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괴로운 이유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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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하면 한 만큼 괴로워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집착을 떨쳐내지 못하고, 번번이 그것에 말려들어 괴로워한다. 조심하다가도 어느새 그것에 얽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니, 참으로 성가시다.
어떻게 해야 그 뿌리를 뽑아버릴 수 있을지….
이 세상의 모든 게 변한다는 걸 명확히 알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 어는 것도 항상(恒常)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여건에 따라 형성된 가변적인 것이란다. 심지어 ‘나’라는 존재도 오온(五蘊)이라는 다섯 무더기(色,受,想,行,識)가 이룬 일시적인 형상이라고 하니, 이런 마당에 무엇에 기댄단 말인가.
불교에서는 삶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천명한다. 모든 게 변화 도상에 있어 불완전하기 때문이란다.
삶이 고(苦)인 것을 12연기(十二緣起)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괴로움이 생겨나는 과정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과정을 12단계로 분류한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왜 괴로워하고 또 어떻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인과(因果)의 사슬로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 → 행(行) → 식(識) → 명색(名色) → 육입(六入) → 촉(觸) → 수(受) → 애(愛) → 취(取) → 유(有) → 생(生) → 노사(老死)로 이어진다. 진리를 깨달아 궁극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①무명(無明):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
②행(行): 무명에 바탕을 둔 의도적 행위나 업.
③식(識): 분별하는 의식.
④명색(名色):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
⑤육입(六入): 여섯 감각기관.
⑥촉(觸): 감각기관과 대상이 만나는 접촉.
⑦수(受):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⑧애(愛): 느낌에 대한 욕망(갈애), 집착하고 싶은 마음.
⑨취(取): 갈애가 더 강해진 집착.
⑩유(有): 존재를 이어 가는 힘, 업의 형성.
⑪생(生): 다시 태어남.
⑫노사(老死): 늙음과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한 모든 괴로움.
이러한 12연기의 핵심은 무지(無明)로 인해 의도(行)가 생겨나고, 그 연속으로 결국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반대로 무명이 사라지면 행도 사라지고, 이어서 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도 차례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것이다.
일단 무지로 떨어지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12단계의 과정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무지란 모든 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혹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12단계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태어나서(生) 늙어 죽기(老死)까지의 과정에서나 의식할 수 있을 뿐이니, 윤회의 굴레로 떨어지는 시발점인 무명(無明)을 어찌 타파하겠는가.
그렇더라도 그것을 타파하고 길을 부처님께서는 발견하셨다고 한다. 깊은 관찰을 통해 실상을 명확하게 꿰뚫음으로써 연쇄적인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12단계가 불교 전반에 관통하는 골자이긴 한데, 복잡하고 어렵다. 그리하여 실생활에서 실감할 수 있도록 축약해 말하면, 삶이 괴로운 이유는 집착 때문이라고 한다. 즐거우면 더 원하게 되고, 속상하면 노여워하게 되고…. 결국 기대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기대하면 한만큼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를 살맛 나게 하는 게 무엇인가. 기대, 사랑, 기다림 등과 같은 단물이 나는 것들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것들이 집착과 맞닿아있어 위태롭기 그지없으니…. 그래서 외줄을 타는 심정을 금하기 어렵고, 시시때때로 서글퍼진다.
그러나 덧없다느니, 허망하다느니 하는 말로 덧칠하고 싶지는 않다.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상태에서 빚어지는 넋두리인듯해서다.
모든 게 자기 수준이나 성품대로 흘러가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그렇구나!’하고 호오(好惡) 없이 바라다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그렇게 흘러갈 따름인 존재들로 오히려 연민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