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비치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참자아를 깨달으면 모든 어둠과 무지와 슬픔이 저절로 사라진다. 그대가 참자아이다, 그대가 참자아 자체이다."(라마나 마하르쉬)
"20세기 인도의 성자’로 불리우는 슈리 라마나 마하르쉬(Sri Maharshi Maharshi, 1879~1950). 칭찬에 인색했던 오쇼 라즈니쉬는 그를 가리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분”이라고 극찬했고, 달라이 라마는 “그의 영적인 위대성은 수백만 사람들의 길을 비춰 주며 고통받는 인류에게 위안을 준다”고 존경했다. 그가 입적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는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승의 한 사람이며, 아루나찰라에 있는 그의 아쉬람에는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오는 구도자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대성 스님이 최근 번역한 <바가반과 함께 한 나날>(탐구사)을 비롯해 <라마나 마하르쉬와의 대담> <라마나 마하르쉬와 진아지의 길> <무심(無心)-나는 진아다> 등 19권에 달하는 아루나찰라 총서를 잇달아 펴내 수행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불교 특히, 선(禪)과 가장 유사한 가르침을 전한 인도 성자로 평가받고 있는 마하르쉬. 그의 가르침은 어떤 점에서 불교 수행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것일까.
아루나찰라 총서에서 드러난 마하르쉬 설법의 특징은 종교적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진아(眞我)를 직접 체험케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마하르쉬에 따르면, 사람들이 완전무결한 실재로서의 자신의 본성을 망각하고 생사윤회를 거듭하며 고통받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육체나 마음을 자기 자신으로 아는 무지 때문이다. 따라서 이 ‘육체가 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에고를 소멸하면 순수한 존재이자 의식인 ‘진아’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에고는 자신의 밖으로 세계를 투사하여 이 세계와 자신의 육체가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러한 세계는 마치 꿈속에서 자신이 창조한 세계처럼 실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幻)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신의 에고를 소멸하면, 이 물리적 세계 또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소멸되고, 이때 자신의 참된 성품인 진아가 찬연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는 자신이 일체에 두루한 영원한 실재임을 깨닫게 된다.
뛰어난 깨달음의 지혜, 고매한 인격과 가장 단순한 삶의 방식을 통해서 깨달음이란 이상과 실천이 지금도 유효함을 입증했다는 마하르쉬. 간화선의 ‘이뭣고’ 화두와 유사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으로 집약되는 ‘자기탐구’의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길들을 효율적으로 통합했다고 평가받는 그의 가르침에 대해 알아본다.
■진아란 무엇인가?
마하르쉬의 ‘진아’는 단순한 ‘무아’ 개념의 상대어가 아니라 유아와 무아, 비아와 비무아를 모두 넘어선 개념이다. 이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분별할 수도 없는 궁극적인 그 무엇, 즉 해탈 혹은 열반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불성, 본래면목, ‘한 물건’ 등으로 표현했다. 즉 진아, 불성 등의 용어는 해탈의 상태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지, 남방불교 수행자들의 지적처럼 어떤 영원불멸한 실체의 있고 없음 그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용어도 언어를 넘어선 그 궁극의 상태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대성 스님은 이에 대해 금강경식의 어법을 빌려 “진아는 곧 진아가 아니니, 그 이름이 진아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무아(無我)를 깨닫는 길
그러면 어떻게 이 에고(我)를 소멸할 것인가. 마하르쉬에 따르면 에고를 소멸하는 가장 쉽고 직접적인 방법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탐구를 통해서 이 ‘나’라는 생각, 즉 에고의 근원을 추적하여 그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다. 요가(호흡제어와 마음제어), 헌신(신에 대한 숭배), 행위(사회적 봉사) 등 다른 모든 수행은 궁극적으로 이 ‘나는 누구인가?’의 자기탐구에 이르는 방편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의 탐구법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은 다른 모든 생각들을 소멸시킨 뒤에, 화장터의 장작불을 쑤시는 막대기처럼 마지막에는 그 자체도 소멸됩니다. 이때 거기서 진아 깨달음(Self-realization)이 일어납니다.” 마하르쉬는 ‘나는 누구인가?’란 의문을 끊임없이 착파하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따라가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하고 물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생각이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하고 꾸준히 물어야 합니다. 이때 나오는 답은 ‘나에게’일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탐구해 들어가면, 마음은 그 근원으로 돌아가고 일어났던 생각은 가라앉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수행해 나가면 마음은 그 근원에 머무르는 법을 스스로 익히게 됩니다.”
■‘이뭣고’와 다른 점
‘나는 누구인가’란 탐구법은 흔히 간화선의 ‘이뭣고’와 비교된다. ‘이뭣고’ 화두가 오로지 알 수 없는 간절한 의심을 강조하는 반면, ‘나는 누구인가’는 ‘내가 있다’는 각성을 물고 늘어지라고 하는 점이 다르다. 마하르쉬는 (육신의 나가 아닌) ‘내가 있다’에 대한 자각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있다’만이 누구에게나 영속적이며 자명한 경험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내가 있다’만큼 자명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명하다고 하는 것, 즉 감각 기관을 통한 경험은 결코 자명하지 않습니다. 자기(진아)만이 자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탐구를 하여 그 ‘내가 있다’가 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내가 있다’가 실재입니다. ‘나는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는 실재가 아닙니다. ‘내가 있다’가 진리이며, 진아의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깨달음-해탈이란?
마하르쉬는 “속박되어 있는 자기 자신의 성품을 탐구하여 자신의 참된 성품을 깨닫는 것이 해탈”이라고 말한다. 선종에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과 유사하다. 마하르쉬는 ‘우리의 참된 성품은 이미 해탈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해탈은 우리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해탈을 희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이 우리의 참된 성품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새롭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자유로운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속박되어 있다고 상상하면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속박되어 있다는 그릇된 관념을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탈을 바라는 한, 그만큼 오래 우리는 속박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깨달음은 그것을 바라는 조금의 집착이나 분별심이 남아있는 한 성취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일체의 인위적인 조작을 쉬고 무심(無心)해질 때 이미 깨달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선의 가르침과 비슷하다.
■마음과 진아의 차이
마하르쉬에 따르면 마음과 진아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마음이 내부로 향하면 곧 진아요, 외부로 향하면 에고와 모든 세계(현상계)가 된다. 그는 마음과 진아의 관계를 ‘거미와 거미줄의 비유’로 설명한다. “거미가 몸 밖으로 거미줄을 뽑아냈다가 다시 몸 안으로 거두어들이듯이, 마음도 자신의 밖으로 세계를 투사했다가 그것을 다시 자신의 안으로 흡수합니다. 마음이 진아 밖으로 나올 때 세계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세계가 (실재하는 것으로) 보일 때 진아는 나타나지 않고, 진아가 나타날 때(빛날 때) 세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하르쉬는 “우리가 마음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해 들어가면 마음은 진아만 남겨놓고 소멸된다”고 말한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