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
이경림
칠흑의 새재를 넘어 보고야 알았다
한 재가 얼마나 많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지
골짜기들은 또 얼마나 깊은 어둠을 품고 있는지
새들도 넘지 못한다는 재를 칭칭 감으며 낡은 승용차가 위태롭게 내려갈 때
골골의 어둠이 노랗게 언달을 밀어올리고
한치 앞의 벼랑이 시간을 자꾸 헛바퀴 돌릴 때
우리는 생사의 경계 위에 선 아버지를 보았다
온 산의 슬픔이 달빛처럼 번지고 있었다
누구였는지 문득, 넋 없는 사람처럼
재 아래 어른거리는 어린날을 끄집어냈다
바람나 재 넘어간 옥자얘기, 구랑리에서 떼죽음 당한 어느 일가(一家)의 얘기,
육이오때, 목숨 걸고 재를 넘겨준 가복(家僕)의 얘기며
난리통에 관문속 어느 골짜기에 묻히신 증조부 얘기를 두서없이 중얼댔지만
두려움보다 재는 높고 슬픔보다 길이 더 휘어
끝내 우리는 말을 잃었다
그러나 누군들 몰랐으리
그 모두 한 재가 토해낸 한숨이라는 걸
그 숨으로 깊어진 골짜기라는 걸
그것이 밀어올린 봉우리라는 걸
(권득용 시 해설)
태종 13년(1413)에 개척된 문경새재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초점(草岾)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억새풀 우거진 고개’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의 고갯길을 의미하는 ‘새(사이)재’‘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만든 고개’ 등으로 전해 내려오지만 지리학자들 사이에는 ‘새로 낸 고갯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1925년 이화령에 국도가 건설되면서 새재는 서울과 영남을 잇는 역할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새재는 우리 한국인 모두의 고개이며 백두대간 인문학의 아카이브이다.
시인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많은 골짜기와 깊은 어둠을 굳이 계측이나 계량의 정량적 용언(用言) 이 아니라 사유와 사물을 어림잡아 ‘품’어주고 있다. 그리하여 이화령 국도를 ‘낡은 승용차가 위태롭게 내려갈 때’이화령도 새재의 한 골짜기가 밀어올린 또 다른 새재로 직립시키고 있다. 그러다 ‘골골의 어둠이 노랗게 언달을 밀어올리’는 겨울밤 생사의 경계에 선 아버지와 시인은 고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찾아 서울로 떠나는 무지공처(無地空處)인 삶의 서사를 적고 있다.
그 벼랑의 시간에도 문득 어린 날의 수군거림이 어룽지는 것은 왜일까. 바람난 옥자와 구랑리 일가의 떼죽음, 난리통에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는 증조부가 정지된 과거로 늙어가는 이유는 ‘두려움보다 재는 높고 슬픔보다 길이 더 휘어’진 까닭이리라. 결국 ‘한 재가 토해낸 한숨’으로 살아가는 서사적 관형의 주요양상들인 우리 삶의 아픔과 슬픔이 ‘밀어올린 봉우리’가 된다. 하여 새재는 문경을 대표하는 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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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시인 (1947~ ) 경북 문경 가은 출생.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토씨 찾기』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외 4권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 버렸다』, 비평집 『사유의 깊이, 관찰의 깊이』
영역시집 『A New Season Approaching, Devour it』
지리산문학상, 윤동주서시문학상, 애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