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백고좌 법문

송나라 천동굉지(天童宏智, 1091~1157) 스님

작성자미타행자|작성시간26.06.23|조회수29 목록 댓글 3

석현장(페이스 북에서)

1시간 ·

 

송나라 천동굉지(天童宏智, 1091~1157) 스님은 묵조선의 큰스승이다.

천동굉지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은 조선의 천재시인 설잠스님 (김시습)이다.

굉지스님은 묵조선(默照禪)수행을 하는 조동종(曹洞宗)의 고승이다.

 

평생을 천동사(天童寺)에서 오래 머물며 가풍을 떨쳤기에 흔히 '천동굉지스님으로 불린다.

​당시 선종은 화두를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는 임제종의 '간화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때 굉지스님은 조동종 고유의 가풍을 정립하여 고요히 앉아[默] 마음의 본래 밝은 지혜를 비추라[照]는 묵조선을 체계화했다

 

​스님이 지은 묵조명(默照銘)은 이 수행법의 정수를 담은 최고의 지침서로 꼽힌다.

​흔히 역사에서는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과 묵조선의 굉지스님이 격렬하게 논쟁한 라이벌로 기록되어 있다.

대혜스님이 묵조선을 향해 "멍하니 앉아만 있는 고목사회(枯木死灰) 같은 야반선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는 수행의 부작용을 경계하기 위한 법 거량이었을 뿐, 두 분의 개인적 우정과 신뢰는 대단히 깊었다.

 

​굉지스님이 열반에 임박했을 때, 멀리 있던 대혜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내 사후의 일을 맡아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대혜스님은 통곡하며 달려와 굉지스님의 장례를 정성껏 치르고 영결식을 주관했다. 종파와 사상을 초월한 참된 수행자들의 우정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굉지스님은 30여 년 동안 천동사에 머물며 수천 명의 제자를 지도했다. 스님의 명성을 듣고 황실과 사대부들이 엄청난 후원을 보냈다. 사찰의 규모도 커졌지만, 스님 스스로는 언제나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유지했다.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자애로워 성을 내는 법이 없었으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대중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문학적 성취 ㅡ송고백칙(頌古百則)

​굉지스님은 선(禪)의 경지를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과거 조사들의 화두와 일화 100가지를 뽑아 아름다운 찬탄의 시를 붙인 송고백칙(頌古百則)을 남겼는데, 이는 훗날 선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종용록( 從容錄)의 모태가 된다.

 

스님의 글은 함축적이면서도 격조가 높아 당대 문인들에게도 큰 찬사를 받았다.

조선 초기의 천재시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도 천동굉지 스님의 선풍(禪風)과 묵조명의 문장에 깊은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시습은 유학자이면서도 승려(법명 설잠, 雪岑)로 평생을 살았던 인물로, 한국 불교사에서 조동종의 묵조 가풍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실천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시습과 묵조 가풍의 연결고리를 정리해 본다.

 

​굉지 스님의 《송고백칙》에 평석을 달다

​김시습은 천동굉지 스님의 문학적·선적 성취를 대단히 흠모했다. 그는 굉지 스님이 화두에 시를 붙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자신이 직접 해설과 평론을 붙인 오세암 송고평석(五歲庵頌古評釋)을 저술했다.

 

​굉지 스님의 격조 높은 선시(禪詩)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이를 글로 풀어내었던 것이다. 김시습이 굉지 스님의 사상적 핵심인 묵조의 경지를 완벽히 체득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분노하여 책을 불태우고 평생 방랑의 삶을 살았다.김시습에게〈묵조명〉이 말하는 말없이 고요하여 말을 잊는다(默默忘言)는 가르침은 단순한 수행법이 아니라 삶의 구원 이었다.

 

​그는 세상의 불의와 소란스러움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사량분별을 내려놓고, 내면의 고요함 속으로 침잠하는 묵조적 태도를 취했다.

​김시습은 산중에만 갇혀 있는 은둔자가 아니었다. 그는 미친 사람 행세를 하거나 시를 쓰며 전국을 떠돌았지만, 세상의 고통과 모순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이는 〈묵조명〉에서 가장 강조하는 고요함 속에 비춤을 잃지 않는다(묵중실조)는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마음은 텅 비워 고요하되[默], 현실 세계의 사물을 거울처럼 명명백백하게 비추어보고[照] 아파했던 그의 삶 자체가 묵조의 실천이었다.

​그가 경주 금오산에 머물며 지은 금오신화(金鰲新話)에는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 인간과 귀신이 경계 없이 어우러진다.

 

​이러한 환상적이고도 걸림 없는 세계관은 〈묵조명〉의 허공이 넓고 넓어 끝이 없으니, 새들이 서로 무리지어 날아가는구나.라고 했던, 안팎의 경계가 사라진 절대 자유의 경지와 닮아 있다.

김시습에게 천동굉지 스님은 시공간을 뛰어넘은 정신적 스승이었다.

유교와 불교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방랑자 김시습은, 굉지 스님의〈묵조명〉과 묵조 선풍을 통해 내면의 절대적인 자유를 얻었던 것이다.

 

사진 1번 유.불.선의 이치에 통달했으나 비승비속으로 바람처럼 살다간 김시습 초상화 이다.

조동종 묵조선의 영향으로 송고평석.조동오위주해등 주석서를 펴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무영지 |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청산 |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 작성자나마스떼 | 작성시간 26.06.23 new 나무아미타불..._()()()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