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詩)도 사람을 해칠 수 있는가
/ 안현진
얼마 전 문우로부터 반가운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얇은 시집을 손에 들고 있노라면 문득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상에 같은 얼굴이 없듯 시집 또한 저마다 다른 표정과 향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도 다르고,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어떤 시는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어떤 시는 오래된 우물속 두레박을 끌어올리듯 잊고 있던 기억과 그리움을 길어 올린다.
우리는 흔히 시를 아름다움의 언어라고 말한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무뎌진 감성을 깨우며, 때로는 삶의 방향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는 대체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과학 저술가의 글에서 뜻밖의 문장을 만났다.
"시는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시가 사람을 해친다니. 위로와 치유의 언어인 시와 해로움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문장은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아 떠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시 자체가 칼날이어서가 아니라, 언어가 지닌 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평생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시 역시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람의 내면 깊숙이 스며든다. 때로는 절망을 아름답게 포장해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길 수도 있고, 때로는 증오와 편견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은 조선의 문인들에게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시와 글을 쓰도록 강요했다. 문학은 민중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기에 식민 권력은 그것을 선전 도구로 이용하려 했다. 윤동주와 이육사 시인은 끝내 그 요구를 거부했다. 만약 그들이 시대의 압력에 굴복해 일제의 선전 문학을 썼다면 목숨은 건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그들의 이름은 지금처럼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시는 인간이 만든 언어 가운데 가장 압축적이고도 강렬한 형식이다. 시인은 수많은 문장을 덜어내고 몇 줄의 언어 안에 삶의 비밀과 감정을 응축한다. 그 과정에서 시는 독자의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그래서 어떤 시구는 위로가 되지만, 또 어떤 시구는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며 아픔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잘못 처방된 약이 독이 되듯, 무너진 마음 상태에 놓인 사람에게 어떤 시는 치유가 아니라 절망의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후 많은 젊은이들이 주인공을 모방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는 문학이 인간 정신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록 소설이지만 그 안에 흐르는 시적 정서와 감정의 전염성은 현실의 삶까지 흔들어 놓았다.
더 나아가 시는 개인을 넘어 사회를 해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이념에 오염된 시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증오를 정당화하는 선동문으로 변한다. 아름다운 운율과 감동적인 수사는 때때로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하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언어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 안에 숨은 폭력성을 보지 못할 때, 시는 가장 우아한 모습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시를 사랑한다.
시는 사람을 해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사람을 살려 왔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고,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 주며, 무심히 지나치던 삶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슈테판 클라인은 『우리는 모든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에서 인간이 우주와 깊이 연결된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별의 먼지로 이루어진 우리는 언어라는 파동을 통해 서로의 마음에 닿는다. 그렇기에 시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시가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칼이 의사의 손에 들리면 생명을 살리는 수술도가 되고, 강도의 손에 들리면 흉기가 되듯, 시 또한 그것을 쓰고 읽는 인간의 마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시의 위험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얇은 시집 한 권을 다시 펼쳐 본다. 몇 줄의 언어가 누군가를 울리고,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며, 때로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시는 결코 무해한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에 닿는 가장 섬세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언어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사랑하되 경외해야 한다.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그 힘을 잊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