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긍심이라는 말-
자신이 우연 속에 돋아난 임의적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
요컨대 필연적 존재라는 확신은 강력하다.
이런 류 아이디어는 종교적 멘탈리티에
가까운지라 사람의 내면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현재의 고난은 역사적 필연이며 결국 이
고업(苦業) 덕분에 병든 현실이 정화되리라.
이런 도식은 삶을 심플한 대의로 고양시킨다. 한편의 혁명 서사다.
인간은 본질상 의미있는 삶을 원한다.
우린 대략 이런 부류를 ‘원리주의자’라고 칭한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100?)’라는 이가 있다.
서기 1세기 역사가이며 실은 지탄받는 유대인 변절자였다.
그는 유대 장교였는데 로마에 투항해 역사가로 본업을 바꾼 사내다.
로마의 패스포트를 지니고서 이 변절자는 ‘유대전쟁사’라는 책을 썼다.
이 책 한 대목에는 매우 흥미롭고 비극적인 어느 전쟁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마사다(Masada)’라는 절벽 요새에 관한 얘기였다.
해발 400m의 민둥산 꼭대기에 수평으로 자른듯 넓은
구릉이 펼쳐진 땅, 마사다는 험악한 산중 요새였다.
일단 진 치면 누구라도 점령 못할 천혜의 목 좋은 자리.
여기에 어느 날 급진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모여들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캐릭터인 ‘질럿’의 어원인 ‘질럿당’,
우리 말로 ‘열심당’ 당원들이 본격 해방 전쟁을 벌인거다.
일종의 의병 투쟁이었다.
식민 통치에 꽤 관대한 편이던 로마는 유독 유대 민족의 반골 기질에 골 아파했다.
자치 정부의 헤롯(Herodes; BC73?~4)왕이 죽자 로마는 새 임금
대신 로마 장교를 총독으로 내세웠고 징세 목적의 인구 조사까지 실시했다.
자긍심(自矜心)에 손상 입은 유대인들은 연이어 반란을 일으켰다.
유대사회에서 협상론을 말하면 누구라도 테러와 암살을 당했다.
덩달아 로마의 진압도 점점 포악해졌으며, 지금이나
그때나 화약고 같은 땅의 화약고 같은 민족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 세계관에 토대한지라 자신의
죽음을 신의 역사 기획에 동참하는 한편의 드라마로 이해한다.
그런 자들의 게릴라전은 지독하고 비타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기 70년, ‘벤 야이르’라는 질럿파의 수장을 따라 ‘마사다’는 2년의 항쟁을 벌인다.
로마 총독은 3만 대군을 동원했지만 남녀 겨우 1,000명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마사다는 그런 곳이었다.
유대 반군을 시험에 빠뜨리듯 로마군은 유대 동족들을 동원해 요새로 길을 뚫었다.
돌덩이를 굴리던 반군도 차마 자기 동족들을 어찌하지 못하자 저항선에 구멍이 났다.
그렇게 마지막 날, 로마군의 총공격을 앞둔 새벽, 지도자 벤
야이르는 마사다의 유대인 1000명에게 집단자살을 명한다.
우선 사내들이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직접 죽였다.
다음으로 제비를 뽑아 서로를 죽여가면서 최후의 1인까지 집단 자살을 이어갔다.
그 광경을 확인한 로마 당국의 충격은 공포에 가까웠다.
이 집단 자살극은 요세푸스에 의해 역사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얘기를 써 내리던 요세푸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오늘날 이스라엘 군인들은 정규 훈련을 퇴소하며 꼭 마사다 정상에 오른다.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비장미(悲壯美)로 포장된 영웅담은 여기까지.
다음은 남아있는 산 자들이 참혹한 청구서를 받아들 차례였다.
질겁한 로마는 최악의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유대민족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전 유럽으로 뿔뿔이 흩어버린 것이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2000년의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이런 로마의 권세도 금새 끝이 났다.
이집트인도 로마가 망하고 나니 다시 자기 땅을 지켰고, 갈리아도
브리튼도 스페인도 다 자기네 땅에서 유구한 역사를 이어갔다.
사라진 건 오로지 로마와 유대국가 뿐이다.
‘폴 존슨(Paul Bede Johnson; 1928~2023, UK)’ 같은 역사학자는
이 급진파 질럿들의 항쟁에 관해,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항전이었고 민족 전체를 최악의 궁지로 몰았다'고 비판했다.
실제 유럽의 어떤 민족도 유대인처럼 비극적으로 찢기고 떠돌이가 된 사례는 없다.
유대인은 유럽 세계의 골치거리였고 주기적인 반유대주의의 타겟으로 희생당해왔다.
요컨대 ‘마사다’는 드라마틱한 영화, 그 절정의 한 컷이었을 뿐이다.
래디컬들이 들쑤셔 벌인 불퇴전은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람의 삶은 기승전결의 완결로 나아가는 드라마가 아니기에,
삶은 지난하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야 하기에...
마사다의 어리석은 급진주의자들은 로마를 이기거나 후일을
도모할 방도도 없이 처자식까지 모두 죽이고 민족 전체를 2000년 지옥도에 몰아넣었다.
그들은 공명심에 눈 멀어 민족을 공멸시킨 책임자들이다.
나는 요새 김영삼(金泳三; 1929~2015, 14代)이라는 인물을 종종 곱씹는다.
물론 아주 부정적 감정을 실어서…
김씨는 대단히 비타협적이고 민족적 자부심을 중시 여기는 지도자였다.
그는 수시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말로써 대일 항전의 의지를 언성 높였다.
포퓰리스트였던 그가 반일 기조를 목소리 높일 때마다 지지율은 쑥쑥 솟았다.
그러나 그의 임기 말은 익히 잘 알듯 경제 대란으로 종언을 고한다.
허다한 일본자본이 한국시장에서 빠져나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일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나라를 거덜내고 국부를 삭감시킨 만사의 최종 책임자다.
우리네 어른들이 이 시절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우린 잘 안다.
이 때의 비극상을 잘 기억했던 15년 후 한국정부는 총명하고 신속한 대처를 해보였다.
당시 한국정부는 한일 통화스왑(통화 맞교환)으로 외환위기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고 한국은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로 위기를 모범적으로 넘겼다.
최근 우리 대통령은 일본 총리 면전에서 한일은
동맹 지간이 아니라는 꽤 무서운 소리를 했다.
한일 갈등은 대략 그런 식의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진행 중이다.
일본 총리는 이에 화답하듯 교역 편의를 봐주던 화이트국가에서 우리를 빼버렸다.
한국은 전범으로 지목한 기업의 자산을 동결했고 강제 매각 결정을 내렸다.
다시 일본은 거의 100% 독점하는 불산이며 반도체 3소재를 공급 중단시켰다.
어지러이 난자하는 주먹질…
이제 다음 차순은 뭘까.
혹 금융 규제일까.
IMF의 어둑한 그림자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 말에 드리운 공기를 살갗으로 알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국가 간 자긍심의 전쟁에 상류층들은 타격이랄 게 딱히 없다.
되려 자산 가치가 폭락해 신나는 ‘바겐세일’의 호기회를 누릴 뿐이다.
경제전쟁은 본디 가장 취약한 최일선의 민초들 삶을 갉아먹으며 버티는 제로섬의 악행이다.
‘애민(愛民)'의 심성을 지닌 리더라면 절대 시도 못할 짓이다.
요컨대 우리는 마사다처럼 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절대 가난해져서는 안 된다.
민초들이 어렵게 쌓은 부를 삭감시키며 실직과 실업으로
고통하게 하며 기꺼이 견디겠다는 불퇴전이라니.
한때 아시아 제2의 부국이던 필리핀에는 싱가폴 여인들이 가정부로 일 나갔었다.
이제는 반대다.
필리핀 여인들이 싱가폴에서 가정부를 한다.
가난(家難)이란 그런 것이다.
무역이 끊기면 국부가 수축한다.
빈곤이 드리운다.
누구는 자긍심이 없고 의기가 없겠는가.
제 손으로 돈벌이 한번 안 해본 정치 자영업자들 주제에
왜 민중의 삶을 지렛대 삼아 자긍심의 게임을 벌리나.
한국사람 700만명, 일본사람 350만명이 매해 서로 놀러 다니는,
누가 봐도 민간베이스에서는 좋아 죽는
나라끼리 이 무슨 가설건물 같은 허구의 전쟁인가.
왠 자긍심의 쟁투인가.
우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
굽힐 때는 굽히며 철저히 실력을 길러
훗날 눈물이 찔끔 날만치 상대 코를 눌러주자.
‘죽창’이니 ‘의병’이니 이런 소리는 접자.
우리는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육박하는 대국이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인지라 망하든 말든,
될대로 되라는 헝그리한 인생들이 아니다.
나는 ‘반일(反日)’을 반한다.
나는 ‘극일(克日)’을 원한다.
언젠가 작가 ‘엘리 위젤(Elle Wiesel; 1928~2016)’의
홀로코스트(Holocaust) 회고록을 읽다 펑펑 운 적이 있다.
끔찍하다 못해 지옥도에 가까운 묘사한 대목이었다.
산 채로, 옷도 입히지 않은 갓 태어난 유대인 아기들을 독일
군병들이 트럭에서 쏟아 부어 불길에 던지는 광경…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엘리 위젤은 그날 형틀에 매달린 유대인 시체를 멀뚱히 올려다보며 속으로 묻는다.
‘대체 하나님은 어디 있으신거지?’
그리고 그는 다시 속으로 답한다.
‘어디 있긴. 저기 형틀에 매달려있지.’
이를테면 그는 새까맣게 영혼이 타버린 유대인이었다.
이 비극의 원인을 거스르고 거스르면 나는 마사다의 선조들,
어리석고 멋지기만 한 어떤 항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어떤 거대한 책임의 소재에 관한 문제다.
나는 마사다 같은 거창한 대의의 죽음을 경멸한다.
남루할 지 언정 질경이처럼 이어지는 작디 작은 삶을 사랑한다.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슬아슬한 삶이 가난해지지 않기를 원한다.
무능한 정치가들이 떠드는 명분의 전쟁에 내 이웃들 삶들이 파괴되지 않기 바란다.
기억의 전쟁 치르느라 나라 곳간 털어먹은 이들은 조선 사대부들로 족하다.
‘역사를 기억하자’는 캠페인.
나는 절대 동의하는 바다.
진심이다.
David Barrett의 'One Shining Moment' (1986)
https://youtu.be/R1ykPL6FXwg?si=stoz5Loz1wixrD5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