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벽/이일현

작성자원명화|작성시간04.09.16|조회수36 목록 댓글 0
빈 벽

이 일 헌


벽을 바라본다. 네댓 평 남짓한 다실(茶室)의 벽면을 본다. 거뭇거뭇 닥 껍질이 묻어 배어 있는 한지 그대로인 채 텅 비어 있다. 이 방에 들면 어쩐지 편안하다. 나날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닫이를 닫고 블라인드로 앞창을 가린다. 닥나무 내음이 살짝 스친다. 누런 장판 위에 차살림 몇 가지와 장방형의 상, 그리고 몇 개의 무명 방석뿐. 하얀 창호지에 얼비치는 창살이 낯설지 않아 옛 고향집인 듯하다.

지난 겨울, 전철역이 가까운 이곳으로 집을 옮겼다. 10여 년 넘게 살던 곳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 평수를 조금 넓힌 아파트다. 그 즈음 군복무를 마친 큰 아이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다. 집안의 공간이 제법 여유가 생겨 방 한 칸을 다실로 쓰자고 가족과 의견을 모았다.

오래 전부터 서재를 겸한 다실을 갖고 싶었다. 그 집이 시끌시끌한 도시가 아닌, 골짜기에 물이 흐르며 철 따라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내는 둘레에 걸맞게 자연스럽고 소박한 멋이 풍겨나는 그런 방을 그려보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서울 한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꿈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는 일, 구색을 갖추지는 못했어도 여건에 맞추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아파트라 선택의 폭이 좁았다.

볕이 잘 들고 전망 좋은 남쪽 큰방을 서재와 다실로 나누었다. 국화문 창살을 넣어 맞춘 네 짝의 미닫이문을 달아 두 공간을 연결했다. 주문한 한지로 천장과 벽을 발랐다. 용인에 사는 유운영씨가 손수 떠온 닥종이는 순지(純紙)라서 더없이 수더분하게 보여, 오래 지나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통유리를 끼운 알루미늄새시 창은 남향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방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고심 끝에 순색 광목 커튼을 늘어뜨린 후 좌우로 동여매었다. 볕 가리개로는 선이 굵은 창호지 빛깔의 버티컬블라인드를 설치했다. 한 칸의 방 속에 과거와 현재, 자연과 문명, 동과 서가 어우러졌다. 벽에는 못자국을 내지 않았다. 몇 가지 차살림을 옮겼다.

그런데 이 방을 쓰다 보니 필요한 세간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 때는 너무 허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석 자리에 잘 생긴 문갑을 놓고 난 분 하나쯤 얹는다면 한결 운치가 있을 것도 같다. 빈 벽에 민화나 문인화를 두어 점 걸면 딱 좋겠다는 벗의 권유도 있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이 방에 어울릴 것 같은 시계와 달력을 준비했다. 산수화 한 점과 붓글씨 대련을 꺼내어 걸 자리를 가늠해 본다. 꽃병, 수석, 전화기와 휴지통도 챙겼다. 이사할 때 묶어 둔 보따리들을 풀어 괜찮은 것이 없나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꿈꾸던 다실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요즈음 나는 온갖 유형, 무형의 소유와 치레들이 갑갑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무엇인가 차고 넘치는 데 쉽게 지친다. 거리에 나서면 도시 하늘을 뒤덮은 빌딩들,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 온갖 모임과 매일 쏟아지는 정보들도 나의 정신적 여백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구석구석 들어찬 세간, 빈틈없이 메운 벽 치레가 어디 근사하게만 보이던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이 많은 것들이 모두 필요한 것일까. 이것들을 사고 늘어놓고 관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 공간을 빼앗겨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물질의 풍요와 끝없는 욕망에 짓눌려 마음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칸의 방이라도 마음 놓고 등 기대며 무릎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이 방만이라도 나의 삶을 담기 위해 비워 두어야 한다.

어느 날이다. 햇살이 한낮을 비켜 갈 즈음 화안한 버티컬 면에 조용히 어리는 한 폭의 수묵화, 베란다에 놓인 관음죽의 그림자다. 해가 구름 사이를 숨바꼭질할 때면 그림은 농담(濃淡)을 바꾸어가며 가물거리다가 다시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는 살며시 자리를 옮기는가, 점점 몸을 줄이는가 싶더니, 어느 겨를 홀연히 모습을 거둔다.

아름답다! 뒷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이 멋진 묵화의 유희를 나 홀로 감상하다니……. 그리운 사람과 함께라면 그게 바로 신선놀이가 아니겠는가. 사방이 텅 비었기에 잡힐 듯 사라지는 그림자조차도 이렇듯 가슴에 깊이 다가오는지 모른다. 그래서 노자는 허(虛)에 대해서 말했던 것일까.

지금은 6월, 다향이 싱그러운 계절이다. 며칠 전, 호연(浩然)이 보내 준 햇차 맛이 궁금하다. 물 끓는 소리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어느 사이 벽을 향한다. 순박한 촌로의 가슴은 걸림 없는 저런 모습일까. 닮고 싶다. 이 앞에 오래 머물고 싶다.


분에 맞지 않는 상념에 젖어 있을 때 탕관에서는 뽀얀 김이 피어오르면서 군무(群舞)를 펼치기 시작한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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