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의 시에 나타난 유머 감각과 희망의 철학
1. 글머리에
기인으로 일컬어졌던 천상병만큼 일화가 풍부한 시인도 없을 것이다. 서울대 상대 4학년 1학기까지 마쳤음에도 시인으로 살아갈 내게 대학 졸업장이 무어 필요 있겠냐고 중퇴한 것은 기나긴 기행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동백림사건(1967)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고문을 지독하게 당해 육체가 망가지고 정신이 황폐해진 이후 시인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은 세간에 풍성한 화제를 제공하였다. 기억상실의 행려병자로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친구들이 유고시집을 발간해준 일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문단 최대의 희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88년 간경화증으로 죽음 일보 직전에 이르렀지만 아내 목순옥 여사의 헌신적인 간호로 소생하여 1993년 별세할 때까지 수많은 화제를 남기며 이 땅의 누구보다도 시인다운 삶을 살다 갔다. 수많은 화제 중 신경림 시인이 사석에서 들려준 것은 이 소론의 주제인 ‘유머 감각’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 소개할까 한다.
동백림사건 이전, 천상병 시인의 큰 자랑거리는 자신의 성적 능력이었다. 변강쇠는 판소리 속 가공의 인물이지만 자신은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다고 술만 들어가면 자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외모로 보아 그럴 것 같지가 않았고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었을 텐데 아주 진지하게, 출중한 능력이 있다고 자랑을 하니 친구들은 웃을 수밖에. 세월이 흘러 동백림사건을 겪은 이후 천상병은 이번에는 그 능력을 잃어버려 세상 사는 아무 재미가 없다고 또 술만 마시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목순옥 여사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줄기차게 “내 ×이 말이야” 하면서 자랑을 하거나 비통해 했었다 하니 본인이야 진지하게 하는 말이었겠지만 친구들은 술자리의 안주로 천 시인의 그 말 듣기를 너나없이 즐겼다고 한다.
동백림사건 이전 천상병은 문학평론가로서 예리한 평필을 휘둘렀는데 출옥 이후 원고료 수입마저 없어지자 주변 사람들에게 일종의 구걸을 하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내밀며 “천원만” 하고 졸랐고, 사람들은 시인의 처지를 아는지라 별 거부감 없이 그의 손에 돈을 쥐어주곤 했다. 전업시인으로 살아가던 신경림에게는 “이백원만” 하고 손을 내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턴 오백원 줘” 하며 손을 내밀더라는 것. 무슨 이유로 올려 받기로 했냐고 물어보자 천상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요즘 물가가 너무 올랐단 말야.”
통금이 있던 시절, 파출소나 경찰서에 잡혀가면 너무나 엄숙한 얼굴로 일장 연설을 했다는 천상병. 요즈음 민생 치안이 엉망이다, 교통경찰이 촌지를 받아먹는 게 보도되는 걸 봤다, 어디 무슨 사건의 범인을 아직도 못 잡고 있지 않느냐, 경찰이 데모 학생을 심하게 때려 피를 철철 흘리더라……. 날이 밝아올 때까지 경찰들에게 엄숙한 어조로 꾸지람을 하는 천상병의 작은 키와 꾀죄죄한 입성을 생각해보라. 함께 끌려간 친구는 웃음을 참느라 밤을 꼬박 세워야 했다고.
2. ‘기인’이라는 족쇄
동백림사건이란 독일 유학생 몇 사람이 베를린에 사는 동포의 주선으로 동베를린 구경을 하고 온 것이 엄청난 간첩단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다. 시인은 베를린 유학을 하고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 있던 친구 강빈구한테 몇 번 술을 얻어 마셨고, 현지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따름이었다. 천상병은 동백림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서울상대의 동기동창인 강빈구가 간첩인 것을 알면서도 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가 갖고 온 공작금을 받아썼다는 혐의로 끌려가 세 차례의 전기고문 등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발소리만 들려도 책상 밑으로 감방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다고 한다. 그는 6개월 동안의 감금과 고문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석방이 되었다.
시인의 생애가 보통 이상으로 파란만장하였고 위에 소개한 일화 등이 사람들의 입에서 지속적으로 오르내리다 보니 그의 시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져 버렸다. 1971년, 유고시집이자 첫 시집인 『새』를 타의에 의해 낸 이후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천상병의 시에 대한 연구는 몇 편 되지 않는다. 1991년에 발간된 시선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미래사)에는 참고서지가 권말에 붙어 있는데 김성욱, 김우창, 하인두, 홍기삼의 글이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그 무렵까지 20년 동안이나 활동해온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천 시인에 관한 글이 단 4편뿐이었다는 참고서지 목록은 충격적이다. ‘기인’이라는 세평이 족쇄의 역할을 하여 시인이 살아 있을 때나 작고한 이후에나 도무지 평가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 점, 참으로 아쉽게 생각한다.
시인의 사후에 나온 평문 가운데 천상병의 시 세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제대로 평가한 <무소유 또는 자유인의 초상>(김재홍)이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김재홍은 천 시인의 시 세계를 ①무소유 또는 가난의 철학 ②소외와 외로움의 정서 ③과거적 상상력과 흐름의 시학 ④새와 하늘, 자유지향성의 의미 ⑤동심 지향성 또는 천진성의 시학 ⑥신앙시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여섯 개의 소제목만 보아도 천 시인의 시 세계가 거의 다 망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재홍에 의해 논의된 이상 여섯 가지 외에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은 유머 감각과 희망의 철학이 아닐까.
3. 천상병의 시에 나타난 유머 감각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小陵調>에는 “저승 가는 데도/여비가 든다면//나는 영영/가지도 못하나?”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바로 이 구절을 취해 제4시집의 제목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이 정해졌다. 천상병의 시 중에는 이런 식의 유머 감각이 잘 살아 있는 시가 적지 않다. 유머는 ‘익살’이나 ‘해학’으로 번역이 된다. 유머는 웃음을 유발하는 어떤 요소로, 사람의 말이나 표정, 혹은 동작이 불러일으킨다. 한편 위트는 ‘기지’로 번역이 되는데, 말이나 글을 즐겁고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이다. 천상병의 시에는 위트는 별로 보이지 않는 대신 유머는 상당히 많다. 능란한 말솜씨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독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한다. 천상병의 시가 주는 웃음은 절대로 폭소나 고소가 아니다. 거의 언제나 엷은 웃음, 즉 미소이다.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이었는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날개> 전문
나처럼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밖에 해본 적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보채고 있다. 날개를 달아 달라고. 날개가 있으면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일갈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하나님이여/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하면서 어린아이 투정부리듯이 말하는 것에서 시인의 유머 감각을 십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김재홍이 말한 동심 지향성 또는 천진성의 시학과도 통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 시들도 있다.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은
지상을 살피러 온 천사님들의
휴식처가 아닐까.
하나님을 도우는 천사님이시여
즐겁게 쉬고 가시고
잘되어 가더라고 말씀하소서.
눈에 안 보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할지 모르니
널리 용서하소서.
―<구름> 전문
제1연은 소박한 인식의 차원이다. 제2연도 그저 그렇다. 하지만 제3연에 가서 특유의 유머 감각을 동원해 시를 완성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살리고 있다. 하나님이며 하나님을 돕는 천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구름도 우리가 간혹 보기는 하지만 고개를 쳐들어 하늘만 보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눈에 안 보이는 신을, 신성(神性)을 우리는 망각한 채 살아가기 쉽다. 그래서 시인은 “눈에 안 보이기에/우리가 함부로 할지 모르니/널리 용서하소서.”라는 말을 농담처럼 툭 던진다. 이런 식의 유머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풍자와는 다른 차원이다. 풍자는 웃음 속에다 강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만 유머는 말 그대로 ‘해학’이다. 건강한 웃음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독자는 마냥 유쾌해진다.
本能으로만 사는 새들이여 참새여
사람은 理性이니 哲學이니 하여
너희들보다 순결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기쁘게 살 줄을 모른다.
―<참새> 마지막 연
하늘 아래가 자유롭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새는
아랫도리 人間을 불쌍히 보고
아리랑 아리랑 하고 부를지 모른다.
―<새소리> 마지막 연
우리는 흔히 ‘본능’을 좋지 않은 뜻으로 쓰고, ‘이성’이나 ‘철학’은 좋은 뜻으로 쓴다. 하지만 시인은 반대로 생각한다. 이성과 철학을 부르짖으며 사는 인간들이 본능대로 살아가는 참새보다도 순결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기쁘게 살 줄을 모른다고 한다. 이런 역설적 사고를 가능케 한 것이 특유의 유머 감각이다.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새의 아랫도리에 인간이 있다고 말한 <새소리>도 재미있다. 새의 지저귐을 “아리랑 아리랑” 하고 표현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천상병답다고 생각하며 피식, 실소를 하게 된다.
大羅馬의 로마市는 市民들로 하여금 찻집 안 가도 차를 경건한 心情으로 끓여 달라고 했는데 아마도 기어코 奴婢를 시켰을 것이다. 그들 貴族은 아침이나 밤이나 몸이 편해도 奴婢들의 수고를 끼쳤다. 어떤 著名한 詩人은 貴族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쌍놈 出家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上貴族일 것이다.
―<찻집(二)> 전문
제일 앞부분, “大羅馬의 로마市”는 약간 어색한 표현이다. 로마(Roma)의 음역이 나마(羅馬)이므로 대입을 하면 ‘대 로마의 로마시는’이 된다. 첫 번째 문장은 대충 이런 뜻인 듯하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이 찻집에 안 가도 차를 마실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노예가 차를 끓여 내놓았기 때문이다.’ “奴婢들의 수고를 끼쳤다”는 ‘노비들에게 수고를 끼쳤다’가 보다 완전한 문장일 듯. 그리고, ‘출가’보다는 ‘출신’이 맞지 않을까. 아무튼 천상병은 스스로 차를 끓여 마시지 않고 노예들을 시킨 로마의 귀족들이 얄밉다고 빈정거린다. 귀족이 되고 싶다고 한 어떤 저명한 시인은 누구인지 확실히 모르겠는데(고은일까?), 천상병은 “쌍놈 出家”임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비하한다. 그런 말을 하다가 문득 뇌까린다. “나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上貴族일 것이다.”라고.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면서 종업원에게 갖은 시중을 다 들게 하고, 찻값을 내건 내지 않건 간에 자기 돈을 안 쓰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얄미운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노예를 부려, 마시고 싶을 때 얼마든지 차를 마실 수 있었던 로마의 귀족보다도 더한 귀족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시가 끝난다. 고급 유머다. 이런 시는 또 어떤가.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편지> 전문
우리 속담에 “뒷간 갔다오면서 서두르는 사람 없다”란 것이 있다. 누구든지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면 느긋해진다는 뜻이다. 도루묵이란 생선에 얽힌 고사가 그렇듯이 배고플 때 먹는 것과 배부를 때 먹는 것은 같은 음식일지라도 맛이 아주 다르다. 이 시에서 배부른 내가 배고픈 나에게 편지를 쓴다는 발상 자체도 재미있지만 배부른 내가 배고픈 나에게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고 유머러스하게 말해 주는 것이 이 시를 살리고 있다. 사람이 배가 불러지면 배고팠던 몇 시간 전이나 혹은 과거의 배고팠던 시절을 잊어버리는 것이 상례이다. “내일을 믿다가/이십 년” 세월이 흘러가 버렸는데 그것을 혹시 잊고 살아갈까 봐 배부른 내가 배고픈 나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경록을 쓰듯이 말이다. 천상병의 생애를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런 말을 하는 시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시인 자신은 이런 말을 얼마나 해학적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
주부는 물론 결혼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그 결혼을 할 때
못난 신랑은 다소 못나도 아내를 삼는다.
다소 못나도 자기에게는 제일 예쁜 것이다.
이것은 못난 신랑의 경우고,
보통사람이면 죽어라 하고,
미인을 원한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마누라 아닌가.
―<詩作 노트> 전문
이 시의 묘미는 마지막 행에 있다. 못난 신랑은 여자가 다소 못나도 아내를 삼지만 보통사람이면 죽어라 하고 미인을 원한다고 말한 뒤 시인은 한마디를 남긴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마누라 아니냐고. 마지막 행은 “제 눈에 안경”이라는 속담을 연상시킨다. 못난 신랑은 다소 못난 여자를 아내로 삼지만 보통사람은? 미인을 원하지만 자기 눈에 미인인 것이지 세상에 어찌 그리 미인이 많다고 보통사람이 몽땅 미인과 결혼하여 살 수 있으랴. 대개의 경우 끝 부분에 가서 한마디를 툭, 의뭉스레 던져 유머를 만들어내는 시인의 기법은 여간 세련된 것이 아니다.
천상병은 고문 후유증으로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했던 시인이다. 고통을 술로 달래기도 했지만 시를 쓸 때는 이렇게 유머 감각을 발휘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다. 유머는 자기 위안의 성격을 지닌다. 풍자란 이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어 비판하고 특정한 타인의 위선을 공격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유머는 이처럼 부드럽다. 비판을 할 때도 은근슬쩍 돌려서 하고, 대개의 경우 미소를 선사한다. 세상에 대한 희화, 그것이 천상병 시인의 장기였던 것이다.
4. 천상병이 지향하는 희망의 철학
시인은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병고에 시달리며 살았다. 동백림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 전에 부산시장의 공보비서로 2년간 일했지만 공직생활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한평생 실업자로 살아갔다. 1972년 친구의 누이동생 목순옥 씨와 결혼을 하지 못했더라면 시인은 일찌감치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가난에 짓눌리지 않았고 병든 육신과 자신의 신세를 저주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주변 사람들에게 용돈을 타내 술과 담배를 해결하며 살았지만(결혼 이전에는 잠자리와 밥까지 주변 사람들 신세를 지며 해결하였다), 그는 늘 당당하였다. 그리고 시종일관 희망의 철학을 설파하였다. 좌절과 절망, 비탄과 자학 같은 것은 천 시인의 몫이 아니었다. 자연현상에 내 감정을 이입할 때, 다른 시인들은 나의 외로움과 상실감 등 비감을 전하는 것이 다반사였음에 반해 천상병은 줄기차게 희망의 철학을 설파하였다.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갈매기> 전문
소월의 그리움에는 ‘원망’이 포함되어 있지만 천상병의 그리움에는 기꺼움과 자랑, 아름다운 마음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2회 추천작인 이 작품에서 시인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에 내 그리움을 이입하여 구름이 되게 하고,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흐르게 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되었음을 수줍게 고백하고 있다. 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 자체를 즐기고 있으니 이런 그리움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이런 청정무구한 마음이 천상병 시의 본바탕이었다. 놀라운 것은 생식의 능력까지 잃을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한 이후에 쓴 시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인의 시심이 청정무구한 상태임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나의 가난함> 부분
이 시는 천상병의 행복론이기도 한데, 아무리 가난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시인의 밝은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다. 한 인간에게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가해졌다면 그는 비관주의자가 되었을 법한데, 천상병의 경우 오히려 반대되는 시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그의 시에서 절망과 좌절, 비탄과 자학의 세계를 찾아보기란 대단히 어렵다. 천 시인의 시 세계는 결코 음습하지 않다.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다. <행복>이라는 시에서는 “막걸리를 좋아하는데/아내가 다 사주니/무슨 불평이 있겠는가./더구나/하나님을 굳게 믿으니/이 우주에서/가장 강력한 분이/나의 빽이시니/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하고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천명하고 있다. 동시대의 시인이건 후배 시인이건 상당수의 시인들이 지향하는 세계는 어둠의 세계이지만 시인은 끊임없이 밝은 세계, 긍정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어떤 시인이 수십 년 동안 전셋집만 전전했다면 그가 ‘집’을 소재로 하여 시를 쓸 때, 틀림없이 ‘회한’과 ‘원망’의 정서를 담아서 쓸 것이다. 그러나 천상병은 그렇지 않다. “옛날의 예수님도/집이 없었는데/나는 셋방이라도 있으니/그저 영광이다”(<집>)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안빈낙도가 이 정도면 도인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내가 연 찻집의 이름이 됨으로써 시인의 대표작으로 부상한 시 <歸天>만 보아도 천 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대단히 밝았음을 알 수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歸天> 마지막 연
시인은 이 세상을 이미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하늘나라에 가서도 이 세상을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한다. 고문에 대한 아픈 기억, 정신병원에 갇힐 정도로 황폐해진 심신, 2세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몸, 간경화증으로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던 심한 음주, 만년 실업상태……. 이 모든 불행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줄기차게 희망의 철학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희망만을 말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쓴맛이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은 괴로움만도
또한 아닙니다.
―<신부에게> 부분
세상에는 쓴맛을 볼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인은 애써 희망의 소중함을 말했던 것이다. 어두운 현실 등 세상의 어둠을 들려주는 시인이 많고 많지만 천상병은 유아독존 격으로 희망을 말하고 싶어했다. 불행의 깊이를 이미 뼈저리게 체험했었기 때문에 그는 역설적으로 세상의 밝은 부분을 그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다음은 운명했을 때 시인의 웃옷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는 유고시이다.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파란빛이
온 세상을 덮는 오월은
문자 그대로 신록의 달이다.
파란빛은 눈에 참 좋다.
눈에 좋을 뿐만 아니라
희망을 속삭여 준다.
오월 달은 그래서
너무 짧은 것 같다.
푸른 오월이여
세계의 오월이여
―<오월의 신록> 전문
시인의 사망일은 1993년 4월 28일이다. 이 작품은 『월간조선』 5월호 시 청탁을 받고 쓴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망 직전에 쓴 것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할 수 있었던 그 시간에도 신록의 파란빛과 희망의 속삭임을 노래하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푸르른 오월을 꿈꾸었던 시인이 바로 천상병이었다. 개인사의 불행을 뿌리치고 끊임없이 희망의 철학을 논했던 시인이기에 그의 시는 이처럼 밝다.
ㅡ『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푸른사상, 200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