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 1920~1983)
사주첩경’의 저자 자강 이석영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1920년 평안북도 삭주군 삭주면 남평리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한학과 역학에 조예가 깊었던 조부 이양보(李陽甫)로부터 훈도받았다. 1948년 월남해 충북 청주에서 몇년간 살다 그후 서울로 옮겨 1983년 사망하였다. 자강이 본격적으로 명리를 연구하게 된 시기는 1948년 월남한 후에 생계 수단으로 명리를 보면서부터다. ‘사주첩경’ 6권은 1969년에 완성되었다. 1948년부터 대략 20년간의 연구와 실전체험을 정리해 저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근대역술의 빅3라 불리는 자강 이석영은 '사주첩경(四柱捷徑)'(전6권)이라는 명저를 남겼고, 도계 박재완은 무욕담백한 인품을 통해 명리학자의 품격을 끌어올린 인물이었고, 제산 박재현은 좌충우돌과 종횡무진의 삶을 살면서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한편의 드라마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같은 명리학을 하면서도 서로 주특기가 달랐고 인생행보도 달랐다. 팔자가 다르므로 행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자강은 '사주첩경'이라는 명저를 남기고 갔다. 사람이 죽을 무렵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신을 황홀하게 했던 로맨스 건(件)수이고, 다른 하나는 저술한 책이라고 한다. 인생무상을 그나마 위로해 주는 양념인 것이다. 자강은 '사주첩경'이라는 명저를 남기고 감으로써 태어난 보람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사주첩경'은 명리학계의 '동의보감'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주 공부를 하려면 중국의 원전에 매달려야만 하였다. 중국 원전은 한문으로 되어 있어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면 해독하기가 쉽지 않다.
이뿐 아니라 연습문제도 수백년 전의 명. 청대 사례이므로 현장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그런데 '사주첩경'은 이 문제를 모두 극복했다.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어 한문 원전보다 한결 쉽다. 책에 소개되는 연습문제도 60, 70년대를 전후한 한국 사람들의 팔자를 분석한 것이라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등장함으로써 한국이 중국 의학에서 독립할 수 있었듯이, '사주첩경'이 등장함으로써 한국 명리학계는 중국에서 어느 정도 지적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독립을 해야 로열티를 물지 않는다.
자강 이석영은 수 십년 동안 읽은 중국 원전과 바닥에서 갈고닦은 실전 노하우를 소화해 자신의 책에다 대부분 공개하였다. 이 점을 높이 평가받는다.
그의 제자로는 벽천 김석환이 있다.
- 역술야화에서 -
[무공의 붙임]
자강선생 역시 명리학의 태두로 이름이 높다. 자강선생 역시 명(命)에는 밝지만 상(相)과 복(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다.
후학들이 명리학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를 통해 많은 도움을 얻고 있음이 확실하다.
생전의 자강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