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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흐름과 존재에 대한 사유-양희진-《인간과문학.2026 여름》

작성자김종혁|작성시간26.06.21|조회수23 목록 댓글 0

|계간평 | 시

강물의 시학

-흐름과 존재에 대한 사유

/양희진

'강물'은 시에서 가장 오래된 이미지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소진되지 않는 상징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유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강물을 노래한 시들은 결국 "흐른다"는 사실을 통해 "존재한다"는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적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고대의 사유에서부터 강물은 변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비유였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것처럼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명제는, 시속에 반복적으로 변주되며 존재의 불안정성을 환기한다. 그러나 시는 철학과 달리 이 명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강물의 이미지 자체를 통해, 독자가 그 흐름을 감각하도록 만들어 준다.

동양적 시 전통에서 강물은 보다 조화로운 세계관 속에 놓이게 된다. 노자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다투지 않는 존재로서, 시에서는 종종 겸허함과 순응의 미학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대시에 이르면 이러한 평형은 곧잘 흔들리곤 한다. 강물은 더 이상 평형이 아니라, 균열과 불안을 품은 채 흘러가는 이미지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오염되고, 기억을 운반하며, 때로는 단절된 시간의 흔적으로 남게 된다. 예를 들어 신경림의 <농무>에서는 강물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고단한 민중의 삶을 나타내고 있고, 김승희의 <강가에서>는 불안과 흔들리는 자아로 나타난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는 단절과 시대의 상처로서 강의 이미지가 파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양 현대시에서는 T.S.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오염된 문명과 영혼의 메마름으로, 강물이 더 이상 생명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강물'이 가지는 여러 가지 상징, 즉 시간과 변화, 인간의 운명과 존재, 정화의 기능, 기억 그리고 죽음과 경계, 노마드(Nomad)적인 사유를 품고 있는 시들을 통해서, '강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시학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1. 원천源泉, 시작의 탄생과 정화

먼저 강물의 원형적인 의미의 상징으로 모태로서의 강물을 보자. 예로부터 산은 남성적 이미지요, 강은 여성적 이미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 이유는 강물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삶의 원천, 즉 모태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

양희진 405


다. 김금분의 시 <융숭한 강물>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만삭의 풍어가 솟아올랐다가 뭉텅 쏟아지는 분만의 아침강이 출렁인다여명에 비치는 붉은 출혈, 산후 몸조리 도와주는 청둥오리도 바쁘다신생아 잉어의 생명을 받아안는 융숭한 강물

-김금분. <융숭한 강물> 부분

"만삭의 풍어"가 새로운 시작의 탄생을 알린다. "분만의 아침강"이 출렁이고 이윽고 “여명에 비치는 붉은 출혈처럼 붉은 해가 떠오른다. 탄생하는 "신생아 잉어를 받아안는 융숭한 강물", 강물은 탄생과 풍요의 신비를 알리고 유유히 흘러간다. 이처럼 강물은 씻어내고 다시 태어나는 정화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 제목 <융숭한 강물>이 시사하는 바융숭함은 풍요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성의 포용성을 상징한다.

오늘의 문명도 강물을 껴안고 뒹굴었다 이것이 문명이라면 살아갈 방식을 또 골몰해야 하는 밤, 강줄기 따라 달리고 멈추다 보면 물이 길이고 길이 땅이었다 내일은 오래전 엮은 뗏목 타고 노 저어 나아가리라 곳곳 하늘같이 큰 우물이 아가리 쭈욱 벌려 쫓아오고 하얀 물 뿜어내는 무리들이 꼬리 치며 우릴 반기는 곳(...중략)두 손 모은 주문에 자꾸 밤과 낮이 흐른다면 바위에 갇힌 고래 두 눈에 푸르른 우물이 자꾸 출렁여 눈짓한다면 그때 올 세상, 누군가는 다시 신석기라 칭했을지도.......-박수원, <원시의 일기반구대 고래바위에 갇힌 고래> 부분

삶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 역사를 만든다. 박수원의 시 <원시의 일기-반구대 고래바위에 갇힌 고래>는 고래를 모티프로 한다. “강물을 껴안고" 굴러 문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걸 보여준다. “강줄기 따라 달리고 멈추다 보면 길이고 땅"인 것이다. 밤과 낮이 쉼 없이 흘러 흘러 바위에 고래가 갇힌다. 원시의 시작이며 한 시대의 탄생이고, 문명의 시작이다. 머물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 흘러가면서 스스로를 잃지 않는 존재, 고래다. 강물은 과거와 현재·미래를 동시에 품는 존재이다. 바다에 사는 고래의 원천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샘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강물은 바다로 흐르고 바다는 다시 강을 거꾸로 올라가, 발원지인 원천즉 시작의 옹달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강은 세계인류사의 문명 탄생지인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나일강, 갠지스강 황하강등 4대 문명의 발원지이기도 한 것이리라.

인간이 매 순간 변화하는 것처럼 강물도 끊임없이 흐르며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는다. 즉 시간의 축적이고 역사의 기록장치이다. 강물은 그래서 인류의 기억인 것이다.

송복련의 시 <정동진>에서 바다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해를 받아 안는다. 이 시에서는 해가 모태의 원천이며, 그 원천인 강물을 기다리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눈이 멀도록 빛을 쏘며 다가올 그대는 아직 오지 않았어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가면 감색 치맛단이 크게 한번 출렁거렸다가 불덩이 같은 해 하나 건네는 순간을 떠올렸지(....중략)아직 오지 않았어 부릅뜬 눈에는


허연 이빨로 거품 물고 떼로 달려드는 고래들만 해안으로 밀려왔다 사라지고 또 밀려와 헤는 오직 내 안에서 뜨고 졌을 뿐이야

- 송복련. <정동진> 부분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가면 감색의 푸른 치맛단이 크게 한번 출렁거렸다가 불덩이 같은 해" 하나 건네는 순간을 기억한다. 그 기억으로 "아직 오지 않은" 그대를 기다리는데, "허연 이빨로 거품물고 떼로 달려드는 고래들만 해안으로 밀려왔다 사라지고 또 밀려온다. "해는 오직 내안에서 뜨고 졌을 뿐"이라고 노래한다.

김금분의 시 <융숭한 강물>의 붉은 출혈은 탄생으로 표상되고, 송복련의 시 <정동진>의 불덩이같은 해는 원천의 상징으로, 두 시가 모두 붉은적색으로 탄생과 모태를 표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고래가 등장한다. '고래 시인'이라고 지칭되는 시인이 있는 것처럼 시詩에서 고래는 수많은 상징으로 쓰여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면의 아직 오지 않은 존재, 시인은 강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강물과 파도의 이중적인 이미지, 즉 중의적 이미지로 고래로 표상하고 있다. 아직 바다로 이르지 못한강물을 시인은 정동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출렁이는 물은 실체 없는 존재이다. "오직 내 안에서 뜨고 졌을 뿐인 것은, 욕망에서 벗어난 세계 즉 비어 있음의 존재인 불교적 시선이다. 공의 철학이 담겨있는 시라고 볼 수 있겠다.

2. 깨달음의 사유 방식 '혼돈의 강물과 유목민

강물은 경계가 없고 모든 것을 품고 흘러, 포용하기 때문에 혼돈스럽


다. 따라서 강물은 혼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시가 김영복의 <햇살노트>이다. <장자>에 나오는 '혼돈'은 경계가 없는 흐름이다. 단순히 어지러운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분화되기 전의 완전한 하나이자 근원적인 생명력을 의미한다. 인위가 가해지지 않은 태초의 순수성 즉 장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상태는 이 혼돈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즉 구분이 없는 동일체로 모든 것이 나뉘기 전, 한데 뒤섞여 도도하게 흐르는 상태가 바로 '혼돈'의 강인 것이다. '모태'로서의 강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성질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한강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강물 위에 뜨는 물비늘 편지

손가락 끝으로만 그리는 강이지만

반사되는 해거름 노을을 껴안은 채 강물에 뛰어드는 심장

흔들리듯 윤슬에 반짝이는 마음은

금풍가을 불빛 비늘에 출렁출렁 되는 해답을 받고

위로가 된 강물로 흘러가는 시간의 주술에 취해

강이 적셔주는 미혹한 사유로

(....중략)

마음이 고요하게 들어와

그대로인 강물에 여전히 떠 있고 변함없이 늘 똑같은 혼돈의 강물이 마음에 흐른다 새로운 상실의 의미를 영원하게 상선약수로 흘러가는 길은

1) 장자의 혼돈의 강물. 장자 <응제왕>제7편에 나오는 이야기. 남해의 숙과 북해의 홉이 중앙의 황제인 혼돈의 친절에 보답하고자 눈코입 귀등 일곱 개의 구멍(칠규)을 뚫어주었다고 함.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자, 이레째 되는 날 혼돈이 죽고 말았다는 우화.

언제나 오늘은 햇살처럼 흐려질 것을

-김영복. <햇살노트> 부분

"손가락 끝으로만 그리는 강"이 "노을을 껴안은 채 심장이 강물에 뛰어든다. 삶의 해답을 알려주는지 "금풍가을"은 출렁이고 "시간의 주술“에 취한 강물은 위로가 되어 흘러간다. "마음이 고요하게 들어와" 처음 그대로인 강물은 여전히 떠 있지만, “늘 똑같은 혼돈의 강물이 마음에 흐른다". 상선약수의 마음으로 강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처럼 햇살을 바라보는 마음이 고요하다.

상선약수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노자의 사상에서 물을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여기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하는 겸손함을 상징한다. 즉 노자는 '혼돈의 강물까지도 이상적인 존재 방식으로 여겨, 모든 것을 이기고 바꾸며, 억지로 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루어내는 무위를 말하고 있다. 강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이루는 존재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김종경의 시유의 강>은 혼돈의 강물에 노마드의 개념을 첨가한다.

강물은 그냥 울면서만 흘러가는 게 아니다날마다 낯빛이 바뀌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물결 속엔

자갈보다 찰진 근육이 있고 바위보다 단단한 뼈가 숨어서 강물은 이따금 남몰래 벌떡 일어나걷다가 뛰다가 혹은 모래처럼 오랫동안 기어, 기어서라도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김종경 <유목의 강> 전문

유목민이 정착민의 성벽(구멍)을 거부하듯 혼돈의 강은 규정된 형틀을 거부한다. 장자의 키워드인 소요유 즉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니는 삶은, 바로 이 혼돈의 강물에 몸을 맡긴 유목민의 삶이라 할 수 있겠다.

“강물은 울면서만 흘러가는 게 아니다". "날마다 낯빛이 바뀌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물결 속에 찰진 근육”도 있고“단단한 뼈”도 있고, “강물은 이따금 벌떡 일어나서 걷고 뛰고 기어서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강물은 이처럼 고정된 영토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유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강물이 모태로서 생명을 잉태한다면 그 동력은 멈추지 않는 흐름 즉 유목적 이동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강물은 정착을 꿈꾸는 대지의 욕망을 거슬러 올라가끊임없이 바다라는 절대적 공간을 향해탈주하는 노마드의 길을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는 '노마디즘'을 설명하며, 고정된 틀을 깨는 것을 '탈주'라고 했다. 즉 강물은 매 순간 흐르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묘한 역설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유목민의 이동 경로는 강물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강이 굽이치면 유목민의 삶도 굽이치고, 강이 마르면 유목민은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한다. 조은재의 시 <유목민>도 이런 노마드(Nomad)의 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찌 어렵게 일군 마을을 두고 계절따라 떠날 수 있을까 그곳에는 웃음이 있고, 낡은 찻잔에 고인 따스함이 있고, 한때의 노래가 있다 그러나 강물은 멈추지 않고, 하늘의 바람은 길을 바꾼다

떠난 자리엔 여전히 불씨 같은 그리움이 남는다 그리움은 새벽의 이슬처럼 스며들어내 발자국을 적신다

삶은 끝없는 순례... 끝없는 생존이다

조은재의 시 <유목민> 계간문예 봄호

유목민이 "어렵게 일군 마을을 두고 계절따라 이동하는 삶을 노래한다. "낡은 찻잔에 고인 따스함과 "한때의 노래"를 뒤로 하고 강물따라“멈추지 않고" 흐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떠난 자리엔 여전히 그리움이 남지만, 사라져 버리는 "새벽의 이슬처럼" 끝없는 순례의 삶으로 생존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강물이 흐른다는 속성은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


Nomad의 삶과 철학적으로 매우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강물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길 위의 존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유목민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강물 역시 한 지점에 고여있는 순간, 강으로서의 생명력을 잃고 늪이나 호수가 되는 것이다. 유목민이 국경이나 인위적인 경계를 넘어 초원을 누비듯, 강물은 지형의 굴곡에 따라 흐르며 산과 들, 마을과 도시를 관통한다. 이는 고착된 관념이나 체제에 얽매이지 않는 유적(Nomadic)자유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상하는 강물

서순옥의 시 <진눈깨비>에 나오는 진눈깨비는, 비와 눈이 섞여 만들어지는 물의 이미지다. 그 물은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경계 즉 삶이 비라면 죽음은 눈이 되는 그 경계를 의미한다.

3월이었다 병석에 있는 시어머니 뵈러 광주 가던 길 새벽부터 진눈깨비 내리고 하늘은 잿빛잘 다녀오라는 남편의 인사는 미안해하는 포옹이었다(....중략)무겁게 침묵이 휩싸인 하얀 시트 여러 가닥 링거 줄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경계에서 울고 있던 진눈깨비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3월에 진눈깨비

-서순옥. <진눈깨비> 부분

3월인데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진눈깨비" 내린다. 시적 화자인 시인은 자신을 진눈깨비로 인식하고, 그 경계에서 삶을 의미하는 비와, 죽음을 의미하는 눈, 그 경계에서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진눈깨비로 울고 있는 것이다. 그날 “여러가닥 링거줄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경계에서 울던" 3월의 진눈깨비가 물처럼 흘러내려 적신다. 비가 내리면 지상의 땅속에 스며들어서 강물의 원천이 된다. 비와 진눈깨비는 지상으로 스며들어 생의 원천이 되고, 생은 강물의 원천이 되어 바다로 흐른다.

강물은 멈추지 않는 흐름이고, 떠남과 도착이며, 현실과 초월, 삶과 죽음의 의미를 갖는다. 죽음과 경계의 의미로 곧잘 얘기되고 있는 서양 신화의 스틱스강은 죽은 자가 건너는 강이다. 즉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로, 이 시에서는 3월에 내리는 진눈깨비로 표상하고 있다.

김충경의 시 <늙은 꽃>은 시냇물 소리로 죽음의 강을 건너갔음을 보여준다.

희끄무레한 저승 사이로 하염없이 젖어드는 시냇물 소리

저승길을 인도했던 만장처럼 펄럭이는 빨래판에서

어머니의 움푹 팬 주름살을 어루만져본다

-김충경 <늙은 꽃> 부분

"저승꽃 사이로 시냇물 소리가 하염없이 젖어 든다. 어머니는 죽음의 이 강을 기어코 건너가셨다. 그 저승길을 인도했던 "만장처럼 펄럭이는 빨래판", 그 쭈글거리는 빨래판을 "어머니의 움푹 팬 주름살 만지듯이 어루만져본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신 것이다.

이 시에서의 시냇물 즉 강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이다. 이 강을 건넌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틱스강은 저승을 일곱 번 감싸고 흐르는 강이다. 동양사상인 불교에서는 삼도천이라고 하는데, 7일째 되는 날 건너야 한다는 의미로 업보에 따라 건너는 곳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전해진다. 동서양이 똑같이 7이라는 숫자에 죽음을 연관시키고 있는 것도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상 강물이 가지는 시학적인 사유로 8편의 시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원천, 시작의 탄생과 정화의 의미로, 두번째는 깨달음의 사유 방식'혼돈의 강물'과 유목민으로,세 번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상하는 강물로서, 강물이 가지는 흐름과 존재의 사유로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김금분의 시 <융숭한 강물>은 모태의 풍요로움과 원천으로서의 끊임없이 솟구치는 시작의 힘으로, 강이 인류와 자연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와 같은 의미로서 강물을 표상하고 있다. 박수원의 시 <원시의 일기반구대 고래바위에 갇힌 고래>는 원시의 존재 의미를 강물로 표상하면서 문명의 시작됨을 노래하고 있다. 태어난 곳이자 죽음 이후 돌아가


야 할 곳으로 고래를 통해서, 모태가 주는 근원적인 안식처의 이미지로 회귀와 안식을 노래하고 있다. 송복련의 시 <정동진>은 바다에 떠오른 해와 바다를 모태로 해서, 강물이 표상하고 있는 원천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고 있다. 김영복의 시 <햇살노트>는 변함없이 흐르는 한강을 모티프로, 혼돈된 인간의 삶의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종경의 시 <유목의 강>은 혼돈의 강을 유목민의 역동성으로서, 스스로의 힘으로 지형을 바꾸어 나가는 유목적 생명력의 분출로 보여주고 있다. 조은재의 시 <유목민>은 유목민의 순례를 규격화된 현대인의 삶에, 근원적인 자유(소요)의 가능성으로 강물의 의미를 표상하고 있다. 서순옥의 시 <진눈깨비>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표상하는 강물로 진눈깨비를 상징해서 보여주고 있고, 김충경의 시 <늙은꽃>은 죽음의 강으로 건너간 저승꽃을 상징으로 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 강물이 표상하고 있는 원천으로서의 의미와 '혼돈의 강물'과 유목민으로서 자유와 깨달음 그리고 삶과 죽음으로서의 경계를 의미하는 강물이 가지는, 여러 포괄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의 시들을 사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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