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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수필 /문경자

작성자샛별|작성시간26.06.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김밥 수필 /문경자

합천군 대표 언론, 합천신문

김밥 – 문경자
2026년 5월 21일 hcnews 1521호

저녁준비를 하려고 쌀을 씻다가 갑자기 낮에 모임에서 먹었던 김밥이 생각났다. 김밥의 서러움이 실실 기어나와 불러주는 데로 한번 써봐 하고 명령을 내렸다. 어릴 때는 김밥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랐다. 그저 밥풀 떼기 한 알 둥둥 떠있는 시금치죽을 먹어도 행복하였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도 복이었다. 어머니는 먼 나라 여행을 가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봄소풍을 가는 날에는 밥을 싸갔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영영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운동회를 할 때도 무얼 싸가지고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고, 운동회날은 슬픔 그 자체였다. 다른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까지 온 가족들이 고운 한복차림으로 운동회 구경을 갔다. 그날은 동네가 텅 비었다. 친구들 어머니는 특별한 간식과 점심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가는 길이 즐거웠다. 그 애들은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깅자는 혼자 가면서 차라리 운동회나 소풍 같은 날이 없으면 좋을 텐데 하고 그때마다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코스모스가 핀 길을 걸으며 먼 하늘에 계신 엄마야! 나도 김밥이 묵고 싶어, 빨리 내려와 꽁보리밥이라도 아니면 맨밥이라도 도시락을 싸주면 안되나! 누구하고 밥을 묵노! 운동회 날이 기쁘다고 하지만 제일 슬픈 날이었다.
청군은 파란색 머리띠, 백군은 하얀색 머리띠 서로 이겨라 피 터지게 응원을 하고,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속 동그란 얼굴이 내려 다 보며 ‘깅자야 배곯지 말고 잘 챙겨 묵고 힘내라’하는 목소리가 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각 반별로 달리기를 하는 차례였다. 운동회를 할 때마다 꼴찌를 면하는 달리기는 힘이 들었다. 엄마라도 있으면 고봉밥을 먹고 뛰었으면 더 힘이 날 텐데! 아버지는 ‘깅자야 빨리 뛰어라 어서 빨리 더 빨리’하고 응원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여자선생님은 “아이구 문 선생 딸이 꼴찌로 간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힘차게 뛰었다. 마음은 달리고 몸은 느리고 덩치 큰 순영이가 있어 위안이 되었다.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잘했다 하며 칭찬을 해주었다. “아부지 다음에 꼴찌는 면할 낍니더예.”하고 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웃었다.
드디어 점심을 먹기위해서 마지막으로 박 터뜨리기 모래 콩주머니 던지기를 하는 시합이었다. 청, 백군이 하는 신나는 종목이다. 서로 빠르게 터뜨리기 시합은 어른이 되어도 찐한 기억에 남아있다. 청군이 이겼다. 기분이 좋았다. 박속에서 나온 플랜카드와 색종이를 쳐다보며 와! 함성을 지르며 그 속에 들어가 손으로 받으려고 했다. 플랜카드에 적힌 글귀는 축 운동회라고 적혀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담당 선생님이 마이크로 “모두 수고했어요. 각자 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김밥과 간식을 먹고 다음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 모두 우르르 가족들에게 몰려갔다. 운동장 가운데 홀로 서있었다. 갈 곳이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해가 정오를 가르쳤다. 운동장에 떨어진 색종이를 밟고 내 그림자와 함께 멍하게 내려 다 보았다. 그때였다. 아버지는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경자야 저기 천막이 있는 곳으로 가자. 국밥이라도 먹어야 힘이 생긴다.”“예. 아버지.”하고 손을 잡고 가는 그 순간 하늘을 올려 다 보니 ‘어여 가거라’하고 손짓을 하는 엄마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다. 천막속에는 선생님들이 돼지국밥을 먹고 있었다. 각 반장 엄마들이 여러 가지 마련해 준 김밥과 간식들이 수북이 쌓였 있었다. 고기도 구경 못한 내가 돼지국밥을 먹으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한 쪽 구석에서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김밥 한 개만 먹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여자담임선생님은 맛있는 김밥을 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내 모습이 눈에 뛸까 봐 몸을 식탁아래에 숨겼다.
시집 갈 나이가 되어 선을 보고 약혼식도 올리고 결혼을 하여 아들 둘을 낳았다. 아이들 김밥을 싸주며 그때의 서러운 마음이 자꾸 떠올랐다. 한 개라도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 운동회 하는 날. 김밥을 싸기 위해 당근, 햄, 계란지단, 시금치, 우엉, 단무지, 소고기, 오이 등을 준비해 놓았다. 흰밥을 지을 때 약간의 굵은 소금을 넣고 간간하게 지은 다음 넓은 스테인레스 볼에 밥을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 식초가 밥알에 스며들 정도로 비벼 놓았다. 김밥을 썰어서 예쁘게 담았다. 반장 엄마라고 그 반 대표로 담임 선생님께 드릴 도시락도 쌌다. 여동생이 조카운동회 날이라 같이 갔다. 아빠는 직장관계로 참석을 못했다. 내손으로 싼 김밥을 먹는 두 아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작은 아들은 보조개도 만들었다. “엄마 내 친구 영현이는 엄마가 안 계셔서 김밥도 못 먹어요. 불쌍해요.”하는 말에 “친구가 어디 있는데”하고 물어보았다. “어서 가서 데리고 와”작은 아들이 뛰어가서 친구를 데리고 와서 같이 먹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김밥을 사 먹는 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야외나들이에 엄마 표 김밥 맛은 어디에도 비 할 바가 아니었다.
김밥은 싸는 재미도 있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다. 어떤 아이는 시금치를 싫어하고 어떤 아이는 단무지를 좋아한다. 남편은 김밥의 꽁지를 좋아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는 왜 꽁지만 드세요”하고 웃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이면 잠을 자고 푹 쉬어야 한다며 아빠와 야외에 나가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할 때도 구경한번 못 갔다. 두 아들은 달리기를 1등하여 손목에 찍은 등수를 아빠가 오면 자랑한다며 좋아했다. 아빠를 닮아 달리기는 잘했다. 한번은 “여보 김밥을 싸고 아이들과 어린이 대공원에 다녀옵시다.”하고 슬쩍 물어보았다. 오랜만에 아빠와 놀러 간다고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김밥은 사는 것 보다는 내가 직접 만들기 위해서 재료를 구입했다.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야 맛있다. 김밥을 돌돌 말다 보면 옆구리가 터져 가족들 보기에 챙피해서 내 입으로 들어갔다. 소원이던 김밥을 많이 먹어 배가 불렀다. 아이구 옆구리야 호호! 예쁜 것만 골라 담았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붐벼서 소풍을 온 분위기였다. 아빠는 꽁지를, 아이들은 가운데 토막을, 나는 먹어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내 어머니도 이런 행복을 느껴보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늘도 맑고 오월의 마지막 날 아이들과 동물구경에 푹 빠졌던 날, 지금은 환하게 웃으며 목마를 태워주던 아빠의 얼굴도 멀리 떠나 그리움만 남았다.
김밥도 변신하여, 먹는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소고기, 치즈, 샐러드, 멸치, 기본, 돈까스, 김치, 참치, 삼각 김밥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김밥 메뉴가 개발되었다.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김밥이 음식메뉴 1 순위로 추천할 만큼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김밥이 생각난다. 자르지 않고 한입 베어서 먹는 맛도 일품이다. 땡초 멸치, 김치 참치, 김치치즈, 소고기, 유부초밥 등 종류는 셀 수없이 많지만 엄마표 김밥이 최고다. 김밥 안에 들어있는 모든 재료는 입맛을 당기게 하는 묘약이 들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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