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에서 배운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자리한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자, 그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성역이다. 전국에는 여수의 충민사, 통영의 충렬사 등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들이 여럿 있지만, 아산 현충사는 장군의 생애와 정신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곳은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던 삶의 터전이다. 숙종 32년인 1706년에 사당이 세워졌고, 이듬해 숙종이 친히 '현충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후 오랜 세월 충무공을 기리는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쇠락의 아픔도 겪었다. 광복 후 국가적인 성역화 사업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니, 현충사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우리 역사와 함께 고난과 회복의 시간을 걸어온 장소이기도 하다.
현충사 경내에는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을 비롯해 장군이 자란 옛집, 무예를 익히던 활터, 붉은 기둥이 위엄을 드러내는 홍살문, 그리고 셋째 아들 이면의 묘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장군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하다.
나는 요즘 이곳에서 '이순신 전문 해설사'라는 다소 거창한 명찰을 가슴에 달고 관람객들을 만난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역사문화해설에 나서지만, 사실은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많다.
봄이면 연둣빛 새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 아래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길을 걸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겨울이면 고요한 설경 속에서 마음을 다잡는다. 현충사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흐르는 충과 효의 정신만은 변함이 없다.
관람객들을 안내하다 보면 역사 이야기를 전하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큰 기쁨일 때가 많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선크림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마이크를 잡고 길을 나선다. 휠체어를 탄 어르신의 손을 잡아드리기도 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분의 걸음을 부축하기도 한다. 어린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며 미래를 생각하고, 손주와 함께 찾은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정신은 거창한 구호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작은 행동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현충사에서 해설을 하다 보면 나 자신도 자연스레 사색에 잠긴다. 아스라이 잊혀져 가는 충효의 가치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가족들과의 시간도 반성하게 된다. 역사를 공부하러 왔다가 결국 삶을 배우고 가는 셈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지만, 현충사에 서 있노라면 그 문장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이어가는 것이 곧 역사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산의 현충사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아직은 설익은 지식에 기대어 충무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역사를 해설하러 나섰다가 삶을 배우고 돌아오는 길.
그래서 현충사는 내게 단순한 근무지가 아니다. 계절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고,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며, 잊고 지냈던 삶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 주는 소중한 배움터다.
오늘도 그 배움터 한가운데서 나는 충무공의 정신을 되새기며 조용히 하루를 걸어간다. 必死則生이요 必生則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