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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판단 보류의 장단점

작성자산수|작성시간26.06.15|조회수38 목록 댓글 1

 

 

 

 

판단 보류의 장단점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우리는 살면서 ‘인식의 틀’이라는 것을 발달시켜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이것은 대상을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로 안전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대상을 찬찬히 살피면 이미 늦거나 위험에 처할 수 있으므로, 지각하는 순간 얼른 범주화시켜 알아차리는 기능을 한다. 이런 것을 우리는 ‘지식’이라고 일컬으며 열심히 익히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은 세상살이에 유용한 역할을 하지만, 대상을 실재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개념이나 관념으로 이해하게 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즉, 대상의 껍데기만 알고 지나가도록 하므로 표피적인 이해에 그치게 한다는 것이다.

 

   간간이 인식이라는 것에 관한 회의할 때가 있다. 둔감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순진하기 때문인지, 상담할 때 나는 비교적 내담자의 말을 좀 곧이곧대로 듣는 편이다. 그런데 내담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내용을 각색하거나 편집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상대의 말에 모순이나 거짓이 뒤섞여 있다는 걸 간과하곤 한다. 이런 것으로 좀처럼 가닥을 잡지 못해 헤매게 되면, 나는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만들어 앞뒤 아귀가 맞도록 애쓴다.

   집단상담에서 이런 것으로 고심하는 내게 콧구멍이 두 개여서 숨 쉬고 살지 한 개였으면 벌써 막혀 죽었다고 철죽 님은 쓴소리했다. 거짓말을 하는 게 뻔한데, 그것을 알아채기는커녕 연결 고리를 만들어서라도 이해하려 드니 답답하단다. 상식에 어긋나면, 불리한 뭔가가 생략되었거나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심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억지로 꿰맞추려는 작업을 하지 않아 지금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

   이런 지적을 듣고 어떻게든 상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성향을 탈피하고자 노력한 덕분인지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그런 순진성이 지닌 순기능에 대해서도 눈뜨게 되었다.

 

   지난겨울 집단상담 참석자 중 한 부인이 이혼을 앞두고 고민했다. 이혼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참석했다고 했다.

   이미 중년에 이르렀는데,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사는 게 어떠냐고 집단원들은 이혼을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너무나도 인정머리 없이 굴었다며 자기로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정 견딜 수 없다면 이혼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집단원들이 동조하자, 이혼하기에는 너무 분해 견딜 수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반박하고, 저렇게 말해도 이렇게 반박하는 그녀에 대해 종잡을 수 없어 사람들은 지쳐갔다. 나 역시 저게 뭔가하고 여간 고심한 게 아니었다.

   마침내 철쭉 님은 현 상황에서는 이혼할 경우 모두 피해자가 된다며, 특히 그녀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겠다며 이혼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이 말 하면 저 말하고, 저 말을 하면 이 말을 하는 식으로 일관했다. 이러기를 반복하자, 철쭉 님은 그녀가 다른 남자를 의지하고 있지 않으면 이혼을 앞두고 그토록 태연자약할 수 없다며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이런 심한 말을 듣고서도 그녀는 대수로워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넋두리나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런 태도에 집단원들은 질려했고, 그녀는 그렇게 겉돌다가 집단상담을 마치고 귀가했다.

   그런데 놀라웠던 점은 집에 돌아가서는 남편에게 잘해보겠다고 굽힘으로써 추진하던 이혼을 보류시켰다는 것이다. 이후 그녀는 내게 개인상담을 받는데, 아무튼 나는 그녀가 집단상담에서 그렇게 남의 말을 흘려듣는 듯했는데 그래도 뭔가를 알아들었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여전히 남편이 자기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그녀는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며 잘하던 태도를 접고 다시 신경전을 하듯 썰렁하게 지냈다. 상대가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점에 대해 상당히 노여워하는 비슷한 특성을 보이는 부부가 다시금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이러한 그녀를 상담하며 내가 간간이 느끼는 좌절감은 무슨 말을 해도 그녀가 그것을 귀담아듣지 않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즉 내가 이런저런 말을 해도 그녀는 자기의 분한 마음을 토로하기에 여념 없을 따름이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아, 저 부인의 고질적인 면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는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 생각, 가치에나 몰두해 있는 점. 그러니까 그녀는 철쭉 님이 봤듯이 다른 남자가 있어 이혼을 앞두고 그렇게 태연자약했던 게 아니라, 온통 자기에게나 빠진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비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자기애가 강한 나머지 자기라는 틀에 갇혀 있는 형국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가슴에 와닿는 게 있는지 그녀는 울었다. 자기에게 그런 점이 다분히 있는 것 같다고 비로소 유순하게 실토했다.

 

   그녀가 어찌하다 그토록 자기에게 몰두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봐야겠지만, 그녀를 보내놓고 내가 주목했던 점은 철쭉 님이 왜 그녀에게 외간 남자가 있다고 판단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일이라 오류의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순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자기 감정이나 생각에 과도하게 몰두해 있는 게 문제였다.

   여기에서 철쭉 님과 나와 차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철쭉 님은 일반적인 상식에 기초했고, 나는 내담자를 비교적 곧이곧대로 봤던 점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맞는다면 그것은 재빠른 파악을 돕는 인식의 틀을 민첩하게 작동시키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콧구멍이 한 개 같은 고지식한 면이 역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순기능도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둘의 조화와 균형이 관건이지 싶다. 내담자를 돕기 위해 너무 느리거나 답답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상식에 기초해 개개인의 특성을 오해해서도 안 된다. 이 두 가지를 그때그때 적절히 구사하는 상담자라는 위치, 그래서 더욱 묵직해지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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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호시절 | 작성시간 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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