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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이야기

[스크랩] 통영 세병관 현판

작성자무등산자락길잡이협동조합|작성시간26.06.21|조회수1 목록 댓글 0

오늘은 세병관 현판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탈에 보니 이렇게 써 있군요.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客舍)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중략)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徐有大)가 쓴 글씨이다.>

 

안내판에 위와같이 쓰여있는 모양인데, 만하세병( (挽河洗兵) )이라는 네글자는 두보의 시에서 유래되었다는 '두보'라는 말이 빠져 아쉽네요.

물론 이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되겠지만, 挽河洗兵(만하세병)을 더 깊이 알아보았습니다.

두보의 시에는 네글자 묶음으로 된 것이 아니라, 洗兵馬라는 제목의 시 맨 끝부분에 아래와 같이 두 구절로 나옵니다.

 

安得壯士挽天河(안득장사만천하) 

淨洗甲兵長不用(정세갑병장불용)

어찌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옷과 무기를 깨끗이 씻어 영원히 쓰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참고로 이 시는 759년 두보 48세 때 아주아주 궁핍하게 살던 시기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두보의 연보를 보면 당시 두보는 기근으로 華州(화주)에서 벼슬을 버리고 식량을 찾아 진주(秦州), 다시 동곡(同谷)으로 옮겼지요. 더욱 궁핍하여  도토리(밤?)를 주워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12월 촉으로 가서 성도의 완화계사(莞花溪寺)에 우거하게 되던 해였습니다. 755년에 일어난 안록산의 난이 진압되지 못하고 아직 한창인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세병관 현판은 워낙 커서 (말 좀 보테자면) 강구항에서도 보일정도라고 했군요.
과연 세병관의 현판은 크기가 얼마나 될까요?

(洗 씻을 세, 兵 군사 병, 舘(館) 집 관) (兵은 무기, 병사, 전쟁 등 여러 뜻도 있음)

 

현판 테두리 포함 가로, 세로 크기는 6.524 × 2,438

테두리 제외하고 글씨가 적힌 목판 크기는 6,051 × 2,070

더 간단하게 말한다면 6m × 2m 

길이가 성인 남자의 키 보다도 더 길군요. 

전체 건물과의 조화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국가유산 포탈에서 퍼온 사집입니다.

 

끝으로 통제사 서유대는 무관이지만 글씨(특히 大字)도 잘 써서 물운대에 있는 정운공순의비도 썼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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