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실역 일번 출입구....최정란
퇴근길, 지하도 계단을 올라서면
맥도날드 불빛을 등지고 일 톤 트럭 한 대가
가파른 작은 불빛을 밝히고 있다
그 불빛 아래 손짓으로만 말하는 두 사람
이마에 맺힌 근심을 닦으며 말을 굽는다
말과 말 사이, 사이
숨을 고르는 손으로
꽃 모양 틀에 묽게 풀린 소리의 반죽을 붓고
그 위에 잘 발효된 침묵을 한 줌 얹자
설익은 말들이 숨을 죽이고 돌아눕는다
반죽 묻은 손으로 간을 맞추고
삐걱거리는 관절의 안부를 묻는 동안
젖은 말들 불의 온기를 들이마시고
완숙의 음절로 한껏 부풀어올라
두꺼워지는 어둠을 몇 걸음 뒤로 밀어낸다
종이봉지 안에서는
단골이라고 한 마디 더 얹어준 덤의 말
속에 든 말없음표까지 골고루 뜸이 들고
보드랍게 말랑거리는 말을 받아든
나는 목에 걸린 고등어 가시 같은 누추한 설움에
목 메인 일상을 천천히 목으로 넘기며
무성한 차가운 말들이 파놓은
캄캄한 지하도 같은 숨은 함정들을 용서한다
오늘도 두실역 일 번 출입구 농아 부부
소리 없이 따뜻한 느낌표 같은 붕어빵을 굽는다
.................................................................
▶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당선소감 : 최정란
시의 쌀을 씻는다. 시의 반찬을 늘어놓고 간을 본다. 아직은 시고 떫고 싱겁고 짜고 맵다. 어느 날인가 감칠 맛 나는 시를 밥상에 올릴 것이다. 알맞게 뜸들여 꼭꼭 씹어먹고 싶은 맛난 시를 써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시의 식탁으로 초대해 까칠한 녹슨 수염이 비치는 반짝이는 수저를 손에 들려주고 삶의 허기를 메워 주고 싶다.
부엌에 굴러다니던 전복껍데기 하나를 들여다본다. 아름답다. 산란하는 빛에서 파도소리가 부서진다. 빛이 부족하고 파도가 거칠고 껍데기도 하나뿐인 전복의 삶의 조건은 부족한 것 투성이. 저 아름다운 무늬는 다름 아닌 고통이며 슬픔이었을 것이다. 슬픔이 없었다면 드러난 뼈 속에 고통의 무늬를 새기는 대신 허영을 살 찌웠을 것이다. 조금씩 들어오는 햇빛을 물의 프리즘을 통과시켜 갈무리하는 동안에 따라 들어온 물결도 같이 출렁이다 떠나지 못하고 머물렀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고통이라면 온전히 내 몫이겠지만 기쁨이라면 절반은 결핍과 부재의 몫이다. 내 미움을 받으면서도 나를 지켜준 결핍에게 악수를 청한다.
나머지 절반은 살아오는 동안 내게 기대를 걸어 주고 참고 지켜 보아 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내 삶의 힘인 지석 지혜, 그리고 늘 나를 설레고 긴장하게 만드는 당신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아버지와 시어머니, 형제들에게 기쁨의 작은 몫을 드린다. 머무르고 흐르는 귀한 인연들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삶은 고통 속에서 아름답다는 말, 비오는 날도 맑은 날과 같은 무게로 소중하다는 말, 그대들이 없었다면 나는 감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술한 가능성을 읽어 주시고 말없는 격려로 흙 위로 싹을 올리는 법을 보여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목요창작반 문우들에게도 부끄러움을 건넨다.
신입생의 설렘을 선물로 주시며 격려의 회초리도 같이 주실 신경림 남송우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첫 발자국 떼었으니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곱게 똑딱, 곱게 똑딱’ 들린다며 어린 나를 옆에 앉히고 굳이 눈감고 들어 보라 하시던 어머니 산소에 이 글을 바칩니다
▶ 최정란
1961년 경북 상주 출생, 내사랑 부산시민 에세이대상 수상
퇴근길, 지하도 계단을 올라서면
맥도날드 불빛을 등지고 일 톤 트럭 한 대가
가파른 작은 불빛을 밝히고 있다
그 불빛 아래 손짓으로만 말하는 두 사람
이마에 맺힌 근심을 닦으며 말을 굽는다
말과 말 사이, 사이
숨을 고르는 손으로
꽃 모양 틀에 묽게 풀린 소리의 반죽을 붓고
그 위에 잘 발효된 침묵을 한 줌 얹자
설익은 말들이 숨을 죽이고 돌아눕는다
반죽 묻은 손으로 간을 맞추고
삐걱거리는 관절의 안부를 묻는 동안
젖은 말들 불의 온기를 들이마시고
완숙의 음절로 한껏 부풀어올라
두꺼워지는 어둠을 몇 걸음 뒤로 밀어낸다
종이봉지 안에서는
단골이라고 한 마디 더 얹어준 덤의 말
속에 든 말없음표까지 골고루 뜸이 들고
보드랍게 말랑거리는 말을 받아든
나는 목에 걸린 고등어 가시 같은 누추한 설움에
목 메인 일상을 천천히 목으로 넘기며
무성한 차가운 말들이 파놓은
캄캄한 지하도 같은 숨은 함정들을 용서한다
오늘도 두실역 일 번 출입구 농아 부부
소리 없이 따뜻한 느낌표 같은 붕어빵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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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당선소감 : 최정란
시의 쌀을 씻는다. 시의 반찬을 늘어놓고 간을 본다. 아직은 시고 떫고 싱겁고 짜고 맵다. 어느 날인가 감칠 맛 나는 시를 밥상에 올릴 것이다. 알맞게 뜸들여 꼭꼭 씹어먹고 싶은 맛난 시를 써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시의 식탁으로 초대해 까칠한 녹슨 수염이 비치는 반짝이는 수저를 손에 들려주고 삶의 허기를 메워 주고 싶다.
부엌에 굴러다니던 전복껍데기 하나를 들여다본다. 아름답다. 산란하는 빛에서 파도소리가 부서진다. 빛이 부족하고 파도가 거칠고 껍데기도 하나뿐인 전복의 삶의 조건은 부족한 것 투성이. 저 아름다운 무늬는 다름 아닌 고통이며 슬픔이었을 것이다. 슬픔이 없었다면 드러난 뼈 속에 고통의 무늬를 새기는 대신 허영을 살 찌웠을 것이다. 조금씩 들어오는 햇빛을 물의 프리즘을 통과시켜 갈무리하는 동안에 따라 들어온 물결도 같이 출렁이다 떠나지 못하고 머물렀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고통이라면 온전히 내 몫이겠지만 기쁨이라면 절반은 결핍과 부재의 몫이다. 내 미움을 받으면서도 나를 지켜준 결핍에게 악수를 청한다.
나머지 절반은 살아오는 동안 내게 기대를 걸어 주고 참고 지켜 보아 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내 삶의 힘인 지석 지혜, 그리고 늘 나를 설레고 긴장하게 만드는 당신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아버지와 시어머니, 형제들에게 기쁨의 작은 몫을 드린다. 머무르고 흐르는 귀한 인연들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삶은 고통 속에서 아름답다는 말, 비오는 날도 맑은 날과 같은 무게로 소중하다는 말, 그대들이 없었다면 나는 감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술한 가능성을 읽어 주시고 말없는 격려로 흙 위로 싹을 올리는 법을 보여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목요창작반 문우들에게도 부끄러움을 건넨다.
신입생의 설렘을 선물로 주시며 격려의 회초리도 같이 주실 신경림 남송우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첫 발자국 떼었으니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곱게 똑딱, 곱게 똑딱’ 들린다며 어린 나를 옆에 앉히고 굳이 눈감고 들어 보라 하시던 어머니 산소에 이 글을 바칩니다
▶ 최정란
1961년 경북 상주 출생, 내사랑 부산시민 에세이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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