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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이야기

[스크랩] 해사 6기 차윤, 노(老) 선배에게 배우는 충무공 정신 (2)

작성자무등산자락길잡이협동조합|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해사 6기 차윤, 노(老) 선배에게 배우는 충무공 정신 (2)

 

지난 6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

 

아흔다섯의 대선배 차윤 회장님은 이미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연로하신 분이니 우리가 댁 가까이 찾아뵙기로 하고 조금 일찍 도착했건만, 선배님은 우리의 기다림마저 허락하지 않으셨다. 도착을 알리려던 우리는 오히려 머쓱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부터 선배님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작은 시집 『다시 찾은 그날들』을 받아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아흔다섯의 고령이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해군사관학교 1학년, 겨우 열여덟 살의 생도가 「충무공의 노래」로 군가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더구나 이듬해 열아홉 살의 생도가 충무공 이순신의 일대기를 「충무공 일대가」로 노래했다는 사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주인공을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나는 솔직히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놀라운 문학적 감수성의 뿌리에는 깊은 인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중앙중학교를 다니다 마산중학교로 전학 간 차윤 학생의 국어 선생님은 다름 아닌 「꽃」의 시인 김춘수 선생이었다. 김춘수 선생의 권유로 경상남도 교육청이 주최한 「충무공 이순신 탄신 기념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 1등에 입상했고, 그 일을 계기로 평생 충무공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하셨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해군 장교로, 6·25전쟁 당시에는 연락장교로 복무하셨고, 전역 후에는 국가 공무원으로, 또 세계를 누비는 국제인으로 살아오셨다. 그 긴 세월 동안 충무공의 정신은 언제나 삶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직접 만나 뵌 차 회장님은 그야말로 충무공 정신이 몸에 밴 분이었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지난 6월 5일부터 12일까지 강릉에서 열린 「2026 강릉 세계마스터즈탁구선수권대회」에는 전 세계 85개국에서 40세 이상 아마추어 선수 3천여 명이 참가했다. 차 회장님은 대한민국 대표선수로 90대 부문에 출전하여 무려 16명의 선수들과 겨룬 끝에 준우승을 차지하셨다고 했다.

 

결승전 상대는 독일의 91세 선수였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마지막 한 점까지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함께 찾아뵌 80대 초반과 70대 후반의 우리는 그저 부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차 회장님께서 들려주신 이순신 공부의 동기,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아흔 평생을 품위와 열정으로 살아오신 삶의 여정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오래도록 건강하시어 후학들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일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해군본부 문화홍보과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해군의 대선배이신 해사 6기 차윤 선배님을 만나고 있으며, 선배님께서 해군에 전하고 싶어 하시는 몇 가지 말씀을 대신 전달해 드렸다.

 

그러자 문화홍보과에서는 차 선배님께 월간 『해군』에 실을 원고 한 편을 부탁드려 달라고 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글을…”

 

선배님은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하루 만인 다음 날 밤, 원고는 이미 이메일로 도착해 있었다. 역시 충무공 정신을 가슴에 품은 분의 행동력은 남달랐다.

 

메일을 보내주신 분은 차 회장님의 따님이었다. 아흔다섯 아버님의 손글씨 원고를 미국 유학을 다녀온 따님께서 정성껏 옮겨 적는 과정에서 익숙하지 않은 한글 표현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아침 일찍 차 회장님께 직접 전화를 드려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수정했다.

 

그리고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이 귀한 충무공 정신을 후배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해군본부 문화홍보과와 월간 『해군』 편집장에게 연락해 원고를 전달했다. 차 회장님의 충무공 사랑과 삶의 정신이 더 많은 해군 후배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부탁드렸다.

 

언제쯤 활자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먼저 이배사 가족 여러분께 그 뜻깊은 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나라를 사랑하고, 충무공을 사랑하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

 

광나루역에서 헤어진 뒤에도 한동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충무공을 이야기하며 눈빛을 빛내시던 그 모습.

우리는 그날 한 분의 노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평생 충무공 정신을 삶으로 실천해 온 살아 있는 역사를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충무공 정신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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