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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

슈리 푼자 생애

작성자단풍잎|작성시간10.09.08|조회수1,010 목록 댓글 0

슈리 푼자Sri H.W.L. Poonja는 1910년 10월 13일, 지금은 파키스탄 지역인 펀잡 서부 지방인 파이살라바드Faisalabad에서 브라만 계급인 아버지 파르마난다Parmanand와 어머니 야무나 데비Yamuna Devi의 9자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계는 전통적으로 판디트pandit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시골 역장의 길을 택했다. 그 당시의 전통에 따라 그의 어머니는 리얄푸르Lyalpur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어머니의 고향인 작은 마을 무랄리왈리Muraliwali로 가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외삼촌인 라마 티르타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시골 역장이었던 연고로 이동이 잦았기에 그의 첫 6년은 어머니의 고향에서 주로 살았다. 나중에 아버지는 리얄푸르에 집을 장만하였다. 그곳에서 인도와 파카스탄으로 분할된 1947년까지 보냈다.

 

 

슈리 푼자의 부모님들은 독실한 힌두교인이었다. 열렬한 크리슈나Krishna 헌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인도의 성자 중 한사람인 스와미 라마 티르타Swami Rama Tirtha의 누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동네 부인들을 오게 하고는 바잔bhajan을 열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헌가를 듣기 위해 집에 모이곤 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제이 시타람Jai Sitaram'이라는 자파japa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슈리 푼자는 자연적으로 영적 생활에 젖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3-4세 때까지는 외적 모습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 이후부터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서 내면에 흐르는 침묵에 잠기곤 하였다.

 

어릴 때 슈리 푼자는 수행자들의 내면적 삶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그러나 곧잘 그들을 흉내내려 했다. 그의 마을 변두리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회교도의 무리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녁 10시에서 아침 6시까지 의식을 행했다. 음식도 주었다. 그는 밤에는 자주 그들이 있는 곳에서 보내고 낮에는 집에서 명상적인 상태에 몰입하였다. 학교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집에 오지 않는 경우에는 아버지가 읍 변두리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그를 찾아내곤 했다. 그때면 그는 아버지에게 "왜 나를 신과 함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곤 하였다.

 

슈리 푼자의 매우 주요한 사건이 되는, 최초의 놀라운 사마디의 경험은 여덟 살 때 일어났다. 1919년 영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되자, 학생들에게 한 달간의 방학을 주었다. 승전 축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 예정에 없는 방학을 라호르Lahore에 있는 친지를 방문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때는 여름이었고 망고가 제철을 만나 풍성하였다.

 

어느 날 저녁, 모두 라호르의 친척집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가 망고와 우유 및 아몬드가 든 음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군침이 도는 음료였다. 그 음료가 컵 가득한 상태로 그에게 건네졌을 때, 그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받을 수가 없었다. 그것을 원치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때 그는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든 그 경험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크게 놀라고 당황하여 그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려고 했다. 그의 눈은 감은 상태이었으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말들을 들을 수 있었고 모든 일을 선명히 자각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어떤 조그만 신체적 반응이라도 전혀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체험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 어떤 외부 자극에도 반응할 능력이 마비된 것이었다. 이틀 동안 그는 그 평화롭고 희열과 행복이 넘치는 상태에 머물렀다.

 

그가 깨어나자, 열렬한 크리슈나 헌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그것이 마비가 아니라 신비적 경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크리슈나를 보았니?”라고 물었다.“아뇨,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행복했다는 것뿐이에요”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는 그가 무슨 체험을 했는지, 무엇이 그런 강렬하면서도 몸을 마비시키는 행복 속으로 갑자기 끌고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자꾸 묻자 그는 "엄청난 행복, 엄청난 평화, 엄청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그는 그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경험은 아니었다. 경험이 일어나자면 경험하는 자와 경험의 대상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인가가 그를 안으로 당겨버렸다. 여하튼 그 결과는 그 당시에 그가 행복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친척집에서 리얄푸르로 돌아와 다시 학교에 나갔다. 그러나 항상 그의 마음속에는 "나에게 행복을 준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늘 일어났다. 이 행복은 그를 그것 자체에게로 끌어당겼다. 그의 집에는 큰 정원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렌지 나무숲이 있었다. 그는 그 숲 뒤에 앉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궁금하였다. 종이 위에 아기 모습의 크리슈나를 그리고는 그것을 그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행복이 크리슈나와의 접촉에서 왔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크리슈나의 헌신자가 되길 바랬다. 크리슈나를 명상하고 크리슈나의 이름을 부르길 바랬다. 어머니는 그에게 크리슈나 숭배와 관련이 있는 여러 의식과 수행법들을 가르쳤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서 그에게 크리슈나의 형상에 대한 강렬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강렬한 박티bhakti의 결과로 그가 그림에서 본 모습의 크리슈나가 그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시점에 그는 크리슈나를 신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친구로서 사랑하였다. 그러자 크리슈나가 친구의 모습으로 와서 그와 더불어 놀았다. 크리슈나가 올 때면 그의 방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기도 하였다. 크리슈나는 밤에 정기적으로 나타났다. 그와 놀다가 침대에서 자려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에는 이분이 힌두교의 위대한 신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이 신의 희미한 모습이라도 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 생애를 보내고 있는가...

 

크리슈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기도 하였고, 미묘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였다. 그가 그를 보지 않으려고 담요를 뒤집어쓰도 그를 볼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보였다. 잠자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다소 귀찮기도 하여 어머니께 가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어머니께는 관심이 없는 듯 하였다. 그는 그것을 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크리슈나에게 사랑한다고 엽서를 보내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 배달부를 통해 그에게 오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크리슈나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는 학교 공부에 더욱 관심이 없어졌다. 그가 교실에 앉아 있어도 그의 마음과 가슴은 크리슈나의 모습에 젖어 들었다. 희열의 물결이 내면에서 물결칠 때면, 그는 그 자신을 그 경험에 맡겨 외부 세상과의 접촉을 잃곤 하였다. 그는 온밤을 명상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빛의 홍수를 보기도 하였다. 깊은 명상에 들어갈 때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도 불가능하였다.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그는 내적 평화를 즐기며 앉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크리슈나에 대한 박티의 길 이외에도 베단타Vedanta를 배우고 있었다. 그녀는 유명한 베단타 스승을 여럿 두고 있어 그는 어머니와 함께 베단타를 배우는 곳에 참석하곤 하였다. 그때가 아마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그 경전들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지만, 그는 열심히 배웠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베단타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집에서 그에게 배단타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녀는 베단타의 유명한 많은 시행을 암송할 수도 있었다. "나는 브라만이다. 온 우주에 브라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것이다"라고 읊기도 하였다.

 

그가 여덟 살 때 체험한, 매혹적인 망고 음료수를 앞에 두고 일어났던 신비스러운 행복의 경험은 그를 붓다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열 세 살 때쯤에 그는 학교의 역사책에 나오는 붓다를 보았다.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섰던 붓다에게 이끌렸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이 아주 궁금하였다. 이것은 사랑도 아니었다. 사랑에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과 사랑의 대상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그 상태에서 그는 절대적으로 홀로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어떤 단어를 가져와도 그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붓다의 신체적 형상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붓다를 흉내내 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명상을 어떻게 하는 지는 몰랐지만 장미넝쿨 아래에서 그림에서 본 그대로의 명상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나도 저 분처럼 될 수 있어. 내 삶의 방식을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저 분처럼 만들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하고 또 만족했다. 그는 붓다와 더욱 비슷해지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해골처럼 만들기도 하였다. 또 책에는 붓다가 주황색 옷을 입고 발우를 든 채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탁발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몰래 어머니의 사리를 꺼내 주황색으로 물을 들여 그럴듯하게 몸에 두르곤 동네를 다니며 탁발승 흉내를 냈다.

 

 

그의 나이 열 다섯, 매년 열리는 홀리 축제 기간이었다. 한 친구의 어머니가 그에게 파코라Pakora를 두 개 주었다. 그것은 아주 맛이 있었다. 그가 몇 개 더 달라고 하자 놀랍게도 친구의 어머니는 거절했다. 그 속에는 방Bhang이 들어 있었다. 방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식욕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는 잎이었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축제 기간 동안에 음식에 사용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었는데 자꾸 식욕이 당겼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그가 파코라를 먹었다는 것을 알곤 크게 웃었다. 그날 밤은 그의 식구들이 한방에서 잤다. 그런데 한밤중 그가 일어나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당신은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곧 깊은 명상에 들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그날 먹은 방의 효과가 다 가시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새벽 3시에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이상한 알 수 없는 소리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깨우려 했다. 그러나 그는 깊은 명상 속에 잠겨 있었다. 의사를 불러 진단해보니 그 의사는 신체적인 이상은 없다면서 깊은 명상 중에 있다며 축하의 말을 건네주고 갔다. 그날 밤 내내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그는 사마디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종일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을 계속했다. 동네의 한 판디트pandit가 그의 집 앞을 지나가다가, “저 소년은 야주르 베다Yajur Veda의 한 부분을 산스크리트어로 암송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를 알지 못했고 야주르 베다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방은 틀림없이 그의 전생에 남아있던 기억들과 지식들을 그에게 유발시켰음에 틀림없다. 그 이후, 그는 여전히 산스크리트어나 야주르 베다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채 일상 생활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스승들 중 한 분은 슈리 푼자를 소중하게 여겨, 그에게 영적 장서가 풍부한 지방 대여도서관에서 영적 책들을 구해 읽도록 조언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것에 대하여 더 나은 이해를 얻고 싶어서 베단타와 힌두 성자들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그는 요가 바시쉬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책을 사랑하였다. 도서관 직원은 푼자가 보통 수준 이상의 영적 책들을 읽는 것을 걱정하여, 그가 그의 외삼촌이면서 성자인 스와미 라마 티르타의 책을 읽을 때엔 그의 어머니와 심각하게 상의 하기도 하였다. 그이 외삼촌인 스와미 라마 티르타는 말년을 히말라야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짧은 일생을 마쳤다.

 

또 그는 비베카난다의 저서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이 두 스승들은 베단타의 저서들과 가르침들을 서구에 전하는데 모든 힘을 바친 사람들로 인도 안에서도 그들의 영적 성취에 있어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슈리 푼자의 초기의 역할 모델이었다. 슈리 푼자의 외가 가문에서 가장 유명하였던 분은 라마 티르타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자라서 누가 라마 티르타와 같은 인물이 되고 싶은가?"라고 공개적으로 묻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슈리 푼자는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였다. 아들의 대답을 듣고서 그의 어머니는 흐뭇하였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그녀는 크리슈나에게 라마 티르타와 같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크리슈나에게 자주 기도하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형제와 같은 성자를 낳지 않을 바엔, 나는 차라리 돼지 새끼를 낳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슈리 푼자가 영적 삶에 열정적이며 그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부모님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슈리 푼자의 또 다른 특별한 영적 경험은 16세 때에 일어났다. 스와미 다야난다Swami Dayananda는 그들 자신의 문화와 역사에 학생들을 접하게 해야 하겠다는 운동으로 앵글로 베딕 기숙 학교를 세웠다. 슈리 푼자는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매일 아침 학생들은 운동장에 반원을 그리고 앉아 기도를 했다. 이 기도는 항상‘옴 샨티 샨티Om shanti shanti’라는 말로 끝났다. 기도가 끝나면‘옴’자가 인쇄된 깃발이 운동장에 있는 깃대에 올라갔다. 그때 학생들은“다르마dharma에 승리를! 조국 인도에 승리를! 스와미 다야난다에 승리를!”하고 외치며 힘차게 뛰어 올랐다.

 

어느 날 아침, 슈리 푼자는 기도의 끝에 나오는‘옴 샨티 샨티’라는 말에 온 몸이 마비되었다. 그것은 8살 때, 건네주는 망고 음료를 받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감각의 마비상태였다. 그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선명히 감지할 수 있었지만 신체적 반응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다만 큰 내면의 평화와 행복감만이 존재했다. 학생들은 그러한 상태에 들어간 그를 두고 장난으로 장례행사를 치렀다. 그들은 그의 몸을 그들의 어깨 위에 올리고는 화장터로 가져갔다. 그리고 난 뒤 그의 집 침대 위에 놓았다. 그 동안에도 그는 불평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그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의 상태에 있었다.

학교 다닐 때, 그에게는 깊은 신비적 경험인 크리슈나의 비전들과 과격한 독립 운동 및 스포츠 활동들이 함께 존재했다. 그는 인도인의 평균 이상의 키와 발달한 근육을 갖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버팔로도 들어 옮길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우르두Urdu어와 페르시아어에 배우는데 관심을 보였다. 시를 쓰는 데도 강한 흥미를 보였다. 시를 써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 재능은 어미니 가계로부터 왔을 것이다.

 

16세에 그는 대학 입학자격 시험에 합격하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의 동생들을 전부 공부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를 라호르에 있는 대학으로 보낼 여유가 없었다.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을 택해야 했다. 신문의 간지를 보고 교정용 기구와 스포츠 용품을 파는 회사에 입사했다. 그 일자리는 온 인도를 다니는 세일즈맨 자리였다. 그는 또 봄베이의 적을 두고 있는 또 하나의 세일즈 자리를 얻었다. 그곳은 대우가 좋았다. 그래서 가족을 봄베이에 오게 하였다. 가족을 부양하고도 돈이 남아 리얄푸르에 있는 부모님을 도왔다.

 

1930년 푼자가 20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 큰 읍의 역무원이었던 비디야바티Vidyavati라는 브라만 소녀를 찾아냈다. 그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가장이 되었고 나중엔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게 되었다. 그 이후 몇 년간은 그의 민족주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크리슈나에 대한 관심이 서로 경쟁하며 함께 했던 시기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은 인도 병사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슈리 푼자는 1942년 4월 영국이 세운 인도 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군대에서 전술, 군사학 등을 배워 나중에 영국 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내면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 영적 불을 억제할 수 없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자 그는 소위로 임관되었다. 처음의 자리는 병참장교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크리슈나에 대한 그의 집요함과 인간에 대한 강렬한 사랑은 이 군대 기간 중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크리슈나를 생각할 때마다 희열의 물결이 그를 압도하곤 하여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번은 길거리를 걸어갈 때 누가 크리슈나라는 이름을 말하자 그는 길 한가운데서 황홀경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낮에는 장교로서 엄격하게 생활하고 밤에는 문을 잠그고 자신을 크리슈나 고피Krishna gopi로 변형시키곤 했다. 그는 어렸을 때만큼 크리슈나가 자주 나타나주길 원하였다. 이제 크리슈나에 대한 사랑은 더욱 더 증가되어,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크리슈나가 나타나자 그의 열정은 더욱 고조되어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또 그들의 혁명의 계획들이 비실제적임도 깨달았다. 군대는 크리슈나에 전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적당한 곳이 못되었다. 전시엔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사임을 허락을 받았다.


 

그는 리얄푸르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의 아버지의 격노에 부딪쳤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해야할 그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전도 유망한 사관학교 장교직을 포기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군대에서 그는 좋은 직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사관학교 시절의 그의 모든 급우들은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군의 요직 대부분을 차지했다.

 

군대를 떠난 뒤 그는 달리 직업을 구할 마음이 없었다. 대신 크리슈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완전하도록 도와 줄 영적 스승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이 기대하는 스승을 찾아다녔다. 단 그 스승은 반드시 그 자신이 신을 본 사람이어서, 그에게 신을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했다. 그는 이 기준을 가지고 인도 전역을 다녔다. 거의 모든 유명한 아쉬람Ashram이나 구루들을 찾아다녔다. 결국, 그는 그에게 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고, 그의 긴 여정은 끝을 맺었다.

 

그후 리얄푸르에 있는 그의 가족에게로 돌아온 뒤의 일이었다. 그의 삶을 변화시킬 한 사두가 그의 집 문 앞에 나타나 음식을 구걸했다. 그는 안으로 사두를 들게 하여 약간의 음식을 제공하고 그의 마음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질문을 하였다. "당신은 저에게 신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만일 못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압니까?”

 

너무나 놀랍게도 사두는 그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예, 나는 당신에게 신을 보여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의 소원은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shi입니다.”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마하리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물었다. 슈리 라마나스라맘Sri Ramanasramam, 띠루반나말라이 Tiruvannamalai에 있는”라고 사두는 말했다. 그는 그 장소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두는 그가 찾아갈 수 있도록 자세하게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마드라스에서 기차를 타세요. 마드라스에 도착하면 에그모어역으로 가세요. 거기서 기차를 타고 빌루푸람으로 가세요. 거기서는 기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거기에서 띠루반나말라이로 가는 기차를 타세요."

 

그는 다소 복잡한 기분이 들었지만 인도에 자신에게 신을 보여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행복해 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 다른 한 명의 스와미Swami를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야 되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분노를 터뜨렸다. “아내와 자식들은 다 어떻게 하고…군대를 그만둔 것도 부족해서...영적인 모험에 미쳐 인도의 끝으로 달려가야만 하는가…”

 

얼마 안되어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자기를 위해 있기라도 한 듯 마드라스에서 전직 장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는 채용되었다. 즉 마드라스로 가는 차비뿐만 아니라 한 달간의 시간적 여유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마하리쉬를 만나러 가기 위한 돈과 그의 곁에서 지낼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뜻했다. 푼자의 나이 31세, 1944년이었다. 그는 사두가 일러준 대로 기차를 타고 띠루반나말라이로 갔다. 거기서 약 3km정도를 소달구지를 타고 아쉬람에 도착했다. 이어 그는 그에게 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그 남자를 찾았다. 그런데 건물 창문을 통해서 보니 펀잡의 그의 집에 왔던 바로 그 사두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혐오감이 치밀었다.

 

“이 남자는 사기꾼이다. 펀잡의 나의 집에 나타나서 나에게 띠루반나말라이에 가라고 말하고 난 뒤, 기차를 타고 먼저 와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그는 너무나 화가 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타고 왔던 소달구지를 타고 다시 떠나려 했다. 그때 아쉬람에 거주하는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북쪽에서 오지 않았소? 당신은 북부 사람처럼 보입니다.”
“예, 그렇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푼자가 지금 떠나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말했다.
“당신은 방금 도착했지 않았습니까? 한 이틀쯤 머물다 가시지요?”
그는 그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모두 얘기했다. 그리고는
“이 사람은 온 나라를 다니면서 자신을 선전했습니다. 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신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나를 만나러 왔던 펀잡에선 왜 신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이런 사람을 보는 데 흥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이 잘못 아셨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48년 동안 이 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사람을 잘못 보았거나 아니면 라마나님이 자신의 힘을 통해 몸은 여전히 여기에 있으면서 펀잡에 자신을 나타내신 것일 겁니다. 미국에서 온 한 여인도 여기 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실수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푼자는 미심쩍기도 하였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마하리쉬를 만나 펀잡의 그의 집에서 생긴 일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쉬람에서 점심을 먹은 후, 그는 마하리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혼란된 상태에서 그는 마하리쉬에게 물었다.
“당신은 펀잡의 제 집에 저를 보러 온 분이 아닙니까?”마하리쉬는 말없이 조용히 있었다.
"당신은 저의 집에 와서 제가 여기에 오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여기로 오게 한 사람이 맞습니까?”
마하리쉬는 그의 어떤 질문들에도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쉬람을 방문하게 된 주된 목적을 말했다. “당신은 신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신을 보았다면, 저에게 신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신다면 저의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
“아니요.” 마하리쉬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신을 보여주거나 볼 수 있도록 해 줄 수 없소. 신은 보여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오. 신은 주체요, ‘보는 자’입니다. 보여질 수 있는 대상에 관심을 가지지 마시오. ‘보는 자’가 누구인지 발견하시오.”마하리쉬는 덧붙였다. “당신이 바로 신이오.” 마하리쉬의 말은 마치 밖에서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별개의 신을 찾고 있는 그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마하리쉬의 말은 그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만일 마하리쉬가 그에게 “당신이 바로 당신이 보기를 원하는 신이오”라는 말을 한 직후에 일어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체험이 없었더라면 그는 마하리쉬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을 것이다.

 

마하리쉬는 말이 끝나자 그를 바라보았다. 마하리쉬가 그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을 때, 그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떤 전율할 신경 에너지가 그의 몸을 통과했다. 신경의 끝이 춤을 추며 머리카락은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리곤 내면에서 그의 영적 가슴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육체적인 가슴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자 바탕이었다. 이 가슴속에서 그는 어떤 닫혀진 꽃봉오리를 보고, 느꼈다. 그것은 매우 빛나고 눈부셨다. 그를 바라보는 마하리쉬와 함께, 그리고 그 자신이 내적 침묵 상태에서 그는 이 꽃봉오리가 열리고 꽃을 피움을 느꼈다. 더 정확하게 이 체험을 표현할 순 없지만, 마하리쉬의 현존 아래에서, 그의 응시 아래에서, 그의 가슴은 열리고 꽃이 피었다. 그는 결코 이런 경험을 전에는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것이 일어났을 때 그것은 그를 아주 놀라게 했다.

 

 

그렇지만 그는 마하리쉬의 현존아래 매우 강력한 경험을 하긴 하였지만,“그대가 바로 신이오", "보는 자가 누구인지 발견하시오”라는 마하리쉬의 충고는 강하게 와 닿지 않았다. 그의 바깥에 있는 신을 찾아내려는 그의 경향성은 마하리쉬의 말이나 그와 더불어 가졌던 이런 경험만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초콜릿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초콜릿을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과 별개의 존재로 남아서 신과 결합하는 희열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날 오후, 아쉬람에 헌신자들이 왔을 때, 그의 광적인 크리슈나 박타의 눈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눈에, 그들은 그냥 고요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신에 대한 말도 하지 않았으며, 신의 이름을 암송하거나 신에게 주의를 고정시키지도 않았다. 마하리쉬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푼자는 영적으로 게으른 이런 사람들과 아쉬람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루나찰라Arunachala의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몇 km 채 떨어지지 않은 숲 속에 아주 조용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는 거기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크리슈나의 이름을 암송했다.

 

약 일주일을 거기에 머물면서 그는 헌신의 수행에 몰입했다. 그러자 크리슈나가 자주 그 앞에 나타났으며 그와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 주일이 다 되어 갈 때, 그는 새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마드라스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을 떠나면서 푼자는 마하리쉬에게 작별 인사도 하고 또 그 자신의 노력으로 신을 매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신을 보기 위해선 이제 그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아쉬람에 들렀다.

 

그를 보자, 마하리쉬가 물었다.
“어디서 당신은 생활하고 있었습니까?”
“산 다른 쪽에 있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
"그러면 거기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마하리쉬가 물었다. “저는 저의 크리슈나와 놀고 있었습니다.” 그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마하리쉬를 능가한다고 느꼈다. 그가 크리슈나를 보는 동안에는 크리슈나가 마하리쉬에겐 나타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그래요?” 마하리쉬는 놀라고 흥미로워 하면서 말하였다. “아주 좋습니다. 정말 굉장합니다. 당신은 지금도 그를 봅니까?”
“아닙니다. 제가 비전을 가질 때만 크리슈나를 봅니다.”그는 그에게 있었던 이러한 비전들이 마하리쉬에겐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에 대해 대단히 흡족해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크리슈나가 와서 당신과 같이 놀고 그리곤 사라지는군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신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만약 그가 정말로 신이라면, 그는 당신과 늘 함께 해야만 하오.”그의 비전 경험에 대해 마하리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는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마하리쉬는 그에게 바깥에 있는 신을 찾지 말고, 신을 보고자 원했던 그 사람의 근원과 바탕을 찾으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받아들이기엔 아주 힘든 일이었다. 크리슈나에 대한 헌신으로 평생을 보낸 그에게 인격을 가진 신 대신에 다른 어떤 방식으로 영적 탐구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하리쉬의 충고는 그에겐 와 닿지 않았지만, 그를 고무하고 매료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는 떠나면서 그 자신의 영적 길의 추구에 대한 그의 인가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만트라Mantra를 하나 달라고 했다. 그러나 마하리쉬는 거절했다. -마드라스에 돌아와 있던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그는 만트라를 받기는 하였다.- 또 그는 마드라스의 새 직업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자신을 산야사Sannyasa로 입문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 마하리쉬는 이도 거절했다. 결국 그는 새 일자리를 시작하기 위해 마드라스로 돌아와야만 했다.

 

마드라스로 돌아 온 푼자는 가족을 편히 있게 할 수 있는 큰집을 구했고, 곧 일을 시작했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에 일을 매우 열심히 하였다. 남은 시간엔 그의 에너지를 크리슈나와 함께 하는데 사용했다. 그는 집에 크리슈나에게 푸자Puja를 드리기 위한 방을 만든 후,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방해받지 않고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에 있는 크리슈나에 관한 글을 읽은 후, 대부분의 시간을 자파로 보냈다. 그는 자파를 매 호흡과 더불어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24,000번을 하였으며 곧 자파를 하지 않았던 과거를 기억해내고는 하루에 50,000번으로 높이기도 하였다.

 

그는 아침 9시 30분까지 크리슈나를 찬양하면서 푸자를 드리는 방에 있었다. 그리고 나서 집을 떠났는데, 일이 10시에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푸자를 드리는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크리슈나와의 사랑에 빠져 크리슈나 박타들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조용히 앉아 있는 성자들에 대하여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마하리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사랑하지도 믿지도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마하리쉬가 마드라스의 그 앞에 나타나 "크리슈나 박티는 옳다. 크리슈나 박티는 옳다"라고 말하였다. 이 즈음에 그는 마하리쉬가 띠루반나말라이를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가 본 것이 비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마하리쉬를 찾아가 그가 마드라스에서 와서 그런 말을 하였는지를 물었지만 마하리쉬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가 답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브린다반Vrindaban으로부터 한 무리의 헌신자들이 왔다. 그 그룹의 리더가 마하리쉬에게 라다를 위하여 피리를 불고 있는 크리슈나의 그림을 건네주었다. 그 그림을 보자 마하리쉬의 빰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마음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헌신을 보았다.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는 속으로 "이 사람은 자신의 헌신을 나에게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그의 비밀을 발견하였다." 라며 기뻐하였다. 마하리쉬도 그 만큼이나 박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밤 2시경이었다. 그는 푸자를 드리는 방의 문 밖에서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서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놀랍게도 문밖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람Ram, 시타Sita, 락슈만Lakshman, 그리고 하누만Hanuman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크리슈나를 부르는데 보냈으며 람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경을 보자, 엄청난 경외감과 공경심으로 그들 앞에 엎드려 절했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 아름다운 신들이었다. "하누만이 마드라스의 여기에 위대한 크리슈나 박타가 있다기에 그를 방문하려 왔다"고 하면서 시타가 오른 손을 들어 그에게 축복을 주었다. 그 비전은 일곱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그는 하누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람과 시타의 유배지였던 치트라쿠트Chitrakoot로 순례를 떠났다. 그가 우선 카마드Kamad 언덕을 돌기 전에 강에서 목욕을 하고 나왔는데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성지순례를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그가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지만 그는 다만 그보다 앞서 걸어가면서 라마야나Ramanaya를 읽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그 이상한 안내원이 라마야나를 읽어나갈 때, 어느 부분을 읽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가까이 다가가자 놀랍게도 그 사람의 눈물이 계속 그의 뺨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그 말들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황홀경의 상태에 있었다. 라마야나의 말은 슈리 푼자의 가슴도 관통하기 시작하였으며 감흥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의 머리칼은 곤두서고 몸이 떨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산을 도는 순례의 과정이 끝나자, 슈리 푼자는 그 사람에게 사례를 하고자 하였다. "나는 이 언덕을 에스코트할 때 그 누구로부터도 돈을 결코 받지 않습니다. 나는 여행 안내인이 아닙니다. 나는 람 박타들을 돕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대화 중에 그는 그 사람의 눈을 자세히 보았다. 그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이 분은 마드라스로 나를 방문하러 왔던 사람과 같다. 이 분이 하누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 안내인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하늘로 사라졌다. 그는 일주일 간 그곳에 더 머물다가, 행복한 상태로 마드라스로 돌아 왔다.

 

그가 돌아와서의 일이다. 어느 날 크리슈나에 대한 찬가를 하려고 했을 때, 그는 더 이상 크리슈나의 이름을 반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든지 그의 마음은 협력하지 않을 뿐더러 그는 더 이상 영적 도서들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의 마음은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리고 고요한, 그 어떤 영적 대상들에 대한 집중이나 주의를 거절하였다. 그는 즉시 이웃에 있는 라마크리슈나 교단의 원장 카일라사난다를 찾아가 자신의 수행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원장은 이러한 현상은 다만 수행과정의 한 단계인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말하며 교단에서 열리는 정기적인 삿상Satsang에 참석해 보면 문제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교단의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띠루반나말라이에 있는 마하리쉬에게 생각이 갔다. "이 사람은 펀잡의 나의 집에 나타나서 띠루반나말라이에 있는 그를 만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와 함께 앉아 있을 때 좋은 경험을 하였다. 이 사람이 나에게 충고를 해줄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마드라스에 있는 나에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렇게 두 번이나 나에게 나타난 것은 강한 연결이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거기로 가서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주 토요일, 그는 기차를 타고 마하리쉬가 있는 아쉬람으로 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점심 식사 후에 그는 마하리쉬를 만나러 들어갔다. 시중드는 사람이 마하리쉬가 쉴 시간이라고 나중에 오라고 하였지만, 이를 본 마하리쉬가 허락하였다.
그는 마하리쉬 앞에 앉아서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하였다.

 

“25년 동안 저는 크리슈나의 이름을 되풀이해 부르며 보냈습니다. 더구나 최근엔 그의 이름을 하루에 50.000번이나 암송했습니다. 그때 라마, 시타, 락쉬만 및 하누만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떠난 이후로, 저는 더 이상 제 수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크리슈나의 이름을 암송할 수 없을 뿐더러,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명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내적으로는 큰 고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제 자신이 더 이상 신에 집중하고픈 욕구가 일어나지 않으며, 집중하려고 노력 해도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마음은 신에 대한 생각들에 관여하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저는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마하리쉬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마드라스에서 어떻게 여기에 왔습니까?”
“기차로 왔습니다.”그는 질문의 초점을 모르지만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당신이 띠루반나말라이 역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저는 기차에서 내려 기차표를 건네주고, 소달구지를 타고 여기 아쉬람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아쉬람에 도착하여 소달구지꾼에게 돈을 지불하고 난 다음에, 소달구지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소달구지는 떠났습니다. 추측하건대 읍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는 이와 같은 질문들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지 모르는 채 대답을 해 나갔다.
마하리쉬가 그제야 자신이 의도한 바를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기차는 당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소. 당신은 기차에서 내렸소. 왜냐하면 더 이상 당신에겐 기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오. 기차는 당신이 원하는 곳까지 당신을 데려다 준 것이오. 소달구지도 이와 마찬가지오. 소달구지가 그대를 라마나스라맘에 데려다 주었을 때 그대는 그것에서 내렸소. 당신은 더 이상 기차나 소달구지가 필요하지 않소. 그것들은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오는 수단이었소. 지금 당신은 여기에 있고, 그것들은 더 이상 당신에겐 소용이 없소. 이것이 당신의 수행에서 일어난 일이오. 당신의 암송, 독서, 명상은 당신을 영적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소. 당신은 더 이상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소. 당신은 도달하였소.”

 

그리고 나서 마하리쉬는 그를 깊이 바라보았다. 푼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순수의 물결로 씻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하리쉬의 고요한 응시에 의해 정화되어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그는 마하리쉬가 그의 가슴속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 황홀케 하는 응시로, 그는 그의 몸의 원자 하나 하나를 느꼈다. 변형의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옛 몸은 죽고 새로운 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는 이해했다. 지금 그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이 사람이 그 자신이었으며, 늘 그 자신으로 있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참나를 깨닫게 되자 갑작스러운 충격이 그에게 왔다. 이것은 그가 여덟 살 때 망고 음료가 가득한 컵을 받을 수 없었을 때와 같은 깊은 평화와 충만한 행복감이었다. 슈리 푼자는 일어나서 마하리쉬 앞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엎드려 절했다.

 

그는 마하리쉬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마하리쉬는 정확히 통찰하여 형상을 가진 어떤 인격적 신에게도 집착하지 마라고 한 것이다. 모든 형상들은 죽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마하리쉬는 푼자에게 실재이며, 영원한 것을 향해가도록 첫 만남에서부터 노력하였으나, 오만하게도 푼자는 마하리쉬의 충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그가 오래 전에 물었어야 했던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는 여덟 살 때 ‘참나’를 직접적으로 체험했으면서도 그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의 나머지 생을 보낸 것이다. 그는 수많은 사두들과 스와미, 구루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그에게 마하리쉬가 한 것처럼 간결하게 “신은 당신 안에 있소. 신은 당신과 떨어져 있지 않소. 당신이 바로 신이오. 만약 당신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그대 자신에게 물어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참나로서의 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좀 더 일찍 마하리쉬를 만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했더라면 그는 결실 없는 외적추구는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하리쉬의 현존 아래서의 그의 마지막 체험 이후, 그의 일상생활은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이미지들이 계속 그에게 나타났다. 특히 크리슈나는 규칙적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크리슈나가 나타날 때마다 그는 여전히 그에 대한 큰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더 이상 그를 참나 바깥의 어떤 것을 보도록 하는 힘은 가지지 못했다. 그는 신의 헌신자가 아니며, 신은 그의 주님이 아니었다. 신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더 설명을 하자면, 그는 어렸을 때 그는 크리슈나의 몸이 실재라고 생각했다. 몸을 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이것이 진정한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재는 항상 존재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형상 없는 참나만이 이 정의에 맞다.
그는 마드라스로 가서 일을 계속하였으며 모든 노력을 다하여 가족을 부양했다. 주말이나 혹은 휴가를 충분히 모아두었다고 생각될 때, 그는 마하리쉬에게로 가서 스승의 발아래 앉아 스승의 눈부신 현존에 흠뻑 젖곤 했다. 처음 마하리쉬를 찾아간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구도자는 사라져 버렸고, 마하리쉬에 대한 무한한 사랑만이 남았다.

 

그는 깨달음 이후 몇 달간은 그에게 생각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나가 아무런 생각 없이 직무를 수행했다. 거기에는 생각의 작은 물결 하나도 일지 않는 대양과 같은 내적 고요가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마음과 생각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말이면 때때로 그는 가족과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아쉬람에 가서 마하리쉬가 헌신자들과 더불어 방문자들과 같이 나누는 대화를 경청하곤 했다. 때로는 푼자 자신이 질문하기도 했다.

 

1947년 회교도의 압력을 받아 영국은 인도를 분할하기로 결정하였다. 회교도가 있는 다수 지역은 신생 국가 파키스탄으로 되고, 나머지 지역은 독립된 인도가 될 것이었다. 새로운 국경이 라호르의 동쪽을 지나게 되는데, 이것은 푼자의 가족이 파키스탄에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도의 독립을 앞두고 인도에 거주하는 많은 회교도들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해 갔고, 파키스탄 영토에 속하는 많은 힌두교들은 새로 형성된 인도로 들어오려고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회교도들은 힌두교도들을, 힌두교도들은 회교도들을 강탈하고, 죽이는 대 혼란이 일어났다. 푼자는 신문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1947년 7월 인도가 독립하기 한달 전이었다. 마하리쉬를 동행하여 아쉬람 주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 데바라자 무달리아르Devaraja Mudaliar가 푼자의 가족이 신생 국가인 파키스탄에 남게 되어 위험한데도, 푼자가 여기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염려스러움을 나타냈다. 마하리쉬는 푼자가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지금 당신 고향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오. 거기로 한 번 가지 그러오. 가서 당신 가족을 데려 오시오.” 이 말은 명령이었지만 푼자는 여전히 주저했다. 마하리쉬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을 그에게 보여 준 이후로 그는 마하리쉬에게 큰사랑과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진실로 마하리쉬와 함께 하는 것 외에 세상과의 어떤 관계도 그는 원하지 않았다.

 

“저의 지나간 생은 단지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만난 이후, 스승님은 저의 꿈을 끝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더 이상 가족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오직 스승님만 계십니다.” 마하리쉬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꿈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신이 꿈속에 남아 당신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 무슨 차이를 만듭니까? 그것이 오직 꿈이라면 왜 그대는 가는 것을 두려워하오?”

 

“저는 스승님의 육체적 형상에 너무나 집착하고 있습니다. 저는 스승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저는 스승님을 너무 사랑하여 저의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제가 떠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가 말했다. “당신이 어디를 가든 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푼자는 마하리쉬의 말을 깊이 이해했다. 마하리쉬의 진정한 본성이었던 '나'는 바로 그 자신의 실재이기도 했다. 어떻게 내가 그‘나'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자신의 실재였다.

 

그는 마하리쉬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는 다시는 마하리쉬를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직감으로, 마하리쉬의 발아래 흙을 조금 쥐어 주머니에 넣고 아쉬람을 떠나 라호르로 갔다. 신생 국가 파키스탄으로 가는 열차엔 힌두교도들은 전혀 없었다. 힌두교도들은 파키스탄에선 소수민족에 속하므로 이슬람교도들에게 너무나 많은 살해를 당해, 기차여행을 더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차를 타더라도 힌두교도들과 회교도들은 각기 다른 칸에 탔다. 그는 큰 위협을 느꼈다.

 

“회교도들이 타는 칸으로 가서 그들 사이에 앉으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오”라는 내면의 목소리, 마하리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차가 중간 지점에 왔을 때, 힌두교도들이 있던 칸의 사람들은 회교도들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다. 라호르에 있는 고향집에 도착하자 그의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펀잡을 빠져나가 인도에 자리를 잡으라고 하였다. 푼자는 대부분이 여자들인 가족 34명을 이끌고 펀잡을 빠져 나와 인도로 돌아왔다. 라호르에서 그들이 탄 기차가 인도로 오는 마지막 열차가 되었다.

 

마하리쉬는 헌신자들이 가족들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건 허락하지 않았다. '참나'로서 존재하고, 모든 세속적인 일을 행하되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푼자는 가족을 럭나우에 데리고 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마하리쉬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쟁기, 트랙터와 같은 기계들을 시운전하면서 판매하는 바스티Basti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였다.

 

 

슈리 푼자의 생활은 이상한 만남들을 통하여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럭나우의 회의를 참석하러 가는 중에 람Ram의 탄생지인 아요드하를 거쳐가게 되었다. 사리유Saryu강이 이 읍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다리가 없었기에 배를 타고 건너야만 하였다. 그가 배를 타려고 하는데 한 청년이 다가왔다.

 

"저는 람 박타입니다. 저는 어떤 점성술가로부터 아요드하에 가서 육 년마다 한 달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람 만트라를 하면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저는 람을 보아야만 합니다. 오늘 람이 저에게 오지 않으면, 저는 강물에 빠져 죽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슈리 푼자는 이 일이 자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기계를 파는 회사원이며, 지금 럭나우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려 가는 중이라고 말을 하하며 자신은 그를 도울 수 없다는 것과, 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아요드하에 있는 성자들이나 스와미들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며 거절하였다.

 

"아닙니다. 저의 가슴속에서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에게 람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카키색의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올 것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에 맞는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이 목소리는 나에게 내가 당신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나에게 람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여러 이유를 대면서 그가 거절하자 그 청년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윽고 그의 머리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제는 강물에 휩쓸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파파지는 당황하여 뛰어들어 그를 살려내려 하였다. 그러자 그 청년은 그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람을 바이쿤타Vaikunta에서 볼 것이?quot; 라고 말하면서 그의 구조를 뿌리쳤다. 슈리 푼자는 그 청년을 나꿔채 건져냈다.

 

그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고 슈리 푼자는 람을 보여주도록 도와羚杵?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 청년을 앉으라고 하고는 "람이 지금 그대 앞에 서 있다. 람이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람이 그대 앞에 서 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 청년은 빛나는 신의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바뀌었다. 놀란 비전의 경험으로 그는 땅 바닥에 자신을 던지고는 생애의 최대의 목적을 성취시켜 준 슈리 푼자에게 연거푸 절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는 일어나 신을 보여주게 한 그를 따라나서서 일생을 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간청하였다. 슈리 푼자는 어느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는다면서 거절하였다.

 

이와 같은 이상한 만남들이 슈리 푼자의 가르침의 모습이 되었다. 구도자들이 슈리 푼자에게로 향하여 그를 스스로 발견해내고는 그의 현존 안에서 이상한 경험을 갖곤 하였다. 신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신의 모습을 보았고 영적 자유를 강하게 갈망하였던 사람들은 직접적인 참나 경험을 가지곤 하였다. 이 놀라운 경험들은 헌신자가 그의 현존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일어났다.

 

그러한 삶을 하고 있는 1950년 4월 14일, 저녁 8시 45분, 푼자는 럭나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가슴에 엄청난 경련을 느껴 땅에 거의 넘어질 뻔하였다. 그는 심장병으로 생각하였다. 잠시 후에 그는 사람들이 길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을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인도 전역에 있는 수천의 사람들이 마하리쉬의 죽음 뒤 몇 초 동안 보았던 그 유성이었다.

 

1947년 푼자가 육체적으로 마하리쉬를 떠났을 때, 마하리쉬는 그에게 말했다.“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소.”이것이 마하리쉬의 약속이었고 푼자는 이것을 체험하고 있었다. 슈리 푼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있었던 곳에는 텅 빔만이 있었다. 그 텅 빔 안에는 빛나는‘나’, 나의 실재인‘나’, 나의 스승이신‘나’, 어디서든 항상 나와 함께 한다고 스승이 약속한‘나’가 빛나고 있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말하고 있는 자는 푼자가 아니라, 라마나 마하리쉬의‘나 ', 모든 존재들의 가슴속에 있는 참나가 말하고 있었다.

 

1948년 그가 시멘트 회사의 판매관리자로 있으며 럭나우에 있는 그의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집에 들르기 전에 그는 자신의 헌신자인 미쉬라씨를 방문하고픈 강한 욕구가 일어나 그의 집으로 갔다. 그들 부부와 영적 주제에 대한 대화를 하는데 8살 된 딸이 다가와 그에게 재미있는 요구를 하였다.

 

"선생님은 항상 저의 부모에게 크리슈나에 대하여 말을 합니다. 오늘 저는 선생님과 함께 있고자 합니다. 저 역시 크리슈나를 보고 싶습니다. 저는 크리슈나를 굉장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날 그녀는 학교에 갈 시간이지만 가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슈리 푼자는 그녀에게 우선 학교에 가라고 말하였다. 그 다음날도 그녀는 간청하였다. 슈리 푼자는 그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크리슈나의 비전을 갖고 싶어하였다. 그녀는 는 그가 도와준다면, 크리슈나가 그녀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정말로 믿었다.

 

크리슈나를 보여주겠다는 정해진 날에 다가오자 그녀는 크리슈나를 보여달라고 하였다. 슈리 푼자는 그녀를 조용히 세웠다. 그리고는 "지금 크리슈나가 네 앞에 서 있다. 너는 그를 못 보니?"라고 말하였다. "아닙니다. 크리슈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저에게 크리슈나를 보여준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나는 어디에도 크리슈나를 볼 수 없습니다." 슈리 푼자는 다른 방법으로 노력했다. "크리슈나는 배가 고프다. 크리슈나는 무엇인가를 먹기를 원한다. 크리슈나에게 드릴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가?" 그녀는 "책가방에 초콜릿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슈리 푼자는 그 소녀에게 그 초콜릿을 크리슈나에게 드리라고 말하였다. 그 소녀는 "크리슈나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슈리 푼자는 "네가 먼저 드려라. 만약 초콜릿을 드리면, 크리슈나가 나타나 그것을 받아먹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초콜릿을 그녀의 손바닥에 놓고 내밀었다. 갑자기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크리슈나! 이것을 다 먹어서는 안 돼! 나도 조금은 먹어야 돼" 그리고는 그녀는 누군가의 가슴을 치려는 듯 그녀의 팔을 움직였다. "내 몫 반을 원해!"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어머니도 이 소리를 듣고 달려나왔다.

 

 

이러한 일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슈리 푼자의 주위에서 그냥 일어나고 있었다. 1952년까지, 대부분의 그의 가족들은 럭나우의 나리Narhi에 있는 그의 원래의 집을 떠나 북인도, 델리, 칼푸르, 바라나시 등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가족을 돌보았으며 그들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장소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정착하는 것을 보고, 그는 그의 가족에 대한 의무들을 다 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슈리 라마나스라맘에 다시 돌아갈 작정이었다.

 

그가 이렇게 작정한 것은, 세상의 일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데 자신의 모든 삶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세상에 그들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인간들을 만든 신이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책임이 아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해를 갖고서 그는 직업과 집을 급하게 정리하고 남 인도를 내려갔다. 비록 마하리쉬는 몸을 버렸지만, 라마나스람에 영원히 머물 의도였다. 그는 라마나스라맘 가까이에 방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실행되지 않았다. 그가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옛 친구들이 라마나의 생일날을 축하하려 왔었다. 그들은 그를 옛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나게 하려는 계획으로 거의 강제적으로 그를 방갈로에 초대하였다. 그 다음날 방갈로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광산업자를 소개받고 그의 간청에 못 이겨 라마나스라맘이 있는 띠루반나말라이에 들러보지도 못한 채 높은 산들과 야생의 동물들이 있는 산 속으로 들어가 탄광의 관리자가 되었다. 그때는 1953년이었다. 그 일이 1966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는 광산업자로부터 가족을 돌볼 충분한 돈을 벌게 되었다.

 

깊은 산 속 광산에서 생활하면서 휴가가 날 때면 라마나스라맘과 여러 곳으로 순례의 여정을 갖곤 하였다. 한 번은 마두라이에 있는 유명한 미낙쉬 사원을 방문하였다. 미낙쉬는 쉬바의 아내 파르바티에 대한 이곳 지방의 말이다. 그는 갑자기 그 사원에 가고픈 충동이 일어났다. 신에게 드릴 과일도 준비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와서 죄스러운 마음으로 사원으로 들어가니 사원의 여신은 그러한 것에 개의치 않고 그가 정문을 통과하여 들어가자, 미낙쉬 여신은 손수 그의 앞에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그 사원의 모든 주요한 곳을 안내하였다. 그리고는 정문까지 나와서 배웅을 한 뒤 사라졌다.

 

1954년 남쪽 탄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강가, 야무나 그리고 사라스와티라는 세 강이 만나는 알라하버드에서 마하 쿰바 멜라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144년마다 강가에서 열리는 축제였다. 인도에 있는 수백만 명이 성스러운 갠지스강에 목욕을 하며 또한 수많은 사두들과 요기들을 만날 수 있는 축제였다. 그 해에는 약 800만 명이 참석하였다.

 

그는 저축해 놓은 휴가를 모아 그곳으로 떠났다. 멜라가 열리는 어느 날 그는 강가 강둑의 아래쪽을 따라 5킬로미터를 따라 걸었다. 왜냐하면 그는 잠시 동안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는 고요한 곳을 발견하였다. 그때 17세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녀가 나타나 그의 발 아래에 엎드렸다. 그녀가 일어나지 않자, 그는 그녀의 어깨를 당겨 일으켜 세우면서 주위에 그녀의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지 둘러보았다. 아무도 주위에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가 일어났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소녀이었으며 그녀의 눈은 검고 빛났다. 그녀의 눈은 인간의 눈처럼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이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여기에서 혼자 걷고 있느냐고 왜 모든 사람들이 있는 멜라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였다. "저는 강가입니다. 나는 나의 물에 멱을 감으려 오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없애줍니다. 나는 리쉬Rishi 바기라타Bhagiratha의 전설적인 고행 때문에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바기라타는 인류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물에 목욕하면서 그들의 모든 죄들을 씻습니다. 나는 이 모든 죄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모든 죄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진정한 성자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당신을 제외하고는 나는 한 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뒤 그녀는 돌아서 다시 강물 위를 걸으면서 강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마침내 강물 속으로 잠겼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을 접하고는 그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강둑에 앉아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일에 놀라워하였다.

 

1950년 후반, 쉬모가Shimoga에서 방갈로르로 가는 200km의 길을 가다가 그는 어느 집에 들러 잠시 쉬면서 잠에 들었다. 그러자 전생이 꿈으로 곧 나타났다. 바로 전생의 슈리 푼자는 스린게리Sringeri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퉁가Tunga 강둑에 살고 있었던 요기였다. 그곳은 치크마가룰르Chikmagalur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큰 아쉬람을 갖고 많은 헌신자들을 두고 있었다. 그는 아쉬람에 사원을 건축하고는 그곳에 검은 돌로 크리슈나 상을 세웠다. 그때 그의 이름은 고팔라 스와미였다. 그는 크리슈나 박타였으며, 영적 성취를 이룬 요기이기도 하였다. 그는 니르비칼파 사마디의 방법을 마스터하고 있었던 까닭에 니르비칼파 사마디 상태로 여러 날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상태에 있으려는 그의 갈망은 결과적으로 뜻하지 않는 그의 죽음을 초래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사마디에 들어가서 많은 날을 보냈다. 그의 헌신자들은 그를 정상적인 깨어있는 상태로 되돌아오게 하는데 실패하자 그가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문제에 전문가라는 마을의 한 사람이 와서는 생명의 기운이 그의 몸을 떠났는지 알아보려 그의 머리 정수리에 구멍을 뚫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코코넛을 절개하는 데 사용하는 기계를 가져와서 그의 두개골을 열었다. 그 사람은 그가 분명히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묻어야 한다고 하였다. 성자들의 몸은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는데 이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행위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전생에 크리슈나를 보려는 강렬한 욕망이 있어 전생의 고팔라 스와미의 욕망이 슈리 푼자에게 이어져 나타난 것이다.

 

 

그에겐 또 하나의 갈망이 있었다. 그의 아쉬람 가까이에는 아쉬람의 코코넛 나무를 돌보는 낮은 계급의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수확하는 코코넛의 20분의 1을 가지게 되어 있었다. 이 가족에는 한 아름다운 젊은 소녀가 있었다. 그는 그녀와 그 가족에게 코코넛 수확비용에 덧붙여 음식, 사리 그리고 돈을 더 주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향한 강한 성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명한 요기로서의 명성 때문에 충동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 소녀는 펀잡에서 다시 태어나 이 번 생에서 그의 부인이 된 것이다. 슈리 푼자는 나중에 또 다른 생들의 비전을 보았다. 남인도의 요기로 있기 전에 그는 카톨릭 사제로 두 번이나 유럽에서 살았었다. 그 두 번은 수백 년 전이었다.

 

나중에 그가 전생의 아쉬람을 찾아가 보니 그 곳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그가 세운 크리슈나 상이 그대로 있었다. 그를 묻은 사마디의 자리는 퉁가바드라Tungabhadra 강물에 씻겨 사라지고 없었다. 코코넛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1953년부터 1964년까지 슈리 푼자는 포다르 마팉 광산 회사에 근무하다가 1966년에 그 회사를 영원히 그만 두었다. 그 이후 그는 많은 곳들을 방문하였다. 이 동안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즉시에 일깨워,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그는 한 번은 마하라쉬트라 주에 있는 알란디로 갔었다. 갸네쉬바리의 마하 사마디를 보기 위해서였다. 갸네바쉬바리는 어린 아이 때부터 깨달음에서 나온 자신의 가르침을 펼치다가 16세가 되자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가르침의 임무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성자 남데브와 순례를 돌고 와서는 동굴에 들어가 입구를 막고 영원히 사마디에 들었다. 그의 형제들은 이런 식으로 삶을 끝내지 말라고 하였지만 갸네쉬바리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이 동굴의 입구는 영원히 닫혀져 있다. 슈리 푼자는 그곳으로 가 봉해진 입구에 섰을 때, 갸네쉬바리가 얼굴에 빛을 내면서 깊은 명상 중에 있는 것을 보았다.
1966년 은퇴 후, 그는 온 인도를 광범위하게 여행을 하였다. 그는 한곳에 몇 주일씩은 머물지 않았다.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한 후에, 그는 완전히 그의 집에서 떠나려 하였다. 의무를 다 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리쉬케쉬의 많은 아쉬람들이 가까이에 있는 동굴로 옮겼다. 리쉬케쉬의 강가의 둑에 앉아서 물고기들이 뛰노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자기 자신에 관한 놀라운 비전을 가졌다.

 

 

H.W.L. 푼자였던 그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여러 형태의 몸들을 가지는 놀라운 환영을 보았다. 그의 존재가 각기 다른 시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몸에서 몸으로, 형상에서 형상으로, 식물들로, 동물들로, 새들로, 인간의 몸들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연속은 아주 길었다. 그의 몸의 연속은 마침내 마지막 몸으로 나타났다. 그 이후에 그의 몸은 라마나 마하리쉬의 빛나는 형상에 의해 마침내 그 끝을 맺었다. 마하리쉬의 나타남이 끝없는 윤회의 연속들을 정지시킨 것이었다. 마하리쉬는 한 번의 바라봄으로 그 윤회의 연속들을 파괴시켰다. 그가 참나를 깨닫게 되자, 그 즉시 시간, 세상,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어떤 것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무엇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변하지 않는, 형상 없는‘참나’만이 오직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리쉬케쉬에 머물다 그는 다시 여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브린다반이나 희말라야의 높은 곳으로 가기도 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많은 기적들을 행할 수 있는 요기를 만났다. 그는 하늘을 날 수도, 하늘에 정지한 채 서 있기도, 자신의 몸을 여러 곳에 나타내기도, 음식을 오게 하기도, 두루가Durga와 락쉬미의 은총을 얻는 방법도, 여러 나라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도, 다른 세계들로 들어갈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스승은 브라마 로카Brahma Loka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앞에 가면 문지기가 매번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의 스승은 임종 때 자신의 제자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최고의 시디siddhi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다. 진정한 지식이 최고의 성취이다. 이 최고의 지식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도록 하여라"고 했다면서 그는 슈리 푼자에게 최고의 지식을 달라고 계속 간청을 하였다. 슈리 푼자가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이 그와 같은 경험을 가질 준비를 갖춘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앞에 고요히 앉아라." 그리고는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깊게 바라보았다. 슈리 푼자는 특별한 시선을 그에게 주었다. 잠시 지나자 그 사람은 소리쳤다. "나는 그것을 가졌다! 나는 가졌다! 나는 존재이다! 나는 모든 존재들의 가슴속에 앉아 있는 브라만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파파지에게 연거푸 절을 하면서 그의 스승이 "네게 최고의 지식을 주는 스승을 만나면 마지막 여생을 그분을 위해 봉사하는데 보내라"고 말했다며, 슈리 푼자를 따라나서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거절하였다.

그는 또 희말라야의 높은 고원지대로 갔다. 그곳에서 쉬바Siva와 파르바티Parvati를 만났다. 그들은 파파지에게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며 쉬게 하기도 하였다.

 

카톨릭 신부 아비식타난다와는 오랜 동안 교제를 가졌다. 그는 베네딕토회 소속의 프랑스인 신부였다. 그는 기독교의 우월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인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슈리 푼자와의 특별한 만남에 대한 기록물을 고국에 보내기도 하였다. 그와 만나는 시기 동안에 슈리 푼자는 1970년 11월 23일에 예수의 비전을 보게 된다. "나는 바가바탐Bhagvatam을 읽으려고 하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을 내려놓았다. 바로 그때 예수가 신체를 가진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발은 땅에 있고 그를 향하여 서 있었다. 예수의 얼굴은 하늘 너머까지 뻗어 있었다. 예수의 손은 처음에는 가슴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완전히 뻗은 후 그는 손을 포갰다. 팔꿈치를 구부리고는 마침내 그 앞으로 다가와 그를 포옹하였다. 이것은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 이후에 그는 정글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그의 가슴에 늘 지속되고 있었다. 그는 성모의 비전도 여러 번 보았다.


 

 

1971에서 74년까지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 미국 및 하와이를 방문하였다. 그 동안에도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와의 삿상으로 깨달음의 기회를 얻었다. 그는 베를린의 야경을 구경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10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다. 그런데도 주위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슈리 푼자는 걸음을 멈추고는 페스트 푸드 점에서 무엇인가를 사려고 줄을 서 있는 한 아름다운 젊은 여자를 가리켰다.

 

"저기 서 있는 저 여자를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녀의 얼굴은 천진난만함 그 자체이다." 슈리 푼자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리고 강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그녀의 마음 안을 들어다보면서 그녀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더 찾아보려는 듯 했다. 처음에는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웃음이 심해지더니 마침내는 온 몸으로 웃다가 무아경 속으로 떨어졌다. 황홀경의 물결로 그녀는 비틀거리기도 하였다. 곧 경찰 차가 도달하였다. 한 경찰이 그녀 가까이 와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모릅니다." "당신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그녀는 웃으면서 "나는 모릅니다." "집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모릅니다." 다른 경찰이 그녀의 손가방을 열어 신분증을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경찰 차에 싣고 그녀를 싣고 가버렸다. 슈리 푼자는 인간이 마음껏 웃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서방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에서 그는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삿상을 가졌다. 그런데 한 대학교 음악교수가 인도 사람이 연다는 대화의 모임에 참석하러 왔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일어나 동양식의 엎드리는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일어나 웃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나는 예수다! 나는 예수다!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 잠시 머물다 바깥으로 나가면서 그는 "나는 예수다! 나는 예수다!"라고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슈리 푼자는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하였다.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일어나 이 진리를 외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서구에서 이렇게 계속 소리를 치면 교회나 사회제도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수소문하여 그의 집과 전화번호를 알아 내었다. 그 사람은 삿상이 열리는 장소에서 120킬로나 떨어진 어느 곳에 차를 버리고는 "나는 예수다! 나는 신이다!"라고 춤추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찰이 다가가 보니 그는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경찰이 그의 부인에게 그를 떠맡기를 요구하였지만 그의 부인은 정상 상태가 아닌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며칠이 지나면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지만 그는 정신 병원에 맡겨지게 되었다.

 

 

외국에서 돌아온 후인 1974년 10월말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려 하였지만 거절을 하고, 다른 방법으로 헌신자들과 함께 하였다. 슈리 푼자는 그의 삶에서 헌신자들을 찾으려는 시도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삿상으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이웃에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내면의 어떤 레이다를 가지고 있었다. 강가에 앉아 있다가도 그는 어떤 곳으로 가야되겠다고 말하고는 일어나 거기로 갔다. "어떤 곳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어떤 레스토랑, 상점 혹은 아쉬람에 가야만 한다는 느낌을 갖곤 하였다. 그가 거기에 이르거나 이르는 도중에 안내가 필요한 새로운 구도자를 만나곤 하였다. 그는 굉장한, 자발적인 삿상을 가지곤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일어나는 삿상 동안에 얼마나 그가 굉장한 스승인지, 얼마나 직접적이고 깊은 가르침들인 지를 알게 된다.

 

그는 어떤 특별한 만남들이 왜 보내졌는지는 알지를 못했다. 그로 하여금 일어나 어떤 특별한 곳으로 가라고 재촉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그냥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나중에 그는 참나가 구도자로 하여금 스승과 만날 수 있는 올바른 순간을 선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슈리 푼자 자신이 아쉬람을 가지고는 많은 사람들로 둘려 쌓이는 것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에 그의 아쉬람은 지도상에는 없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그에게로 향하게 하고 있음을 알았다.

 

1980년대 말부터는 건강이 나빠져 그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었다. 이제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럭나우의 나리Narhi 522번지에 있는 그의 집에서 삿상을 하였다. 이때도 신비한 경험이 주위에서 일어나곤 하였다. 한 번은 로드Rod라는 영국인이 삿상에 참석하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질문을 멈추고는 일어나 방 주위를 춤추기 시작하였다. 그는 너무나 황홀경에 취해 슈리 푼자가 던지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에 그는 집밖으로 나가 길거리를 내려가면서 춤을 추었다. 그는 뛰기도, 공중으로 손을 들고 흔들기도 하였으며 주위에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기쁨에 취한 나머지 그는 길 중앙에 있는 웅덩이도 보지 못해 그대로 빠졌다. 그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나와서도 계속 춤을 추며 길을 내려갔다.

 

며느리는 슈리 푼자를 위해 인디라 나가르에 집을 마련하였다. 그는 그곳으로 옮겨서 삿상을 당분간 하였다. 모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한 헌신자가 더욱 넓은 공간에서 삿상을 할 수 있도록 건물을 구입하엿다. 그래서 삿상의 자리는 그곳으로 옮겨졌다. 이 건물을 헌신자들은 삿상 바완이라 부른다.

 

슈리 푼자는 그의 온 생애를 통해서 말들에 대하여 거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말들을 경험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 비범한 능력은 여러 경우들에 나타났다.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왜 신들이 그 앞에 나타났는가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그가 크리슈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크리슈나가 자주 그 앞에 나타나곤 하였다. 나중에는 다른 종교의 신들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그는 그 이유를 자신의 천진함으로 돌린다. 그는 신들이 실재한다는 데 아무런 의심이 없다. 신들이 그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신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아쉬람을 갖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의미로 보았을 때 그는 보이지 않는 스승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삿상에 참여한 구도자들은 그의 말과 친존에서 기쁨의 웃음을 터뜨렸으며, 햇살처럼 펼쳐지는 행복감에 깊이 잠겼다.

 

1997년 9월 6일, 슈리 푼자는 육신을 버리고 마하 사마디Maha Samadhi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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