之形右道諸將船不實送于東邊下陸之狀倭賊奔遑之際合戰船直衝賊勢分力弱幾爲殲盡而鉢浦二船加里浦二船不令突入觸掛淺爲賊所乘其爲憤痛憤膽如裂有頃珍島上船爲賊所擁幾不能救而虞候直入救出慶尙左衛將及右部將視而不見終不回救其爲無謂不可言痛憤痛憤今日之憤何可盡說皆慶尙水伯之致也張帆還到蘇秦浦宿。○牙山蕾芬簡來于熊川戰所天只簡亦來

(이십이일정미효운암동풍대취연토적사급발행도사화랑대풍풍사헐촉행도웅천양승장급성의병송우장하륙지형우도제장선부실송우동변하륙지상왜적분황지제합전선직충적세분력약기위섬진이발포이선가리포이선불령돌입촉괘천위적소승기위분통분담여렬유경진도상선위적소옹기불능구이우후직입구출경상좌위장급우부장시이불견종불회구기위무위불가언통분통분금일지분하가진설개경상수백지치야장범환도소진포숙。○아산뇌,분간내우웅천전소천지간역래)

1. 이순신 : 상기 원문 참고

2. 노승석 : 22(정미) 새벽에 구름이 어둡고 동풍이 크게 불었다. 적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므로 출항하여 사화랑(沙火郎)에 가서 바람이 자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그친 듯하기에 길을 재촉하여 웅천에 이르러 두 승장(僧將, 삼혜(三惠)와 의능(義能)과 의병 성응지(成應祉)를 제포(薺浦)로 보내어 장차 육지에 오르려는 것 같이 하고, 우도의 여러 장수들의 배들은 부실한 것을 골라 동쪽으로 보내어 역시 육지에 오르려는 것 같이 하였다. 왜적들이 분주히 우왕좌왕할 때 전선을 모아 곧바로 뚫고 들어가니, 적들은 세력이 나뉘고 힘이 약해져서 거의 다 섬멸되었다. 발포 2선과 가리포(加里浦) 2선이 명령도 안했는데 돌입하다가 얕고 좁은 곳에 걸려 적이 틈을 탄 것은 매우 통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듯했다. 얼마 후 진도(珍島)의 지휘선[上船]이 적에게 포위되어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자, 우후(이몽구)가 바로 들어가 구해 냈다. 경상 좌위장(左衛將)과 우부장(右部將)은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끝내 구하지 않았으니, 그 어이없는 짓을 말로 다할 수 없다. 매우 통분하다. 이 때문에 경상도 수사(원균)를 꾸짖었는데 한탄스럽다. 오늘의 분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모두가 경상도 수사(원균) 때문이다. 돛을 펴고 소진포로 돌아와서 잤다. 아산에서 뇌()와 분()의 편지가 웅천 전쟁터에 왔고, 어머님의 편지도 왔다.

3. 이민웅외 : 22(정미) 새벽에 구름이 끼어 흐리더니 동풍이 크게 불었다. 적을 치는 일이 급하므로 출발하여 사화랑沙火郎에 이르러 바람을 기다렸다. 바람이 조금 자는 듯하므로 다시 재촉하여 웅천에 이르러 두 승장僧將[삼혜三惠와 의능義能]과 성의병成義兵[성응지成應祉]을 제포薺浦로 보내 곧 상륙할 것처럼 했다. 왜적들이 갈팡질팡할 때, 전선을 합하여 바로 찌르니 적들은 세력이 나뉘고 약해져서 거의 모두 섬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포鉢浦 2호선과 가리포加里浦 2호선이 명령도 안 했는데 돌입하다가 그만 얕고 좁은 곳에 걸려서 적들이 배 위로 올라타 습격을 당하게 된 것은 통분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얼마 뒤에 진도 지휘선이 또 적에게 포위되어 하마터면 구할 수 없게 되었는데, 우후가 바로 들어가 구원해 냈다. 경상도의 좌위장左衛將과 우부장右部將은 보고도 못 본 체하며 끝내 돌아서서 구원해 내지 않았으니, 그가 한 짓은 이를 데 없을 정도이다. 참으로 통분 통분했다. (*이 때문에 경상도 수사에게 따져 묻기도 하였는데, 한탄스러웠다.) 오늘의 통분한 것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모두 경상도 수사[원균] 때문이다. 돛을 올리고 소진포蘇秦浦로 돌아와서 잤다. 아산에서 뇌와 분의 편지가 웅천 진영으로 왔다. 어머님의 편지도 왔다.

4. 박종평 : 22[24, 정미] 새벽에 구름이 끼어 어두웠다. 동풍이 크게 불었다. 그러나 적을 무찌를 일이 급했다. 길을 떠났다. 사화랑에 도착했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렸다待風. 바람이 잔잔해질 듯했다. 길을 재촉해 웅천에 도착했다. 두 승병장僧將(삼혜·의능)과 성 의병成義兵(의병장 성응지)을 제포로 보냈다. 장차 육지에 상륙하려는 모습처럼 하게 했다欲將下陸之形. 우도右道의 여러 장수의 배에서 부실한 것을 뽑아 동쪽 편으로 보냈다擇不實送于東邊. 또한 장차 육지에 상륙하려는 모습처럼 하게 했다亦將下陸之狀. 왜적들이 분주히 뛰어다닐 때, 전선이 모여 곧바로 뚫고 들어갔더니倭賊奔遑之際 合戰船直衝, 즉 적의 세력은 나뉘어 힘이 약해졌. 거의 다 죽였다賊勢分力弱 幾爲殲盡. 그런데 발포 2호선(통선장, 발포 군관 이응개)과 가리포加里浦 2호선(통선장, 이경집)이 명령 없이 돌격해 들어가 얕고 좁은 곳에서 얹히고 걸려 적이 올라타게 되었다. 그것이 원통하고 분했다. 분한 마음에 간담이 찢어지고 또 찢어지는 듯했다. 얼마 뒤에 진도 상선上船(지휘선)이 적에게 싸여 거의 구출할 수 없게 되자 우후(이몽구)가 곧바로 들어가 구출했다. 경상 좌위장과 우부장은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끝까지 배를 되돌려 구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원통하고 분했다. 원통하고 분했다. 이 일을 수백(수사 원균)에게 따졌다. 한탄스러웠다. 오늘의 분노를 어찌 다 말하랴. 모두 경상 수백(수사 원균) 때문에 일어난 것이구나. 돛을 펼치고 소진포로 돌아왔다. 묵었다. 아산의 뇌와 분의 편지가 웅천의 싸움터로 왔다. 어머님의 편지도 왔다.

5. 이은상 : 二十二(丁未) 새벽에 구름이 끼더니 동풍이 크게 불다. 그러나 적을 무찌르는 일이 급하므로 출발하여 沙火郎(昌原郡熊川面)에 이르러 바람 멎기를 기다리다. 바람이 조금 자는 듯하므로 다시 재촉하여 熊川에 이르러 두僧將5)成義兵6)薺浦로 보내어 곧 상륙할 것처럼하고 또 右道 여러 장수들의 배도 그 중에서 변변치 못한 것을 골라 동쪽으로 보내어 역시 상륙할 것처럼 꾸미게 했더니 왜적들이 갈팡질팡하는 것이었다. 이 때를 타서 전선을 합하여 바로찌르니 적들은 세력이 나누이고 약해져서 거의 섬멸을 당하게 되었는데 鉢浦 二船加里浦 二船이 명령하지 않는데 돌입하다가 그만 얕은 곳에 걸려서 적들에게 습격을 당하게 된 것은 통분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얼마 뒤에 珍島 上船이 또 적에게 둘러 싸여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었는데 虞候가 바로 들어가 구원해 내었다. 慶尙左衛將右部將은 보고도 못 본척하며 끝까지 돌아서서 구원해 내지 않는 것이었으니 그 어이 없음은 말할 수 없다. 참으로 통분 통분하다. 오늘 통분한 것은 무슨 말로 다하랴. 모두 慶尙水使(元均)때문이다. 돛을 달고 蘇秦浦로 돌아와서 자다. 牙山에서 蕾 芬의 편지가 熊川진중으로 오다. 어머님 편지도 오다.

계사년 2 18 -1593년, 선조 26, 이순신 49

1. 난중일기-친필본이순신, 1592~1598

 원문이미지 및 텍스트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十八日癸卯 晴 早朝行軍 到熊川 賊勢如前 蛇渡僉使 伏兵將差定 領呂島萬戶 鹿島假將 左右別都將 左右突擊將 光陽二船 興陽代將 防踏二船等 伏于松島 使諸船誘引 則賊船十餘隻 蹤後而出 慶尙伏兵五隻 輕追逐之際 伏船突入回擁 多放射 倭人不知其數致死 一級斬首 大挫 終不追後 領諸船 到院浦汲水 乘昏還到永登後洋 經夜沙火郞

(십팔일계묘 청 조조행군 도웅천 적세여전 사도첨사 복병장차정 영려도만호 녹도가장 좌우별도장 좌우돌격장 광양이선 흥양대장 방답이선등 복우송도 사제선유인 칙적선십여척 종후이출 경상복병오척 경추축지제 복선돌입회옹 다방사 왜인부지기수치사 일급참수 대좌 종불추후 영제선 도원포급수 승혼환도영등후양 경야사화랑)

[친필본과 전서본의 차이]

1) 빨간색으로 된 부분들은 전서본에 없는 글자

2) 같은 문장내에 서로 다른 글

) ‘’(친필본) ’(전서본) ) ‘’(친필본) ’(전서본)

) ‘’(친필본) ’(전서본) ) ‘終不追後’(친필본) 更不出抗’(전서본)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2022 원문(p445) 및 번역문(p81)

十八日癸卯, . 早朝行軍, 到熊川, 賊勢如前. 蛇渡僉使, 伏兵將差定, 領呂島萬戶. 鹿島假將.左右別都將.左右突擊將.光陽二船.興陽代將.防踏二船等, 伏于松島, 使諸船誘引, 則賊船十餘隻, 蹤後而出. 慶尙伏兵五隻, 輕發62)追逐之際, 伏船突入回擁, 多數63)放射, 倭人不知其數.64) 一級斬首, 賊徒大挫, 終不追後. 日未暮, 領諸船, 到院浦汲水, 乘昏還到永登後洋, 經夜沙火郞陣.65)

18(계묘) 맑음. 이른 아침에 군사를 움직여 웅천에 이르니, 적의 형세는 여전했다. 사도 첨사(김완)를 복병장으로 임명하여 여도 만호(김인영), 녹도 가장, 좌우별도장, 좌우돌격장, 광양 2, 흥양 대장, 방답 2선 등을 거느리고 송도(松島, 진해 송도)에 매복하게 하고, 모든 배들로 하여금 유인케 하니, 과연 적선 여남은 척이 뒤따라 나왔다. 경상도 복병선 다섯 척이 재빨리 출동하여 뒤를 쫓을 때, 다른 복병선들이 돌진해 들어가 적선을 에워싸고 수없이 발사하니, 왜적으로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다. 한 놈의 목을 베고 났더니 적의 무리가 크게 꺾여 끝내 뒤따라 오지 못하였다. 날이 저물기 전에 여러 배를 거느리고 원포(院浦)29)에 가서 물을 길었다. 어두워져서 영등포 뒷바다로 돌아왔다. 사화랑(沙火郎)30)의 진영에서 밤을 지냈다.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정진술양진석 외태학사, 2023

 원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영인 p156)  번역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2p50)

아래 원문에서 ()는 친필본과 다른글자, (賊倭)는 전서본에만 있는 표시, 번역문에서 ()는 전서본에 없는 내용

十八日癸卯早朝行軍到熊川賊勢如前蛇渡僉使伏兵將差定領呂島萬戶鹿島假將左右別都將左右突擊將光陽二船興陽代將防踏二船等伏于松島使諸船誘引則賊船十餘隻踵後而出慶尙伏兵五隻追逐之際伏船突入回擁 多放射 倭人死者不知其數 賊大挫 更不出抗日暮 還到沙火郞

(십팔일계묘조조행군도웅천적세여전사도첨사복병장차정영려도만호녹도가장좌우별도장좌우돌격장광양이선흥양대장방답이선등복우송도사제선유인칙적선십여척종후이출경상복병오척추축지제복선돌입회옹 다방사 왜인사자부지기수 적대좌 갱불출항 일모 환도사화랑)

18(계묘) 맑음. 이른 아침에 군사를 움직여 웅천熊川에 이르니, 적세는 여전했다. 사도첨사蛇渡僉使[김완]를 복병장伏兵將으로 임명하여 여도만호呂島萬戶, 녹도가장鹿島假將, 좌우별도장左右別都將, 좌우돌격장左右突擊將, 광양2호선, 흥양대장興陽代將, 방답2호선 등을 거느리고 송도松島197)에 복병하게 하고, 모든 배들을 시켜서 꾀어내게 하니 적선 10여 척이 뒤를 따라 나왔다. 경상도 복병선 5척이 날쌔게 먼저 나가 쫓을 적에 다른 복병선이 뛰어 들어가 둘러싸고 수없이 쏘아 대니, 왜적의 죽은 것이 그 수효를 알 수 없었다.(*목을 벤 것이 1급이었다.)198) 적의 기세가 크게 꺾여서 다시는 나와 항전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사화랑沙火郎199)으로 돌아왔다.(*날이 저물기 전에 여러 배들을 거느리고 원포院浦로 가서 물을 길었다. 어두운 틈을 타서 영등포 뒷바다로 돌아왔다. 사화랑 진영에서 밤을 지냈다.)200)

 추가 이충무공전서 원문(한국고전문학DB) 

十八日癸卯早朝行軍到熊川賊勢如前蛇渡僉使伏兵將差定領呂島萬戶鹿島假將左右別都將左右突擊將光陽二船興陽代將防踏二船等伏于松島使諸船誘引則賊船十餘隻踵後而出慶尙伏兵五隻輕先追逐之際伏船突入回擁多般放射  倭人死者不知其數  賊氣大挫 更不出抗  日暮  還到沙火郞

 

4. 난중일기박종평글항아리, 2018 번역문(p98) 

18[20, 계묘] 맑았다. 이른 아침에 군사를 움직였다. 웅천에 도착했다. 적의 형세는 전과 같았다. 사도 첨사(김완)를 복병장伏兵將으로 임시로 임명했다.63) 여도 만호(김인영), 녹도 임시 장수假將(윤사공), 좌별도장左別都將(이설), 좌별도장(이기남)과 좌돌격장左突擊將(거북선장 이언량), 우돌격장左右突擊將,64) 광양 2호선과 흥양 대장, 방답 2호선 등을 송도松島에 매복하게 했다. 여러 배를 시켜 유인했더니, 적선 10여 척이 뒤를 쫓아 나왔다. 경상 복병 5척이 째빨리 쫓아갈 때, 복선伏船(매복해 있던 배)이 돌격해 들어가 둘러싸고, 활을 많이 쏘았다突入回擁 多數放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왜인이 죽었다. 머리 1급을 베자,65) 적의 무리는 사기가 크게 꺾였다一級斬首 賊徒大挫. 끝내는 따라오지 못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여러 배를 이끌고 원포에 도착했다. 물을 길었다.66) 어둠을 타고乘昏 영등 뒷바다로 되돌아왔다. 사화랑沙火郎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5. 국역주해 이충무공전서 상권이은상삼일인쇄주식회사, 1960 원문(p358) 및 번역문(p355)

十八日癸卯早朝行軍到熊川賊勢如前蛇渡僉使伏兵將差定領呂島萬戶鹿島假將左右別都將左右突擊將光陽二船興陽代將防踏二船等伏于松島使諸船誘引則賊船十餘隻踵後而出慶尙伏兵五隻輕先追逐之際伏船突入回擁 多般放射 倭人死者不知其數 賊氣大挫 更不出抗 日暮 還到沙火郞

十八(癸卯) 맑다. 이른 아침에 행군하여 熊川에 이르니 적세는 여전하다. 蛇渡僉使(金浣)伏兵將을 임명하여 呂島萬戶 鹿島假將 左右別都將 左右突擊將 光陽二船 興陽代將 防踏二船 등을 거느리고 松島(昌原郡熊川面)에 복병하게하고, 모든 배들을 시켜서 꾀어 내게 하니 적선 여척이 뒤를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慶尙道 복병선 다섯척이 날싸게 먼저 나가 쫓을 적에 복병선이 뛰어 들어가 둘러 싸고 각종 무기를 모조리 쏘고 놓고하니 왜적의 죽은 것이 그 수효를 알수 없고 적의 기세가 크게 꺾여져 다시는 나와 대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날이 저물어 沙火郎(昌原郡熊川面)으로 돌아오다.

 

-218일 책자별 주석 모음 -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원문 주석

62) () : 전서본에는 ()”자로 되어 있다.

63) () : 전서본에는 ()”자로 되어 있다.

64) 초고본의 왜인부지기수치사(倭人不知其數致死)”는 전서본에는 倭人死者不知其數, <일기초>에는 倭人致死不知其數致死로 교감되어 있다. 여기서는 후자를 따라 바로잡았다.

65) 終不追後···經夜沙火郞陣(종불추후···경야사화랑진) : 전서본에는 更不出抗 日暮 到沙火郞으로 되어 있다.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번역문 주석

29) 원포는 진해시 원포동에 있는 서원포이다. <부산파왜병장>에 “웅천 땅 제포 뒷바다 원포(院浦)”가 보인다.

30) 사화랑(沙火郎)은 경남 진해의 사화랑 봉수 앞쪽에 있는 명동 앞바다이다. 사화랑 봉수가 웅천현(현 진해) 남쪽 6리 지점에 있다고 한다. 《여지도서》 이 앞에 음지도와 우도가 있다.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외 주석

197) 송도松島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연도동 송도.

198) (*) 내용 생략. 원문은 一級斬首이다.

199) 사화랑沙火郎 :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 황포마을. 창원시 진해구 죽곡동에도 사화랑沙火郎이란 지명이 있으나, 여기서는 영등포[거제시 장목면] 뒷바다의 황포마을 포구를 가리킨다.

200) (*) 내용 생략. 원문은 日未暮領諸船到院浦汲水 乘昏還到永登後洋 經夜沙火郞陣이다.

4. 난중일기박종평 주석

63) "임시로 정하고差定"는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하는 '除授'에 상대되는 말이다.

64) 왜적을 무찌른 일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討賊狀(159346)에 따르면. 좌별도장은 이순신의 군관 이설, 우별도장은 이순신의 군관 이기남, 좌돌격장은 거북선장龜船將(귀선장) 이언량이었다. 18일 이설과 이언량 등은 적선 3척을 끝까지 쫓아가 3척에 탄 100여 명의 적을 거의 다 사살했다고 한다.

65) 「왜적을 무찌른 일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에 따르면, “금빛 투구金冑와 붉은 갑옷紅甲을 입은 자가 크게 외치며 노질을 재촉했는데, 역시 피령전에 맞자 곧바로 배 안에 엎어졌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66) 물을 운반할 때는 양피 주머니나 대나무 통, 큰 호리병박을 사용하면 용기가 가벼워 편리했다(국사편찬위원회 편,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두산동아, 2006, 79쪽).

 

 특이사항

1. 박종평 번역문 오타 (박종평 주석 64) 참고)

좌별도장左別都將(이설), 별도장(이기남) > 좌별도장左別都將(이설), 별도장(이기남)

2. 이날의 전투는 웅천 출전이후 지휘관급 왜장을 죽이는 등 나름 전과를 올린 날이다.

 

계사년 2 19  -1593년, 선조 26, 이순신 49

1. 난중일기-친필본이순신, 1592~1598

 임진일기(원문이미지 및 텍스트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十九日甲辰 晴 西風大作 不能放船 因留不發 送筆墨于南海 夕南海來 高汝友 李孝可亦來見 因陣沙火郞

(십구일갑진 청 서풍대작 불능방선 인류불발 송필묵우남해 석남해래 고여우 이효가역래견 인진사화랑)

[친필본과 전서본의 차이]

1) 빨간색으로 된 부분들은 전서본에 없는 글자

2) 같은 문장내에 서로 다른 글

) ‘因留不發’(친필본) 仍陣沙火郞’(전서본) ) ‘’(친필본) ’(전서본)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2022  원문(p445) 및 번역문(p81)

十九日甲辰, . 西風大作, 不能放船, 因留不發. 送筆墨于南海, 夕南海來謝. 高汝友.李孝可亦來見, 因陣沙火郞.66)

19(갑진) 맑음.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띄우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출발하지 않았다. 남해 현령(기효근)에게 붓과 먹을 보냈더니 저녁에 남해 현령이 와서 사례하였다. 고여우(高汝友)31)와 이효가(李孝可)32)도 와서 만났다. 그대로 사화랑에 진을 치고 있었다.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정진술양진석 외태학사, 2023 

 원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영인 p156)  번역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2p51)

아래 원문에서 ()는 친필본과 다른글자, (賊倭)는 전서본에만 있는 표시, 번역문에서 ()는 전서본에 없는 내용

十九日甲辰西風大作不能放船仍陣沙火郞。○南海來高汝友李孝可亦來見

(십구일갑진서풍대작불능방선잉진사화랑。○남해래고여우이효가역래견)

19(갑진) 맑음.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띄울 수 없었다. 그대로 사화랑에 진을 치고 있었다.(*남해현령에게 붓과 먹을 보냈더니, 저녁에 그가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201) 남해 현령이 보러 오고, 고여우高汝友와 이효가李孝可도 보러 왔었다.

 추가 이충무공전서 원문(한국고전문학DB)  

十九日甲辰西風大作不能放船仍陣沙火郞。○南海來見高汝友李孝可亦來見

 

4. 난중일기박종평글항아리, 2018 번역문(p99) 

19[21, 갑진] 맑았다. 서풍이 크게 불었다. 배를 띄울 수 없었다. 그대로 머물며 출발하지 않았다. 남해 현령(기효근)에게 붓과 먹을 보냈다.67) 저녁에 남해 현령이 와서 감사 인사를 했다. 고여우高汝友와 이효가李孝可68)도 와서 만났다. 그대로 사화랑의 진에 있었다.

 

5. 국역주해 이충무공전서 상권이은상삼일인쇄주식회사, 1960 원문(p358) 및 번역문(p355)

十九日甲辰西風大作不能放船仍陣沙火郞。○南海來見高汝友李孝可亦來見

十九(甲辰) 맑다.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띄울 수 없어 그대로 沙火郎에 진치다. 南海원이 와서보다. 高汝友李孝可도 와서 보다.

 

- 2 19일 책자별 주석 모음 -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원문 주석

66) 因留不發 ··· 因陣沙火郞(인류불발 ··· 인진사화랑) : 전서본에는 仍陣沙火郞 南海來見 高汝友.李孝可亦來見으로 되어 있다.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번역문 주석

31) 고여우는 계사년에 적량만호로서 조선 수군에게 왔다. 《전서속편》

32) 비변사에서 하난도 대첩에서의 수공자에 대한 포상문제를 거론하는데 이효가(李孝可) 등 13인에게 공로에 맞는 관직을 제수해달라고 청했다. 《선조실록》(1592, 8, 24)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외 주석

201) (*) 내용 생략. 원문은 送筆墨于南海 夕南海來謝이다.

4. 난중일기박종평 주석

67) 붓은 먹과 함께 글씨나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도구다. 붓과 먹, 벼루와 종이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한다. 붓은 재료에 따라 족제비털·양털·사슴털·수달피·토끼털·여우털 등으로 만들었다. 그중 족제비털붓黃毛이 가장 좋다고 한다. 류성룡이 서울에서 살았던 묵사동(지금의 묵정동)은 이순신이 살았던 건천동 근처다. 허균이 자신의 동네, 즉 건천동의 인물로 이순신과 류성룡, 원균, 자신의 형 허봉을 언급했는데, 이는 허균 시대에는 묵사동까지도 건천동으로 크게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묵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남산에 있던 절, '묵사墨寺'에서 유래했다. 한 승려가 호구지책으로 먹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었다고 해서 그 절을 '먹절', 즉 '묵사'라고 했고, 그 때문에 묵사동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이 먹절에서 먹을 만들어 팔자, 아랫동네에서는 붓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붓을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붓골’이라 불리기 시작했고, 8·15 광복 후 ‘필동筆洞’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68) 이효가는 「선무원종공신녹권」에서는 正으로 나오고, 선무원종공신 2등이다.

 

 특이사항

1. 박종평 주석 67) 오타

족제비털·양털·사슴털·수달피·토끼털·여우털 ㅡ> 족제비털·양털·사슴털·수달피·토끼털·여우털

 

 

계사년 2 20 -1593년, 선조 26, 이순신 49

1. 난중일기-친필본이순신, 1592~1598

 원문이미지 및 텍스트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二十日乙巳 晴 曉發船 東風暫至 (自午)與賊交鋒 則大風輒發 各船自相觸破 幾不能制船 卽令角立 招搖止戰 諸幸賴 不至重傷 然興陽一隻防踏一隻順天一隻營一隻衝破 日未暮 到蘇秦浦 汲水經夜 是日鹿群走東西 順天捉一送來(이십일을사 청 효발선 동풍잠지 (자오)여적교봉 칙대풍첩발 각선자상촉파 기불능제선 즉령각립 초요지전 제행뢰 불지중상 연흥양일척방답일척순천일척영일척충파 일미모 도소진포 급수경야 시일록군주동서 순천착일송래)

[친필본과 전서본의 차이]

1) 빨간색으로 된 부분들은 전서본에 없는 글자

2) 같은 문장내에 서로 다른 글 : ‘’(친필본) 鹿’(전서본)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2022 원문(p445) 및 번역문(p81)

二十日乙巳, . 曉發船, 東風暫至, 自午與賊交鋒, 則大風輒發. 各船自相觸破, 幾不能制船, 卽令角立, 招搖止戰, 67)幸賴不至重傷. 然興陽一隻防踏一隻順天一隻營一隻衝破. 日未暮, 到蘇秦浦, 汲水經夜.68) 是日, 鹿群走東西, 順天捉一獐69)送來.

20(을사) 맑음. 새벽에 배가 출항하자 동풍이 잠깐 불더니, 적과 교전할 때에는 큰 바람이 갑자기 불었다. 각 배들이 서로 부딪쳐 파손되어서 거의 배를 제어할 수 없었다. 즉시 나팔()33)을 불고 초요기(招搖旗)34)로 싸움을 중지시키니, 여러 배들이 다행히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양의 1, 방답의 1, 순천의 1, 본영의 1척이 부딪쳐 깨졌다. 날이 저물기 전에 소진포로 가서 물을 긷고 밤을 지냈다. 이 날 사슴 떼가 동서로 달려가는데, 순천 부사(권준)1마리35)를 잡아 보냈다.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정진술양진석 외태학사, 2023

 원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영인 p157)  번역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2p51)

아래 원문에서 ()는 친필본과 다른글자, (賊倭)는 전서본에만 있는 표시, 번역문에서 ()는 전서본에 없는 내용

二十日乙巳曉發船東風暫至與賊交鋒則大風輒發各船自相觸破幾不能制船卽令角立招搖止戰幸賴不至重傷到蘇秦浦經夜。○是日鹿羣走東西順天捉一鹿送來

(이십일을사효발선동풍잠지여적교봉칙대풍첩발각선자상촉파기불능제선즉령각립초요지전행뢰부지중상도소진포경야。○시일녹군주동서순천착일송래)

20(을사) 맑음. 새벽에 배를 띄우자 동풍이 잠시 불더니, 적과 교전할 때는 큰 바람이 갑자기 불어 배들이 서로 맞부딪쳐 깨지게 되었는데 거의 배를 제어할 수 없었다. 곧 호령하여 호각을 불고 초요기招搖旗202)를 세워 싸움을 중지시켜서 여러 배들이 다행히도 크게 상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소진포蘇秦浦로 돌아와 밤을 지냈다. (*그러나 흥양 1, 방답 1, 순천 1, 본영 1척이 서로 들이받아 깨졌다. 날이 저물기 전에 소진포에 이르러 물을 긷고 밤을 지냈다.)203) 이날 사슴 떼가 동서로 달려가는데, 순천부사[권준]1마리를 잡아 보내왔다.

 추가 이충무공전서 원문(한국고전문학DB) 

二十日乙巳曉發船東風暫至與賊交鋒則大風輒發各船自相觸破幾不能制船卽令角立招搖止戰諸船幸賴不至重傷還到蘇秦浦經夜。○是日鹿羣走東西順天捉一鹿送來

 

4. 난중일기박종평글항아리, 2018 번역문(p100) 

20[22, 을사] 맑았다. 새벽에 배를 출발했다. 동풍이 잠시 불었다. 낮부터 적과 서로 싸웠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불었다. 각 배가 서로 부딪쳐 깨질觸破 지경이었다. 배를 조종할 수도 없었다. 즉시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의) (소라)을 불게 하고, (장수들을 불러모으는 신호로) 초요招搖(초요기)69)를 세우게 해 싸움을 멈추게 했다令角立招搖止戰.70) 모두들 다행히도 심하게 파손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양 1척과 방답 1, 순천 1척과 영(전라 좌수영) 1척은 구멍이 나서 깨졌다衝破. 해가 저물기 전에 소진포에 도착했다. 물을 길었다. 밤을 지냈다. 이날 사슴 떼가 동쪽과 서쪽으로 달려갔다. 순천 부사(권준)가 노루71) 1(마리) 잡아 보내왔다.

 

5. 국역주해 이충무공전서 상권이은상삼일인쇄주식회사, 1960 원문(p358) 및 번역문(p355)

二十日乙巳曉發船東風暫至與賊交鋒則大風輒發各船自相觸破幾不能制船卽令角立招搖止戰諸船幸賴不至重傷還到蘇秦浦經夜。○是日鹿羣走東西順天捉一鹿送來

二十(乙巳) 맑다. 새벽에 배를 떼자 동풍이 약간 불더니 적과 교전할 때는 바람이 크게 불어 배들이 서로 맞부딪혀 깨어지게 되는데 거의 배를 제어할 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곧 령하여 호각을 불고 招搖旗를 세워 전쟁을 중지시켜서 여러 배들이 다행히도 크게 상하는데까지 이르지 아니하다. 蘇秦浦(巨濟郡長木面松眞浦里)로 돌아와 밤을 지내다. 이날 사슴떼가 동서로 달아났는데 順天(府使權俊)이 한 마리를 잡아 보내오다.

 

-220일 책자별 주석 모음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원문 주석

67) () : 전서본에는 제선(諸船)”으로 되어 있다.

68) 到蘇秦浦 汲水經夜(도소진포급수경야) : 전서본에는 還到蘇秦浦經夜로 되어 있다.

69) () : ‘노루 장()’자는 사슴을 세는 양사로 봐야 한다. 전서본에는 이 글자가 鹿자로 되어 있고, 홍기문은 한 마리로 해석했다.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번역문 주석

33) 각(角)은 나팔의 일종으로 보통 대각(大角)이라고 한다. 《광운(廣韻》 이를 분류하면, 은(銀)이나 나무로 만드는 대각, 조금 작은 중각(中角), 황동이나 우각으로 만드는 소각(小角)이 있다. 《국조오례》<군례> 보통 야간에 중군은 대각을 불고, 좌군은 중각을 불고, 우군은 소각을 분다. 《오례의》<취각령> 이순신은 일본군의 야습을 경계하기 위해 영각(令角, 대각)을 불게 하여 변란에 대비하였다.(유성룡, 《진사록》)

34) 초요기는 전쟁이나 행군할 때 대장이 장수들을 지휘하는 데 쓰던 군기이다. 기의 청색 바탕에 초요(招搖, 7번째 북두성(搖光))를 그렸는데, 좌우에 백색의 화염을 그렸다. 《예기》<곡례>상에, “中軍은 招搖를 세운다.”고 했는데, 초요가 북두성이다. 주로 장수를 부를 때 사용하는데 좌우의 대장이 각각 소지한다. 왼쪽은 청색 바탕이고 오른쪽은 백색 바탕이다. 《국조오례》<군례·초요기>

35) 일장(一獐, 한 마리)노루 장()’자는 사슴을 세는 양사이다. 전서본에는 이 글자가 鹿자로 되어 있고, 홍기문은 한 마리로 해석했다.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외 주석

202) 초요기招搖旗 : 군기의 한 가지로, 대장이 장수들을 부르고 지휘하고 호령하는 기이다.

203) (*) 내용 생략 : 원문은 然興陽一隻 防踏一隻 順天一隻 營一隻衝破 日未暮 到蘇秦浦 汲水經夜이다.

4. 난중일기박종평 주석

69) 원문 “招搖”는 ‘초요기招搖旗’다. 군기의 하나로 대장이 장수를 부르고 지휘하고 호령하는 기의 하나다.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고, 대장의 직품에 따라 크기나 색깔이 다르다.

70)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의) 각(소라)을 불게 하고, (장수들을 불러모으는 신호로) 초요(초요기)를 세우게 해 싸움을 멈추게 했다"는 신호 방법을 보여준다. 문종의 『신진법新陣法』에는 각종 신호 수단과 방법이 나온다. 대장은 大標旗, 龍大旗, 5색의 大麾, 大招搖旗, 大角·小角으로 위장을 지휘한다. 기를 사용한 신호 방법은 점點(땅에 대지 않고 다시 일으키는 동작), 지指(땅까지 대었다가 다시 일으키는 동작), 휘揮(휘두르는 동작) 등이 있고, 휘麾의 경우는 점·지·휘·언偃(누인 상태) · 거擧(들어 올린 상태)가 있다. 초요기를 사용하는 신호에는 언과 입立(세운 상태로 장수들을 불러모으는 신호)이 있다. 각(소라) 신호를 위한 각 종류로는 대각大角과 소각小角이 있고, 소라 신호에는 영令(명령) · 전戰(전투) · 촉促(재촉) 등이 있다. 대각은 영(명령) 신호를 위해 먼저 불어 주목하게 할 때, 촉(빠른 박자로 부는 것) 신호 중에서 진퇴進退 신호를 할 때 사용한다. 소각은 전(전투) 신호를 하거나 촉으로 교전交戰 신호를 할 때 사용한다. 이날 일기의 ‘令角’은 대각을 불어 명령을 내린다는 신호를 먼저 했다는 것이고, ‘立招搖’는 휘하 장수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신호 방법으로 초요기를 세웠다는 의미다.

71) 노루는 유희춘의 『미암일기』에도 자주 언급된다. 『미암일기』에는 멧돼지山猪·돼지·소고기·닭·꿩 등도 언급되고 있으나, 노루와 멧돼지, 꿩고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다. 오희문의 『쇄미록』에도 노루 고기가 많이 언급된다.

 

 특이사항

1. 박종평 번역문 오타

~노루1(마리) 잡아 ~노루1(마리) 잡아

2. 鹿群走東西 順天捉一送來(친필본), 鹿羣走東西 順天捉一鹿送來(전서본)

박종평 선생만 이 부분을 사슴 떼가 동쪽과 서쪽으로 달려갔다. 순천 부사(권준)가 노루1(마리)를 잡아 보내왔다.”鹿을 다르게 번역하였다.

그러나 노승석, 이민웅외, 이은상 선생의 번역처럼 앞부분의 鹿자는 사슴, 뒷부분의 자는 노루가 아니라 한 마리라는 숫자의 개념으로 번역하는게 맞는 것 같다.

사슴떼가 달려가는데 가서 사냥을 했는데 노루 1마리를 잡아 보내왔다?

어색하다. 물론 사슴 사냥을 갔는데 사슴은 못잡고 노루를 잡아 대신 보낼 수도 있긴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뒤를 노루로 번역하는 것은 어색하다.

3. 이 날은 강풍으로 우리 배들이 서로 부딪쳐 파손되는 상황까지 발생하자 싸움을 멈추게 했다고 한다. 봄바람이 얼마나 강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계사년 2 21 -1593년, 선조 26, 이순신 49

1. 난중일기-친필본이순신, 1592~1598

 원문이미지 및 텍스트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二十一日丙午 陰而大風 李英男李汝恬來見 右水伯元令公 順天光陽亦來見 夕雨作 三更雨止

(이십일일병오 음이대풍 이영남이여념래견 우수백원영공 순천광양역래견 석우작 삼경우지)

[친필본과 전서본의 차이] : 없음.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2022 원문(p446) 및 번역문(p82)

二十一日丙午, 陰而大風. 李英男·李汝恬來見, 右水伯元令公·順天光陽亦來見. 夕雨作, 三更雨止.

21(병오) 흐리고 바람이 크게 불었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와서 만났고 우수사 원령공(元令公, 원균)과 순천 부사, 광양 현감(어영담)도 와서 만났다.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삼경(자정)에 그쳤다.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정진술양진석 외태학사, 2023

 원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영인 p157)  번역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2p49)

아래 원문에서 ()는 친필본과 다른글자, (賊倭)는 전서본에만 있는 표시, 번역문에서 ()는 전서본에 없는 내용

二十一日丙午陰而大風李英男李汝恬來見右水伯元令公順天光陽亦來見。○夕雨作三更雨止

(이십일일병오음이대풍이영남이여념래견우수백원영공순천,광양역래견。○석우작삼경우지)

21(병오) 흐리고 큰바람이 불었다. 이영남[소비포권관]과 이여념[사량만호]이 보러 왔다. 우수사[이억기]와 원 영공元令公, 순천부사, 광양현감 등도 보러 왔다. 저녁에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삼경三更[오후 11~오전 1]에 그쳤다.

 추가 이충무공전서 원문(한국고전문학DB) 

二十一日丙午陰而大風李英男李汝恬來見右水伯元令公順天光陽亦來見。○夕雨作三更雨止

 

4. 난중일기박종평글항아리, 2018 번역문(p101) 

21[23, 병오] 흐리고 큰바람도 불었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와서 만났다. 또한 우수백(우수사)와 원 영공元令公(원균)과 순천 부사(권준)와 광양 현감(어영담)도 와서 만났다. 저녁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2시에 비가 그쳤다.

 

5. 국역주해 이충무공전서 상권이은상삼일인쇄주식회사, 1960 원문(p358) 및 번역문(p356)

二十一日丙午陰而大風李英男李汝恬來見右水伯元令公順天光陽亦來見。○夕雨作三更雨止

二十一(丙午) 흐리고 큰 바람이 불다. 李英男(所非浦)李汝恬(蛇梁)이 와서 보다. 右水使元令公順天 光陽들도 와서 보다. 저녁에 비가 오더니 자정에야 그치다.

 

-221일 책자별 주석 모음 - 없음.

 

 특이사항

1. “~右水伯元令公에서 右水伯

노승석, 박종평, 이은상 선생은 우수사 원균으로 번역했고, 이민웅외만 전라우수사 이억기로 번역하고 있다.

 

 

계사년 2 22 -1593년, 선조 26, 이순신 49

1. 난중일기-친필본이순신, 1592~1598

 원문이미지 및 텍스트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二十二日丁未 曉雲暗 東風大吹 然討賊事急 發行到沙火郞待風 風似歇 促行到熊川 兩僧將及成義兵 送于將下陸之形 右道諸將船 擇不實送于東邊 亦下陸之狀 倭賊奔遑之際 合戰船直衝 賊勢分力弱 幾爲殲盡 而鉢浦二船 加里浦二船 不令突入 觸掛淺 爲賊所乘 其爲痛憤 憤膽如裂如裂 有頃珍島上船 爲賊所擁 幾不能救 而虞候直入救出 慶尙左衛將及右部將 視而不見 終不回救 其爲無謂不可言 痛憤痛憤 以是詰於水伯 可嘆 今日之憤何可盡說 皆慶尙水伯之致也 張帆還到蘇秦浦宿 牙山蕾芬簡 來于熊川戰所 天只簡亦來

(이십이일정미 효운암 동풍대취 연토적사급 발행도사화랑대풍 풍사헐 촉행도웅천 양승장급성의병 송우장하륙지형 우도제장선 택불실송우동변 역하륙지상 왜적분황지제 합전선직충 적세분력약 기위섬진 이발포이선 가리포이선 불령돌입 촉괘천 위적소승 기위통분 분담여렬여렬 유경진도상선 위적소옹 기불능구 이우후직입구출 경상좌위장급우부장 시이불견 종불회구 기위무위불가언 통분통분 이시힐어수백 가탄 금일지분하가진설 개경상수백지치야 장범환도소진포숙 아산뇌분간 내우웅천전소 천지간역래)

[친필본과 전서본의 차이]

1) 빨간색으로 된 부분들은 전서본에 없는 글자

2) 같은 문장내에 서로 다른 글

. ‘’(친필본) ’(전서본), . ‘’(친필본) ’(전서본)

. ‘’(친필본) ’(전서본), . ‘’(친필본) ’(전서본), . ‘痛憤’(친필본) 憤痛’(전서본)

 

2.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2022 원문(p446) 및 번역문(p82)

二十二日丁未, 曉雲暗, 東風大吹. 然討賊事急, 發行到沙火郞待風. 風似歇, 促行到熊川, 兩僧將及成義兵, 送于濟70), 欲將下陸之形. 右道諸將船, 擇不實送于東邊, 亦將71)下陸之狀. 倭賊奔遑之際, 合戰船直衝, 72)賊勢分力弱, 幾爲殲盡, 而鉢浦二船. 加里浦二船, 不令突入, 觸掛淺陜73) 爲賊所乘, 其爲痛憤痛憤, 膽如裂裂. 有頃, 珍島上船, 爲賊所擁, 幾不能救, 而虞候直入救出. 慶尙左衛將74)及右部將, 視而不見, 終不回救, 其爲無謂不可言, 痛憤痛憤! 以是詰於水伯, 可嘆. 今日之憤, 何可盡說! 皆慶尙水伯之致也. 張帆還到蘇秦浦宿. 牙山蕾.芬簡, 來于熊川戰所, 天只簡亦來.

22(정미) 새벽에 구름이 어둡고 동풍이 크게 불었다. 적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므로 출항하여 사화랑(沙火郎)에 가서 바람이 자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그친 듯하기에 길을 재촉하여 웅천에 이르러 두 승장(僧將, 삼혜(三惠)와 의능(義能)과 의병 성응지(成應祉)를 제포(薺浦)로 보내어 장차 육지에 오르려는 것 같이 하고,36) 우도의 여러 장수들의 배들은 부실한 것을 골라 동쪽으로 보내어 역시 육지에 오르려는 것 같이 하였다. 왜적들이 분주히 우왕좌왕할 때 전선을 모아 곧바로 뚫고 들어가니,37) 적들은 세력이 나뉘고 힘이 약해져서 거의 다 섬멸되었다. 발포 2선과 가리포(加里浦) 2선이 명령도 안했는데 돌입하다가 얕고 좁은 곳에 걸려 적이 틈을 탄 것38)은 매우 통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듯했다. 얼마 후 진도(珍島)의 지휘선[上船]이 적에게 포위되어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자, 우후(이몽구)가 바로 들어가 구해 냈다. 경상 좌위장(左衛將)과 우부장(右部將)은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끝내 구하지 않았으니, 그 어이없는 짓을 말로 다할 수 없다. 매우 통분하다. 이 때문에 경상도 수사(원균)를 꾸짖었는데 한탄스럽다. 오늘의 분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모두가 경상도 수사(원균) 때문이다. 돛을 펴고 소진포로 돌아와서 잤다. 아산에서 뇌()39)와 분()40)의 편지가 웅천 전쟁터에 왔고, 어머님의 편지도 왔다.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정진술양진석 외태학사, 2023

 원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영인 p157)  번역문(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2p51)

아래 원문에서 ()는 친필본과 다른글자, (賊倭)는 전서본에만 있는 표시, 번역문에서 ()는 전서본에 없는 내용

二十二日丁未曉雲暗東風大吹然討賊事急發行到沙火郞待風風似歇促行到熊川兩僧將及成義兵送于將下陸之形右道諸將船不實送于東邊下陸之狀倭賊奔遑之際合戰船直衝賊勢分力弱幾爲殲盡而鉢浦二船加里浦二船不令突入觸掛淺爲賊所乘其爲憤痛憤膽如裂有頃珍島上船爲賊所擁幾不能救而虞候直入救出慶尙左衛將及右部將視而不見終不回救其爲無謂不可言痛憤痛憤今日之憤何可盡說皆慶尙水伯之致也張帆還到蘇秦浦宿。○牙山蕾芬簡來于熊川戰所天只簡亦來

(이십이일정미효운암동풍대취연토적사급발행도사화랑대풍풍사헐촉행도웅천양승장급성의병송우장하륙지형우도제장선부실송우동변하륙지상왜적분황지제합전선직충적세분력약기위섬진이발포이선가리포이선불령돌입촉괘천위적소승기위분통분담여렬유경진도상선위적소옹기불능구이우후직입구출경상좌위장급우부장시이불견종불회구기위무위불가언통분통분금일지분하가진설개경상수백지치야장범환도소진포숙。○아산뇌,분간내우웅천전소천지간역래)

22(정미) 새벽에 구름이 끼어 흐리더니 동풍이 크게 불었다. 적을 치는 일이 급하므로 출발하여 사화랑沙火郎에 이르러 바람을 기다렸다. 바람이 조금 자는 듯하므로 다시 재촉하여 웅천에 이르러 두 승장僧將[삼혜三惠와 의능義能]과 성의병成義兵[성응지成應祉]을 제포薺浦로 보내 곧 상륙할 것처럼 했다. 왜적들이 갈팡질팡할 때, 전선을 합하여 바로 찌르니 적들은 세력이 나뉘고 약해져서 거의 모두 섬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포鉢浦 2호선과 가리포加里浦 2호선이 명령도 안 했는데 돌입하다가 그만 얕고 좁은 곳에 걸려서 적들이 배 위로 올라타 습격을 당하게 된 것은 통분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얼마 뒤에 진도 지휘선이 또 적에게 포위되어 하마터면 구할 수 없게 되었는데, 우후가 바로 들어가 구원해 냈다. 경상도의 좌위장左衛將과 우부장右部將은 보고도 못 본 체하며 끝내 돌아서서 구원해 내지 않았으니, 그가 한 짓은 이를 데 없을 정도이다. 참으로 통분 통분했다. (*이 때문에 경상도 수사에게 따져 묻기도 하였는데, 한탄스러웠다.)204) 오늘의 통분한 것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모두 경상도 수사[원균] 때문이다. 돛을 올리고 소진포蘇秦浦로 돌아와서 잤다. 아산에서 뇌205)와 분206)의 편지가 웅천 진영으로 왔다. 어머님의 편지도 왔다.

 추가 이충무공전서 원문(한국고전문학DB) 

二十二日丁未曉雲暗東風大吹然討賊事急發行到沙火郞待風風似歇促行到熊川兩僧將及成義兵送于薺浦爲將下陸之形右道諸將船擇其不實送于東邊亦爲下陸之狀倭賊奔遑之際合戰船直衝賊勢分力弱幾爲殲盡而鉢浦二船加里浦二船不令突入觸掛淺狹爲賊所乘其爲憤痛憤膽如裂有頃珍島上船爲賊所擁幾不能救而虞候直入救出慶尙左衛將及右部將視而不見終不回救其爲無謂不可言痛憤痛憤今日之憤何可盡說皆慶尙水伯之致也張帆還到蘇秦浦宿。○牙山蕾芬簡來于熊川戰所天只簡亦來

 

4. 난중일기박종평글항아리, 2018 번역문(p101) 

22[24, 정미] 새벽에 구름이 끼어 어두웠다. 동풍이 크게 불었다. 그러나 적을 무찌를 일이 급했다. 길을 떠났다. 사화랑에 도착했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렸다待風.72) 바람이 잔잔해질 듯했다. 길을 재촉해 웅천에 도착했다. 두 승병장僧將(삼혜·의능)73)과 성 의병成義兵(의병장 성응지)을 제포74)로 보냈다. 장차 육지에 상륙하려는 모습처럼 하게 했다欲將下陸之形. 우도右道의 여러 장수의 배에서 부실한 것을 뽑아 동쪽 편으로 보냈다擇不實送于東邊. 또한 장차 육지에 상륙하려는 모습처럼 하게 했다亦將下陸之狀. 왜적들이 분주히 뛰어다닐 때, 전선이 모여 곧바로 뚫고 들어갔더니倭賊奔遑之際 合戰船直衝, 즉 적의 세력은 나뉘어 힘이 약해졌. 거의 다 죽였다賊勢分力弱 幾爲殲盡.75) 그런데 발포 2호선(통선장, 발포 군관 이응개)과 가리포加里浦 2호선(통선장, 이경집)이 명령 없이 돌격해 들어가 얕고 좁은 곳에서 얹히고 걸려 적이 올라타게 되었다.76) 그것이 원통하고 분했다. 분한 마음에 간담이 찢어지고 또 찢어지는 듯했다. 얼마 뒤에 진도 상선上船(지휘선)77)이 적에게 싸여 거의 구출할 수 없게 되자 우후(이몽구)가 곧바로 들어가 구출했다. 경상 좌위장78)과 우부장은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끝까지 배를 되돌려 구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원통하고 분했다. 원통하고 분했다. 이 일을 수백(수사 원균)에게 따졌다. 한탄스러웠다. 오늘의 분노를 어찌 다 말하랴. 모두 경상 수백(수사 원균) 때문에 일어난 것이구나. 돛을 펼치고 소진포로 돌아왔다. 묵었다. 아산의 뇌79)와 분80)의 편지가 웅천의 싸움터로 왔다. 어머님의 편지도 왔다.81)

 

5. 국역주해 이충무공전서 상권이은상삼일인쇄주식회사, 1960 원문(p358) 및 번역문(p356)

二十二日丁未曉雲暗東風大吹然討賊事急發行到沙火郞待風風似歇促行到熊川兩僧將及成義兵送于薺浦爲將下陸之形右道諸將船擇其不實送于東邊亦爲下陸之狀倭賊奔遑之際合戰船直衝賊勢分力弱幾爲殲盡而鉢浦二船加里浦二船不令突入觸掛淺狹爲賊所乘其爲憤痛憤膽如裂有頃珍島上船爲賊所擁幾不能救而虞候直入救出慶尙左衛將及右部將視而不見終不回救其爲無謂不可言痛憤痛憤今日之憤何可盡說皆慶尙水伯之致也張帆還到蘇秦浦宿。○牙山蕾芬簡來于熊川戰所天只簡亦來

二十二(丁未) 새벽에 구름이 끼더니 동풍이 크게 불다. 그러나 적을 무찌르는 일이 급하므로 출발하여 沙火郎(昌原郡熊川面)에 이르러 바람 멎기를 기다리다. 바람이 조금 자는 듯하므로 다시 재촉하여 熊川에 이르러 두僧將5)成義兵6)薺浦로 보내어 곧 상륙할 것처럼하고 또 右道 여러 장수들의 배도 그 중에서 변변치 못한 것을 골라 동쪽으로 보내어 역시 상륙할 것처럼 꾸미게 했더니 왜적들이 갈팡질팡하는 것이었다. 이 때를 타서 전선을 합하여 바로찌르니 적들은 세력이 나누이고 약해져서 거의 섬멸을 당하게 되었는데 鉢浦 二船加里浦 二船이 명령하지 않는데 돌입하다가 그만 얕은 곳에 걸려서 적들에게 습격을 당하게 된 것은 통분하여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얼마 뒤에 珍島 上船이 또 적에게 둘러 싸여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었는데 虞候가 바로 들어가 구원해 내었다. 慶尙左衛將右部將은 보고도 못 본척하며 끝까지 돌아서서 구원해 내지 않는 것이었으니 그 어이 없음은 말할 수 없다. 참으로 통분 통분하다. 오늘 통분한 것은 무슨 말로 다하랴. 모두 慶尙水使(元均)때문이다. 돛을 달고 蘇秦浦로 돌아와서 자다. 牙山에서 蕾 芬의 편지가 熊川진중으로 오다. 어머님 편지도 오다.

 

-222일 책자별 주석 모음 - 

2.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원문 주석

70) () : 초고본의 ()”자를 ()”자로 바로 잡았다. 전서본에는 ()”자로 되어 있다. 만기요람(萬機要覽)<주사·경상우수영>조에 제포(薺浦)”로 표기되어 있다.

71) () : 전서본에는 ()”자로 되어 있다.

72) <일기초>에는 여기에 ()”자가 있다.

73) () : 전서본에는 ()”자로 되어 있다.

74) 慶尙左衛將(경상좌위장) : <일기초>에는 慶尙左翊將으로 되어 있다.

2.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번역문 주석

36) 위의 3명을 출동시킨 내용이 <분송의승파수요해장(分送義僧把守要害狀)>에 나온다. “순천의 삼혜(三惠)를 시호별도장으로, 흥양의 승려 의능을 유격별도장으로 삼아 소집할 때, 순천 보인 성응지 등이 의병을 일으키니, 성응지는 본부의 수비를 맡고 삼혜는 순천에서 진지를 주둔시키고 의능은 본영을 지키게 했으며, ···성응지와 삼혜, 의능 등에게 전선을 나눠주고 출동하게 하였다.”

37) 원문의 직충(直衝)”은 곧장 적진을 뚫고 나간다는 뜻이다. 홍기문도 같은 견해이다.

38) 2월 22일, 좌도 발포 통선장(동포군관) 이응개와 우도 가리포 통선장 이경집 등이 돌진하여 적선을 격파하고 돌아올 때 두 배가 접촉되어 전복되었다고 한다. <토적장> 이때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의 일본수군이 조선수군의 군용품을 탈취했다고 한다.(《협판기(脇坂記)》, 北島萬次 注)

39) 이뇌(李蕾 1561~1648)는 자가 회보(晦甫)이고 찰방을 역임했다. 이순신의 맏형 이희신(李羲臣)의 맏아들이다. 이순신 곁에서 고향소식을 전하는 심부름을 많이 했다.(선무 3등)

40) 이분(李芬 1566~1619)은 호가 묵헌(黙軒)이고 이순신의 맏형 이희신의 둘째 아들이다. 1608년 문과에 장원하였다. 추천으로 왕자사부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성천(成川)으로 피난하여 성천부사 정구(鄭逑)에게 학문을 배우고 1597년 이순신에게 와서 군중 문서를 담당했다. 이순신의 생애에 대한 《이충무공행록》을 지었다.(선무 3등)

3.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외 주석

204) (*) 내용 생략. 원문은 以是詰於水伯, 可嘆.이다.

205) (*) 뇌蕾 : 이순신의 큰형 羲臣의 맏아들.

206) (*) 분芬 : 이순신의 큰형 희신의 둘째 아들.

4. 난중일기박종평 주석

72) "바람이 자기를 기다렸다"의 원문 待風은 이두 표현이다. 홍기문은 "조금 기다리여 바람이 자는 것 같으매", 설의식은 "바람이 자기를 기다리다"로 번역했다.

73) 두 승병장은 ‘삼혜三慧·의능義能’으로 보인다. 「의승병을 나누어 보내 요해처를 경계하고 지키게 한 일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分送義僧把守要害狀」(1593년 1월 26일)에는 "의병장義將 성응지, 승병장 삼혜와 의능"이 나오기 때문이다.

74) "제포"의 원문 濟浦薺浦.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대부분 薺浦로 나온다.

75)「왜적을 무찌른 일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에 따르면, 22일, 이순신은 한편으로는 삼도 수군에서 각각 경완선輕完船(가볍고 튼튼한 배) 5척, 총 15척을 뽑아 돌격시켜 지자·현자총통으로 일본군 배를 부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승병義僧兵과 삼도의 날쌔고 용감한 사부夫 등을 배 10여 척에 태워 동쪽으로 안골포安骨浦, 서쪽으로 제포에 상륙해 공격하게 했다.

76)「왜적을 무찌른 일을 임금님께 보고하는 장계」에 따르면, 전라 좌도左道의 발포 통선장統船將(이응개)과 전라 우도의 가리포 통선장(이경집)이 돌격했다가 돌아올 때 서로 부딪치고,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통선統船 1척이 전복된 죄에 대해 임금님의 처벌을 기다리는 장계 統船一艘傾覆後待罪狀」(1593년 4월 6일)에도 이 사고가 나온다. 그러나 전복된 배가 발포 통선인지 가리포 통선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77) “上船”은 수사, 고을 수령급이 타던 배였던 듯하다. 이순신이 탔던 배도 상선이라고 나온다. 『난중일기』 1595년 3월 17일에는 배에서 불이나 충청 수사 이계훈은 물에 빠져 죽고, 군관과 격군 140여 명이 불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충청 수사의 배라는 점에서 수사가 타던 상선으로 볼 수 있고, 수사가 탔던 상선은 140명 이상이 승선했음을 알 수 있다. 『선조실록』 선조 30년(1597) 2월 25일에는 노직盧稷이 부체찰사 한효순이 말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효순에 따르면. "배(병선) 한 척에 사수와 격군이 1백36인명"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선조실록』 선조 30년(1597) 3월 18일에는 경상 감사 이용순의 장계가 인용되어 있는데, 고성 현령이 고성 판옥선에 사부, 격군, 등 하솔 140여 명을 싣고 바다로 나갔다가 3월 9일 조라포 경계 고다포에서 왜적과 접전하다가 고성현령이 전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선조실록』 선조 39년(1606) 11월 12일에는 통제사 이운룡이 대마도에 보내는 사신선의 상선과 관련해 "상사·부사가 타고 갈 배는 체제가 상당히 커서 좌우 노 각각 9개에 노 하나당 격군 3명씩 배정한다(54명)"는 내용이 나온다. 격군 교대자를 고려하면 통신사 상선의 격군은 108명이 된다. 김재근의 『거북선』(정우사, 1997, 104~106쪽)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 판옥선은 크기에 따라 세 종류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통영 상선統營上船으로 통제사가 타던 조선 함대의 기함, 다음 크기는 각 도의 수사나 그들과 동격인 사령관들이 탑승하는 것이다. 가장 작은 것은 각 읍진의 수령이나 첨사, 만호 등이 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례와 상선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각 도의 수사는 지휘자로 일반 장수들이 탔던 배보다는 큰 배였던 듯하다.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의 여러 기록을 분석해보면, 판옥선의 승선 인원은 최소 130명이었던 듯하다. 또한 조선 후기에 남태량南泰良(1695~1752)의 『대동휘찬』 「전선」에는 『비국등록備局謄錄』을 인용한 전선의 인원 현황이 나오는데, “각 포 전선의 노는 좌우 합쳐 20자루, 1자루에 각 4명, 사공沙工과 무상舞上은 각 1명으로 합쳐서 82명이고, 사포수射砲手는 40명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전선」의 기록에 따르면 전선 1척당 총 122명이 정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78) "좌위장左衛將"충무공유사에서는 "左翊將"으로 나온다.

79) 이뇌李蕾는 이순신의 맏형 이희신의 장남이다. 형제로는 분·번·완이 있다.

80) 이분李芬(1566~1619)은 이순신의 맏형 이희신의 둘째 아들이다. 형제로는 형인 뇌, 동생인 번과 완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막하에서 행정과 명나라 군대 접대를 담당했다. 1608년 문과에 급제했다. 형조 좌랑, 병조 좌랑, 비변사 낭청 등을 역임했다. 이순신에 대한 최초의 전기인 『이충무공행록』을 저술했다.

81) 이분의 『이충무공행록』에는 2월 22일의 전투가 나온다. "22일, 공은 이억기와 여러 장수와 의논하며 말하기를, '적들이 우리 군대의 위세를 무서워해 나오지 않으니 며칠을 서로 싸웠어도 반드시 다 죽일 수 없다. 만약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공격한다면 적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고 했다. 즉시 삼도의 수군에 명령해 각각 가볍고 완전한 배輕完船 블능 5척을 뽑아서 적선이 열 지어 정박해 있는 곳으로 돌격해 싸우게 했다.“

5.이충무공전서이은상 주석

5) 兩僧將ㅡ三慧와 義能을 이름이다. 狀啓 「封進僧將僞帖狀」을 참고하라.

6) 成義ㅡ成應祉를 이름이다. 狀啓 「請賞義兵諸將狀」을 참고하라.

 

 특이사항

1. 박종평 선생 주석 77) (,) 삭제 할 것.

판옥선에 사부, 격군, 등 하솔 140여 ㅡ> 판옥선에 사부, 군 등 하솔 140

2.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돋보이는 작전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알수 있는 중요한 일기다.

또한 발포와 가리포의 전선이 명령없이 공격하다가 수심이 낮은곳에 걸려 위험에 빠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그리고 그런 상황을 보고도 못 본척하며 구하지 않은 경상 좌위장과 우부장을 통해 그들의 직속 상관인 원균에 대한 원망과 갈등 관계 등이 보인다.

마지막에는 술만 많이 마시는줄 알았던 우후 이몽구가 위험에 빠진 진도 상선을 구출해 나오는 등 이 날의 일기속에는 조선 수군내의 갈등관계와 공적을 위한 돌발행동까지 다양한 상황들이 적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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