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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바낭 숨을 수달처럼-강희정-《인간과문학.2026여름》

작성자김종혁|작성시간26.06.21|조회수26 목록 댓글 0

<수필>

바랑 숨을 수달처럼

/강희정

나는 맥주병이다. 물이 무섭다. 젖은 머리가 귀찮다. 수영장의 소독약냄새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울렁거린다. 몇 번이나 수영을 배우려고 갔다가 되돌아왔는지 모른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 물속에서 조금 떠 있을 수는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물 위로 띄우면 본성처럼 헤엄쳐가는 영상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누군가 내가 아기였을 때 물에 집어넣어 주었으면 싶다. 엄마 뱃속에서 게을러서 먹고 잠만 잤었나 싶기도 하다.

당신은 물보다는 흙에 가까운 사주입니다. 지상에서 가까이 걷고 산책하는 게 맞는다고 점을 쳐주면 그러면 그렇지 그래서 내가 물을 멀리하는 거야 하고 희희낙락한다. 마치 면죄부를 얻은 듯이 잊고 지내다가도 홀로 여행하는 지인이 크로아티아 해변에서 수영했다던가 라오스의 불루라군에서 다이빙하는 사진이라도 올리면 사나흘은 배가 아프다. 부러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시작하는 물장구가 이렇게나 어려운 숙제다.

그래서인지 바다 동물 중에 유독 물장구 잘 치고 물에 둥둥 떠서 배 위에서 조개를 까먹는 수달을 좋아한다. 장난기도 다분하고 생긴 모습도 귀염성이 있는 데다 먹는 걸 좋아하는 것도 나와 비슷해서다. 해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수영을 잘해서 배영을 자유자재로 하면 물 위에 와인과 치즈를 잔뜩 띄워놓고 둥둥거리며 수달처럼 빈둥거리고 싶다. 물론 당장 꿈을 이루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누워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꿈의 미묘함은 아주 작은 차이에 있다. 구명조끼는 수달의 자유로움에는 조금 못 미친다.

이런 게으른 꿈을 이야기하면 빨리 수영을 배우는 게 낫다거나 어느 세월에 하나는 핀잔만 돌아온다. 더더욱 숨기고 이야기하지 않아야 한다.

헤엄을 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에 수달을 좋아하다가 또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몇 번의 제주 여행에서 온종일 비가 내려 우울하던 끝에 결국 나는 여행지 근처의 해수탕을 가보자고 제안했다. 바닷물을 끓여 낸 물속에 몸을 담그면 찌뿌둥한 몸을 조금은 회복시켜 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구좌읍 근처의 동네 해수탕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새벽 댓바람에 들어간 입구는 조용했다. 탕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을 때 생각보다 큰 욕탕에 몇몇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더욱이 그 아주머니들은 머릿수건을 쓰고 있지도 않았고 욕탕 깊숙이 잠수하고 있었다. 가끔 동네 목욕탕의 무례한 아주머니들이 냉탕에서 수영 연습을 한다고 발장구를 치다가 물보라를 일으켜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던 장면이 떠올랐다.

조용한 몸 담금은 물 건너갔구나 해수의 진수를 맛보려 했는데 온탕에서도 잠수하다니 이건 아니지 싶었다.
한데 해수탕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욕탕이 꽤 깊이가 있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설마 발이 닿지 않는 건 아닐 거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닷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뿌연 김 서림에 안경이 흔들렸다. 이른 시간이라 열 명 남짓한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잠수하다가 위로 올라오며 아주머니들은 숨소리를 내었다. 순간 나는 그분들이 동네 해녀 아주머니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카메라가 정지되고 슬로비디오처럼 한분한분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꺼칠한 얼굴, 기미 자국과 군더더기 없는 몸이 들어왔다. 제주여행에서 만난 해녀들은 새벽 댓바람에 잡아 온 전복이나 소라를 회로 쳐서 초고추장에 내주던 일과 전복죽 집에서 인심 좋은 웃음으로 맞이해주던 기억이 먼저다. 이렇게 가까이 몸과 몸으로 해녀를 만날 줄은 몰랐다. 갑자기 돌고래 무리 속에 들어온 새우가 된 기분이 들었다.

부표인 테왁과 전복 소라 담는 망사리만 없지 해녀들은 모처럼 쉬는 날 몸을 풀려 나온 것이었다. 비는 오고 바다는 거칠었나 보다. 압력이 높은 수면 아래에서 오랜 시간 견디면 오히려 일하지 않을 때 몸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벼운 숨비소리도 들리고 서로서로 안부를 물으며 자유자재로 물질하듯 몸을 담근다. 그러다가 어정쩡 물 가장자리에 발만 담그고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보기 시작했다.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해녀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말이 들린다. 어째 이 좋은 해수에 몸을 담그지 않는지 이상하다는 표정이 보였다. 다른 해녀들도 한 번씩 나를 쳐다보았다. 설마 물질을 못 하는 건가 하는 의아한 표정도 보였다.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걸을 수 있는 깊은 탕이 넘실거렸다. 어쩌자고 해수탕을 이 새벽에 왔던가 비밀의 문을 잘못 열고 들어온 아이처럼 온갖 생각이 휙휙 스쳤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해녀들의 뜨거운 시선과 들리지 않

지만,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나는 옆에 있는 큰 대야를 집어 들었다. 이 살아있는 인어들과 적어도 같이 물에 떠 있고 싶다는 생각 하나였던 것 같다. 나는 두 개의 대야를 마주 겹쳐서 배 아래에 댔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미끄러지듯 탕 가운데로 통통통 물장구를 치며 저어가기 시작했다. 스무 개의 눈동자가 나를 따라왔다. 두 개의 눈이, 여섯 개의 눈이 반달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마도 상군 해녀일듯한 할머니가 수달처럼 손뼉을 쳤다. 해녀들과 나는 첨벙첨벙 통통통 섞여 들어갔다.

기분 좋은 해수의 뜨거움이 온몸에 스며들고 깔깔깔 웃으며 헤엄을 쳤다.

잠시 두 개의 대야가 삐꺽거리더니 부력을 잃고 나는 탕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물속의 해녀 할머니가 두 무릎을 안고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물속에서 힘을 빼고 있으니 저절로 물속에 둥둥 떠 있게 되었다. 마치 수달이 바랑 숨을 쉬듯 편안하고 따뜻한 눈 맞춤이 태초의 기억에 존재한 엄마 뱃속에 숨 쉬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수면의 경계를 넘어선 순간 모든 소음이 수면 위로 날아가고 내 심장이 내는 묵직한 고동 소리 탕 위로 번지는 흐릿한 빛이 부서지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정적 속에서 내뱉지 못한 숨이 기포가 되어 뺨을 스치고 작은 소음이 거대한 침묵 속에 선명했다. 멀고 낮은 진동들, 물이 내 몸에 건네는 낮은 속삭임 물은 나를 밀어내지 않고 가장 깊은 품을 내어주었다. 고요를 가르쳐주던 수달이 수면으로 조용히 떠올라 조개를 까먹는 여유를 부리는 순간들은 어쩌면 물속 깊숙이 자맥질하며 바랑 숨을 쉬던 시간의 조각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했다. 몸을 둥글게 말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점이 되는 순간 나의 진짜 소리를 들어 보라고 했다.

수면 위로 올라가 다시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할 시간이 오겠지만 이
푸른 정적 속에서 마주한 내 안의 울림은 한동안 내 삶의 소란함을 견디게 하는 고요한 힘이 되어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맥주병이다. 벌써 몇 년째 자주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그러나 나는 바랑 숨을 쉬는 법을 알고 싶은 고요의 한 점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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